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타행성의 지구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연구실
작품등록일 :
2019.02.11 09:58
최근연재일 :
2019.09.27 21:45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11,437
추천수 :
143
글자수 :
440,912

작성
19.08.25 22:10
조회
19
추천
1
글자
13쪽

파티. 03

DUMMY

다행히 거리가 그리 많이 벌어지진 않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실리움을 데려간 노블 일행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의 코너 너머에서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아실리움의 마나와 함께, 사피언스라고 불렸던 노블의 묵직한 마나가 느껴졌다.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르자 복도에는 노블 일행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중에서도 사피언스의 것은 유독 튀었다. 함께 걷고 있는 타행성인 두 명의 것은 물론, 이동하는 도중 간간이 마주치는 다른 이들과 비교해도 그의 발소리는 제법 특이했다.


무슨 군인도 아니고···.


그랬다. 그것은 마치 군인의 그것과도 같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제법 묵직하게 들려오는 사피언스의 발소리는 척 듣기에도 틀이 단단히 잡혀있었다. 어깨와 가슴을 편 채 걷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테라와도 닮아있었다.


그에 어째서인지 저 사피언스라는 노블이 마법만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블이라면 질색할 만한 추측이었지만, 사실 테라나 비엔처럼 '야만'스러운 방식을 사용하는 노블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근접전이 유리한 마법을 가진 경우, 그를 활용하기 위해 싫지만 억지로라도 체술이나 검술 같은 걸 배우는 노블이 가끔 있었다. 물론 노블들의 기준에서는 야만스럽기 짝이 없는 방식이니, 같은 노블에게 비웃음을 사긴 할 테지만.


···엘은 테라를 보며 자랐으니까.


아마도 엘은 그런 쪽으로는 다른 노블과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설령 사피언스가 정말로 체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딱히 그걸 신경 쓰거나 상관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얼마나 뒤를 쫓았을까, 그들이 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타행성인 두 명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이내 아실리움을 사피언스에게 넘겼다.


"그러면 사피언스님, 뒤는 부탁드립니다."


사피언스는 그들의 말에 대답을 하지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은 채 아무 반응 없이 아실리움만 안아들었다.


하지만 타행성인들은 그런 그의 태도가 익숙한지, 닫힌 문에 작게 노크를 두 번 하곤 문을 열더니 옆으로 비켜섰다. 사피언스는 아실리움을 고쳐 안더니, 이내 커다란 몸을 구기며 작은 문안으로 들어갔다.


응···?


그런데 타행성인이 문을 닫기 직전, 사피언스가 아실리움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은 마치 사피언스가 아실리움에게 뭐라 말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를 제대로 확인할 시간도 없이 문이 그대로 닫혀버렸다.


에이, 잘못 봤겠지···.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아실리움의 마나는 계속 침착했는데다, 기특하게도 그는 작은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사피언스가 아실리움이 깨어있다는 걸 알아챌 리는 없었다. 애초에 그걸 알아챘다면 사피언스가 그를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사피언스가 문 너머로 사라지자 타행성인 두 명은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자리를 비웠다. 뒷문과 정문에 멀쩡히 문지기가 있는 데다, 설마 여기까지 들어온 침입자가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을 너무 제대로 안 하네.


물론 쉽게 잠입할 수 있으니 나로서는 이득이었다.


잠시 주위에 다른 타행성인이나 노블이 없는지 살핀 뒤, 문 가까이로 몸을 붙였다. 다행히 문 바로 건너편에서 느껴지는 마나나 기척은 없었다. 하지만 아까 창고에서 느꼈던 수많은 마나가 이 문 너머에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파티장인가 보네.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문은 요란한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방은 굉장히 넓은 듯했지만, 벽 바로 옆에 길게 늘어진 붉은 천이 시야를 막아 좁게 느껴졌다. 마치 무대의 뒤편 같았다.


붉은 천이 커튼처럼 열린, 밝은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조심히 다가가니 그곳에는 정말로 작은 무대가 있었다. 무대의 중앙에는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제단이 있었다.


아실리움은 그 위에 누워있었다. 제단 위에 누운 그의 모습은, 마치 신에게 바쳐진 제물처럼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다가가려는데.


"설마 여기서 하려는 건가?"


무대 앞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천 너머로 바라본 그곳에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술로 한껏 차려진 몇 십 개의 테이블과 그곳에 앉아있는 수많은 노블들이 있었다. 방금 들려온 그 목소리는 그들 중 하나인 듯했다.


"예."


