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연승의 이유(2)

2.
- 슈악!
[설선우! 더스틴 티몬스의 강속구를 강하게 밀어 칩니다! 멀리멀리 날아가는 공!]
- 퉁!
[홈런! 설선우! 8회 말에 역전 3점 홈런을 칩니다! 9 : 8로 앞서는 빅스타즈!]
[설선우 선수! 무서운 배팅 기술입니다!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빠른 공을 결대로 밀어 쳐 홈런을 만들었어요!]
캐스터 채승민이 3점 홈런에 의한 역전에 집중한 반면, 해설자 김남기는 선우의 타격 능력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더스틴 티몬스의 투구는 157km/h의 속도로 좌하부 스트라이크 존 앳지에 꽉 차서 들어가는 명품이었다.
이 공은 괴력을 가진 메이저리그 강타자들도 쉽사리 홈런을 만들 수 없다. 무리하게 당겨 치면 평범한 플라이로 끝나기 쉬운 공.
선우는 클로스 스탠스를 사용해, 신체 밸런스를 유지하는 스윙으로 배트 중심에 공을 맞히고, 공이 들어오는 결대로 밀어 쳐 우측 담벼락을 넘기는 홈런을 만들었다.
선구안, 밸런스, 힘, 그리고 기술을 조합한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타격.
“우와와! 역전이다! 역전!”
“선우야! 네가 해냈구나! 오늘만 6타점!”
“설선우! 설선우! 설선우!”
“5연승! 5연승! 5연승!”
잠실야구장에 모인 빅스타즈의 팬들은 선우의 맹활약에 역전승이 가능해지자, 목이 터져라 환호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설선우’라는 이름과 ‘5연승’이라는 단어가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우게 됐다.
빅스타즈 팬들의 주술과 같은 뜨거운 응원에, 팔콘스 선수단은 물론이고 팬들도 기가 죽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상태.
사실 빅스타즈 팬들은 4연승에 만족하고 오늘 경기를 포기 하려 했다. 그 이유는 빅스타즈의 선발투수 최만석이 1회초에 4실점 하고 3회까지 총 6실점한 뒤 조기 강판됐기 때문이다.
현재 빅스타즈 선수단이 기세가 올라 2-3점 차 열세를 극복할 힘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초반에 대량실점을 당한 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그러나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선수 선우가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케 했다.
팬들이 선우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그리고 선우를 칭송하는 목소리는 빅스타즈 팬들에 국한한 것이 아니다.
<만득아! 선우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해!>
<맞아! 선우 아니었으면, 너 오늘 역적 되는 거였어!>
<하하하! 만득이 쿠크다스 맨탈도 선우 앞에서 안 통하는군!>
빅스타즈 선수들은 5타수 4안타 6타점을 쓸어 담은 선우의 활약을 높이 평가하며, 6실점 한 빅스타즈의 5선발 최만석에게 농담을 건넸다.
최만석은 만 25세로 선우와 동갑.
최고구속 137km/h에 불과하지만, 낙차 큰 커브와 예리한 슬라이더를 동시에 장착해 타자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약한 충격에도 과자처럼 바삭하게 부서지는 취약한 ‘맨탈’.
상대방에게 빗맞은 안타를 내 주거나, 수비 실책으로 진루를 허용하면, 급격히 제구력이 난조에 빠지고 구위가 떨어지면서 난타당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늘 경기도 1회초 2사 후 나온 팔콘스의 텍사스성 안타를 시작으로 귀신에게 홀린 듯 무너져 4점을 헌상하고 말았다.
덕아웃의 동료들은 ‘만득’이라는 애칭(?)을 공공연히 말하며, 최만석이 패전투수의 멍에를 벗어난 것을 지적했다.
<저야 선우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죠. 오늘 아웃도 선우가 5개나 잡아줬잖아요. 범철 선배님이 만세삼창 하면서 2점 내준 것과 비교되죠.>
<큼······. 너 꼭 그걸 말해야겠냐!?>
최만석은 자신을 놀리는 선배들 중, 유범철을 지목해 반격에 나섰다.
1회에 4점을 내준 이후 비교적 호투하던 최만석이 강판당한 계기는, 3회초 좌익수 유범철이 평범한 플라이볼 낙하지점을 놓치며 범한 기록되지 않은 에러.
