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타행성의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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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작품등록일 :
2019.0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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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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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06

DUMMY

호화롭게 꾸며진 방 중앙에서 미형의 한 남성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아름답게 세공된 책의 표지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다른 한 손으로는 우아하게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방 밖에서는 그의 사용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와 달리 남성의 모습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붉은색을 퍽이나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융단부터 커튼과 가구, 그리고 그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표지는 물론, 그가 입고 있는 의복에 이르기까지, 남성의 방에 있는 모든 것이 붉은빛을 띠었다.


- 똑똑.


"들어와."


남성의 나지막한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방 밖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사용인 중 하나였다.


사용인은 방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그저 문만 연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더듬더듬 말했다.


"와, 왔습니다···."


그에 남성은 여전히 책에 시선을 둔 채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알아서 돌려보내."


그는 오늘 이름 모를 손님이 찾아올 것이란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건 예의 없는 노블끼리의 기본적인 예의였다. 사실 손님은 아니었다. 그저 받아야 할 것만 받을 뿐, 서로 인사를 나누는 등의 비효율적인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용인은 그런 그의 명령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저 안절부절해했다.


"내 말. 못 알아들었어?"


그렇게 말하는 남성의 목소리에는 다분히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는 새로 얻은, 매혹적인 붉은색의 표지에 아름답게 세공이 박힌 이 책을 마저 읽고 싶었다. 물론 내용은 관심 없었다. 그저 이 붉은 책을 읽는다는 게 중요했다. 그런 중요한 순간을 한낱 타행성인 따위가 방해한다는 것이 그를 화나게 했다.


"그, 그게···. 그 노블님께서 직접 뵙고, 싶으시다고···."


하···.


남성은 옅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책에서 시선을 돌려 사용인을 바라봤다.


"···너. 내 옆에 얼마나 있었지?"

"2년, 입니다···."

"그럼 내가 말 안 해도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지 않아?"


그의 서늘한 말에 사용인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남성은 당장이라도 사용인의 숨을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무척이나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색의 책을 얻은 그였다. 이 황홀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이번 한 번만큼은 자애롭게, 사용인의 실수를 넘어가 주기로 했다.


"돌려보내."

"하지만 주인님···."


- 탁!


경고를 했음에도 또다시 이어지는 말에, 표지의 세공을 더듬던 남성의 손이 결국 책을 거칠게 닫았다. 벽난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음에도, 어째서인지 갑자기 방 전체가 서늘해졌다. 남성의 주변에서는 급기야 작은 얼음덩어리가 떠다녔다.


"···말 진짜 안 듣네."


순식간에 남성의 옆으로 날카로운 얼음 검 하나가 만들어졌다. 이내 그가 사용인에게 얼음검을 던지려는 순간.


"부, 붉은 눈입니다···!!"


본능적으로 팔로 얼굴을 감싸며 비명처럼 지리는 사용인의 말에, 얼음검을 던지려던 남성의 손이 공중에서 뚝 멈췄다. 그의 파란 눈이 놀란 듯 크게 뜨였다.


남성은 쥐었던 얼음검을 바닥에 그대로 팽개치더니 사용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양 어깨를 쥐었다.


"놀라기는. ···장난이야, 장난."


그렇게 말하는 남성은 정말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사용인은 그가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사용인은 어느새 새하얘진 얼굴로 힘겹게 따라웃었다.


"이래서 내가 너를 옆에 둔다니까."


남성은 부드럽게 사용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파란 눈이 예쁘게 휘었다.


"당장 데려와. 물론 차도 가져오고."


사용인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더니 그대로 후다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남성은 그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다가 다시 소파에 몸을 뉘었다.


- 툭.


"음?"


아까의 소란에 떨어트렸는지, 붉은 표지의 책이 그의 발치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남성은 그 책을 줍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음에도 그저 눈길만 한번 줄 뿐이었다.


어차피 이따위 책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남성을 더욱 자극할 무언가가, 곧 그의 방으로 들어올 터였다.










"주인님께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조금 전 2층으로 올라갔던 사용인이 다시 1층으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새하얘져있었다. 테라는 좀 전에 느꼈던 마나로 그가 그의 주인에게 무슨 짓을 당했을

지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고마워. 바로 올라갈게."