그리고 대답은 내가 숨어있는 천 바로 앞의 무대 위에서 들려왔다. 노블의 질문에 대답한 이는 한 타행성인이었다. 아니, 타행성인이면서 그렇지 않은 자였다.


"이걸로 떨어진 신용도 조금은 올라가겠죠."


우리가 그토록 찾던 엘이,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곳에 서있었다.


"다들 걱정되시겠죠. 타행성인만을 재료로 사용하던 지금까지의 실험과는 달리, 이 실험은 스스로를 직접 재료로 사용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답니다."


그렇게 답한 엘은 천천히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제단 앞에 다다르자 엘은 아실리움을 한번 쳐다보곤, 이내 손에 있던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그건 작은 구슬이었다.

아주 작은 구슬 하나가 그의 손에서 빛을 한껏 머금은 채 반짝이고 있었다.


영혼 구슬···.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저 손에 들린 게 이름 모를 이의 영혼이라는 것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이 구슬을 영혼이 없는 몸 안에 넣기만 하면 되죠."


그렇게 말하며 엘은 들고 있는 구슬을 아실리움의 입에 넣는 시늉을 했다. 어이없게도 그의 설명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이지,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에 순간 멍해졌다.


겨우 그걸로 영혼이 이동된다고···?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닌지 엘의 행동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노블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정말로 그것만으로 영혼을 이동시킬 수 있는 건가?"

"믿기 힘들겠지만 놀랍게도 겨우 이런 걸로 영혼은 이동된답니다."


하지만 엘의 답은 여전했다. 애초에 여기서 직접 실험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니 그의 말이 거짓일 리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실험이라고 할만한 수준도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살벌한 종류의 것들과는 달리, 지금부터 아실리움이 당할 일이라곤 입안에 구슬이 들어가는 것뿐이었으니까.


···물론 그 구슬이 일반적인 구슬이 아닌 영혼이 담긴 구슬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근데 영혼이 있는 상태에서 구슬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현재로서 예상 가능한 건 세 가지 정도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또는 아실리움의 몸을 구슬 속의 영혼이 뺏거나.


···또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되거나.


예를 들어 물이 반 이상 차있는 컵에 음료를 계속 부을 경우, 과연 컵에서 넘치는 건 음료뿐일까?


아니다.

음료만 넘치지도, 그렇다고 물만 넘치지도 않는다. 물과 음료가 섞인 채 컵 밖으로 흘러넘치게 된다.


돌겠네···.


아실리움의 몸인 만큼 별일 없을 거라 믿고 싶었지만, 영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만큼 그럴 거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사실 여차하면 아실리움을 내버려 둔 채 혼자라도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 상황을 뻔히 보고 나니 도저히 혼자서 도망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 어린데, 얼마나 무섭겠냐고···.


자연스레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일단 무대 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무대 위에는 엘과 나를 제외하고는 엘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커다란 덩치의 노블뿐이었다. 묵직한 마나로 보아 그가 좀 전의 사피언스인 모양이었다.


현재로서는 엘을 인질로 삼는 것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방안이 없었다. 마나 차단기를 한 상태이니 사피언스는 물론 엘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엘은 분명 근접전이 약하다고 했었지···.


그러니 그를 인질로 잡은 후 이곳을 빠져나가면 될 것이다. 아실리움도 제법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소란을 틈타 알아서 잘 도망가리라. 노테가 이미 비엔과 아르바에게 상황을 전달했을 테니, 건물 밖으로만 나간다면 아이들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속으로 계획을 정리하는데.


"설명은 끝났으니, 이제 실제로 보여드리죠."


성격 급한 엘이 아실리움의 입을 벌리더니 들고 있던 구슬을 그의 입안으로 가져갔다.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그에게 달려들려는데.


"컥···!"


갑자기 머리 위로 큰 그림자가 지더니, 누군가가 순식간에 내 목을 낚아챘다. 겨우 한 손으로 천천히 내 몸을 들어 올리는 팔을 부여잡으며 상대를 쳐다봤다.


"···하나는 사라졌군."


내 목을 쥔 건 다름 아닌 사피언스였다. 묵직한 마나만큼이나 낮은 목소리를 가진 그는 어째서인지 엘의 옆이 아닌 내 앞에 서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이없는 상황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피언스의 갑작스러운 등장보다는 방금 전, 그가 했던 말이 더 신경 쓰였다.


하나.


순간 아까 창고에서 사피언스가 내 주변을 맴돌던 것이 떠올랐다. 아무래는 그는 그때, 노테가 함께 있다는 걸 이미 눈치챘던 모양이었다.


