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는 낚시왕 메이슨이다.
그동안 한국에 돌아온 시운은 집에서 황제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아내가 아이들 앞에서 시운에 대해 얼마나 자랑을 늘어놓는지.
처음에는 아이들도 놀라워하더니, 그게 며칠 계속되자 시큰둥해져 버렸다.
그래도 딸아이가 엄마가 들고 온 백을 보고는 기겁한 것이 재미있는 일이었다.
딸아이가 인터넷으로 그 가방을 찾아서 엄마에게 그 가격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그 가격을 보고는 손을 덜덜 떨었다.
이어서 딸은 엄마가 걸고 있는 목걸이와 팔찌 등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여주었다.
그런 깜찍한 일을 구경하며 시운은 처음으로 낄낄거리는 웃음을 보였다.
이어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얇은 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주었다.
“형님들이 선물로 준 거니까, 절대로 몸에서 떼면 안 돼.”
“히잉. 엄마는 저렇게 비싼 걸로 사주고...”
“어허! 엄마도 이 목걸이는 늘 차고 있어야 해. 그 위에 다른 목걸이를 차.”
그리고 다른 목걸이들을 꺼내서 아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당신이 우리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 끼워드리고. 이건 동생들 가족에게 끼워줘. 그리고 주민등록 등본 한 통씩 떼 오고.”
“주민등록 등본은 어디에 쓰게요?”
“전에 당신 일 그만두라고 얘기했었잖아? 우리 회사가 돈을 많이 벌었는데, 지출이 많지 않아서 세금을 많이 내야 할 것 같아. 그래서 가족 중에 월급이 적은 사람들을 우리 회사 직원으로 채용하려고.”
“어머. 그럼 우리도 그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거예요?”
“으, 응? 아, 그건 아니고. 그냥 직원으로 이름만 올리고, 월급만 받는 거야. 지금 당장 할 일은 없어. 나나 형님들만 일해도 충분해.”
시운은 뜨끔해서 잠시 말을 더듬었다.
‘출근이라니. 형님들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지라고.’
시운은 다시 한 번 못을 박듯 말했다.
“그냥 집에서 쉬기만 해도 월급을 줄 테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뭐, 알았어요. 나야 집에서 쉬면서 월급을 5백만 원이나 준다니까 좋네요.”
“이왕이면 부모님 거랑, 장인 장모님 것도 떼 와.”
“집이 멀어도 괜찮아요?”
“그거야 뭐. 일단 가져가 보면 알겠지.”
그렇게 대화를 정리하고 TV를 보았다.
그런데 옆에서 아내가 자꾸 눈치를 본다.
시운은 이런 경우 분명히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뭔데 그래? 할 말 있으면 시원하게 해.”
“아, 아니, 뭐. 별건 아닌데...”
“그래. 그 별것 아닌 걸 편하게 얘기해 보라니까?”
“저기 있잖아요? 내가 같이 일하는 언니가 있는데...”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 언니의 자식이 불치병을 앓고 있단다.
그래서 지난 십여 년 동안 돈이 무척 많이 들어갔는데, 가지고 있던 재산을 거의 다 팔았지만, 가망이 없단다.
그렇다고 죽기만을 바랄 수는 없어서,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애를 쓰고 있단다.
그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의 결론은 그 언니 네도 취업시켜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시운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단 무슨 병인지부터 자세히 알아 와 봐. 그리고 그 양반 네 부부하고 성인이 된 자식 중에서 월급이 5백만 원이 넘지 않는 사람 있으면, 주민등록 등본을 떼 오라고 해 봐. 내가 회사에 가서 한 번 물어는 볼게. 알다시피 내가 사장으로 이름만 올라가 있지,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으니까.”
“어머! 당신이 사장이었어요?”
“에엥? 내가 얘기 안 했었나?”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런 얘기를 왜 이제야 하느냐부터 당신 이름으로 사업하다가 망하면 어떻게 하느냐까지.
시운은 잠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 가족으로서는 형님들과 누님들에 대해 전혀 모르니, 당연히 그런 걱정이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정말 대단한 형님들이라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잘 다독여야 했다.
속으로는 답답했다.
확 소개해 줘 버리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참아야 하느니라.’ 만 되뇌었다.
다음날 시운은 공장으로 출근했다.
수시로 문자나 연락을 받긴 했지만, 형님들과 누님들이 어찌 지냈을지 무척 궁금했었다.
워낙 대단한 존재들이라 걱정할 일은 없었지만, 그저 뭘 하면서 지내나 궁금했던 것이다.