사용인은 테라의 말에 허리를 숙이면서도 노블에게 감사 인사를 들었다는 것에 얼떨떨한 기분이 됐다.


이내 그녀를 안내해주기 위해서 사용인이 먼저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안내는 괜찮아. 대신 이들을 부탁해도 될까?"


그렇게 말하며 테라는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그녀의 뒤에는 후드를 쓴 타행성인 다섯 명이 서있었다. 아마도 배상을 하기 위해 데려온 이들인 모양이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차도 바로 가지고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테라가 데려온 타행성인 중 하나가 짧은 찰나, 그녀와 의미 심상한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사용인은 그를 보지 못한 모양인지, 테라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곤 이내 타행성인 다섯 명을 데리고 복도를 걸어갔다.


테라는 사용인이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걸 확인한 후,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에게 뒤를 맡겼으니 테라가 신경 쓸 건 이제 하나뿐이었다. 좀 전에 느꼈던 서늘한 마나가 느껴지는 방의 문을 열자, 사방이 온통 붉은 풍경이 나타났다.


아니.

딱 하나 붉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방의 중앙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성의 눈과 머리만은 붉은빛이 아닌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의 마나와 참 닮은 색이었다.


"멋지군."


테라가 그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남성은 감탄했다.


"···정말 멋져."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테라의 붉은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붉은색을 좋아하나 보지?"

"···이런, 실례."


남성은 그제서야 정신이 든 모양인지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하지만 시선만은 여전히 테라의 눈을 향하고 있었다.


"맞아. 보면 알겠지만 미치도록 좋아하지."


그는 굳이 자신의 취향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방의 풍경으로 보나, 그의 행동으로 보나, 숨기고 싶어도 숨기긴 힘들어 보였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도 그랬지···.


비엔이 데려온 아이도 눈까지는 아니었지만, 머리색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방금 전 보았던 사용인의 눈 색도 주황빛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노블이 데리고 있는 모든 사용인이 그럴 것이다.


테라는 속으로 자신의 머리와 눈 색이 붉은색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나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굳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노블이니 만남을 허락해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노인의 말처럼 쓸어버릴 생각이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어쨌든 덕분에 일이 더 수월해졌다.


"···타행성인 아이로 실험을 한다고 들었는데."

"음? 너도 그쪽에 관심이 있나 보지?"

"요즘 지루해서 말이야.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볼까 해."


남성은 잠시 테라를 쳐다봤다. 혹시나 의심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저 그녀의 붉은 눈을 쳐다보는 것일 뿐, 딱히 깊은 의미는 없는 듯했다.


"근데 이걸 어쩌나. 난 그런 취미는 없어. 뭐, 이 마을 녀석들이야 내가 그런 줄 아는 모양이지만, 난 그냥 애들을 팔아넘길 뿐 직접 그런 걸 하진 않아."

"의외네. 붉은 걸 좋아한다기에 기대했거든."

"아~."


남성은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앉은 채로 옆에 있는 작은 서랍을 열었다. 그리곤 그 안에서 작은 약병 몇 개를 꺼내더니 테라에게 내밀었다.


"이미 다 모아서 말이야. 새로운 타행성인을 데려오지 않는 한 더 이상은 필요 없어."


안이 투명하게 비치는 약병에는 하나같이 붉은색의 액체가 담겨있었다. 무엇인지는 뻔했다.


"참 오묘하지. 똑같은 피인데 색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남성은 황홀한 표정으로 약병을 쳐다봤다. 그리곤 그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중에도 이건 특히나 더 아름답지."

"···그건 어떤 타행성인의 피지?"


남성이 씨익 웃었다.


"지구인. 그 녀석들의 피는 아주 진하면서도 한편으론 투명하지."


아름답지만 광기가 어린 미소였다.


"난 네가 마음에 들어."

"그거 고맙군."

"정말이야. 너에게 내가 힘들게 모은 재료들을 다 넘겨주고 싶을 정도야."


