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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늑삼
작품등록일 :
2019.02.12 21:15
최근연재일 :
2019.10.09 16:57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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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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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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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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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8쪽

<못된 짓의 대가3>

DUMMY

* * *



이 원사와 정 상사는 양쪽으로 흩어졌다. 형재와 북한군 운전병이 있는 쪽으로 이 원사가, 그리고 박옥자와 북한군 장교 쪽으론 정 상사가 움직이고 있었다.


북한군 장교는 어깨를 사선으로 가르는 가죽 띠를 차고 있었는데, 그 가죽 띠는 허리띠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허리띠에는 가죽으로 된 권총집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권총집에는 권총도 꽂혀 있었다.


다른 쪽의 북한군 운전병은 AKS-47 소총을 어깨 걸어총 자세로 형재를 붙들고 있었다. AK 계열에서 모델명에 'S'자가 붙여진 소총은 개머리판이 접이식이라는 뜻으로 주로 협소한 공간에서 활동하는 전차병들이나 운전병들의 개인 화기였다.


여하튼 북한군 운전병이 메고 있는 AKS-47 소총에는 탄창도 결합되어 있었다. 탄창에 실탄이 채워져 있는지 그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실탄이 채워져 있다고 간주를 해야 했다. 그런 만큼 만약 제압하는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나도 다른 한쪽에서 대항하는 수단으로 총기를 발사할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 그리되면 아주 큰 낭패가 될 수밖에 없기에 그 상황만큼은 어떻게든 필히 방지해야 했다. 요컨대 동시 제압만이 그 모든 걸 방지할 수 있었다.


이 원사는 이미 형재와 북한군 운전병이 있는 근처까지 접근을 마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정 상사가 먼저 공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방금 전 양쪽으로 갈라질 때 이 원사 쪽의 거리가 더 가깝다는 것을 정 상사 또한 확인했기에 정 상사는 자신만 준비되면 그 즉시 공격할 게 분명했다. 그 정도쯤의 직관력과 판단력은 이미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서로의 이심전심으로 충분히 다져진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 신호 같은 요식적인 절차는 굳이 주고받을 필요가 없었다.


한편 정 상사도 박옥자와 북한군 장교가 있는 근방까지 접근을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워낙 울울창창하게 우거진 숲이다 보니 박옥자를 끌고 들어간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정 상사는 평소와 달리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한마디로 마음이 다급해지며 초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앞쪽에서 박옥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옥자는 괜한 이유를 들어 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일부러 높여 대고 있었다.


"저, 관군 동지. 잠, 잠깐만요. 여기는 좀······."


뻔하디뻔한 잔꾀로 정 상사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의도 분한 수작이었다.


"저기··· 옆으로 조금만 더 옮기면 안 될까요?"


정 상사는 박옥자의 재치 있는 행동을 이정표 삼아 박옥자와 북한군 장교가 있는 숲 안쪽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위치가 파악됨과 동시에 정 상사는 그 위치로 정확하게 파고들며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퓩!


"억!"


정 상사는 숲 안쪽으로 뛰어듬과 동시에 동준표의 왼쪽 가슴에 권총 한 발을 발사하곤 곧바로 박옥자를 잡아당겨 자신의 품안으로 안았다. 그런 다음 쓰러지고 있는 동준표를 향해 다시 두 발을 더 발사했다.


퓩! 퓩!


박옥자를 끌어안은 채 권총 두 발을 더 발사한 정 상사는 잠시 동안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의 품안에 안겨 있는 박옥자가 심하게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자신의 대대장이 여자를 끌고 들어간 숲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자 북한군 운전병은 소총의 멜빵을 풀며 그쪽을 향해 돌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앞쪽의 숲 속에서 느닷없이 그림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그 광경은 북한군 운전병이 이생에서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파앙!


마치 물이 가득 들어차 있던 커다란 수조가 산산이 깨지는 듯한 소리였다.


이 원사는 숲 안쪽에서 불쑥 나타나 수건으로 돌돌 감싸여진 권총으로 한 발을 발사한 뒤 형재에게 급히 다가가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자신이 쏜 권총에 맞고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잇는 사체를 놀란 형재가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형재를 안은 채 등을 서너 번 다독거려 준 이 원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형재에게 속삭였다.


"형재 군, 이 아저씨한테 전화기 좀 인계해 주고 잠시 트럭에 타고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야."


