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특이한 형님들과 누님들
시운의 말을 들은 모두가 순간적으로 벙어리가 되었다.
그동안 그 누가 있어 자신들에게 형님이니 누님이니 하는 호칭으로 불러왔던가?
그렇게 한동안 말문이 막혀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을 때, 시운은 속으로 겁이 덜컥 났다.
‘너무 서둘고 들이댄 건가? 아, 분위기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유독 한 리치만이 한참의 침묵을 깨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봐야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쇠로 긁는 소리였지만, 느끼기에는 충분히 호탕하게 웃고 있는 거라고 느낄만 했다.
“하. 하. 하. 으하하하! 그래! 그것도 좋겠군. 그동안 우리를 알고 있던 그 누가 있어 우리에게 형님이니 누님이니 하면서 불러주었던가? 그게 좋겠어. 아니, 아주 좋아. 나는 대찬성일세. 나에게는 케토토 형님이라고 불러주게나. 으하하하하! 다시 살아나고 엄청나게 젊어진 느낌이 들지 않는가? 으하하하하!”
“허. 허. 허. 그도 그렇군요. 정말 다시 어려지고 생생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그려. 허허허.”
케토토의 말에 다른 한 리치가 대답하자, 모두가 그 바람을 타게 되었다.
뒷줄에 있던 죽음의 기사들조차 손뼉을 치며, ‘호탕해서 좋네!’라며 큰소리를 냈다.
또 누구는 ‘다시 살아난 기분까지 드는 걸.’이라며 좋아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확 살아난 것을 느낀 시운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시운을 여전히 내려보고 있던 시모나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표정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진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게. 이 둥지에 제대로 살아 있는 존재는 이 둥지의 주인 말고 자네가 유일한데, 그런 자네가 우리를 살아 있는 형제와 자매로 여겨준다니, 오히려 우리가 고마운 일이겠네.”
“아, 다...행입니다. 저는 혹시 제가 너무 큰 결례를 범한 건가 해서 갑자기 겁이 덜컥 났었습니다. 하. 하. 하.”
그렇게 쩔쩔매며 대답하는 시운을 보며 시모나가 살짝 비웃음을 흘렸다.
“피식. 전에도 얘기했지만, 여기 주인이 자네를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네. 그래서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자네를 여기 주인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로 지켜야 하는 이들이네. 그러니 그 누구도 자네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이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그러니 앞으로는 더욱 마음을 편하게 가지게. 알겠나?”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너무 무섭기만 했거든요. 하. 하. 하.”
시운이 웃음으로 얼버무리자, 주변에 있던 리치와 죽음의 기사들도 덩달아 웃어버렸다.
어느 리치는 ‘그럴 만도 하지. 우릴 보고 누가 무섭지 않을까.’라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시운과 가디언들의 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아니 제대로 된 동거, 또는 인생 동행이라고 할 만했다.
시운은 리치들에게 마법을 기사들에게는 몸 단련을 배우기 시작했다.
리치들과 기사들은 시운의 기억에 있는 내용을 묻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물으려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시모나와 케토토가 정리해서 기본 법칙을 정했다.
언제나 기본은 1문 1답이었다.
시운에게 한 가지를 묻기 위해서는 최소 한 가지 이상의 도움을 줄 것.
그때부터 리치들에게는 마법 지식을 아예 뇌 속에 주입받기도 하고.
또 아예 마나를 몸에 주입받기도 했다.
마나를 느껴야 한다는 첫 과제에서 너무 생소한 나머지 헤매는 시운에게 아예 캐토토가 마나를 때려 박아 심장에 마나 고리를 만들어줘 버렸다.
기초를 가르치려던 시모나는 아예 마법 지식을 기초 부분만 따로 정리해서 시운의 뇌에 넘겨버렸다.
그렇게 해서 1개의 고리를 만들고 기초 마법 이론을 얻는 데는 1시간을 조금 넘겼다.