빈말이 아니라 그는 정말로 테라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큰 계획에 협조하고 있어서 말이야. 안 그래도 재료가 부족한 상황이라 안타깝지만 도와줄 순 없겠어. 대신 취미로 삼을 만한 다른 건 추천해줄 수 있지."


큰 계획.


그의 말에 테라는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마치 피와도 같은 그녀의 붉은 눈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더니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빛을 띠었다.


"그 큰 계획이란 건 뭐지?"

"흥미 있어?"


다른 노블이 물었다면 신경 끄라고 했을 질문에도, 남성은 제법 친절하게 반응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빨간 걸 좋아해. 무척이나 좋아하지. 하지만 이걸 봐."


남성은 양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이 조잡한 색을 봐. 이따위 색이라니···.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품위 없는 색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히스테릭했다.


그러고 보니 이 방에는 거울이 하나도 없었다. 또한 남성의 머리는 매우 짧았다. 지나가면서라도 자신의 머리색이나 눈 색을 볼 일은 절대 없어 보였다. 그 정도로 그는 스스로의 색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근데 이걸 바꿀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런 마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어."


그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테라는 굳이 장단을 맞춰주었다.


"아하하···! 그게 아니야. 그냥 색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붉은 눈과 붉은 머리를 가진 노블 그 자체가 되는 거지."


흥분에 가득 찬 남성의 푸른 눈이 테라를 향했다. 그리곤 작게 중얼거렸다.


"참 운이 좋아···."


그의 파란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심심하다고 했었지? 그래서 새로운 취미를 가지고 싶다고 했지."

"···그래."

"내가 좋은 취미를 하나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의 눈이 욕망과 갈망으로 번들거렸다.


"그 계획 말인가?"

"그래. 그거지. ···분명 너도 마음에 들어 할 거야."

"큰 계획이라더니 의외로 아무나 참여할 수 있나 보지?"

"물론 아무나 들일 순 없지. 하지만 내가 이번 정기 연락에서 네 이야기를 살짝만 해두면 돼. 내가 지원하는 재료가 몇인데 그 정도는 충분히 내 선에서 가능하지."


정기 연락.

테라는 거기까지만 들은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기에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남성은 테라가 자신의 제안을 수락했다고 여겼는지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그는 상황도 모른 채 싱글싱글 웃었다.


"벌써 가려는 건가? 차라도 한잔하지그래. 붉은색이 아주 아름다운 차인데 구하기가 꽤 힘들었지."


그러고 보니 차를 가져오라고 한지가 언제인데, 사용인은 아직까지도 차를 내오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곧 거울을 통해 사용인의 흔한 주황빛 눈보다 더 아름다운 걸 매일 보게 될 그였다. 그러니 이참에 사용인을 한번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분명 얼음 마법이었지."


테라가 작게 중얼거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푸른 눈이 그녀를 향했다.


"음? 방금 뭐라고···."

"유감이야."


그 말과 동시에 테라의 몸에서 마치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평소보다 더 두텁고 단단한 바위 덩어리를 순식간에 휘감은 그녀의 주먹이 그대로 남성의 배를 강타했다. 테라의 행동을 운 좋게 눈치챈 남성이 급하게 주변에 마나를 둘렀지만, 나름 만들어진 얼음벽은 그녀의 주먹에 손쉽게 산산이 부서져내렸다.


테라의 공격을 직격으로 맞은 남성은 그대로 붉은 벽으로 날아가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방에 기절한 모양인지 그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상성이 안 좋았어."


물론 설령 상성이 좋았다 할지라도, 그녀를 이길 순 없었으리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마을은 아직 고요했다. 마을의 뒤편에 위치한 공터는 외진 곳이어서 그런지 더더욱 그랬다. 간간이 하늘에서 새가 날아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테라는 눈앞에 있는 비석을 바라봤다. 비석은 그곳에 묻힌 이만큼이나 작은 크기였다.


"테라."


비엔의 부름에 테라는 고개만 돌려 뒤를 쳐다봤다. 그는 양손이 가득 찰 정도로 커다란 하늘색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테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작은 비석 앞에 내려놓았다.


"···그 아이도 기뻐할 겁니다."


테라의 옆에서 가만히 서있던 노인이 서글프게 말했다. 그녀는 주름진 손으로 비석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신지 아직 한 달밖에 안됐는데 벌써 가시는군요. 이 늙은이는 또 외로워지겠습니다."