‘본 헤드 플레이’라 불리기 충분한 유범철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최만석은 4실점으로 3회를 마친 뒤, 5회 또는 6회까지 투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범철의 행동은 MLB에서 유명한 ‘히 드롭 더 볼’과 빼닮았다.
<껄껄껄! 만득이도 쌓인 것이 있나보네!>
<하하하! 만득이도 할 말은 있는 거지 뭐! 어차피 선우 덕분에 역전했으니 지나간 일 아니겠어!? 마무리 잘해서 5연승 가자!>
더 할 수 없이 좋은 덕아웃 분위기.
만약 빅스타즈가 4연패에 빠졌다면, 수비 실책과 관련된 일이 말싸움을 넘어 몸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4연승을 했고, 이제 5연승을 향해 1회를 남겨둔 상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빅스타즈의 고참 선수들은 발끈하는 최만석의 행동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필승의 의지를 다졌다.
지금 선수도 관중도 심지어 해설진과 시청자도 빅스타즈의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가뜩이나 잘나가던 빅스타즈에 선우라는 날개가 부착돼 나타난 현상.
하지만 VIP석에서 빅스타즈 선수들을 지켜보던 민준의 생각은 달랐다.
“대표님. 강동수 선수의 컨디션이 나빠 보입니다. 9회초 마무리를 맡기기에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흠······. 월요일 휴식이 큰 도움이 안 된 건가요?”
“4경기 연속 등판했으니 비축된 체력이 고갈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오늘도 출전하면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동수는 빅스타즈의 전문 마무리 투수.
그는 개막전 이후 벌어진 4번의 경기에 모두 출전해 3세이브를 올리는 빼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오늘도 빅스타즈가 9 : 8로 역전한 상황에서 마무리를 위해 9회에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첫 경기에 강동수 선수를 투입한 것이 화근이었나 보군요. 그때 5점 차를 믿고 다른 선수를 기용했다면, 체력적으로 도움이 됐을 건데 말이죠.”
안재석은 크라운즈와 벌인 개막전에서, 9회에 5점을 앞선 상황에서 강동수를 투입한 결정이 무리수라고 생각하게 됐다.
당시에는 5점 차가 나더라도 마무리 투수를 투입한 임창욱 감독의 결정을 불가피한 것이라 여겼다. 오랜만에 달성 가능한 개막전 승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여긴 것.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귀중한 마무리 자산 강동수의 체력을 갉아먹은 자충수였다.
“개막전 출전보다는 어제 2회를 던진 것이 무리수였습니다. 이제라도 휴식을 취하게 해야 합니다.”
4월 1일 경기에서 팔콘스의 투수 곽창수가 펼치는 괴력 야구에 대응하기 위해, 빅스타즈의 감독 임창욱은 마무리 투수 강동수를 8회에 조기 등판시키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4연승을 거뒀지만, 강동수의 피로도가 69에 달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현재 강동수의 피로도는 65.
이미 40-60에 이르는 중간값 범위를 넘어 위험한 상황이고, 9회초 3타자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피로도가 70을 넘는 것은 예정된 수순.
부상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칫 피로한 강동수로 인해 빅스타즈의 5연승이 물거품이 되고, 더 나가 귀중한 마무리 투수를 상당 기간 사용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2020시즌 초반에 불과하다. 빅스타즈가 페넌트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강동수의 휴식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
“정민준씨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누구를 9회초 마무리로 보내야 할까요? 한상곤 선수를 9회에도 투입해야 하나요?”
“한상곤 선수의 컨디션도 정상이 아닙니다. 더 이상 출전시키면 부상당할 수 있습니다.”
한상곤은 주로 8회를 책임지는 KBO의 ‘승리조’, MLB의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분류된다.
그는 마무리 강동수 다음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구원투수로, 강동수에게 과부하가 걸릴 경우, 그를 대신해 마무리 역할을 맡기도 했다.
문제는 빅스타즈의 감독 임창욱이 이미 8회초에 한상곤을 마운드에 올렸다는 것.
빅스타즈의 타자들이 2점 차 열세를 극복할 것이라 예상한 측면에서는 선견지명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피로가 쌓인 마무리 투수 강동수가 9회를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무리수였다.
현재 한상곤의 피로도는 62. 마무리 투수 강동수보다 3 낮지만,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다면 높은 확률로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누가 최적이죠?”
“김대원 선수가 적합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원 선수요!? 추격조에서도 패전처리 전담에게 9회 마무리를 맡긴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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