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돌아가야지.
5. 돌아가야지.
그 덕분에 크라시리우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딱 잘라져 버린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목 밖을 둘러싸고 있던 통짜 미스릴 목둘레 덕분에 목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울러 목에서 튈 피도 별로 많이 튀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폭발의 충격에 통짜 미스릴 목둘레 판도 여기저기 찢어져 버렸다.
특히 시운이 날고 있는 부분의 판이 찢어지면서 그곳으로 엄청난 피가 시운을 덮쳐 버렸다.
거기에 미스릴 판의 조각 일부가 시운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그 위에 용의 피가 시운을 덮어 버린 것이다.
시운은 폭발의 여파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그 충격으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런 시운에게 용의 피가 고스란히 덮쳤으니, 입으로는 용의 피를 벌컥 들이마시게 되었다.
또한, 시운의 가슴에 난 구멍으로도 용의 피가 한 움큼이나 쏟아져 들어가 버렸다.
시운이 입고 있는 옷도 흠뻑 젖었고, 시운의 온몸도 용의 피로 범벅이 되었다.
시운은 그 충격에 ‘죽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용의 피는 영약 중의 영약이었다.
입으로 마신 피와 가슴으로 들이친 피로 시운의 몸은 마나가 차고 넘치게 되면서 금세 아물어버렸다.
고통은 좀 남아있었지만, 얼른 정신을 수습한 시운이 크라시리우스의 상태를 확인했다.
찰라의 시간이었지만, 정말 길게 느껴진 시간이 흐르면서 크라시리우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폭발의 여파로 멀찍이 날려갔던 리치들과 바닥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렸던 기사들이 크라시리우스에게로 모여들었다.
기사들 여럿이서 크라시리우스의 그 큰 머리를 들어보았다.
그러자 목둘레 판으로부터 그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용의 피가 웅덩이를 이룰 정도로 쏟아져 내렸다.
시운은 그 피가 너무도 아까웠다.
그래서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소리부터 질렀다.
“피부터 챙겨요!”
“아! 피!”
리치들이 서둘러 동결마법을 사용하면서 바닥에 흐른 피들을 굳혔다.
아울러 또 다른 리치들은 머리 부분을 얼려버렸고, 또 어떤 리치들은 몸통 부분을 얼려버렸다.
그때 크라시리우스의 죽음 때문인지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서는 흙과 돌들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시운은 마음이 급해졌다.
“형님들! 일단 천장을 막아요! 케토 형님 조는 각 방마다 다니면서 챙길 건 모두 챙겨요!”
“아! 그, 그래!”
시운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아공간을 열고 크라시리우스의 사체와 머리, 그리고 웅덩이 채로 얼어버린 그의 피를 챙겨 넣었다.
이어서 퍼뜩 생각난 대로 소리쳤다.
“케로 형님은 용의 작업실에 가서 몽땅 챙겨 오세요!”
“어, 어. 그래!”
“다른 형님들과 누님들은 자기가 연구하던 걸 몽땅 챙기세요!”
“아, 알았어!”
리치들은 순간적으로 넋을 놓고 있었다.
비록 간절히 바라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번에 성공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실패하더라도 자신들은 소멸되는 것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생각이었다.
다만 남겨질 시운이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거기에다 자신들은 분명 크라시리우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운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크라시리우스가 죽는 순간, 혹은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도 소멸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성공한 것을 보고도 그저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시운의 큰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덕분에 일단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얼른 시운의 말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다시 시운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제 천장은 거의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시운은 모인 모두를 둘러보았다.
“형님, 누님들. 일단 이 동굴이 무너지고 있으니까, 법사 형님들과 누님들이 기사 형님들과 드워프들을 챙겨서 이 산 바로 동쪽에 있는 산꼭대기로 옮겨 가서 다시 만납시다.”
“아! 그래. 그래야겠네. 자! 다들 움직이세!”
모두가 근처에 있는 기사들과 드워프들을 챙겨 사라질 때까지 시운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리치들이 사라졌지만, 아직 방어막 마법을 해제하지 않았는지, 천장에서 쏟아지는 흙더미와 돌멩이들이 바닥에 서 있는 시운을 덮치지는 않았다.
시운이 정신없이 소리쳐서 리치들을 움직이게 했지만, 정작 시운으로서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운은 저쪽 세상에 살 때, 수많은 생물을 죽이면서 살아왔었다.
그 수는 아예 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죽여왔었다.
그렇게 많은 수의 생물을 죽이며 살아왔어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시운이 죽였던 그 수많은 생물은 모두가 해충들이었다, 파리나 모기와 같은.
그런데 시운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눈 바로 앞에서, 그것도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대한 생명체를 죽여버렸다.
비록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준비하고 서둘러 실행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그 피를 들이마시고, 그 피로 온몸을 적시게 되자, 비로소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온몸이 떨려오고 있다.
이제는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것처럼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게 되었다.
시운이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놓고 있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사라졌던 리치들 중에서 그래도 늘 시운에게 부드러웠던, 친누님처럼 느껴졌던 시모나가 다시 시운 곁에 나타났다.
모두가 모였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정작 가장 중요한 시운이 나타나지 않기에 시모나가 대표로 돌아와 본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동굴에 방어막 마법을 썼던 리치가 아직 마법을 해제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운 근처에 다시 나타난 시모나가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놓고 있는 시운을 발견했다.
