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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타행성의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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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작품등록일 :
2019.0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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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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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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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01

DUMMY

"역시 지금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 남성을 따라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던 후드를 쓴 이들 중 하나가 말했다. 하지만 남성은 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복도를 걸을 뿐이었다. 그에게 질문은 던졌던 이는 그런 그의 반응에 더 이상 물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어두운 복도 너머에 있는 빨간 문 앞에 다다르자.


"···그럼 저희는 추적을 계속하겠습니다."


방금 전 남성에게 질문을 던졌던 이가 그렇게 말하곤, 다른 두 명과 함께 다시 어두운 복도를 되돌아갔다. 남성은 그런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빨간 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그 귀한 걸 왜 장식품으로 쓰지? 잘 써줄 테니까 그냥 나한테 넘기지그래?"

"이 가치를 이해 못 한다니 그저 안타깝네요."

"어머. 너 설마 지금 나 무시하니?"

"하하 설마요."


문을 열자마자 티격태격하는 남녀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 중 남성이 그를 발견한 모양인지 그에게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싱긋 웃었다.


"어서 와 사피언스."

"···다녀왔다."


들어 올린 남성의 팔에는 짙은 흉터가 나있었다. 사피언스는 힐끗 그 흉터를 한번 훑어보곤 말했다.


"엘. 팔은 어떻지?"

"나쁘진 않아."


그렇게 말하며 엘은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였다.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사피언스의 눈에는 아직 충분치 못했다.


"다음번엔 약을 구해오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

"···잠깐."


불만스럽게 들려오는 새초롬한 목소리에 엘과 사피언스가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봤다. 금발의 여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을 사다 줘도 나한테 줘야 하지 않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왼쪽 팔을 들어 올려 보였다. 들어 올린 그녀의 왼쪽 팔에는 있어야 할 손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손목 아랫부분까지 둥글게 절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도 사피언스는 그저 눈길만 한번 줬을 뿐, 이내 관심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 저 개자식이 돌았나···."

"상당히 험한 말을 하시네요."

"맞잖아, 충성스러운 네 개새끼."

"설마요. 그와는 그냥 친구 사이랍니다."


엘이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그를 바라보는 여성의 금색 눈이 가늘어졌다. 평범한 얼굴 뒤에 숨은 건 자신과 같은 노블인 주제에 하는 말은 참 가관이었다.


"아주 쌍으로 미쳤구나?"

"칭찬으로 들을게요."


엘의 뻔뻔한 말에 여성은 그의 웃는 얼굴을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노블인 자신이 그런 상스러운 짓을 할 순 없었기에 그저 속으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냥 옮기시죠? 그 상태로는 오히려 연구에 지장만 줄 텐데요."

"너만 잘했어도 이렇게 될 일 없었어."

"저도 설마 비엔이 그런 과격한 행동을 할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요."

"그래? 난 알았는데. 너나 그놈이나, 그년 옆에 있었으니 수준이야 뻔하지 않겠어?"

"···테라를 그렇게 칭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방금 전까지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던 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의 차가운 눈빛에도 여성은 그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네. 겨우 이 정도로 그러는 거 보면 역시 너도 아직 한참 멀었어."

"그것참··· 실망시켜서 죄송하네요. 앞으론 주의하죠."


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운 시선을 거두더니 다시금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참 가식적인 모습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블은 그런 존재니까.


서로 거하게 시비가 붙었음에도,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뿐 그 외에 다른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업자가 마음에 안 드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는데다, 어차피 노블은 서로를 좋아할 수 없는 종족이었다. 동족 혐오는 아니지만, 오만하고 스스로를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자신과 똑같이 그런 생각을 하는 같은 노블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가끔 시비가 붙는 건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옮길 생각 없어."

"혹시 겁나나요?"

"어머, 내가? 난 그냥 확실하게 일을 진행하고 싶은 것뿐이야."


엘의 도움을 받아 지하실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그녀는 연구를 계속 진행했지만, 어째서인지 결과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 알게 된 건 있었다.


"그럼 타행성인 몸으로 옮기는 건 어때요? 저도 그렇고, ···루나도 성공했잖아요."


노블의 영혼이 타행성인의 몸에 들어가거나, 타행성인의 영혼이 노블의 몸에 들어갈 경우에 한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성공률이 높았다. 마치 유전자 구조가 비슷할수록 서로의 체취를 불편하게 느끼듯이, 본래 영혼이 있던 기존의 몸과 상이할수록 마법을 사용할 수 있거나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졌다.


