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루함에 지친 한 늙은 용의 발악
2. 지루함에 지친 한 늙은 용의 발악
어느 우주 공간의 한 별.
크기는 지구보다 약 2배 반.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보다 2배 이상 느린 속도로 공전하고.
자전 속도도 2배 이상.
거기에 그 위성도 2개가 엇갈려 돌아가고 있다.
서로 고도가 달라 부딪힐 일도 없고 크기도 달라 별에서 올려다보면 큰 달과 작은 달로 구분된다.
우주에서 그 별을 내려보면 거대한 대륙 하나가 북극에서 남극에 걸쳐있다.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고, 대륙의 크기가 바다와 비슷하다.
그저 반은 바다고 반은 육지라고 보면 될까.
지구와 비슷한 점이라면 적도와 남, 북극이라고나 할까.
남극과 북극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적도 부근은 항상 뜨겁다.
그 뜨거운 대지 위에도 항상 눈이 쌓여있는 곳이 있다.
워낙 산이 높아 위에서부터 3할 정도는 사시사철 눈으로 덮여 있는 곳들이다.
땅에는 지기라는 것이 흐른다.
주로 높은 산에 많은 지기가 흐른다.
높은 산에서 낮은 산으로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흐르는 지기도 한 곳으로 모여드는 곳이 있다.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넓게 모여있는 이 산맥 안.
그래서 지기도 대륙에서 가장 많이 흐른다.
그렇게 가장 많은 지기가 흐르다가 모이는 대륙 유일의 지맥 점.
그 지하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동굴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용들 외에는 아는 존재가 없다.
이 동굴에는 거대한 몸체를 가진 주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 별에서 그동안 태어나고 사라져간 수많은 용 중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온 용.
크기도 역대 그 어떤 용보다도 거대한 몸체다.
그 이유는 이 동굴이 이 별에서 가장 지기가 많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른 용들은 그저 새끼로 태어나 자라는 곳 근처에 둥지를 짓고 그저 편안하게 만여 년을 살아갔다.
그러나 유독 기에 민감했던 이 용은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을 찾아냈다, 독립할 시기에.
그게 만 4천여 년 전이었다.
다른 용들이 일만여 년을 지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갔다면, 이 위치의 특별함 덕분에 5천여 년을 더 살아 있다.
거기에 계속해서 기를 빨아들이다 보니, 몸체도 한 배 반 정도가 더 커졌다.
자연의 순리를 어겼기 때문일까.
이 용은 대략 3천여 년 전부터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용들과 달리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무료함을 견디기 힘들어졌다.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도 생기게 되었다.
자꾸만 조급해지기도 했다.
인간 세상에서 ‘늙으면 더 급해진다.’는 웃기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도 자신은 다를 걸로 무시해 버렸다.
이제 곧 자신의 나이가 만 5천 세를 지나게 된다.
인간 세상의 역사에는 이 정도 세월이면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말을 듣는다.
만 살이 되어갈 동안에는 인간 세상을 비롯한 ‘용들의 놀이’라고 표현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료함은 더 커져갔다.
몸이 커지고 마나가 많아지자 가만히 마나만 모으는 것이 더욱 견디기 힘들어져 갔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용이 가졌던 기념품 중에서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기념품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
이 별에 존재하는 용들에는 한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수집벽이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좀 특이하다 싶은 것들은 강제로라도 챙겨다가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것 중에는 인간 세상에나 유사 인종 중에서 위대하다고 알려진 존재들도 있다.
인간들이나 유사 인종의 역사에는 용들이 지킴이, 즉 ‘가디언’으로 부린다고 알려진 존재들이 그들이다.
웃기는 소리다.
이 별에서 가장 강대한 존재를 지키는 ‘가디언’이라니.
용들에는 그저 조금 특이한 수집품이나 기념품 정도일 뿐인데.
이 별에서 살아가는 용들은 천 년에 한 번씩 모이는 날이 있다.
언제부터인가는 용들의 세계에서도 알려지지 않는다.
그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이 세상을 조율하라는 사명을 주면서 용들을 창조하신 날부터일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모임은 대략 백일 정도를 지속한다.
용 중에서 어른이라고 표현할 정도인 8천 살 이상 된 용 중에서 돌아가면서 초대를 한다.
그때 하는 일들은 대부분 자기 자랑이다.
거기에 가끔 성체가 되기 2, 3백 년 전이나 성체가 된 지 겨우 2, 3백 년 정도가 된 새끼들을 인사시키기도 한다.
그때 특이한 얘기가 나왔다.
가장 오래 산 용 다음으로 오래 산, 대략 만 4백 살이 조금 넘은, 그래서 곧 자연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되는 용의 얘기였다.
그 용도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몸에 있는 기를 세상으로 퍼트렸다 다시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그냥 한 지점, 즉 하늘로는 얼마나 뻗어 나가는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의 둥지가 있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향해 한 점으로 기를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멀리 쏘아 보내도 닿아서 돌아오는 느낌이 없더라는 것이다.
가끔 지나가는 별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별이 지나가면 다시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더라나.
그렇다고 자신의 기를 빨아들이는 것은 아니니 저 하늘이 기를 흡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대부분의 용들이 ‘차원’이라는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책 수집과 읽기에 집중하고 있는 용들 몇몇은 고대 선조 용들의 책에는 ‘차원’이라는 단어가 아주 가끔이지만 등장했었다고.
지루함에 지쳐있던 용들에는 가장 신 나는 주제였을 것이다.
