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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타행성의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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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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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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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01

DUMMY

'잘 지낸다니 다행이구나. 그래도 가끔은··· 집에도 들려주렴.'


···또.


'조금만 더! 진헌아! 조금만 더 하면 금메달이다!'


또 이 꿈이군.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꾸듯이, 진헌은 그 마을에서 도망친 이후부터 가끔 이런 꿈을 꿨다.


'뭐? 진이 성이 아니야? ···그럼 성은 뭔데?'


멍청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이하현의 모습이나.


'오, 헌이 왔구나. 오늘은 밥이라도 먹고 가렴.'


인자하게 웃으시는 아저씨의 모습이나.


'가끔 바보 같은 짓을 하긴 하지만.'


······.


'그래도 나름 괜찮은 녀석이야. 그러니까 내 동생 좀 잘 부탁한다.'


시원스레 웃으며 진헌의 어깨를 두드리는 여성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또 이 악몽이구나.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진헌은 제법 애틋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악몽은커녕 오히려 행복한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진헌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성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지고 짙은 어둠이 그의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애틋했던 진헌의 눈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곧 깨어나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진헌은 익숙한 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을 바라봤다. 마치 그가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새까만 어둠이 진헌의 시선을 따라 조금씩 일렁였다.


누가 그랬던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자신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진헌은 정말로 심연이란 게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것이 자신의 심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치곤, 그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진헌은 자신을 고요히 감싸고 있는 어둠을 두려워하기는커녕.


한심하군.


오히려 이런 별 볼 일 없는 것이 자신의 심연이라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진헌은 점점 짙어지는 어둠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린 어둠을 뻔히 앞에 둔 것치곤, 제법 무방비한 행동이었다. 눈을 감으니 이전보다 더 선명한 어둠이 그를 덮쳐왔다.


진헌은 알고 있었다.

겨우 이런 별 볼 일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가 이 어둠을 이기는 날은 평생 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이것은 그의 심연이니까.


결국 한심한 건 진헌 자신이었다.










"야! 이거 안 놔!?"

"누나, 딱 한 번만! 진짜 눈 딱 감고 한 번만요···!"

"눈 감으면 더 겁나지 이 자식아!"


그건 그렇긴 한데···.


라비타와 실랑이를 벌인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여전히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말로 어르고 달래다가, 이제는 급기야 억지로 그녀의 팔까지 붙잡고 힘껏 당기기까지 했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요!"

"누가 안 간대!? 돌아서 간다고, 돌아서!"

"그러니까 어느 세월에 돌아서 가냐구요!"

"아 몰라!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슬슬 힘에 부치기 시작해 결국 라비타의 팔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에 라비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벌써 지쳤냐? 그러게 나처럼 평소에 잘 먹고 잘 잤어야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라비타도 나와의 실랑이가 상당히 힘들었던 모양인지 제법 지쳐 보였다.


진헌과 내가 도망친 마을은 레지스탕스의 본거지에서 말을 타고 이동해도 약 한 달 정도가 걸리는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지만, 본거지에서 출발한지 겨우 삼 일 만에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 휘이잉.


절벽에서 올라오는 거센 바람에 단정하게 묶인 라비타의 은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차가운 바람에 라비타가 추운 듯 몸을 살짝 떨었지만, 사실 그 떨림은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난 이 다리 절대로 안 건너."


절벽을 가로지른 긴 구름다리.

그것이 라비타를 떨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 휘이이잉.


다시 한번 불어온 거센 바람에 긴 구름다리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하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이전에 인터넷으로 봤던 네팔에 있는 구름다리의 길이가 330m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 다리는 그보다 더 길어 보였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리는 굉장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절벽 아래로 강이 흐르곤 있었지만, 물살이 제법 강한 데다, 이 정도 높이라면 강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아직도 해결 못했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진헌이 막 간이 텐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방금 일어난 모양인지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막 잠에서 깼을 때의 진헌의 버릇이었다.


"네가 웬일로 늦잠···, ······헌아?"


아직 아침 식사 전이긴 했지만 진헌치고는 늦게 일어난 편이었다. 거기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그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너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꿨냐?"


라비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걱정스레 물었다. 진헌은 그런 라비타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혀를 한번 찼다.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었나?"

"기, 기차··· 뭐···?"


라비타가 처음 들어보는 말에 주춤하자 진헌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누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군."

"아니, 야! 나만 떠들었냐!? 루나도 같이 떠들었잖···!"

"딱히 그게 너라고 한 적은 없다만. ···그래도 눈치는 있나 보군."

"야 이···!"

"아이고 누나!"


허리춤에 찬 검으로 손을 뻗는 라비타의 모습에 급히 그녀의 팔을 온몸으로 부여잡으며, 그녀를 최대한 애처롭게 쳐다봤다. 그녀는 그런 내 눈빛에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래도 친구라고 걱정하기는···. 오냐, 내가 네 얼굴 봐서 딱 한 대. 딱 한 대만 때린다."


싸우지 말라는 의미로 쳐다본 거였는데, 라비타는 내 눈빛을 잘못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진헌과 한 판 하려는 모양인지 나를 옆으로 살짝 밀어내더니 호기롭게 검을 뽑아들었다.


···못 이길 텐데.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현재로썬 라비타가 진헌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라비타가 검술에 재능이 있는 건 맞지만, 그녀는 아직 배우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진헌은 이미 펜싱 국가대표로서의 대회 경험은 물론, 레지스탕스에서의 실전 경험도 많았다. 물론 마법을 쓰면 당연히 라비타가 이기겠지만.


절대 안 쓰겠지···.


라비타는 그걸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노블과의 실전이라면 몰라도 일반적인 동료 간의 대련에서는 절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실력으로는 무리일 텐데."

