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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타행성의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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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작품등록일 :
2019.0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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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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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03

DUMMY

"동작 그만!"


얌전히 잘 있던 노테와 아르바가 갑자기 다리로 튀어나가려 한 탓에, 김민진이 급하게 둘을 붙잡았다.


얘들이 갑자기 왜 이래.


그런 의문이 드는 것과 동시에.


"김민진!!!"


다리 쪽에서 자신을 급하게 부르는 이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이상한 반응에, 다급한 이하현의 목소리까지. 그에 김민진은 현재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냐···.


속으로 한숨을 한번 쉬고 돌아본 광경은, 그래도 나름 베테랑인 김민진을 한순간에 당황시켜버렸다.


굳어있는 라비타와 그녀를 걱정스레 붙잡고 있는 이하현.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는 진헌.


라비타야 방금 전 바람에 겁을 먹어 그렇다 쳐도, 진헌의 행동이 유독 이상했다. 멀리서 봐도 그의 모습은 굉장히 다급해 보였지만, 그에 비해 움직임은 마치 영상을 느린 재생으로 돌리는 것처럼 느릿느릿했다. 하지만 김민진을 당황하게 한 건 그들이 아닌, 그들이 딛고 선 다리였다.


"저게 뭐야···."


김민진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마치 누군가가 아래에서 구름다리의 중심을 잡아 끄는 것처럼, 일행이 서있는 다리가 눈에 띄게 점점 아래로 꺼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다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저 깊은 절벽 아래로 떨어져내릴 것 같았다.


"당장 라비타에게 마나 차단···!"


김민진이 겨우 상황을 이해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이하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 우지끈.


척 듣기에도 불안한 소리와 함께 다리가 부서지더니, 라비타와 이하현, 진헌까지 모두 절벽 아래의 강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대처도 할 수 없는,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언니!!"

"형!!"


노테와 아르바는 본능적으로 부서진 다리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너네까지 같이 떨어져서 어쩌게!!"


그런 아이들을 김민진이 강하게 붙잡았다. 이미 다리는 부서졌고, 그들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아이들의 행동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강에 떨어졌어. 거기다 이하현이 마법을 사용했으니 강에 떨어진 충격은 그래도 나름 덜할 거야."


김민진은 그들의 몸이 강에 떨어지기 전, 밝게 빛났던 걸 기억했다. 그건 분명 이하현의 치유 마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물살이야."


절벽 아래에 흐르고 있는 강의 물살은 제법 강했다. 중심도 제대로 못 잡은 상태에서 그런 강으로 꼬꾸라졌으니 금방 올라오진 못할 터였다. 거기다 위에서 쳐다보기에도 강에는 제법 살벌한 바위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있었다. 물살에 휩쓸리다 바위에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결코 가벼운 부상으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지금 바로 인원을 나눠 수색에 들어간다. 물살이 제법 빠르니 수색 범위는 최대한 넓힐 거야. 그리고···."


김민진은 아이들을 붙잡은 손을 풀었다. 두 아이를 바라보는 김민진의 눈은 침통한 빛을 띠고 있었다.


"물론 수색은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진행하는 거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걸 염두는 해둬."


절벽의 높이와 빠른 물살.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에 한 말이었다. 하지만.


"···살아있어요."


노테는 단호하게 말했다.


"형도 누나도."


그리고 당연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대장도. 모두 살아있어요."


대장이라.


"하하···."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노테의 말에 김민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노테의 말을 어이없게 받아들이는 그와는 달리, 아르바는 오히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노테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처럼.


진짜.

골 때리는 애들이네···.


진헌의 태도를 보고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아이들도 보통내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김민진은 살짝 몸을 낮춰, 노테와 아르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 얼른 건져주러 가자. 나도 이걸로 대장한테 생색 한번 내봐야지."


김민진은 이런 아이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솔직하지 못한, 정 많은 대장님과는 달리 이런 게 어색하고 불편한 김민진이었다. 거기다 대장님의 그 많은 일을 자신이 다 떠맡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답지 않게, 오늘만큼은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허억···!"


