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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타행성의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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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04

DUMMY

"이하현 집중해라."

"···아."


중요한 작전을 앞둔 상황에서, 이하현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런 행동이 잦아진 그였다.


"멍청한 게 갈수록 심해지는군."

"멍청하다니···. 그냥 잠시 생각 좀 한 거야."

"생각?"

"응. 뭐였냐면···."


거기까지 말한 이하현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는 잠시 눈만 꿈뻑거리더니 이내 당황한 표정이 됐다.


"어라···? 방금 내가, 무슨 생각 했더라···?"


이하현의 멍청한 말에 진헌의 눈썹이 자연스레 찌푸러졌다. 이하현은 어떻게든 방금 전 자신이 했던 생각을 떠올리려 했으나, 한번 떠나간 생각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 거라면 미리 변명 정도는 생각해둬라."


진헌은 이하현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 모양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척 듣기에도 제법 화가 나 있었다. 그래도 나름 레지스탕스의 간부 중 하나라는 녀석이, 중요한 작전을 앞둔 상황에서 멍이나 때리고 있으니 사실상 화가 날만했다. 하지만 얼떨결에 거짓말을 한 게 된 이하현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아니 진짜 생각하고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무슨 생각 말이지?"

"그건···."


물론 이하현은 진헌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딴 생각을 하는 것도 문제다."

"미안···."


진헌의 말이 맞았다.

생각을 했든, 멍하니 있었든, 어쨌든 작전 중에 할 행동은 아니었다.


이날, 나름 진헌에게 엄하게 질책을 받은 이하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갈수록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아졌다. 사소하게는 밥을 먹을 때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는 물론, 크게는 작전 회의 중이나 작전 진행 중에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건 정작 본인은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


"작전에서 제외해야 하지 않을까?"


김민진의 말에 진헌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하현이 말이야. ···그 녀석 요즘 이상하잖아."

"멍청한 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


김민진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봤다.


"좀··· 힘들어하는 것 같잖아."


김민진이 보기에도 요즘 이하현의 행동은 이상했다. 이하현은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이건 그것과는 달랐다. 제대로 설명할 순 없지만, 김민진은 이하현의 상태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아니."


하지만 진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녀석은 괜찮아."


지금까지 진헌이 봐왔던 이하현은 바보 같은 면은 있지만, 생각보다 강인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하현 뿐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가 그랬다. 진헌이 본 이들 중, 이하현과 그의 가족만큼 굳세고 단단한 이는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진헌의 표정이 너무나도 단호했기에 김민진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 이상 말해봤자 소용이 없을 게 분명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그런 거겠지. 우리 중에서 이하현을 제일 잘 아는 건 너니까."


김민진은 그냥 자신이 과하게 생각한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 그는 진헌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어야 했다.


이하현이 작전 중 큰 부상을 입어 급히 본거지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겨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이하현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노블의 실험체에게 당했다는 이하현의 등에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깊게 베인 상처가 나있었다.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꿀렁이고 있었다.


분명 어려운 작전은 아니었다. 아무리 노블의 실험체라고 해도, 경험이 많은 이하현이 이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 이상했다.


진헌의 물음에도 김민진은 바로 답하지 못한 채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해도 되나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김민진."

"···실수가 아니야."

"무슨 말이지?"


김민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김민진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무척이나 화가 나 보였다.


"이하현 저 자식, 일부러 안 피한 거야."


무슨 헛소리냐고, 김민진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진헌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김민진은 이런 걸로 농담을 할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이상하다고, 말했잖아···."


김민진이 이를 악 문채 말했다. 지금 그는, 저번에 진헌을 좀 더 강경하게 말리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고 있었다.


진헌도, 김민진도, 레지스탕스에 있는 모두가 이런 일을 자주 겪었다. 레지스탕스를 결성한 후에는 더욱더 이런 상황을 자주 봐왔다.


굳이 위험한 작전에 참가하는 이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는 이들. 지금 이하현의 모습은 그들과 같았다.

