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제 뭘하지?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시운은 사직처리가 되어 퇴직금도 받았다.
고용보험공단으로부터 실업급여도 받게 되었다.
아공간에 아직도 금과 보석이 많아서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소시민으로 살았던 생활 습관을 벗지 못한 시운은 금과 보석보다 통장에 떠 있는 숫자가 더 와 닿는다.
시운은 매일 공장으로 출근하면서 마나를 쌓았다.
다른 리치와 기사들은 낮에는 시운에게 마나 집적진을 양보해 주었다.
그 시간에는 주로 한글과 영어를 공부했다.
언어에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지, 케로마와 그 학파의 리치들이 가장 빨리 언어 두 가지를 완성했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기사들에게 두 가지 언어를 가르쳤다.
이어서 틈나는 대로 컴퓨터를 뒤져댔다.
10대의 컴퓨터가 모자라서 10대를 더 사들였다.
컴퓨터 설치 기사가 올 때는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투명화 마법으로 숨기도 했다.
컴퓨터 기사가 돌아가자, 케토토가 투덜거렸다.
“이거야 원.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몸이라도 얻어야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피하면서 살아가겠는가.”
그동안 그 문제로 고심했던 기사들과 리치들도 그 한 마디에 결정을 내렸다.
계속 연구해 오던 사령술파 흑마법사 조에 다른 마법사들까지 끼어들었다.
그렇게 단 3개월 만에 언어 두 가지와 영혼 교체에 대한 결정, 그리고 모두가 마나를 다시 채우는 일을 완성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으던 기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쳐댔다.
“나라 꼴이 이게 뭐야!”
특히 제국 제일 검으로, 기사 중에서도 원로로 인정받던 차우첸이 가장 화를 많이 냈다.
그에 시운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형님, 무슨 일이세요? 뭐, 화나는 일이라도 생겼어요?”
이에 대해 많은 리치와 기사들이 관심을 보였다.
주위를 둘러본 차우첸이 두 눈을 반짝이며 열변을 토했다.
“내가 살았던 제국은 주변에서 감히 견줄 나라가 없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에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 눈에 뻔히 보인다.”
시운은 자신도 가끔 분통이 터진 경우가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를 너무 낮추기만 하는 것 같아 약간의 반항을 토해냈다.
“그래도 형님,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는 잘 나가는 나라기도 합니다.”
그런 시운에게 깜빡이는 불빛을 돌아 보이며 말을 받아주는 차우첸이었다.
“시운. 외교의 기본은 주변 국가부터 내 손안에 쥐는 것이네. 그래야 나라와 국민이 평화롭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들으니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차우첸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보게나. 지금 이 나라는 마음대로 멀리 나갈 수도 없는 실정이 아닌가? 바다건 하늘이건 전부 주변 나라에 완전히 포위되어 있어. 중국은 언제든지 북한을 집어먹으려고 들고 있고, 일본은 호시탐탐 한국을 지배하려 들고 있네. 러시아도 말할 필요도 없고. 거기다 더 속 터지는 건, 도대체가 이 나라가 미국의 또 다른 주 중의 하나인가? 무슨 일이건 미국의 허락을 받는 분위기 아닌가.”
시운으로서는 식은땀이 나는 상황이 되었다.
대답을 강요하는 듯한 붉은 눈빛에 말을 더듬는 시운이다.
“그, 렇게까지는...”
주위에 있는 다른 마법사들과 기사들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모습을 본 시운이 그저 입을 닫아버렸다.
자신은 그동안 그저 잠시 답답해하기만 하고 그냥 흘려버리고 말았다.
이 형님들과 누님들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차우첸이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둘러보며 쇄기를 박았다.
“우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살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꼴을 보면서 속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차우첸의 말에 엘프 출신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특히 그동안 차우첸과 사사건건 싸우자고 덤비던 케토토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이 꼴을 보며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마나 모으는 것도 싫어지네.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모를까, 이 꼴을 보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지. 자네 처음으로 옳은 말 했네, 그려.”
“그렇지요. 그저 숨어서 세상 모른 척하면서 살 것도 아니고, 이 꼴을 보면서 편하게 살 수는 없죠.”
“그럼요. 그건 내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겠어요.”
“기사로서의 자존심도 잊지 말아 주세요.”
여성 마법사와 기사들도 적극적이었다.