시운이 공장에 모습을 보이자, 모두가 한 번씩 알은 체는 해 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다들 뭔가로 무척 분주했다.
시운은 공장 안에서 일단 마나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일주일 넘게 밖에만 있었더니, 마나가 꽤 많이 줄어있었다.
마나를 다 채운 시운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동안의 변화를 확인했다.
수호 조가 모여있는 곳에서는 그들의 말을 엿듣다가 입을 떡 벌리며 놀라기도 했다.
시운이 없는 일주일 동안 일본 잠수함 한 척을 팔아넘겼다.
다음으로 중국의 어선들을 모조리 긁어서 북한의 항구에 풀어놓았다.
이제는 일본과 중국의 무기들이 한국의 영내로 들어오지 않는단다.
그래서 이제 할 일이 없어졌다고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끼어들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옆에서 엿듣기만 하는 시운이었다.
그런데 이제 들어오질 않으니,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단다.
시운으로서는 그게 뭔 소리인가 했다.
깊은 밤에 중국과 일본의 전투기 비행장으로 날아가서 비싼 것들만 훔쳐다가 팔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주변 나라의 비싼 무기들은 얼른 치워버려야 한국의 안전에 도움되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시운은 그래도 남의 나라 것을 훔치는 건 말리려고 들었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저 입만 벌린 채 듣기만 했다.
그 자리에 모인 기사나 마법사나 단 한 존재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서로가 당연한 일이라며, 아예 무기들은 씨를 말려야 한단다.
그 말에 모두가 ‘당연하지.’ 하고 있다.
고개를 내젓던 시운은 문득 생각했다.
‘안 들키면 장땡이지 않나? 근데 어떤 게 비싼 건지는 아시나?’
그런 속 물음은 다른 존재에 의해 풀렸다.
“마누스님이 준 자료에 보니까, 이것들만 다 팔아도 우리 모두가 황제처럼 살겠습니다, 그려.”
한술 더 뜨는 이도 있었다.
“그나저나 이 미국 놈들은 너무 설치는 데, 이 꼴을 그냥 두고 봐야 합니까?”
“곧 손을 봐 줘야지. 근데 문제는 그놈들 물건을 챙겨와도 사 줄 놈이 있을까도 문제야.”
“그러게요. 괜히 집어왔다가 아공간만 차지하면 그것도 문제예요.”
“차차 생각해 보자고. 여차하면 그냥 집어다가 고철로 녹여서라도 쓰지 뭐.”
‘하. 하. 하. 웃음도 안 나오네.’
‘거기다 룬 학파가 해킹으로 세계의 정보를 다 손에 쥐었나 보네.’
시운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을 이들은 몇 달 가지고 노는 정도로 완전히 꿰뚫어 버렸다.
룬 학파, 즉 해킹 전문가들이 된 그들 옆에서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전 세계 정보부서의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다 갖춰놓았다.
이곳에 앉아서 전 세계의 정보를 다 주무르고 있는 것이었다.
고개를 흔들며 다음으로 테라니우스에게 다가갔다.
“형님들, 돈 많이 버셨어요?”
“어서 오게. 그렇지 않아도 자네 덕분에 돈을 쉽게 벌 수 있었어.”
“네에? 제가 뭘 한 게 있다구요?”
“왜 없나? 자네가 파나마에 가서 유령회사도 만들고, 은행 계좌도 만들지 않았나? 거기에 벌써 7천만 불이 들어가 있는데.”
“허억! 버, 벌써 그렇게나요? 7천만 불이면 우리 돈으로 얼마죠? 환율 계산이 잘...”
“헐. 헐. 헐. 그럴 걸세. 환율이 계속 변하니. 대략 7백7십억 좀 넘는다고 보면 되네.”
“7, 백... 어유야... 뭘 해서 그렇게 벌었어요?”
“뭐긴 뭔가? 일본 잠수함 판 돈이지. 그나저나 중국 잠수함은 핵잠수함인데도 인기가 별로 없구먼.”
“그래요? 뭐 여차하면 우리가 고쳐서 쓸까요?”
“아서게. 그런 고물을 뭐에 쓰려고. 그것도 물속에서나 쓸 수 있는 걸.”
“하. 하. 하. 하긴 그렇겠네요.”
다음으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이었다.
그저 살림 면에서는 이 천재 형님들이 얼마나 재산을 불렸을까 궁금했을 뿐이다.
어차피 이 형님들과 있으면, 돈은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기에.