"네가 그 녀석 이름을 어떻게 알아?"

"그에게는 조금 흥미가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엘은 척 보기에도 굉장히 수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여성이 그를 미심쩍게 쳐다봤지만, 그저 잠시 그랬을 뿐 이내 바로 관심을 끊었다.


"됐어. 난 그런 하찮은 몸에는 한시라도 들어가 있고 싶지 않아. 애초에 그런 짓을 너 같은 변태가 아니면 누가 하겠니?"

"너무하네요. 그냥 취향 차이에요."

"흥. 취향 차이는 무슨."


여성은 더 이상 엘과 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지 사피언스를 쳐다봤다.


"근데. 넌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다 온 거니?"

"···끝없는 다리에 다녀왔다."

"너도 참 할 짓도 없다. 거긴 왜?"

"이전에 네가 그들이 면족에게 갈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곳은 그 마을로 가는 경로 중 하나다."

"어머. 설마 걔네들 진짜로 거기 가는 거야?"


사피언스의 말에 여성은 잠시 놀란 토끼 눈이 되더니, 이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여성은 흥미로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믿는 척하더니 결국 확인하러 가는구나."


그래. 너희가 말하는 믿음이라는 건 겨우 그 정도지.


여성의 금색 눈이 재밌다는 듯 예쁘게 휘어졌다.


"혼자 재밌어하지 말고 저희에게도 좀 알려주시겠어요?"

"어머, 내가 왜? 이건 내 취미생활이야. 넌 네 일이나 신경 써."

"분명 아까는 제 취미생활에 관여하지 않았던가요?"

"글쎄, 그랬던가?"


여성의 그런 뻔한 시치미에도 엘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다. 어차피 그와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피언스. 테라와 비엔은 찾았어?"

"아니. 그 둘은 아직이다."


그런 둘의 대화에 여성이 뭔가가 떠오른 모양인지 손바닥을 짝 부딪히며 말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너, 내 손까지 잘라놓은 주제에 정작 그 녀석은 놓쳤다며?"

"설마 그걸 빠져나갈 거라곤 생각 못 했죠. 확실히 비엔은 재능이 있나 봐요."

"너랑은 다르게 말이지. 그러니 그 년···, 그래 테라가. 널 버리고 걔랑 같이 있는 거 아니겠어?"


여성의 대놓고 빈정되는 말에 엘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를 향했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는 그 미소와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서로 신경 안 쓰기로 하지 않았나요?"

"아 그랬지. 미안, 깜빡했네?"


그런 그의 모습에도 여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재밌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 빈정 되지도 않았기에 엘은 다시 사피언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찾으면 바로 알려줘."

"그러지."


사피언스의 대답에 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쥐고 있던 구슬을 손안에서 굴렸다. 손바닥 위에서 데구르르 구르는 구슬 속에는 작은 마을의 풍경이 비치고 있었다.










"이 마을도 작네."


비엔이 마차에 난 작은 창으로 마을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주변에 큰 마을은 없어. 다음 마을도 이 정도일 거야."


테라의 말에 비엔은 불만스러운 듯 창가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레지스탕스와 헤어진 후, 테라와 비엔은 둘이서 노블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엘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물론 각 마을에 흩어져있는 포이갈 상단의 상단원으로부터 전서구를 통해 정보를 받으면 되는 일이지만, 여관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포이갈 상단에 배신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직접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루나도 같이 데려오지."

"우리 일에 그를 끌어들일 순 없어."

"···재미없어."


하지만 비엔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인지 그저 놀 상대가 없다는 것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큰 마을은 구경할게 많기라도 하지만, 작은 마을은 특색 없이 대부분 비슷했기에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우선 포이갈 상단으로 가자."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테라는 포이갈 상단으로 향했다. 테라의 큰 덩치에, 길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타행성인들이 급히 길을 비켰다. 멀쩡한 말을 굳이 마을 밖에 두고 마차를 타고 온 건, 이 때문이었다. 아무리 후드를 썼다고는 해도 큰 키로 인해 자연스레 다른 이의 시선을 끄는 그녀였기에, 보통 말과는 크기가 남다른 그녀의 말까지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면 더 눈에 띨 것이 분명했다.


"꽃 사세요. 오늘 따온 꽃이에요."