시운은 뒤로 밀려나 전전긍긍했다.
그런 시운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낸 차우첸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시운.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말게. 그래도 우리가 세상 조율자라는 용의 둥지에서 만여 년을 살아온 존재들이 아닌가. 그러니 이 세상에 큰 무리를 주면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걸세.”
“헐. 헐. 헐. 시운은 그걸 또 걱정하고 있었는가? 아무렴 우리가 그렇게 철이 없겠는가? 헐. 헐. 헐.”
“허허허. 시운이라면 충분히 그런 걱정을 사서 하고도 남겠지요.”
다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지나고 조금 가라앉게 되자, 차우첸이 케토토에게 말을 걸었다.
“케토토님. 크라시리우스가 만든 비행기가 물속에서나 하늘에서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겠습니까?”
“흐음... 일단 가능할 듯하네. 그걸로 뭘 하고 싶은가?”
그동안 싸운 적이 전혀 없는 듯, 아주 부드러운 두 존재다.
차우첸이 케토토와 다른 마법사들을 둘러보며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배들, 특히 잠수함들이 수시로 이 나라의 바닷속을 드나드는 것 같은데, 우리가 나가서 싹 정리해 버리면 어떨까 합니다. 그 놈들은 아주 마족같은 놈들입니다.”
“오호! 마족같은 놈들은 또 우리가 가만둘 수 없지 않은가. 좋네, 아주 좋은 생각이야. 시간 나는 마법사들이 아예 투명화와 레이더에도 걸리지 않을 수 있는 비행 배를 만들어 보겠네. 어차피 크라시리우스가 만든 우주선들은 그런 용도로도 쓸 수 있게 잘 만들어져 있더구먼. 아예 그놈들을 다 박살 내 버리게 멋진 무기도 만들어 보세.”
케토토가 흥분해서 마구 말을 쏟아내자, 옆에서 듣던 기사들도 덩달아 환호를 쏟아냈다.
그런데 그 근처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한 마법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는 오래전에 마탑의 살림을 맡았다가 크라시리우스의 둥지로 잡혀 온 마법사였다.
그래서 크라시리우스의 둥지에서도 늘 살림 관리를 담당해 왔었다.
혼자서 힘들다고 그 이후로 가끔씩 살림꾼 마법사들이 잡혀 왔었다.
그래서 그 아래에 4명의 살림꾼 마법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도 앞으로 이 무리의 살림을 관리하기로 낙점되어 있었다.
그의 손이 들린 것을 보자 케토토가 바로 눈을 밝혀댔다.
“오! 그래, 테라니우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가?”
케토토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자,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말을 받았다.
“케토토님과 차우첸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도 속이 시원해집니다. 그런데 또 한편 정보를 살펴보니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그것도 하고 싶은 일을 편하게 하면서 살아가려면, 돈이라는 것이 무척 많이 필요하겠더군요.”
테라니우스가 거기까지 말하자, 케토토가 바로 손뼉을 쳤다.
그 덕분에 테라니우스의 말은 거기에서 끊겼다.
그래도 테라니우스는 전혀 불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거기까지 운만 띄우면, 알아서 잘 해결해 왔기 때문이었다.
케토토가 흥이 돋은 목소리를 토해냈다.
“역시! 우리 살림꾼! 그렇지. 그럼 어떻게? 그것들을 뺏어서 다른 데 팔면 되겠나?”
그러자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테라니우스가 말을 받았다.
“전에 소식을 보니까, 일본 잠수함을 아르헨티나에서 샀다는 말도 있고, 중국 잠수함은 인도네시아에서 샀다는 말도 있더군요. 근데 그건 공식적인 일이고, 우리가 팔게 되면, 무기 밀매상의 입장에서 팔아야할 테니까, 그건 좀 더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만. 여튼 일단 무조건 부수지는 마시고, 그 안에 타고 있는 인간들만 토해내고, 그 물건들은 일단 아공간에 보관해 두면 좋겠습니다. 그놈들은 값도 무척 비싸더군요.”
“아하. 그래. 그게 좋겠군. 그럼 이제부터 할 일 없는 사람들은 다시 연구를 시작해 볼까나?”
“네, 좋습니다. 안 그래도 뭔가 할 일이 필요했었는데, 신나겠군요.”