시모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런 시운을 붙잡고 바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방어막 마법도 해제되고 그동안 동굴이 유지되던 상태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비록 산이 크긴 했지만, 워낙 큰 동굴이 중간에서 무너져 내리자, 그 큰 산도 삼할 정도가 주저앉아버렸다.
그 여파로 옆 산 정상에 있던 존재들에게도 먼지와 눈발이 휘날려댔다.
시모나에게 붙잡혀 나타난 시운을 돌아본 모두는 그저 침묵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시간이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케토토가 입을 열었다.
“자, 자. 일단 시운은 내버려두고, 차원 역소환 마법진이나 만들자고.”
“그래야겠군요.”
그때부터 그동안 연구했던 역소환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워낙 마법진이 컸지만, 산정상이 동굴보다 넓어서 충분히 마법진을 그릴 수 있었다.
그동안 모아뒀던 마나석도 설치하고,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은 기사들이 서서 오러를 뿌리기로 했다.
리치들은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을 준비를 마쳤다.
거의 12시간여를 들여 완성했다.
그때까지 시운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케로마가 그런 시운에게 다가갔다.
“이봐 시운. 이만 정신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시운의 눈빛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시운이 케로마를 돌아보았다.
“아... 내가 너무 정신줄을 놓고 있었군요. 미안합니다.”
“괜찮네. 모두가 자네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으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용이 죽을 때, 형님들과 누님들도 소멸될 줄 알았습니다. 책에서 보니 특별한 작용을 하지 않고 용이 죽으면, 가디언들도 소멸한다고 하던데...”
시운은 이들의 소멸, 즉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말끝을 흐리게 되었다.
그런 시운을 보며 케로마가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일세. 그 덕분에 이렇게 빨리 마법진을 완성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서 사령술 전문 마법사에게 확인해 봤지.”
“아! 잘 하셨네요. 뭐든 모르는 게 있으면 확인을 해봐야 직성이 풀리잖아요.”
“그렇지. 그게 마법사지.”
고개를 끄덕이며 시운이 눈을 반짝였다.
시운도 이제 어엿한 마법사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꼭 알아보려는 학구열이라는 것도 생겼다.
그런 시운에게 케로마가 말을 이었다.
“확인해 보니, 우리의 영혼이 자네와 이어져 있더군.”
“네에? 아니, 내가 뭘 했다고 형님들하고 이어져요?”
시운이 놀라서 케로마와 사령술파 리치를 돌아보았다.
시운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시운 근처로 다가온 사령술파 흑마법사 출신 리치, 바그리드였다.
“영혼으로 묶인 경우 그것이 이어지려면, 주로 피가 매개체가 된다네. 아마 주인, 아니지 이제. 크라시리우스가 죽을 때 자네가 옆에 있다가 그 피를 뒤집어썼을 거야. 피를 뒤집어쓴 것만으로는 그런 현상이 생길 수가 없으니, 또 한가지 생각은 자네가 다쳐서 피를 흘릴 때, 용의 피가 자네 몸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하네. 거기에 대한 확신은 지금 자네 몸에는 그렇게 흠뻑 뒤집어썼던 용의 피가 남김없이 자네 몸속으로 흡수된 것을 보면 되지. 자네 몸이 용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걸세.”
“예에!? 내, 내 몸이 용으로 변해간다고요? 그, 그럼 이제부터 내 몸에도 용처럼 비늘이 생기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시운의 말에 모든 리치와 기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마법진을 완성하고도 시운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바그리드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소멸되지 않은 이유를 연구했었다.
그러다 시운의 몸과 마나 등이 변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크라시리우스에게 종속되어 있던 상태가 시운에게로 넘어간 것을 알게 되었다.
용화 되었다는 말은 용처럼 변해간다는 말이 아니라, 용처럼 마나에 최적화되어 간다는 뜻이었다.
시운도 그런 설명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시운을 보며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시운이 잠시 후에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 것이다.
둘러보니 마법진을 발동할 준비도 모두 끝나있었다.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운이 입을 열었다.
“그, 럼. 혀, 형님들과 누님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둔 것이 없는지 모두가 말이 없다.
한동안 말이 없던 이들 중에 엘프 출신이었던 시모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몸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제 돌아간다고 해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일 테니... 그저 어디 동굴에 들어가서 소멸할 날만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네.”
“...”
“...”
모두가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이제 이들에게 있어서 더는 사는 것도 지겨운 일이었다.
그 말을 듣자 시운은 더욱 시무룩해졌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시운 덕분에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나온 만여 년 동안 했던 말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했던 말이 더 많았다.
움직인 것도 마찬가지였다.
시운이 오기 전의 자신들은 그저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했었다.
그랬던 시운이 이제 떠나야 한다.
그때 시운이 갑자기 탄성을 토했다.
“아! 케로마 형님! 아까 용의 실험실에서 물건들 다 챙기셨죠?”
“...? 으응? 아. 그야 아까 챙기라고 해서 다 챙겼지. 여기다 다 꺼내 놓을까?”
케로마의 말에 시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뇨. 다 꺼낼 필요는 없고, 그중에 여기 있는 형님, 누님들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크기의 우주선 하나만 꺼내 주세요. 좀 넉넉하게 들어가려면 중간 정도 크기는 되어야 할 거예요.”
“으잉? 거기에 우리가 들어간다고?”
놀라는 주위 존재들을 둘러보며 시운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형님들이나 누님들은 아공간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그렇지. 우리가 이 모양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존재다 보니 아공간에는 들어가 지지 않더라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 시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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