하지만 그것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데는 삼 일이나 걸려, 모든 리치들에게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 마법에 대해 전혀 상식조차 없는 세계에서 왔다는 것으로 면죄부를 받은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2개의 고리까지 완성하고 지식을 정리하던 중에 이제는 시운의 차례가 되었다.
케토토가 가장 서둘러 자신을 도와줬기에 케토토의 질문부터 받았다.
케토토는 인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가장 먼저 인체 장기별 기능에 대한 질문이었다.
시운은 난감했지만, 솔직하게 대했다.
시운의 세계에서도 의학은 워낙에 어려운 학문 분야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기본적인 상식조차 가지기가 쉽지 않다고 밑밥을 깔았다.
그래도 최대한 기억나는 데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를 도운 것은 역시나 케토토였다.
뭔가 약한 초록빛의 마법을 시운의 머리에 걸어주자, 시운은 머리가 맑아지면서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시운이 놀라워하자, 케토토는 ‘이 정도 마법 쯤이야.’ 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때부터 시운은 마법을 더욱 존중하게 되었다.
어느 실용 마법 분야의 대가로 있다가 끌려온 리치 조에서는 자동차, 비행기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 조에 대해서는 시운이 아는 데로 설명하다보니, 엔진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아니 그럼 엔진이라는 게 고작 회전력을 얻기 위한 기계잖아.”
“아, 그... 그렇죠? 그래도 고작이라고 말하기에는...”
엔진과 자동차에 대해 어느 정도 로망을 가지고 있던 시운으로써는 그래도 엔진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 어색해졌다.
하지만 그 리치 형님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자 봐. 그냥 내가 마법진으로 이렇게 회전력을 높이고 줄이고 하면, 그저 둥그런 판 하나로 다 해결되는 거잖아.”
“그... 렇긴 하군요. 하. 하. 하. 그래도 저희 세계에서는 마법이 없으니, 그 당시 엔진의 발명이 바로 혁신이고 마법이었습니다. 하. 하. 하.”
“하긴... 그렇겠군.”
그때부터 이들은 바로 자동차를 만들려고 덤볐다.
하지만 시운이 생각하기에 무엇이든지 기초가 중요하고, 자동차의 기본은 자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자전거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부터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 말에 실망하는 기색이긴 했지만, 만들기 간단하다는 말에 ‘그럼 금방 만들어 보고, 바로 자동차로...’라는 말로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마법은 숨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지만,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과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시운이 손재주를 부리자, 시운을 다시 보게 되는 이들이었다.
그동안 시운은 마법을 배우면서 늘 핀잔과 구박 속에 살아왔다.
그런 구박과 핀잔도 시운에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지구에 있는 그 누가 자신처럼 이런 마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들어보니 이 세계에서도 특별히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만 마법을 배우고 익히며, 실력을 올려갈 수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자신은 그저 주입받고 이해하고 연습하는 것으로 단계를 높여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이상한 형님들과 누님들에게 구박받고 핀잔 들을 때마다 시운은 웃었다.
“아니, 그야 형님들이나 누님들은 한 세대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천재들이었잖아요. 그러니 제가 못 따라가는 게 당연한 거죠. 하. 하. 하.”
“에잉... 그래도 이 정도는...”
역시 머리가 좋은 존재들이어서인지, 시운이 개발새발로 그리고 설명한 설계도를 보고도 공작기계들을 잘만 이해하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역시 직접 만드는 손재주는 결코 시운을 흉내 내지 못했다.
시운이 그 방면에 뛰어나서가 아니라, 늘 머리로만 이해하던 이들이 언제 직접 제작에 매달려 봤겠는가.
할 수 없이 근처에 산다는 기술자를 몇 명 초대(?)해 왔다.
땅딸보에 온몸이 털보여서 난쟁이 노인인 줄 알았다.
들어본 바로는 손기술에는 이 세계에서 견줄만한 존재가 없다고 했다.