이번 용들의 모임에서도 지루하게 남들 자랑이나 구경해주고, 자기 자랑도 늘어놓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용들에게 때아닌 활력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차원이 있을까,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은 있을 것으로 결론을 일찌감치 내려버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선조 용들의 자료에 등장했다는 이유.
둘째로 더 큰 이유는 차원이 없다고 한다면, 이 재미있는 주제를 그냥 흘려버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언제 또 이런 재미있는 주제로 머리와 몸을 굴려볼 수 있겠는가.
그때부터 이번 용들의 모임은 백일이 넘어가고 천일이 넘어가도 끝날 줄을 모르게 되었다.
각자 자기가 가진 자료를 뒤져오기도 했다.
거기에 협력이라면 마나를 모으느라 잠을 자는 시기에조차 경기를 일으키는 존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동 연구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해야할 일은 그 공동 연구의 결과로 각자 혹은 뜻맞는 몇 용들끼리 모여서 ‘성공’해 보는 것이었다.
그게 벌써 8백여 년 전이었다.
이 별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이 용, 크라시리우스도 그동안 자신이 모아왔던 기념품들을 갈아 넣었다.
가장 오래 살아오다 보니, 자기보다 오래된 기념품들도 있다.
다른 용 중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의 기념품들을 나눠주던 맘씨 좋은 선조 용들에게 몇몇 신기한 물건들과 함께 받게 되었던 일명 ‘가디언들’이었다.
그렇게 모이게 된 가디언들과 자신이 모았던 가디언들을 합하니 그 수도 3백여 개체가 되었다.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는 너무 손이 많이 가기에 대부분 뼈다귀 형태로 재구성해서 보관하고 있다.
마법사는 흔히 ‘리치’라고 부르는 뼈다귀 마법사로.
기사는 흔히 ‘죽음의 기사’라고 부르는 뼈다귀에 갑옷을 입혀놓은 뼈다귀 기사로.
그중에서 마법사 가디언들인 ‘리치’들을 혹사하기를 어언 8백여 년.
지금까지 자신도 8백여 년 동안 마나를 모으느라 잠을 자지 않고 버텨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리치’들은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자신도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되고.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잠 한숨 자지 않고 무언가에 집중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백여 년 후면 다시 ‘용들의 모임’ 시간이 돌아온다.
드나들 수 있는 열린 입구도 없는 그저 거대한 동굴.
드나들려면 이 별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다들 지식으로 알고는 있는 공간이동 방법밖에는 없는 동굴.
그 동굴 안에는 그 동굴의 3할을 차지하는 거대한 존재가 온몸을 흔들며 미친 듯이 소리쳐대고 있다.
크기는 웬만한 작은 산 하나 만하고, 모양은 얇은 피막의 날개를 등에 단 거대한 공룡과 닮았다고 할까.
거기에 머리에는 기린의 뿔 같은 것이 더 크고 웅장하게 쌍으로 자리 잡고 있다.
“크하하하하!”
“드디어 성공했드아아! 으하하하하하!”
그 거대한 존재가 얼마나 큰 소리로 웃어젖혔을까.
그동안 그 넓은 공간에 비해 먼지 하나 날리지 않던 곳에 천정에서부터 흙과 돌멩이들이 부스러지며 떨어져내리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에 이 거대한 용, 크라시리우스가 화들짝 놀랐다.
“허헉! 이... 이럴 수가. 이럼 안되지. 얼마나 고생해서 불러온 존재인데.”
그리고는 순식간에 옅은 우윳빛의 막을 만들어서 천정으로 쏘아 올려버린다.
그러자 천정에서 떨어지는 흙과 돌멩이들이 다시 천정으로 튀어 올라가 버린다.
거기에 그 막 너머 천정에 푸르고 하얀 화염을 넓게 발라버린다.
천정은 다시 거무튀튀한 색이지만, 반들반들한 대리석처럼 깨끗한 표면이 되었다.
거기에 빛을 내는 발광석이 무수히 많은 얼굴을 내밀며 이 넓은 동굴을 환하게 밝혀준다.
살짝 한숨을 내쉰 크라시리우스는 다시 시선을 내려 바닥에 엎어져 있는 인간을 내려본다.
“흐음... 확실히 걸치고 있는 옷만 봐도 이 세계에서는 본 적 없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고...”
다시 그 거대한 얼굴을 바닥 가까이 대고 인간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숨소리나 맥박은 정상인 듯하고...”
콧김을 살짝 뿜어내자 바닥에 엎어져 있던 인간의 몸이 들썩거렸다.
“아차... 이 작은 존재의 몸에 비해 내 몸이 너무 크구나. 일단...”
동굴 전체로 환한 빛이 잠시 어리는 듯했다.
잠시의 시간도 지나지 않은 듯한데, 그 거대했던 몸체가 사라졌다.
대신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서 꿈쩍도 하지 않는 존재 앞에 금발이 치렁치렁한 젊은 인간이 모습을 보였다.
“아! 맞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불러온 존재인데, 이 상태로 둘 수는 없지.”
금발이 치렁치렁한 젊은 인간이 살짝 손을 흔들자, 바닥에 엎어져 있던 존재가 바닥에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몸이 뒤집히고, 그 아래에 장정 다섯은 넉넉하게 누울 수 있는 커다랗고 푹신한 침대가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그 존재를 침대에 눕힌 금발의 청년 크라시리우스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억을 좀 읽어볼까나?”
침대에 누워있는 존재의 머리를 엷은 금빛이 감싸고 그 금빛의 줄기가 크라시리우스의 머리와 연결되었다.
그때부터 눈을 감고 있던 크라시리우스의 놀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갔다.
Commen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