차우첸은 마법사들이 다시 저들끼리 뭉쳐서 낄낄거리기 시작하자, 기사들을 소집했다.
차우첸은 기사들과 머리를 맞댔다.
“자. 일단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라를 군사적으로라도 세계 최강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는가?”
차우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최고로만 살아왔던 존재들이어서 그런지, 누구에게 꿀리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시작했지만, 대부분 그저 주변 나라로 쳐들어가서 다 박살 내 버리자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이 세상에서 자신들을 막을 수 있는 존재들이 누가 있겠는가?
그나마 좀 머리를 쓴다는 기사는 마법사의 도움으로 투명화 마법을 걸고 쳐들어가자고 했다.
그동안 군사참모로 유명해서 붙잡혀 왔던 마법사가 조용히 말을 잘랐다.
그는 늘 기사들에게도 끼지 못하고, 마법사들에게도 끼지 못했었다.
그래도 시운을 만난 후에는 가끔 기사들의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식들을 보니 요즘 웬만한 일은 테러인지 뭔지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겠더군요. 무조건 깨부수는 건 오히려 주변 나라를 긴장시키는 일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이 나라의 전쟁, 전투, 무력 상식과 다른 나라의 무력 상식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다음에 목적과 목표,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접근해 가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흐음... 역시 우리에겐 파이톤 참모장의 머리가 꼭 필요하구먼. 허. 허. 허.”
“그렇습니다, 선배님.”
“역시...”
그때부터 컴퓨터는 두 가지 이유로 불이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이 시대 무기들, 전함, 잠수함, 전투기 등의 성능과 그 운영 원리들을 알아보는 것.
다음은 기사들이 이 시대의 전쟁, 전투, 테러, 각각의 국지전 등을 확인해 보는 것.
시운은 또 다시 버려지게 되었다.
속으로 허무한 웃음을 흘리는 시운.
그래도 형님들과 누님들이 다시 활력을 되찾은 모습이 참으로 반갑게 다가왔다.
시운이 흐뭇하게 아빠 미소를 흘리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그동안 시운은 바그리드를 중심으로 한 사령술파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영혼 교체술에 대한 연구도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의 시간이 지나는 어느 날.
테라니우스가 시운을 불렀다.
“시운. 이제 우리가 돈을 벌게 도와주게나.”
“...예? 돈이요? 어떻게 벌게요? 돈 필요하시면, 제가 나가서 금을 팔아올까요?”
시운의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그가 한숨을 내쉰다고 느낀 시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운. 우리 살림파가 공부해 보니, 돈도 그냥 생기면 세금 추적이 있더군. 이 세계는 그 세금 추적이 무척 무서운 모양이야.”
그제야 시운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운이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갈수록 세금에 대한 조사가 강해진다고 들어왔었다.
그렇게 납득한 것 같은 시운에게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돈 벌 방법을 찾다 보니, 주식이나 선물, 옵션이라는 제도가 있더군. 이게 도박보다는 훨씬 맞추기가 쉽겠더라고.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가 좀 머리가 좋은 존재들인가?”
“아! 그럼요. 이 세상 그 누가 머리 좋다고 날뛰어도, 형님들 발끝이나 따라가겠습니까?”
그래서 테라니우스의 제안으로 주식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투자 제안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시운이 가진 돈에 1인 주주로 주식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법에 대해 공부해 오던 파라피나라는 마법사가 주식회사 만드는 서류를 준비해 주었다.
그녀는 이미 웬만한 변호사 못지않게 법 이론과 그 실무를 익히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공부했는지 시운이 물으니,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우리 왕국의 모든 법안을 싹 뜯어고쳤었잖은가.”
“하. 하. 하.”
시운은 속으로 욕을 날렸다.
‘이런 천재들 같으니라고...’
테라니우스와 파라피나의 도움으로 주식회사 등록을 마쳤다.
법인 명의로 은행 통장도 만들고, 시운이 그동안 조금씩 팔아서 모아뒀던 돈 4억 원을 회사 통장에 넣었다.
주식은 몽땅 시운이 보유한 것으로 처리했다.
거기에 최고 사양의 컴퓨터 10대를 다시 사들였다.
이 컴퓨터들로는 밤낮을 쉬지 않고, 전 세계의 주식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어차피 잠도 자지 않는 이들이었으니 이들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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