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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타행성의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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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작품등록일 :
2019.0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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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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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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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상황이 어이없고 황당했으나, 정작 이런 일을 벌인 아실리움의 태도는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당장이라도 터지려는 속을 진정시키며 그를 노려봤다. 할 말은 정해져있었다.


"당장 돌아가."

"싫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실리움의 답도 정해져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돌아가라."

"내가 왜 네 녀석 말을 들어야 하지?"


하긴, 말을 듣는 녀석이었다면 애초에 이곳에서 마주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한숨을 굳이 참지 않고 밖으로 내쉬었다. 설마 이런 짓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이나 세운다고 그동안 숨어 다녔던 거냐?"

"누가 숨어 다녔다는 거지? 어이가 없군."

"어이는 내가 없지. 어제까지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녀석이 무슨."

"기억력은 물론 관찰력도 나쁜가 보군."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이게 신경까지 긁네.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번 말하게 하는군. 난 돌아갈 생각 따윈 없다."


문제는 그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였다. 물론 괜히 억지로 돌려보냈다가 분풀이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만큼 나도 그를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번거롭게 돌아갈 필요 없어. 그냥 여기 두고 갈 거니까."


지금까지 그가 해온 짓이 있어 클라와 카플라의 옆에 두는 건 불안했지만, 다행히 실력 좋은 포이갈 상단원이 있으니 공격 마법이 아닌 아실리움 정도는 금방 제압이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나름 위협적으로 한 말에도 아실리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오만하게 나를 쳐다봤다.


"생각보다 머리가 안 좋군. 잊고 있나 본데, 이 마차는 내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 마차는 파브리카의 것이 아닌 아실리움의 것이었다.


"···마차는 잠시 밀릴게. 그동안 넌 여기서 삼림욕이나 하던가."

"수준 낮은 누구는 흙바닥에서 삼림욕을 하나 보지?"

"누가 여기서 하라냐? 친절히 저~쪽 구석에 묶어주고 갈 테니 걱정 마라."


우거진 숲속에서 나무와 물아일체가 될 테니 나름 삼림욕이라면 삼림욕이었다.


"농담할 시간도 있나 보군. 급한 거 아니었나?"

"그걸 알면 말 좀 듣던가."

"난 그저 내 후견인을 만나러 가는 것뿐이다."

"가지가지 하네. 너 옆 마을 출신도 아니잖아."

"그놈이 지금 옆 마을에 와있다."

"구라를 칠 걸 쳐라. 너 그러다 코 길어져 인마."

"코가 왜 길어지지? 그리고 나는 네 녀석 같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제법 진지하게 말하는 게 정말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그에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네 후견인이 왜 거기 있냐."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보는 거지?"


아실리움은 시큰둥하게 답하곤 이내 입을 다물었다. 마차 문을 열었을 때도 그랬지만, 그는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나는 아실리움에게 자세한 걸 묻는 대신 파브리카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그의 몸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땀은 아실리움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뻣뻣하게 굳은 파브리카의 어깨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축축하게 젖은 어깨를 꾸욱 누르자, 그의 어깨가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덜커덕거렸다.


"음··· 파브리카?"

"예, 예?"

"저 녀석의 후견인이 이번 일에 연관되어 있는 거, 왜 말 안 했어?"

"그, 그게···."


파브리카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안절부절해하며 여전히 가슴에 부착되어있는 마나 차단기를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괜찮아, 화 안 낼게. 말해봐."

"그게, 물어보질··· 않으시길래···."


맞다. 물어보지 않았다. 왜냐면 후견인은 상관없을 거라는 아실리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건 묻지 않아도 알아서 말해줘야 하지 않나···.


물론 그런 부분을 집고 넘어가지 않은 내 잘못이었지만 괜히 파브리카가 얄밉게 느껴졌다.


"설마 그 노블이랑 짜고 우리에게 복수하려고 한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물론 큰 주인님께서 이 일을 추천해주신 건 맞지만, 옆 마을에 오신다는 건 저도 며칠 전, 전보로 갑작스레 알게 된 일입니다! 맹세합니다···!"


선발제가 아니라 지인 추천제였냐···.


파브리카의 말이 의심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마나 차단기를 대하는 태도로 보아 여전히 그게 폭탄이라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파브리카의 말은 사실이리라.


그렇다면 아마도 아실리움의 후견인은 카플라가 살던 마을에서 찾은 노블과 마찬가지로 엘을 지원하는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학교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엘.

이전과는 다른 납품장소.

갑자기 찾아온 아실리움의 후견인.


