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북한도 우리나라 땅이다.
시운은 생각했다.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었는지.
생각해 보니, 참으로 나약하게만 살아왔었다.
늘 주눅이 들어 있었고, 늘 조용했으며, 늘 피하고만 살아왔었다.
자신의 주장을 다른 이들에게 내보인 적도 거의 없었다.
누군가에게 해코지해 본 적은 더욱 없었다.
시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이게 흔히 말하는 노예근성인가? 이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 아니 이렇게 살 필요가 없다. 아니 아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형님들 보면서 나도 달라져 보자.’
생각을 정리한 시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나온 시운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형님.”
“헐헐헐.”
시운이 무언가 느낀 바가 있다고 생각한 세 마법사는 그저 조용히 웃어주었다.
시운과 그 일행이 다시 공장에 들어오자, 바쁜 중에도 잠시 관심을 보내오는 기사와 마법사들이었다.
그래서 시운은 음성 증폭 마법을 사용한 채 다녀온 일을 보고했다.
시운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그저 고개를 한 번씩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자기 일에 집중했다.
그 모습에 시운은 ‘참 깔끔해.’라며 속으로 웃었다.
생체 마법 학파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의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곧이어 들려온 시모나의 음성 전송 마법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울러 모두가 두 눈을 반짝였다.
사실 이들은 처음부터 동물 실험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최종 목적이 있는데, 그쪽으로 바로 들어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시운의 생각을 읽어 이 세상의 잣대를 잘 알게 된 상황에서 저쪽 세상도 아니기에 조심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앞으로는 이런 실험체가 여럿 전해질 것이라는 말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단 날라져 온 인간들의 몸을 간이침대에 하나씩 눕혔다.
이어서 보존 마법부터 걸었다.
피를 뽑거나 세포를 떼어 내더라도 죽거나 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산 채로 피를 뽑히고, 장기의 일부도 뜯어질 것이며, 심하게는 아예 내장 중 일부를 도려내어 지기도 할 것이다.
두 눈을 뜨고 의식을 가진 채 그런 끔찍한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그래도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어떤 인간들인지도 간략하게 들었겠다, 전혀 동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날 다시 원로회의가 열렸다.
원로들은 늘 그랬듯이 돌아와 창고로 들어서는 시운의 마나상태부터 확인했다.
이번에는 시운의 마나 반응이 묵직했다.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느낀 원로들은 케로마의 호출에 두말없이 모였다.
케로마가 입을 열었다.
“시운과 함께 이 나라에서 서민들의 피눈물을 빼 마시고, 목숨마저 우습게 해하는 해충들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런 말로 시작한 케로마의 말에 모두들 침음을 삼켰다.
두 눈의 불빛을 일렁이며 살기를 피워올렸다.
다른 때였다면, 그 살기에 시운도 긴장했겠지만, 지금은 시운조차도 그 살기에 동참했다.
시운의 그런 태도 변화에 원로들은 속으로 기꺼워졌다.
자신들의 영혼이 저당 잡힌 당사자인 시운이 늘 한심해 보였다.
일견 착하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노예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시운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살기를 피우는 것은 앞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모든 원로가 기꺼워졌다.
자신들의 영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당사자가 물러터질수록 자신들의 안위도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자신들을 믿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그저 웃으며 따라 주었다.
그나마 그거라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지낼 수는 없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함께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반응이었다.
케로마가 제안한 대로 박멸 조를 새로 구성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학파별로 두세 명씩의 마법사들과 기사 중에서 수호 조의 일에 집중하던 기사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제 수호 조에서는 주변 국가에 들어가 필요할 때, 필요한 것들만 챙겨오면 되었기에 굳이 많은 기사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에 반해 이번 일에는 기사의 힘이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 여기게 되었다.
마누스가 이끄는 룬 학파가 더 바빠지게 되었다.
마누스는 오히려 반가워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물건은 컴퓨터라고 했다.
컴퓨터만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장만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박멸 조 문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제 슬쩍 일어나려는 원로들을 보던 마누스가 거대 마법진 학파의 수장인 파이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눈짓을 받은 파이톤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꺼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원로들이 다른 이가 아닌 파이톤의 말에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저희 마법진 학파에서 이 나라에 흐르는 지기를 연구해 왔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시작한 파이톤이 대한민국과 만주 등지에 이르는 대형 지도를 머리 위로 띄워 보였다.
그 지도에는 빨간 점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찍혀 있었다.
그 점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모두가 살기를 폭사시켰다.
나라 전체를 죽이려고 드는 경우가 아니면 이런 악랄하고 치졸한 수법은 쓰지 않는 일이었다.
대륙의 공적으로 몰려 씨 몰살을 당했던 흑마법사들조차 저렇게 잔혹한 짓은 벌이지 않았었다.
원로 중에 끼어있던 흑마법사들이 더 크게 분노했다.
자신들조차 금기시하는 짓이 이 땅에서 일어났었다는 것에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동안 저쪽 세상의 공적으로 몰렸던 분노를 풀 대상을 찾은 것처럼.
앞으로 이 점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가야 이 땅에 자연스럽게 지기가 활성화 될 것이라고 파이톤이 말을 맺었다.
“이 일도 시급한 일이로고.”
케토토가 먼저 말했다.
다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이구동성으로 동의했다.
모든 원로가 의기투합했다.
이 일에는 따로 조를 꾸리기보다,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존재들을 제외한 모두가 달려들어야 할 일이라고.
당장 달려나갈 것 같은 원로들을 붙잡은 것은 오히려 파이톤이었다.