"저, 저기 제 어머니는······."


"형재 군 어머니는 무사하시니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나저나 잠깐 동안 형재 군 혼자 있을 수 있지?"


"예, 대장 선생님··· 저와 어머니를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 휴대전화기··· 여기 누르시면 되고요. 저는 트럭 안에 들어가 있을게요."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두뇌도 명석했고 눈치도 빠른 형재였다. 박옥자와 박영지, 그리고 형재를 보면 피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세 사람은 모든 면에서 닮아도 너무 닮아 있었다.


여하튼 이 원사는 방금 전 정 상사가 발사한 권총 소음을 듣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은신을 드러내며 북한군 운전병을 향해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기도비닉을 유지한 채 워낙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상태라서 굳이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또한 총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물병을 소음기 대신 응급적으로 사용한 것도 기대 이상으로 효과가 괜찮았다. 물론 소음기만큼의 절대적 효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양호해 총성으로 인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 원사는 정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그곳에 대기하라고 전한 후 자신이 사살한 북한군 운전병을 어깨에 둘러메고 정 상사가 있는 숲 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정 상사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 도착한 이 원사는 먼저 박옥자에게 안부부터 물었다.


"여사님, 괜찮으십니까? 저희 때문에 이런 고초까지 다 겪으시고··· 죄송합니다."


"우, 우리 형재는요?"


"형재 군은 털끝 하나 다친 데 없이 무사합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여사님께서는 어디······."


"아, 고마워요··· 저는 정 선생님 덕분에 괜찮아요······."


"모두 무사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쨌든 죄송합니다, 여사님."


"우리 형재도 괜찮고, 저도 보시다시피 괜찮으니 대장 선생님께서도 염려 놓으세요."


역시 팔방미인답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심성도 갖추고 있는 박옥자였다.


"여하튼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나저나 여사님, 워낙 다급해서 그러는데··· 이 마당에도 여사님께 부탁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배려하려는 박옥자에게 이 원사는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처해진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경우가 아닌 줄 알면서도 억지로 말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대장 선생님, 이젠 정말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박옥자 또한 미안해 하는 이 원사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 더더욱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여야 했다.


"예··· 그럼 염치 불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지프차를 좀 더 안쪽으로 옮겨 놓고 도로 쪽에서 보이지 않게 벌통 트럭으로 가려 놓을 수 있을까요?"


"예, 대장 선생님. 지금 바로 그리해 놓도록 할게요."


박옥자가 이 원사의 부탁에 즉각 대답을 한 후 정 상사를 슬며시 한번 쳐다보곤 곧장 뒤돌아섰다. 그리고 트럭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정 상사를 힐끗거렸다.


그렇게 박옥자가 트럭이 있는 쪽으로 사라지자 이 원사와 정 상사는 곧바로 삽을 들고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덩이를 파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노동이었고, 진도도 노력에 비해 턱없이 더디었다. 하긴 구덩이를 파는 장소가 흙보다 자갈이나 바위가 더 많은 지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더디고 힘이 드는 건 당연지사였고, 결국 그런 악조건이다 보니 작업 시간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기적으로 한여름으로 치닫는 계절이라 사체의 부패가 급속도로 진행될 게 분명했고, 만일 그렇게 되면 심한 악취나 꼬이는 벌레들로 인해 사체를 유기한 이곳이 빠른 시간 안에 발각될 수가 있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나면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우선 제일 먼저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을 거쳐 간 북한군들이 있었기에 박옥자나 형재가 곧바로 수배되어 위험해질 수가 있었다. 그리되면 자동적으로 빈이를 구출해야 하는 작전도 크나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를 해야 하는데, 방법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최대한 깊게 매장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런 부득이한 이유 때문에 이 원사와 정 상사는 오뉴월 땡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된 노동을 하며 어렵사리 매장을 마친 이 원사는 정 상사를 박옥자가 있는 트럭 쪽으로 먼저 보낸 뒤 자신은 지프차에서 경유를 빼내 와 매장 장소와 그 주변까지 흥건하게 뿌렸다.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는 게 만일 그대로 두면 사체의 냄새를 맡고 야생동물이 몰려와 매장한 장소를 파헤칠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혹시 몰라 예방 차원의 조치까지 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원사는 그 모든 걸 마치고 트럭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박옥자는 정 상사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많이 안정되고 침착함까지 어느 정도 되찾은 것 같았다.