누군가의 손에 의해 물 밖으로 끌려 나오자마자 라비타는 급히 산소를 들이마셨다. 드디어 폐로 산소가 들어오자 코와 입으로 밀려들어왔던 물이 다시 다급히 밖으로 나왔다.


"컥, 커억!"


꼴사납게 바닥에 엎어진 채로 몇 번을 그렇게 물을 뱉어냈을까, 띵했던 머리가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라비타는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 긴···?"


라비타가 있는 곳은 강가였다. 기억을 잃기 전과 매치되지 않는 장소에 그녀는 여전히 띵한 머리로 억지로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다리를 건너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거센 바람이 불어와 다리가 심하게 흔들린 통에, 동생의 등만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절벽 아래를 향하게 됐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라비타의 은회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급히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루나···?"


라비타의 눈동자만큼이나 불안한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주변을 울렸다. 그녀의 숨이 마치 여전히 물속에 있는 것처럼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루나!! 대답해!!!"


비명처럼 울리는 라비타의 애절한 부름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힘 빠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방금 전 자신이 빠져나왔던 강 속으로 비틀비틀 걸어들어갔다. 라비타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물속을 손으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점점 더 강 속 깊숙이 들어갔다. 그녀의 하반신이 거의 물에 잠기게 됐을 때.


"그럴 필요 없어."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라비타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보따리는 이미 찾았으니까."


진헌은 누군가를 안은 채로 라비타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진헌은 라비타처럼 물에 빠진 생쥐 꼴인 것 외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그의 품에 안겨있는 이는 그렇지 못했다. 루나는 몸을 축 늘어트린 채로 진헌의 품에 안겨있었다.


"루나!!"


라비타가 그런 루나의 모습에, 여전히 힘이 없는 몸을 비척비척 움직여 그에게 다가갔다. 루나는 의식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숨은 붙어있는 모양인지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걱정 마. 그렇게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한 진헌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라비타가 진헌의 팔을 붙잡았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제법 강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워."


물에 빠진 탓인지 진헌을 바라보는 라비타의 눈이 평소보다 더 물기가 있어 보였다.


"고마워···."


이번에는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며 라비타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루나의 가슴에 얼굴을 대었다. 그러자 작게 뛰는 동생의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진헌은 그런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해는 중천이었고, 다행히도 오늘은 제법 따뜻한 날씨였다.

그러니 그녀의 떨림도 곧,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멎으리라.





"미안."


라비타가 나뭇가지를 발로 밟아 부러트리며 말했다. 그녀는 아까보다는 훨씬 진정된 모습이었다. 진헌은 그런 라비타를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물을 많이 먹었나 보군."

"무슨 뜻이야?"

"아까부터 헛소리를 지껄이길래 하는 말이다."


평소의 라비타라면 이 정도까지 말한 시점에서 이미 한번 치고 들어왔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나도 감사나 사과 정도는 할 줄 알아. ···뭐, 그래봤자."


라비타는 다시 한번 발로 나뭇가지를 부러트렸다.


"어차피 노블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라비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무심했기에 진헌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를 향했다.


"왜? 네가 할 말 내가 먼저 하니까 화나냐?"


진헌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갈색 눈이 조용히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라비타는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노블인 게 싫은 게 너뿐만이 아니거든."


라비타는 부러트린 나뭇가지들을 옆에 모아두곤 진헌의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에 모닥불의 불빛이 살짝 흔들렸다.


"나도 내가 노블인 게 엄청 싫다 이거야···."


그 말이 라비타의 입에서 마치 한숨처럼 나왔다. 라비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만약에 우리가 노블이 아니라면 저들이 우리를 믿어줄까?

만약에 우리가 노블이 아니었다면 저들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노블이 아니라면···.


···하지만 소용없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노블이었으니까.


"아까도 결국 내 마법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


자신에게 중력 마법이 없었다면, 다리가 부서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루나나 진헌, 둘 중 하나가 자신을 업고 다리를 건넜으리라.


노블의 장점이라곤 마법밖에 없는데, 그거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루냐···.


라비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씁쓸하게 모닥불을 바라봤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닥불이 마치 자신의 처지 같았다.


얼마나 그렇게 서로 말없이 있었을까, 의외로 먼저 침묵을 깬 건 진헌이었다.