···다 같이 모여서 파티라도 하려는 건 아닐 테고.


분명 요상한 꿍꿍이가 있을 터였다.


"···아실리움. 역시 넌 학교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아마도 납품 장소에는 아실리움의 후견인만 있진 않을 것이다. 엘의 실험을 지지하는 다른 노블들도 함께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상황에선 우리 몸을 보전하는 것도 힘들었다. 애초에 계획 자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돌아가려면 네 녀석이나 돌아가라. 난 그놈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나 아실리움은 단호했다. 그의 눈에는 분노와 의문 등 복잡한 감정이 섞여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감정의 대상은 그의 후견인이었다.


"···그냥 모르는 척해."

"무슨 뜻이지?"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라고. 물어서 순순히 대답해줄리도 없을뿐더러, 이 상황에서 너를 가만둘 리가 없잖아."


모든 걸 알게 됐으니 아실리움의 후견인 입장에서는 그를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괜히 아는 걸 티 내서 죽느니 화나고 어이가 없어도 모르는 척 목숨을 부지하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싫다."


아실리움은 어째서인지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내 말 못 들었냐? 거기 가면 너 죽는다니까?"


어이없어하는 내 말에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담담하지만 어딘가 서글픈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언젠가 그렇게 될 거다."


사실 그랬다. 파브리카가 아실리움의 뒤통수를 주저 없이 가격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아실리움의 후견인은 그의 안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그를 학교에 보낸 것 자체가 언젠가는 실험재료로 쓸 생각이었으리라.


결국 그 노블의 그늘 아래 있는 한, 아실리움은 언젠가는 죽게 될 운명이었다.


"나를 데려가라. 내 마법은 너희에게 도움이 될 거다."


데려가라.

그건 명령이 아닌 부탁이었다. 동시에 그 나름의 살고자 하는 발버둥이었다.


"하아···."


자연스레 한숨이 나왔다. 이 녀석에게 당한 게 그리 많았음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동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실 한편으로는 그가 비엔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유독 타행성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후견인의 무관심에 분노하고 실망하는 아실리움을 보며, 만약 그의 후견인이 테라와 같았다면 그도 비엔처럼 다른 노블과는 다르게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분명 경고했다. 괜히 나중에 가서 후회나 하지 마라."

"후회 안 한다."

"이번에도 내가 지켜줄 거라 생각하진 마. 위험해지면 바로 두고 튈 거니까."

"알고 있다. 어차피 이전에도 그러지 않았나?"

"아 됐고, 이제 이걸로 그때의 빚은 없는 거야."

"···그래."


나는 마차에 오르는 대신 뒤에 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비엔은 아실리움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이미 자신의 마차에 탄지 오래였고, 아르바와 노테만이 남아 그와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화 내내 아실리움을 의심스럽게 지켜보던 아르바의 눈은 여전히 단호했지만 나름 부드럽게 풀려있었고, 아실리움을 언제든지 기절 시킬 수 있도록 단검을 꼬옥 쥐고 있던 노테도 어느새 단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후였다.


"내 마음대로 결정해서 미안···."

"괜찮아요. 저도 아실리움 씨가 가엽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돼요."

"응. 이번뿐이야. 고마워 아르바. 노테도."


정말로 성장환경이 문제였다고 해도 지금까지 아실리움이 타행성인에게 한 행동을 이해하거나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알량한 동정심으로 그를 돕는 건 이번 한 번뿐이었다.


그가 이번 작전에서 운이 나빠 죽게 되든, 또는 운이 좋아 앞으로의 생을 후견인 없이 혼자 살아가게 되든, 이후의 일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루나! 빨리!"


기다리다 지쳤는지 비엔이 마차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손으로 마차를 탕탕 쳤다.


"미안! 지금 출발할게!"


조금 뚱해 보이는 게 어지간히도 테라가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이렇게 오래 떨어져 지낸 적은 없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르바가 마차에 타는 걸 확인한 뒤, 노테와 함께 아실리움의 마차에 오르려는데.


"루나 씨!"

"응? 클라?"


숲속에서 나뭇가지를 한 아름 든 클라가 뛰어나왔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곤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다, 이내 아실리움이 함께 있다는 걸 알아챘는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괜찮아. 쓸 만할 것 같아서 데려가는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하지만 저 노블은 루나 씨에게 나쁜 짓을 했잖아요. 또 그러면 어떻게 해요."


클라는 아실리움을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이리저리 훑어봤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그런 행동이 고맙고 기뻐, 조금 부스스해진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고마워. 하지만 지금이야 뭐, 내가 더 강하니까."