"대장 선생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까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여사님, 그런 말씀 마십시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들만 아니었으면 그런 고초도 겪지 않았을 텐데··· 저희들이 죄송합니다."


"아, 아니예요··· 그나저나 대장 선생님,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더욱이 보천으로 들어가는 건······."


박옥자가 미안함을 내보이며 앞으로의 계획을 넌지시 물었다.


"아무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보천읍으로 들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저 지프차를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데로 옮겨 놓는 게 제일 시급한 문제 같습니다."


"형님, 이렇게 되면 시간이 지체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듯이 이럴수록 정석대로, 그리고 순리대로 움직이도록 하자. 일단 저 지프차가 가장 큰 문제인데······."


"저기, 대장 선생님. 저 지프차는 이따 밤이 되면 정 선생님하고 제가 다른 데 옮겨 놓고 오도록 할게요. 아까 이곳으로 오면서 보니까 중간쯤에 아주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그곳이라면 아마 감쪽같이 숨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원사와 정 상사가 나누는 대화에 박옥자가 다시 슬쩍 끼어들었다.


"군용 지프차라 위험할지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선뜻 나서는 박옥자에게 이 원사가 염려 가득한 시선으로 물었다.


"차량 통행이 그리 많은 도로도 아닌 데다가 한밤중에 슬며시 움직이면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설령 위험한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정 선생님께서 으레 지켜 주시지 않겠어요."


겁을 배제한 야무진 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부끄러움조차 무시한 그야말로 당돌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말을 마친 박옥자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고, 정 상사를 향해 있던 시선 또한 어느새 다른 데로 돌려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정 상사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입을 헤벌린 채 박옥자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조금만 더 그 상태가 지속된다면 틀림없이 침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것도 한두 방울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 * *



초저녁 희미하게 보이던 별들은 밤이 깊어 갈수록 점차 제 빛깔을 내고 있었고, 휘영청 밝은 달도 어느새 둥실 떠올라 주홍 구슬처럼 교교한 빛을 뿌려 대며 온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달빛을 벗 삼아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도로를 정 상사와 박옥자가 걷고 있었다. 정 상사가 약간 앞서 걷고 있었고 박옥자는 반보 정도 뒤처진 거리에서 조신한 걸음걸이로 뒤따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다소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그처럼 서먹서먹하고 멋쩍어 보이는 그들의 걸음걸이를 따라 묘한 기류가 뒤따르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정 상사와 박옥자는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 지프차를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뜨린 후 지금은 이렇게 벌통 트럭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 정 선생님··· 사주가 어떻게 되세요?"


정 상사의 뒤를 조신하게 따르던 박옥자가 뭔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정 상사의 사주를 뜬금없이 물었다.


"예? 사주요? 사주는 왜··· 사주불여관상이라 했는데 말입니다."


박옥자의 뜬금없는 질문에 정 상사의 대답도 다소 뜬금없었다.


"··· 예? 무슨 말이예요?"


"김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데, 사람의 사주보다 관상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예··· 저는 단지 정 선생님의 나이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인데··· 아, 정 선생님은 관상도 좋으세요."


"관상불여심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이예요?"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정 상사의 말에 박옥자가 관심을 보이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사람은 모름지기 얼굴보다 마음이 더 우선이니 자고로 마음의 본질을 애써 가꾸라는 그런 말입니다. 커험!"


"어머! 어쩜 그리 유식하세요? 정 선생님은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멋진 분이세요."


박옥자의 눈에 콩깎지가 완전히 씌워지는 순간이었다.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는··· 어쨌든 그 양반을 따라다니다 보면 저절로 이렇게 됩니다."


"예? 고리타분한 그 양반은 또 누구예요?"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앞뒤 꽉 막힌 우리 형님이죠."


박옥자의 질문에 정 상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대답을 건넸는데, 무척이나 못마땅하다는 듯 말투도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아, 대장 선생님요··· 대장 선생님도 유식하신가 보죠. 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두 분을 뵙고 있으면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꼭 남녀 관계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입을 삐죽거리며 불퉁거리는 정 상사에게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던 박옥자가 뭔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참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한마디를 더 건넸다.


"우리 형님 말씀하시는 거면 그만하십시요. 그 양반 이야기라면 아주 지긋지긋하고··· 아무튼 지겹다 못해 넌덜머리가 납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말씀은 그리하시면서 표정은 왜 그렇게 흐뭇해 하세요?"