"나도 사과하지."

"······엉?"


하지만 침묵을 깬 그 말이 워낙 의외였기에, 라비타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진헌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은 놀란 듯 땡그래져 있었지만, 그에 비해 진헌은 엄청난 말을 내뱉은 것치곤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였다. 그런 진헌의 태도가 라비타를 더 당황하게 했다.


"물 많이 마신 건 너 아니냐···?"


진지하게 물어오는 라비타의 말에 진헌의 눈썹이 살짝 찌푸러졌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라비타는 그래서 더더욱 진헌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저 자식···.

설마 뇌에 문제 생긴 거 아니야···?


진지하게 걱정이 될 정도로 참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일단 말해봐."


라비타의 애매한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진헌이 말을 이었다.


"너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너 진짜 왜 그래?"

"그냥 그만 말하지."

"아니 미안미안. 이제 말 안 끊을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라.

진헌의 저 말은 아마도 칭찬일 것이다. 말투 때문에 긴가민가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라비타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상 그녀의 자신감 있고 대범한 모습은 다른 이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진헌은 이걸 계속 이야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결국 그는 참을성 있게 다시 입을 열었다.


"거기다 이하현도 있으니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그건 그랬다.

루나가 앞에서 친절하게 이끌어준 덕에 그나마 다리 중앙까지는 제 발로 걸어갈 수 있었던 라비타였다.


"하지만 이렇게 됐으니 결국 내 판단 미스였군."

"미, 스···?"

"···틀렸다는 말이다."


아하.


라비타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판단을 잘했어야지."

"···기분 좋아 보이는군."

"아닌데??"


라비타는 정말 기분이 좋은 듯 웃고 있었다. 진헌이 그녀에게 좋은 말을 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미묘한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칭찬을 들었으니 기분이 나쁠 건 없었다.


"근데 루나한테 맡기지 말고 그냥 네가 하지 그랬냐. 넌 엄청 호되게 가르칠 것 같긴 한데, 차라리 그게 낫지 않나?"

"난 안 돼."

"왜. 노블한테 그렇게까지 해주고 싶진 않냐?"

"···그건 아니다."


진헌의 의외의 대답에 다시 한번 라비타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진헌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루나를 바라봤다. 눈앞에는 이전과는 머리색도, 눈 색도, 얼굴도, ···모든 것이 달라진 친구가 있었다.


"실패는 한 번이면 충분해."


루나를 바라보는 진헌의 눈에는 깊은 후회가 담겨있었다. 라비타는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진헌의 미간의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


"그 실패한 이야기···, 자세히 알려주면 안 되냐?"

"···네 녀석은 눈치도 없나?"

"어차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거 좀 알면 어때."


라비타의 말은 결코 오늘 같은 상황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면족과 만난 뒤 밝혀질 진실에 따라 레지스탕스의 손에 죽게 될지도 모르는 그녀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네가 보기에 저 녀석은 어떻지?"

"루나?"


진헌의 질문에 라비타가 루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루나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그에 루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풉. 못생겼어."

"그리고?"

"우와···. 너 진짜 못됐다···."


라비타가 질책하는 눈으로 진헌을 바라봤지만, 그는 그런 그녀의 눈빛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라비타는 짧게 혀를 차더니 다시 루나를 볼을 쿡 찔렀다.


"폼 안 나는 마법을 쓰고."


- 쿡.


"바보에."


- 쿡.


"가끔 이상한 짓도 하지."


- 쿡.


"그리고···."


이번에는 루나의 볼을 찌르지 않고 라비타는 잠시 동안 그를 바라봤다.


"약해."

"자신만만하군."

"아오 그 말이 아니잖아."


진헌을 살짝 노려본 라비타가 방금까지 루나의 볼을 찌르던 손을 움직였다.


"여기."


라비타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마음이 여리다고."


라비타의 말에 드물게도 진헌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라비타는 그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툴툴거리며 말했다.


"딱 들으면 모르냐."

"···몰랐다."


진헌의 의외의 답에 라비타가 그를 쳐다봤다. 진헌은 답지 않게 잠시 말을 고르더니, 다시 한번 말했다.


"나는 몰랐어."


그것이 진헌의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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