애초에 아실리움 또한 그걸 잘 알 테니 이전과 같은 행동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는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아까는 내가 말실수를 했어. 미안해 클라."

"아, 아니에요! 저야말로 멋대로 굴어서··· 죄송했어요···."

"아니야 신경 쓰지 마. 화가 나는 게 당연한 일이었어."


나는 이 상황이 괜히 민망해져 볼을 긁적였다. 아까 아이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건만, 막상 클라 앞에서 하려니 조금 민망했다.


"카플라랑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줘. 금방 다녀올게."


나는 클라에게 최대한 자신 있게 웃어 보였다. 그리곤 언젠가 그녀에게 선물 받은 부적 목걸이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그제서야 시무룩했던 클라의 얼굴이 풀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한 아름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고쳐 안았다. 그것이 마치 그녀의 책임이자 역할인 양.


"자,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이제 슬슬 작전을 실행해볼까?"


옆 마을에서 열린다는 요상한 파티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야! 칸디스!!"


라비타의 사나운 외침에 칸디스의 눈이 옅게 떠졌다. 뱀으로 변할 수 있어서인지, 동공이 세로로 가는 보라색 눈이 느리게 움직이더니 이내 라비타를 향했다.


"내버려 두니까 아예 일어날 생각을 안 하네. 그만 자고 일어나 인마!"

"이런··· 벌써 도착했나?"

"한참 전에 도착했지. 후드나 쓰고 나와. 노블 엄청 많으니까."


칸디스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한번 펴곤, 마차에 난 창문을 통해 밖을 힐끔 쳐다봤다. 아직 해가 중천임에도 마차가 들어선 골목은 어두웠고, 좁은 골목길에는 제법 많은 노블이 서있었다.


칸디스가 후드를 쓰고 마차에서 내리자, 마찬가지로 후드를 깊게 눌러쓴 테라와 어째서인지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푸른 눈의 노블이 시야에 들어왔다.


"음? 저 노블은 갑자기 왜 저러나?"

"···왜긴. 금단현상인가 보지 뭐."


아하.


라비타의 말에 칸디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 눈의 노블은 테라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보기 위해 연신 후드 속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스토커가 따로 없군."

"스토커? 그게 뭐냐."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뒤를 따라다니거나 훔쳐보는 이를 뜻하지."

"···결국 변태라는 거네."


라비타는 어이없어하며 푸른 눈의 노블을 쏘아봤다. 그녀는 노블이 이 이상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한다면 엉덩이를 확, 걷어차줄 생각이었다.


칸디스는 그런 라비타의 어깨를 한 손으로 토닥거리곤 테라에게 다가갔다. 후드를 눌러썼다곤 하나 그녀의 덩치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이거 미안하군. 아주 푹 자버렸어."

"괜찮아. 일찍 도착했으니까."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제법 인원이 많군."


칸디스는 좁은 골목을 쭈욱 둘러봤다. 마차 안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많은 노블들이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도 놀랐어."


테라 또한 엘을 지원하는 노블이 이렇게 많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긴, 그들 입장에서는 하찮은 타행성인을 이용해 목숨줄을 늘릴 수 있는 게 되니,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물론 그 재료에 어린 노블도 포함되는 만큼, 아무리 같은 노블에게 정이 없다고는 하나, 이곳에 모인 노블은 특히나 제정신이 아닌 놈들일 터였다. ···눈앞에 있는 푸른 눈의 노블처럼 말이다.


"테라님, 곧 문이 열립니다."


칸디스를 조금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그는, 테라에게 골목길의 한 벽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테라는 아마도 비밀문일 것으로 예상되는 벽면을 한번 바라보곤 푸른 눈의 노블을 내려다봤다. 붉은 눈이 자신을 향하자 노블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이름은 곤란해. 이전에 상의한 대로 부탁할게. 그리고 그냥 편하게 불러도 괜찮아."


같은 노블에게 존칭으로, 그것도 엘이 아는 이름으로 불려선 곤란했다.


"큼···. 정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텔루스라고···, 부르도록 하지."


하지만 편하게 부르라는 말을 푸른 눈의 노블은 어떻게 이해했는지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으··· 정말 싫다."


당연하게도 라비타는 그런 노블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 땡! 땡!


얼마나 기다렸을까, 종소리가 두 번 들리더니 이내 골목길에 서있던 노블들이 하나, 둘 벽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자."


테라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낮게 울렸다. 그에 칸디스와 라비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파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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