거기에다 시운은 지금까지 돈을 맘껏 써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돈을 쓰라고 던져줘도 쓸 줄도 모른다.
“그럼 주식이나 선물 쪽으로는 돈벌이 안 하세요?”
“왜 안 하나? 그것도 벌써 2백억이 넘었는데.”
“오우야. 형님들이야말로 마이더스의 손들입니다. 허얼.”
그렇게 잠시 놀라던 시운은 갑자기 생각난 것을 물었다.
“아참. 형님. 혹시 우리 회사 직원으로 몇 명 정도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요?”
“왜? 인원이 많은가?”
“뭐, 찾아보니 좀 많네요?”
“몇 명이건 상관없네. 한 천 명 정도까지는 괜찮을 것 같은데?”
“네에? 천 명이나요? 에이. 저는 지금 대략 스무 명 정도 생각했는데...”
“헐. 헐. 헐.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인심쓸 수 있으면 마음껏 쓰게나.”
“하. 하. 하. 역시 형님들이 있으니 너무도 즐겁고 좋습니다. 하하하.”
한참을 웃던 시운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형님. 일 안 하고 돈을 받게 하는 것보다, 뭔가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다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가 봐요. 한국도 마찬가지고. 이왕이면 우리나라에서부터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좋겠어요.”
“뭐. 그게 제일 좋긴 하겠지. 나도 생각해 볼 테니까, 자네도 한 번 생각해 보게. 아니면 아예 망해가는 회사들을 사 버릴까?”
“그것도 좋긴 하겠네요. 한 번 생각해 볼게요.”
“그러세.”
회사에 대한 부분은 그렇게 일단락했다.
다음으로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며칠 전에 딸이 이상한 광고가 있다고 보여준 화면이었다.
유투브 동영상이었는데, 그걸 본 순간 시운은 기겁했다.
시운이 깜짝 놀라는 모습에 옆에 있던 가족들도 덩달아 놀랐다.
그 상황을 모면하느라, 시운의 등에 식은땀을 한바가지는 흘렸을 것이다.
“형님, 근데 낚시왕은 뭡니까? 아주 잠수함 판다고 공개적으로 광고하셨던데.”
“아하, 그거? 뭐 별건 아니야. 그저 한국 영해에 괜히 깝죽거리고 기어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겸, 수작 부리는 놈들 있으면 그 핑계로 돈도 좀 뜯어 먹을 겸, 잠수함도 제값 받고 제대로 팔아보려고.”
“허얼. 세계에 난다긴다하는 정보부나 해커들한테 들키지는 않았어요?”
“웬걸? 덤비는 놈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네에? 그, 건 또 무슨 말씀...”
“헐. 헐. 헐. 얼마 전부터 룬 학파에서 컴퓨터 언어 연구하는 건 알고 있지?”
“그야 알죠. 저도 좀 끼어보려고 했다가 구박만 잔뜩 받고 쫓겨났잖아요.”
시운이 그때 생각이 났는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보며 테라니우스는 ‘헐. 헐. 헐.’ 웃었다.
“너무 그리 자책하지 말게나. 사실 그 학파 마법사들은 언어와 관련된 부분에서 그 어떤 마법사들도 따라가지 못하니까.”
“아. 그, 런 겁니까? 난 하도 구박을 많이 하셔서 나만 그렇게 둔한가 했는데...”
그렇게 안심하려는 시운에게 사실 확인을 빼먹지 않는 테라니우스.
“사실 자네가 매우 둔하긴 하지, 뭘. 헐. 헐. 헐.”
“끄응.”
그렇게 시운을 놀려주고 테라니우스가 말을 이었다.
“룬 학파에서는 이 세상에서 컴퓨터 언어가 룬 언어처럼 마법같은 힘을 가진다고 생각했다는군. 그래서 컴퓨터 관련 언어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에 통용되는 모든 컴퓨터 언어를 통달해 내더구먼. 그래서 지금 전 세계의 정보와 관련된 컴퓨터는 이 안에서 다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게 되었네. 거기에 아예 우리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다 지우거나 다른 것으로 돌리기까지 했다는군. 난 사실 들어도 잘 모르겠는데, 그쪽에서 전해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주식하고 선물, 옵션을 거래하니까 수익도 훨씬 높아졌고. 그런 실정일세.”
“허어. 그 정도까지나...”
놀라서 한동안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시운이었다.
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기 모인 형님들하고 누님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우습긴 하겠네요.”
“헐. 헐. 헐. 그딴 걸 해서 뭐하게? 혹시 자네 황제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말만 하게. 헐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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