박옥자는 두어 걸음을 뜀박질하며 정 상사보다 발걸음을 앞서 나오더니 정 상사의 옆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그렇게 핀잔을 주었다. 그리곤 정 상사를 놀린 게 쌤통이라는 듯 혀를 반쯤 빼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장난기 가득한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정 상사는 박옥자의 그런 천진난만한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고 귀엽게 느껴졌다. 나이를 초월해 전혀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의 동심 같은 순박함과 어린 소녀의 하얀 청순함이 박옥자에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 제가요? 에이, 그 양반만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절로 쌓이는데··· 설마하니 제가··· 하하, 하하하!"


"피··· 호호, 호호호."


정 상사는 자신을 따라서 같이 웃고 있는 박옥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여인이 왜 아들과 단 둘이서만 살고 있는지 불현듯 궁금증이 일었다.


"저··· 여왕벌 여사님께서는 왜 일벌 꼬마하고만 사는 겁니까?"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 뜬금없는 궁금함을 정 상사가 넌지시 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일벌 꼬마 아버님은······."


"아, 형재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예? 아,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상부하신 줄도 모르고 제가 그만 실례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박옥자의 뜻밖의 대답에 정 상사가 다급히 사과의 말을 전했다. 무슨 사정이 있으려니 했지만, 설마 미망인인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예요. 시간도 많이 지났고··· 게다가 사는 동안 정도 없이 살아서 그런지 이젠 생각도 안 나는데요, 뭐."


"예··· 그런데 그럴 수도 있는 건가요? 저는 아직까지도 한없이 아리기만 한데 말입니다."


"··· 설, 설마 정 선생님께서도 상처하신 거예요?"


"··· 예, 저는 딸내미까지 함께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후우······."


박옥자는 정 상사의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곤 더 이상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 상사에게 그런 아픔이 있을 줄 미처 몰랐기 때문인데, 하기야 정 상사의 일언일행이 워낙 시원시원하고 평소 모습 또한 항상 유쾌했기에 그런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그러셨군요··· 상상도 못했어요."


이후부터 벌통 트럭이 있는 데까지 돌아오는 내내 박옥자는 여전히 정 상사의 뒤만 따랐고, 정 상사는 그런 박옥자에게 자신의 아픈 사연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난 자리에는 박옥자의 눈물 방울만 점점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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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에필로그> 19.10.09 296 7 4쪽
72 <산수 병풍의 삼수갑산> 19.10.08 240 6 23쪽
71 <사격의 진수> 19.10.07 214 6 32쪽
70 <도주가 아닌 도주2> 19.10.04 225 7 18쪽
69 <도주가 아닌 도주1> 19.10.03 212 7 19쪽
68 <구출 작전> 19.10.02 207 7 28쪽
67 <보천 국경수비대3> 19.10.01 205 6 19쪽
66 <보천 국경수비대2> 19.09.30 197 5 17쪽
65 <보천 국경수비대1> 19.09.27 268 6 16쪽
» <못된 짓의 대가3> 19.09.27 205 7 18쪽
63 <못된 짓의 대가2> +1 19.05.17 274 8 18쪽
62 <못된 짓의 대가1> 19.05.16 265 8 16쪽
61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3> 19.05.15 240 7 13쪽
60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2> 19.05.14 274 7 23쪽
59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1> 19.05.13 228 7 18쪽
58 <북한 잠입3> 19.05.10 244 7 15쪽
57 <북한 잠입2> 19.05.09 257 7 10쪽
56 <북한 잠입1> 19.05.08 240 7 20쪽
55 <변경되는 작전 계획4> 19.05.07 252 6 11쪽
54 <변경되는 작전 계획3> 19.05.06 235 7 15쪽
53 <변경되는 작전 계획2> 19.05.03 234 6 19쪽
52 <변경되는 작전 계획1> 19.05.02 257 8 13쪽
51 <북한 공작원들의 파견 지부5> 19.05.02 255 7 4쪽
50 <북한 공작원들의 파견 지부4> 19.05.01 251 8 15쪽
49 <북한 공작원들의 파견 지부3> 19.04.30 257 8 16쪽
48 <북한 공작원들의 파견 지부2> 19.04.29 270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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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응징7> 19.04.24 294 7 8쪽
45 <응징6> 19.04.23 264 8 17쪽
44 <응징5> 19.04.22 272 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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