"곧 다시 들를게."

"이전에도 그렇게 말해놓고는 이제야 겨우 들리지 않았습니까."


척 듣기에도 불만스러운 말투였다. 하지만 노인은 그러면서도 간단하게 챙긴 짐을 테라에게 건넸다. 그녀가 아침 일찍 일어나 손수 구운 빵과 쿠키였다.


"부탁하신 건 이미 마차에 실어 놨습니다."

"여러모로 고마웠어 노인장."

"호호 별말씀을요. 아.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시지요."


노인은 품에서 작은 책 한 권을 꺼내더니 테라에게 내밀었다.


"이 늙은이가 준비한 소소한 선물입니다."


책의 표지에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재정학'이라는 제목이 쓰여있었다. 테라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선물이었다.


"한번 확인해보시지요. 나름 쉬운 걸로 골랐답니다."


노인의 말에 테라가 마지못해 책을 펼쳤다. 그녀의 큰 손에 쥐어지니 안 그래도 작은 책이 더 작게 느껴졌다. 조심스레 몇 페이지를 넘겨보던 그녀의 긴 손가락이 이내 한 페이지에서 멈춰 섰다.


"마음에 드시나요?"


그렇게 물어오는 노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담겨있었다. 테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노인의 선물이 만족스러운지 티 나지 않게 살짝 웃었다.


"정말 마음에 들어. 고마워 노인장."

"호호호 그거 참 다행이군요."


테라는 작은 책을 다시 접어 품 속에 고이 넣었다.


짧고 간단한 배웅이 끝나고, 테라는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비엔은 그녀를 따라 마차에 타지 않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원래라면 배웅을 지겨워하며 진작에 먼저 마차에 올랐을 그였다.


"호호 비엔은 이 늙은이랑 헤어지는 게 싫은 모양이지요?"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돌아오는 비엔의 답에 노인은 답지 않게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응. 헤어지기 싫어."


믿을 수 없는 말에 그저 눈만 꿈뻑거리는 노인을, 비엔은 마치 눈에 새기려는 것처럼 한참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리곤 이내 폴짝 마차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마차에 난 창문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했다.


"노인장 나중에 또 봐. 그때는 더 맛있는 거 해줘야 해."

"허···, 허허허···."


그런 그의 모습에 노인의 입에서 자동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노인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이내 마차가 출발했다. 노인은 서서히 멀어지는 마차를 향해 주름진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마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분명 짧은 한 달이었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마차는 빠른 속도로 공터를 벗어났다. 이어 마을을 빠져나가자 넓게 트인 초원이 나타났다. 비엔은 여전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로 외쳤다.


"테라! 저기 봐!!"


비엔의 외침에 테라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온통 하늘빛으로 물든 초원이 있었다.


"저거! 저거 이름이 뭔지 알아?"

"···저 꽃은."

"저건 방울꽃이야!"


질문을 한 주제에 테라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비엔이 먼저 답을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테라는 작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원을 가득 채운 하늘색 꽃의 이름은 방울꽃이 아니었다. 저 꽃의 이름은 분명···.


"방울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방울꽃이야! 그치??"


이번엔 비엔의 물음이 테라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노인이 미리 마차에 실어놓은 커다란 가죽 주머니가 갑자기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푸하!"


이내 가죽 주머니 입구가 벌어지며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한 아이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잠시 숨을 몰아쉰 그는 이내 방긋 웃으며 테라를 쳐다봤다. 아이의 미소는 비엔과 굉장히 닮아있었다.


"···멋진 이름이네. "


테라는 그 꽃의 진짜 이름을 말하는 대신 그렇게 말했다. 아이의 볼에서 방울꽃만큼이나 환한 보조개가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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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면족. 01 19.06.10 52 1 16쪽
» 관계. 06 19.06.04 32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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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달의 뒷면. 02 19.04.23 45 2 16쪽
31 달의 뒷면. 01 19.04.19 47 1 15쪽
30 양의 탈. 04 19.04.15 47 2 15쪽
29 양의 탈. 03 19.04.11 45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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