종족은 드워프라고.
처음 잡혀 왔을 때는 두려움 속에서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나 시운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소개와 시운이 그리면서 설명해 준 공작 기계에 대한 설명에 바로 미친듯한 열정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그때부터는 신 나게 공작 기계, 밀링 머신 등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시운이 그 일에 빠지자, 다른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리치들도 처음에는 불만을 드러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신기한 기계들이 하나씩 만들어지고, 그 기계들이 하는 일을 보자,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운은 그 속에서 신이 났다.
자신이 언제 이렇게 관심을 받아 보았던가.
그렇게 17년이 지났다.
그동안 시운은 심장에 마나 고리 4개를 완성했다.
그 이론과 실기도 완성했다.
지식과 마나를 때려 박아 주고도 그 정도 성취밖에 이루지 못한 시운을 모든 리치뿐만 아니라, 기사들조차 구박하고 핀잔을 날려주었다.
그래도 시운은 늘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대했다.
진짜 천재들이어서인지, 아니면 사람 사이의 정에 굶주렸는지 알 수는 없었다.
시운은 이들의 구박과 핀잔 속에서도 순수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유일하다는 데서 오는 온전한 관심까지.
가끔은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그럴 때마다 시운은 섬뜩 놀라기도 했다.
시운은 틈날 때마다 웃었지만, 속으로는 계속 다짐하고 다짐했다.
‘돌아갈 거야. 꼭 돌아갈 거야.’
그동안 완성한 작품들도 무척 많았다.
어려운 것들은 거의 마법진으로 대체했다.
그게 이들에게 더욱 쉬웠다.
시운으로서도 원리만 알지, 제대로 작동하는 그 기능은 몰랐기에 이들의 마법진을 배우려고 더욱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어려운 마법진 보다는 오히려 적은 마나, 낮은 능력의 마법으로 높은 효율을 내도록 특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각종 공작 기계,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소형 비행기까지.
이제 이 동굴에는 많은 물건이 쉬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다.
땅에서는 자전거부터 자동차, 장갑차에 전차까지.
하늘에서는 각양각색의 비행기들이.
물이 없어서 배를 만들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잠도 자지 않는 이들이어서 계속 만들고 타고 놀아댔다.
마나로 움직이는 것들은 기계 자체의 마법진에 만들어 둔 마나석과 마나 집약진의 마나를 활용했다.
그러기에도 마나가 모자라면, 자신들의 마나를 주입하며 가지고 놀아댔다.
각자의 개성이 강한 건지, 남이 만든 것은 꼭 자기 생각대로 변형해서 만들어댔다.
그 넓은 돔구장이 수많은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로 하늘에는 비행기로 꽉 차게 되었다.
서로 부딪히고 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그것도 자주.
그럴 때마다 마법 전투가 벌어졌고, 오러라고 스타워즈라는 영화에서 봤던 칼 위에 형광등을 씌우고 싸우는 기사도 종종 나타났다.
할 수 없이 시운이 교통법규를 만들어서 제시했다.
법규를 어기면 하루 동안 사용 정지라는 벌칙도 정했다.
거기에 주차는 각자의 아공간에 하도록 정했다.
아공간이 없는 기사들에게는 마법사들이 기사의 오러로 연동할 수 있는 간이 아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동안 서로 무시하던 리치와 기사들도 이제는 편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시운이 있었다.
시운으로서는 자신이 그만큼 중요한 존재로 여김을 받게 되어 더욱 행복해지기도 했다.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드워프가 주변에서 날뛰는 오크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새롭고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시운은 퍼뜩 생각했다.
이들의 무기에는 총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자신이 군 생활할 때 M16A1을 눈감고도 분해하고 조립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총, 특히 M16A1의 부품을 만들고 조립까지 마칠 수 있었다.
뿌듯했다.
하지만 화약과 총탄 꽁지에 들어가는 발화제가 문제였다.
화학은 젬병인 시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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