"걱정 마. 그 잘난 주둥이에 제대로 한방 먹여줄 테니까."


아이고 저놈의 재앙의 주둥아리···.


같이 말려도 모자랄 판에 진헌은 또다시 라비타의 전의를 불태웠다. 이제는 정말 라비타가 한 방 먹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 탱탱탱!


당장이라도 한 판 붙을 것 같은 분위기에 여차하면 회복 마법을 두르고 둘 사이로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등 뒤로 철이 서로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아르바가 우리를 보며 국자로 냄비를 두들기고 있었다.


"밥 다 됐어요!"


그렇게 말하며 아르바가 방긋 웃었다. 그 순진한 웃음에 방금 전과는 다른 긴장감이 들어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잊고 있었다···.


- 댕그랑.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라비타의 검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아까의 험악한 분위기는 어디 갔는지, 매우 긴장한 듯한 그녀는 삐걱거리며 땅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주웠다. 라비타의 이마에서 작은 땀방울 하나가 미끄러지는 게 보였다.


"···다행히 추락사로 죽진 않겠군."


진헌은 그렇게 말하곤 먼저 아르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법 담담하게 말했지만, 진헌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천하의 조진헌도 아르바의 요리는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르바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요리를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곧바로 혀를 강타하는 씁쓸한 맛에 목젖이 떨려왔다.


이, 이게 야채국이라니···.


분명 칸디스에게 배운 요리법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기억 속의 그 맛이 전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이걸 요리라고 해도 되는 걸까···.


진헌의 말처럼 오늘 죽게 된다면 분명 내 사인은 추락사가 아닌 중독사일 것이다.


"혹시 별로예요···?"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르바가 금세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시무룩해하는 아르바의 모습에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거 엄청 맛, 있는데?"

"진짜요?"

"으응 진, 짜로."


여전히 입속에 남아있는 씁쓸한 맛에 살짝 말을 더듬었지만, 다행히 아르바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겨우 한 숟가락 먹었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쓰려오는 속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웃어 보였다. 그에 바로 옆에 앉아있던 라비타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강하게 때렸다.


"억···!"


그 충격에 위가 흔들렸는지 속에서 뭔가가 올라는 기분이 들어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놈아···! 이런 건 사실대로 말해야지, 그런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해···!"


라비타는 혹시라도 아르바가 들을까 봐 걱정됐는지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아르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녀에게는 사실대로 말해줘야 했다. 그리고 후에 더 있을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분명 그러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라비타 언니는요?"


저렇게 눈을 땡그랗게 뜨고, 한껏 기대하며 물어오는 동생에게 어떻게 사실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내 대답에 용기를 얻은 아르바가 라비타에게도 요리의 평가를 물어오자 라비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라비타는 아직 야채국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아, 그···내가 오늘 입, 맛이 없···."


라비타가 불안하게 눈을 굴리며 슬쩍 말을 돌리자, 아르바는 금방 다시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에 라비타가 갑자기 자신의 접시를 들더니 야채국을 그대로 들이켰다. 한마디로 원샷이었다.


"었는데 이야~, 아르바가 만든 야채국은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다 도네! 맛도 아주 끝장난다, 끝장 나!"


누나···!


순간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라비타는 정말 다른 의미로 끝장을 본 표정이었다. 억지로 웃고는 있었지만 입꼬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얼굴도 점점 하얘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봐도 정말 맛있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라비타는 혼신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저번에 칸디스님이 해주신 거랑은 맛이 조금 다른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역시 고기가 안 들어가서 그런가 봐요! 다음에는 꼭 고기도 넣어서 만들게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르바는 그런 라비타의 혼신의 연기에 깜빡 속아넘어갔다. 의지에 찬 아르바의 눈빛을 보니, 다음에는 이보다 더 엄청난 게 탄생할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돼 입안이 말라갔다.


역시 사실대로 말할 걸 그랬나 싶어 속으로 후회하고 있는데.


"···맛있다."


옆에서 들려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노테의 말에 라비타와 나는 급히 그를 쳐다봤다. 방금 노테의 그 말은 언뜻 들어도 절대 연기가 아니었다.


"진짜 맛있어."


다시 한번 감탄하며 살짝 미소 짓는 노테의 표정에서는 한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노테는 정말 아르바의 요리를 맛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막입이었지···.


아르바와 노테의 요리가 맛이 없는 건 둘의 요리 실력이 안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냥 둘 다 맛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의 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던 탓이다.


"나중에 노테 오빠한테도 칸디스님한테 배운 요리법 알려줄게요!"

"응, 고마워."


순진하게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흠칫 몸이 떨렸다. 라비타는 옆에서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하하 세상에···, 이젠 이걸 만들 수 있는 녀석이 두 명으로 늘어나겠네···."


건너편에서 말없이 아르바의 야채국을 먹고 있던 김민진이 마지막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넋이 나간 듯한 그의 모습에 이상하게 속이 쓰려왔다.


그 씁쓸함이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오늘 야채국에 독버섯이라도 섞여들어갔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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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면족. 04 19.06.25 21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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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관계. 04 19.05.28 51 1 16쪽
41 관계. 03 19.05.24 26 1 15쪽
40 관계. 02 19.05.21 27 1 16쪽
39 관계. 01 19.05.17 51 1 14쪽
38 SOS. 19.05.15 44 1 15쪽
37 심연. 04 19.05.13 32 1 14쪽
36 심연. 03 19.05.08 44 1 14쪽
35 심연. 02 19.05.04 30 1 16쪽
» 심연. 01 19.04.30 4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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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달의 뒷면. 02 19.04.23 46 2 16쪽
31 달의 뒷면. 01 19.04.19 47 1 15쪽
30 양의 탈. 04 19.04.15 47 2 15쪽
29 양의 탈. 03 19.04.11 45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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