노테의 그림자 마법은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의 마나에 익숙하지 않는 한, 사실상 그림자 속에 숨은 그를 알아채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이미 노테와 마주친 적이 있는 자.


"애들···길 잘 가는, 데··· 왜 갑자기··· 말을 걸, 고 난리···야···!"

"···그거 실례했군."


노테와 아르바가 구름다리에서 만났다던 노블.

그 노블이 바로 사피언스였던 모양이다.


이하현, 이 바보 자식···.


엘과 함께 다닐 거라 분명 예상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이 연달아 발생한 것에 당황한 탓인지, 그를 깜빡 잊고 있었다.


···젠장, 너무 안일했어.


물론 후회를 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이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었다.


점점 힘이 들어가는 사피언스의 손에 정말로 내 목이 힘없이 꺾여버리기 전에 손목에 찬 마나 차단기를 풀려는데.


"루나···?"


잠시 잊고 있던 엘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름을 불렀다. 어째서인지 그는 기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들은 대로의 모습이네요. 마나가 안 느껴지는 건··· 역시 레지스탕스의 기술인가요? 멋지네요, 그런 것까지 가능하군요."


레지스탕스라는 말에 상황을 지켜보던 노블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급기야 도망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엘은 그런 소중한 고객들이 신경 쓰이지 않는지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일이 뜻대로 돌아가진 않은 모양이네요."


정말 안타깝다는 듯 말하는 엘의 얼굴에는 상냥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건 결코 사기꾼의 미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섬뜩하게 느껴졌다.


"당신과는 한 번쯤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당신이라면 제 생각을 이해해줄 거라 생각하거든요."

"말도···안 되는 소, 리 하지··· 큽···!"


어이없는 엘의 발언에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목을 강하게 조여오는 힘에 말을 끝맺지 못하고 이를 악 물었다. 그에 마나 차단기를 향하던 내 손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서서히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간신히 시선을 돌려 제단에 누운 아실리움을 쳐다봤다. 이런 상황임에도 그의 마나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아실리움 저 자식···, 알고 보면 아르바만큼이나 마법에 재능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감기기 시작하는 두 눈을 억지로 꿈뻑거렸다. 어두워지는 시야와는 달리, 엘의 목소리는 명확하게 들렸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기에 이곳은 그리 좋은 장소는 못되네요. 아쉽지만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죠. 잠시 동안이지만 부디 좋은 꿈 꾸길 바랄게요. ···잘 자요, 루나."


엘의 그 말을 끝으로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노블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만이 멍한 머릿속을 울렸다. ···어째서인지 그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타행성의 지구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관련 공지입니다. +1 19.10.09 13 0 -
공지 등장인물 프로필.(2019.09.05) 19.04.05 282 0 -
68 비어(飛魚)족. 01 19.09.27 11 1 14쪽
67 외출금지? 19.09.18 14 1 16쪽
66 뒤풀이. 19.09.11 14 1 16쪽
65 파티. 06 19.09.05 25 1 14쪽
64 파티. 05 19.09.01 18 0 13쪽
63 파티. 04 19.08.29 23 1 15쪽
» 파티. 03 19.08.25 20 1 13쪽
61 파티. 02 19.08.20 20 1 15쪽
60 파티. 01 19.08.14 20 0 16쪽
59 추적. 04 19.08.11 52 0 15쪽
58 추적. 03 19.08.07 21 0 14쪽
57 추적. 02 19.08.04 27 2 16쪽
56 추적. 01 19.07.31 28 2 14쪽
55 학교생활. 07 19.07.28 33 1 14쪽
54 학교생활. 06 19.07.23 28 1 13쪽
53 학교생활. 05 19.07.20 26 1 14쪽
52 학교생활. 04 19.07.16 35 2 14쪽
51 학교생활. 03 19.07.12 42 1 16쪽
50 학교생활. 02 19.07.08 36 1 14쪽
49 학교생활. 01 19.06.30 64 1 14쪽
48 면(面)족. 04 19.06.25 45 1 16쪽
47 면(面)족. 03 19.06.18 42 1 13쪽
46 면(面)족. 02 19.06.15 50 1 13쪽
45 면(面)족. 01 19.06.10 79 1 16쪽
44 관계. 06 19.06.04 50 1 17쪽
43 관계. 05 19.06.02 74 1 16쪽
42 관계. 04 19.05.28 73 1 16쪽
41 관계. 03 19.05.24 49 1 15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연구실'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