삶을 포기한 이의 모습이었다.





"일어났나."


이하현이 깨어난 건 그로부터 3일이 지난 후였다. 부상이 심했기에 바로 몸을 일으키진 못하고 누운 채로 눈만 뜬 이하현의 시선이 진헌을 향했다. 이하현의 눈에는 진헌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음에도, 진헌은 어째서인지 그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네가, 구했어?"


오래 누워있었던 탓인지 이하현의 목은 살짝 잠겨있었다. 이하현의 물음이 마치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아, 진헌은 회피하듯 말했다.


"아니. 김민진이 구했다."


진헌의 말에 이하현의 공허한 눈이 그를 떠나 텐트의 천장을 바라봤다.


"그렇구나···."


그런 이하현의 눈에 일순, 작지만 명확한 감정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던 이하현의 눈이 다시금 진헌을 향했을 때는, 그 감정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나중에 고맙다고 해야겠네."


그렇게 말하며 이하현은 평소처럼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을 스쳐 지나간 그 감정을 목도한 진헌은 감히 웃을 수 없었다.


그건 아쉬움이었다.





"굳이 하현이 혼자서 할 필요는 없는 작전이야."


회의 때 이야기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이 담긴 주머니를 품에 넣은 채, 레지스탕스 본거지를 떠나는 이하현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도 안 늦었어. 우리가 말리면 그만 둘 녀석이잖아."


김민진의 애타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진헌은 아무런 대답 없이 멀어지는 이하현의 뒷모습만 쳐다봤다. 죽으러 가는 것치곤 이하현의 걸음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의 걸음 같았다.


"조진헌 내 말 듣고 있···!"

"웃더군."


진헌이 드디어 입을 열었지만, 그는 김민진을 쳐다보진 않았다. 진헌은 이하현의 모습을 눈에 새기려는 듯, 이제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은 채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렇게 웃더군."


진헌의 말에 김민진의 눈동자가 떨렸다. 자신을 죽일 폭탄 주머니를 품에 넣으면서도 이하현은 울지도, 공포에 떨지도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자주 웃는 그였지만, 그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미소였다.


이하현은 자신의 누나인 이상현의 앞에서, 그의 아버지의 앞에서, 항상 그렇게 웃었다. 하지만 레지스탕스를 결성한 이후엔 보지 못한 미소였다.


진헌의 눈에 이하현이 그토록 강하게 보인 건, 그의 등을 지탱해주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 그의 곁에는 더 이상 가족이 없었다.





"···너 바보 아니냐?"

"······뭐?"

"이 자식 이거 알고 보니 완전 바보네!!"


진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라비타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진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저번에 네가 루나를 죽였느니 그딴 소리 한 거냐?"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허! 이 자식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만 사실은 루나보다 더한 바보였네?"


계속되는 바보 소리에 진헌의 얼굴이 찌푸러졌다.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그였다.


"바보는 너···."

"시끄러워 이 멍청한 놈아!!"


라비타는 스스로의 분을 이길 수 없는 모양인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보라는 말에 이어 멍청하다는 말까지 들은 진헌은 살짝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지만, 라비타는 그런 진헌을 무시한 채 화를 삭이려는 듯 숨을 몇 번 내쉬었다. 하지만 결국 진정이 되지 않는 모양인지 발로 땅을 쾅쾅 찍어댔다.


"아오! 이걸 내가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진헌은 느끼지 못했지만 라비타의 마나는 그녀의 기분을 반영하듯 마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바닥이 깊숙이 파헤쳐지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모양인지, 라비타가 진헌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


"야!! 멍청한 놈!"

"멍청하다고 하지 마라."

"아이고, 막상 네가 들으니 기분 나쁘냐? 근데 어쩌지? 넌 한동안 이 말 좀 들어야겠는데."


라비타는 진헌을 향해 콧방귀를 한번 뀌더니, 옆에 누워있는 루나를 노려봤다. 마치 그런 라비타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루나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사실 지금 너네 둘 다 후려 패주고 싶거든? 근데 내가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아서 봐주는 거야."