하지만 등을 돌리고 있어서인지, 길가에서 꽃을 팔고 있던 아이가 테라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녀와 부딪혔다. 딱히 힘을 준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의 몸은 힘없이 픽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이는 자신과 부딪힌 이가 노블이라는 걸 알아챘는지 급히 몸을 바닥에 수그렸다.


"죄송, 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둥글게 엎드린 채로 벌벌 떨었다. 아이의 주변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다른 타행성인들이 그런 아이를 잠시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이내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분명 그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얼마지?"


하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말에 주변에 있던 타행성인은 물론, 꽃을 팔던 아이도 당황해서 테라를 바라봤다.


"꽃. 한 송이에 얼마지?"


이번에는 좀 더 명확하게 물어오는 테라의 말에 아이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더듬거리며 가격을 말했다. 그러자 테라는 아이가 말한 가격보다는 조금 더 많은 금액을 아이의 손에 쥐여주며 꽃 한 송이를 들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비엔은 그런 테라를 따라가다가 힐끗 뒤를 쳐다봤다. 아이는 멍하니 테라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왜 샀어?"

"색이 예쁘잖아."

"테라 하늘색 좋아해?"

"싫어하진 않아."

"흐응···."


비엔은 테라가 들고 있는 하늘색 꽃을 빤히 쳐다봤다. 한 줄기에 하늘색의 작은 꽃 여러 개가 옹기종기 피어있었다. 마치 작은 방울 같은 모양새였다.


"어서 오세요 테라."

"오랜만이야 노인장."


포이갈 상단 소유의 건물에 도착하자 나이가 지긋한 한 여성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노인은 구부러진 허리에 뒷짐을 지며 바로 그들을 집무실로 안내했다.


"참 예쁜 꽃이지요."


테라가 집무실의 꽃병에 아이에게서 산 하늘색 꽃을 꽂자, 노인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흔한 꽃이야?"

"예. 이 주변에는 특히나 많지요. 하지만 볼 때마다 참 예쁘다고 생각하는 꽃이랍니다. 비엔도 이 꽃이 마음에 드나요?"


비엔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물론, 도착하고 나서도 계속 그 꽃을 쳐다보고 있었기에 한 말이었다.


"아니? 그냥 그런데?"

"후후 그렇군요."


비엔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하자, 그녀는 그런 비엔을 마치 손자를 대하듯 상냥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저번에 전서구로 말한 건이야."

"배신자 말이군요."


테라의 말에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눈은 나이 든 이의 것이라곤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섭고 날카로웠다.


"물론 저희 쪽에서도 찾았지요. 하지만 한발 늦었답니다."

"자결한 건가?"

"예. 스스로 심장을 찔렀더군요. 시체는 아직 처리하지 않았답니다. 테라가 직접 보시겠어요?"

"그럴게. 하지만 내일로 부탁해."

"그럼 내일 안내하지요."

"그리고···."

"레지스탕스는 괜찮습니다. 최근에는 몇몇이 면족을 만나러 떠났다고 하더군요."


테라와 함께 일한 게 오래된 만큼, 노인은 말하지 않아도 테라의 의중을 바로바로 캐치해냈다. 그런 노인의 모습에 테라가 살짝 미소 지었다. 물론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티 나지 않는 미소였다.


면족이라···.


이전 마을에서도 다른 포이갈 상단에게 들었지만, 요즘 들어 부쩍 행적이 이상해진 타행성인 종족이었다. 그렇기에 테라는 진헌이 그걸 확인하기 위해 면족을 만나러 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듣기론 아이들 모두 데리고 간 모양이더군요."


상단원의 이어지는 말에 테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작전을 나가는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필 면족이 있는 마을은 원래 진헌과 루나가 있던 곳이었다.


갑자기 이상한 행적을 보이는 타행성인에, 그런 그들이 있는 곳이 하필 그 마을이라···.


그리고 굳이 진헌이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갔다. 영 예감이 좋지 않았다.


"따로 전서구를 보낼까요?"


그런 테라의 기분을 알아챈 모양인지 노인이 조용히 물어왔다.


"아니.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야."

"그렇군요."


노인은 테라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툭 내뱉었다.


"그래도 가끔은 관여해도 상관은 없겠지요."


테라가 살짝 커진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자, 노인은 그저 인자하게 호호 웃을 뿐이었다. 그에 테라가 피식 웃었다.


"새겨듣지."

"그럼요. 늙은 이의 말이 가끔 도움이 될 때도 있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노인은 다시 한번 호호 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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