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받아라! (4)
1. 신병 받아라!(4)
생활관에 들어온 황영준 준위는 현수와 찬영이의 경례를 가볍게 받았다. 그리고 저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석우를 보며 반갑게 웃음을 지었다.
“어 충성. 어 신병도 있네. 잘 찾아왔네.”
황 준위는 석우를 보며 짐짓 아는 척을 했다. 석우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멋모르고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아. 황영준 준위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아까 심드렁한 태도와는 다르게 현수는 잔뜩 불만 어린 목소리로 약간의 엄살과 애교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앙탈을 부리며 말했다.
“2소대처럼 그 음양사 출신은 아니더라고 좀 사람 구실을 하는 얘를 주셔야지 이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저거 인사하는 거 보십시오. 고개만 까닥하는거. 가뜩이나 인원도 없는데 저런 얘 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솔직히 2소대는 여유 있지 말입니다. 그러면서 매번 저희 소대만 굴리고 그러십니까. 오늘 작전 나가야 하는데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인마. 니네가 신병 받을 때 침 바르고 ‘저 새끼는 내 꺼다.’ 그러냐? 주면 주는 대로 받아. 그리고 저 녀석도 나름 인재야 임마. 내 나한을 볼 수 있는 놈이 어디 흔한 줄 아냐.”
황 준위의 말에 현수가 깜짝 놀랐다. 찬영이도 덩달아 놀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말 진짜로 놀란 건 석우였다.
뭐? 내가 뭘 봤다고? 언제?
“그러니까 제대로 가르치라고. 또 아냐, 저놈이 니네 소대 에이스가 될지.”
“아무리 그래도 그냥 저 고문관, 아니 신병은 그럴 낌새가 전혀 안 보이지 말입니다.”
황 준위가 짐짓 불쾌한 표정을 짓자 현수의 말투가 달라졌다.
“상병 박현수. 그래도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방금 전까지 능글능글하던 현수가 화들짝 위장 군기를 시전했다. 그 와중에도 결국 할 말은 하는 현수였다.
아···저 노인네 꽤 높고 무서운 사람이었나 보네.
“그래. 처음부터 군 생활 잘하는 놈이 어디있냐. 일단 능력만큼은 내가 보증한다. 그리고 오늘 출동에 쟤도 데려가.”
“네? 오늘 들어온 놈을 말입니까?”
“그래. 오늘 들어온 놈. 꼭 데려가라.”
“그래도 그건 아니지 싶습니다. 오늘 처음 온 놈을 뭐 하는 놈인 줄도 모르는데···”
“야, 이 녀석아. 그럼 니가 대장 하던지. 아무튼 꼭 데려가라. 이미 최 중사한테도 말해놨다.”
그렇게 어이없어하는 현수와 찬영이를 뒤로 한 채 황 준위는 석우를 향해 빙긋 웃으면서 느긋하게 생활관 밖을 나갔다. 황 준위가 사라지자마자 찬영이 황급하게 다시 석우에게 물었다.
“야, 신병. 너 진짜 밖에서 뭐 하다 왔어?”
“신병. 강석우. 편..편의점 알바하다 왔습니다.”
“뭐야 그럼 뭐 영능력 관련해서 해본 건 없어?”
“여···영능력이요? 그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 전 잘 모릅니다. 그보다 전 솔직히 제가 여기 왜 와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난감하긴 찬영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현실을 인식시키는 게 먼저라고 생각됐다.
“야. 아까 하던 얘긴데 일단 마저할게. 여긴 말야···”
석우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내무실로 온 지 이제 두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몇 년은 지난 느낌이었다.
아아 오늘 왜 이렇게 하루가 길지?
“귀신을 잡는 부대야.”
“······”
“······”
틀렸다. 이 자식들 모두 미친놈들이구나.
석우는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신병이 첨 들어가면 PX에서 탱크 사 오라는 식으로 막 놀린다던데 혹시 그런 게 아닐까? 아냐. 그냥 입대부터 지금까지 깜짝 몰래카메라 같은 건 아닐까?
석우는 혹시나 해서 주변에 카메라가 있는 건 아닌가 둘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석우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영은 뭔가 계속 설명을 하고 있었다.
“자. 잘 들어. 딱 한 번만 말해 줄 거야. 원래 너는 보충대에서 훈련소를 거쳐 자대로 가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영능력이 있다고 판단되어서 귀신 잡는 우리 부대로 오게 된 거야. 덕분에 너는 보충대도 훈련소도 생 깐 거지. 그런 게 필요 없으니까. 우린 군 생활 내내 총 한 번 안 쏠 수도 있다. 다만 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 괴상한 일들을 해결하러 다닐 거야. 그러라고 만든 특수부대니까. 아 씨발 근데 내 짬밥에 왜 신병 교육이나 하고 있어야 하지.”
응? 응? 응? 뭐라고?
랩퍼처럼 쏟아지는 찬영이의 말에 정신을 못 차리는 석우였다.
“젠장. 여하간 그래서 저기 박현수 상병님은 부적을 다루는 분이시고 나는 기공 술사다. 말 나온 김에 간략히 설명하면 우린 특수편제라서 사단이나 대대가 없어. 명목상으론 육군본부 직할부대인데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순 없을 거야. 그래서 최고 책임자가 아까 널 데려오신 신부님이자 이곳 부대장인 최선중 대위님이고 그 밑에 1, 2소대가 있고 각각 소대장님이 있어. 우린 1소대고 1소대장님은 조인수 소위님이고 부소대장은 최경수 중사님이시다. 소대원은 우리랑 지금 부재중 인원으로 이수호 병장님과 임지형 일병이 있다. 뭐 후송 간 놈도 있는데 그건 일단 나중에 말하고. 임지형이는 곧 일과 끝나서 돌아올 거야. 각각 다 자신만의 능력이 있지. 그래 넌 무슨 능력이 있냐?”
이걸 어떻게 다 기억하지? 하면서 그저 아무 생각없이 멍 하니 그냥 듣고 있던 석우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저요? 아. 죄송합니다. 저···저는 그런게 없는데...말입니다.”
석우는 이제 슬슬 군대식으로 말하는 법을 깨달았다.
뒤에 말입니다만 붙이면 되는구만.
“없어? 그럼 여기 왜 왔어?”
“그···그러게 말입니다.”
찬영은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아 이새끼 당장 오늘 데리고 나가야 하는 놈인데 이 새끼 믿고 뭘 시킬 수 있을까? 라는 표정이었다.
“에휴. 됐고 그래서 우린 딱히 일과 때 하는 일이 없다. 죄다 개인 정비라고 보면 된다. 가끔 부대장님이 동네사람들 대상으로 미사하시는 행정업무 동원되는거랑 사무실에서 출동의뢰 전화받는 게 다야. 지금은 아까 얘기한 지형이가 일과보고 있고···.”
그 순간, 생활관 문이 벌컥 열리며 전투모에 작대기 두 개가 달린 사병이 한 명 뛰어 들어왔다.
“박현수 상병님. 홍찬영 상병님. 부소대장님이 곧 출발한다고 연병장 집합하라 하십니다.”
걸쭉한 부산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의 일병이었다. 현수는 귀찮은 듯 미적이며 일어났다.
“어이 신병. 군복 다 입었냐? 어디 준위님이 그토록 이나 자랑하는 니 실력 좀 보자. 전투모 쓰고 나와. 가자. 귀신 잡으러.”
으아아아. 아니 저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니까요? 신검 때 뭔가 보인다고 구라친 게 다인데 제가 왜···.차라리 저를 해병대로 보내주세요.
그런 석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1소대원들은 연병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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