라비타는 깊게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이내 풀숲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딜 가려는 거지? 설마 도망가려는···."

"볼일 보러 간다, 볼일! 그놈의 도망! 그거 말곤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냐!!"


라비타의 말에 불만스럽게 말하던 진헌의 입이 조용히 닫혔다. 라비타가 쿵쿵거리며 풀숲 너머로 사라지자, 순식간에 모닥불 근처에 정막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라비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참다못한 진헌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 부스럭.


라비타가 사라진 정면의 풀숲이 아닌,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진헌이 고개를 돌렸다.


"하하···."


언제 의식이 돌아왔는지, 루나가 애매하게 상체만 일으킨 채 앉아있었다. 그는 어째서인지 진헌을 마주 보지 못한 채, 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라비타는 화장실을 간 게 아닌 모양이다.





"···악취미군."


내가 이야기를 전부 들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진헌이 기분 나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정말 일부러 들으려고 한건 아니었다. 라비타가 한바탕 볼을 찌른 덕에 다행히 의식은 돌아왔지만, 갑자기 시작된 둘의 진지한 이야기에 일어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하지만 그걸 변명으로 하기도 뭐 했기에 괜히 라비타가 손가락으로 찔렀던 볼만 긁적였다.


"들어도 딱히 상관은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헌은 딱히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진 않은 모양인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그도 사실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야말로 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헌아···."


내 부름에 진헌은 대답하지도,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그가 내 말을 무시하는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 미안하다···."


몰래 이야기를 들은 것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다.


이하현이 죽기 전날, 그가 나를 말리기 위해 텐트로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그런 그를 외면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그리고 내가 죽는 그 순간에도, 함께 하던 친구를 떠올리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였고, 자신의 손으로 친구가 죽을 자리를 마련한 그에 대한 사죄였다. 하지만 그렇게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근데 헌아, 나 진짜···."


눈이 아려왔다.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것 같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계속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을 열면 다른게 쏟아질 것만 같아 말을 잇지 못했다.


"안다."


진헌의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눈앞이 흐려졌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입술을 굳게 깨물었음에도, 마치 터진 둑처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너무 늦게 알아채서, 미안하다 이하현."


왜.

왜 네가 사과하는 거야···.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물론 내 가족을 죽인 노블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 온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죽여도, 누나도 아버지도, 더 이상 내 옆에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지치게 했다.


"······미안···."


진헌의 말대로, 그는 나를 죽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그것은 하나의 구원이었다.


"미안하다 헌아···."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짐이었고, 후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분명 나는 같은 선택을 하리라.

이건 변하지 않을 그 선택에 대한 사과였다.





"이야기하라고 자리 비켜줬더니 질질 짤고 앉았네."

"화장실···, 잘 다녀왔어요?"

"설마 진짜 갔겠냐!!"


라비타는 툴툴거리면서도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누나, 이거 콧물이에요···."

"알아 인마."


더러운데···.


하지만 라비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인지 소매로 내 얼굴을 슥슥 문질렀다. 지금은 모습이 이래서 그렇지, 사실 나이 먹을 대로 먹은 20대 남자가 운 것이었기에 살짝 부끄러웠지만, 누나 앞이라 그런지 그런 기분도 금방 사라졌다.


"너는 안 우냐?"

"내가 왜 울지?"

"우는 꼴 볼 수 있으려나 기대했더니 이번에는 글렀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라비타는 진헌의 옆에 풀썩 앉더니 한 손으로 그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지?"

"뭐긴. 이 누나가 위로해주는 거지."

"안 운다고 했을 텐데."

"어쩌라고."


진헌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라비타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그 시선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그의 등을 토닥였다. 한판 싸우려나 싶었지만, 의외로 진헌은 얌전히 라비타의 토닥임을 받았다. 라비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근데 저거 아까 내 코 닦은 손 아닌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라비타의 소매가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분위기 파악을 할 줄 아는 지구인이기에, 감동을 위해 진실은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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