“잠시만 흥분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그렇게 막은 파이톤이 시운을 흘깃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지기를 원상 복구하기 위해서는 각 지점에 있는 건물이나 땅속 깊이 박혀 있는 여러 물건을 빼내고, 그 지점을 지진으로 흔들어 땅을 다져줘야 합니다. 단순히 땅속에 무언가를 박아 넣은 경우는 그저 그 물건을 빼내고 땅을 살짝 흔들어 지기의 흐름을 다시 원활하게 돌리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건물을 세우거나 동굴 도로를 파놓은 경우에는 그 건물을 들어내고, 땅을 흔들어야 합니다. 동굴 도로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려면 사람들의 피해도 생길 수 있는데,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야 합니다.”
그의 장황한 설명을 요약하자면 쉽게 접근할 곳과 전술적으로 접근할 곳을 구분하자는 것이었다.
아울러 사람이 없는 곳은 그냥 처리하기만 하면 되었다.
사람 왕래가 잦은 곳에는 더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술적인 계획에 능력 있는 존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에 모든 원로가 동의하자, 바로 수호 조의 전략과 전술을 담당하던 참모 마법사가 불려 왔다.
그가 파이톤에 의해 방금 있었던 대화 내용을 기억 주입으로 전달받았다.
잠시 전해 받은 기억을 되짚어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모든 원로가 기대 어린 눈빛을 그에게 쏘아 보냈다.
그런 눈빛들에 살짝 주춤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일단 사람 왕래가 적은 곳에 설치된 것은 닥치는 대로 처리하고 약한 지진을 일으키는 것으로 하시지요.”
“...”
“...”
모두가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그 모습은 잡소리는 줄이고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무언의 압박임을 잘 아는 그였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과 건물이 세워진 곳은 일단 그 주변에 환영마법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모조리 쫓아냅니다.”
“...”
“...”
“삼일 정도 환상마법을 써두면, 웬만한 담력을 가진 인간들도 모두 물러갈 겁니다. 첫날부터 사흘 동안 수시로 우리가 들러서 남은 사람에게 물리력으로 겁을 주면서 쫓아내면 더 효과적일 겁니다.”
“...”
“...”
“그렇게 모두가 물러가면 그 건물을 폭삭 주저앉힙니다. 이어서 지하 깊은 곳까지 지기를 막는 모든 잔재까지 공간좌표를 만들어서 가까운 산이나 바다로 던져버립니다. 이어서 그 주변까지 일정 공간에 짧고 강력한 지진으로 지기를 흔들어줍니다. 그럼 지기가 다시 활성화될 거라고 봅니다. 모든 작업을 마치면, 그곳에 흐르는 미약한 지기를 이용해서 그 주변에 영구적으로 환상마법을 키워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군.”
“좋네.”
“좋아.”
그때부터는 지역분배를 시작했다.
이동은 수호 조에서 사용하던 우주선과 새로이 개조한 우주선까지 이용하기로 했다.
시운도 그 일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당당해지자 다짐했고, 직접 앞장서자 결심도 했다.
형님들이 하는 일을 뒤에서 보고 편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첫 번째 실행으로 지기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시운 혼자 보내기가 조심스러웠는지, 두 마법사가 동행하기로 했다.
두 마법사를 보고 원로들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진정한 가디언의 임무를 하는 거구먼. 헐헐헐.”
“헐헐헐.”
모두가 웃었다.
시운은 주로 낮에 가까운 곳 위주로,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다니기로 했다.
투명화 마법과 모든 파장을 흡수하는 마법진이 그려진 소형 우주선을 타고 돌아다니게 되었다.
수호 조가 타고 다니는 우주선을 보았지만, 직접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타고 보니 커다란 버스를 타는 것 같았다.
크기는 시운이 타고 다니는 11인승 승합차만 한데도 그 안은 뜻밖에 넓었다.
사람이 앉는 의자 뒤쪽 칸막이 너머에는 기동실이 있었다.
그곳에는 회전 마법이 운영되는 원판과 그 원판에 연결된 축을 통해 다섯 개의 발전기, 그 전기를 마나로 바꾸는 마법진까지.
그 우주선을 타고 날아다니며 시운은 감탄했다.
“이거 비행기보다 훨씬 편한데요? 웬만하면 앞으로 이걸 타고 다니고 싶네요.”
“헐헐헐.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 어떤 마법 양탄자보다 좋은 것 같구먼.”
사실 우주선에 설치된 의자는 모두 택배로 주문했다.
우등 버스의 큰 의자 중에서도 최고급품으로 골라서.
여윳돈까지 주며 특수제작한 의자여서 그 편안함은 일등석 비행기 좌석 못지않았다.
형님들 덕분에 시운은 엉덩이가 호강한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시운은 주로 남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땅을 파내고, 땅속 깊이 묻힌 것들을 제거했다.
아울러 주위에 인기척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강도 3 ~ 4 정도의 지진을 일으켰다.
그러면 그 구덩이 주변의 땅이 흔들리며 구덩이가 메워졌다.
메워진 구덩이 위에 다시 강력한 중력마법으로 눌러줬다.
이렇게 해 둬야 흙을 통해 지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했다.
시운이 낮 시간에 주로 돌아다니며 남한 지역을 뒤집고 다닐 때, 형님들과 누님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주와 북한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주로 환영 마법진을 설치했고,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 놀래주기도 했다.
그렇게 만주부터 북한과 남한에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지진이 일어났다.
약한 곳에서는 피해가 없었지만, 강력한 곳에서는 주변 지형이 바뀐 곳도 있었다.
중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의 뉴스 시간에도 난리가 벌어졌다.
한두 곳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일주일 가까이 약한 지진인 강도 3부터 초강력 지진인 강도 9까지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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