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홍익백성
부분 치료기에 대해서는 테라니우스 조에서 맡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은 ‘밝은 세상’에 소속된 변호사들과 회계사, 세무사가 계속 대부업체를 돌며 점검이나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 크라시 투자회사에서 출자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설립하게 할까도 했다.
하지만 시운을 보호하기 위해 크라시 투자회사는 최대한 숨기는 것이 낫겠다는 제안이었다.
때문에 '밝은 세상' 대부업체에서 출자하고 그 자회사 격으로 만들기로 했다.
또 ‘부분 치료기’ 생산과 특허, 사용 승인 등을 맡기면 될 것이다.
그들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각자의 가정에서 출퇴근한다는 점이었다.
비록 출장은 잦아졌지만, 그래도 술에 취한 채 들어오거나, 다른 여성의 화장품 냄새를 배고 들어오지 않는 점에서 가족들의 환영을 받는 중이었다.
일본 문제에 대해 화제를 돌리는 마누스였다.
“일본 문제는 케로마님과 저, 그리고 테라니우스 군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당연한 일을. 그렇게 하시게. 뭐 큰 일도 아니고.”
“그럼, 그럼. 그런 나라 하나 요리하는 건 어린 애 코 비틀기보다 쉽지 않은가.”
“편한 대로 하시게.”
원로들은 앞다투어 찬성했다.
사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주는 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좋은 일이었다.
일본이 전쟁 물자나 미사일을 날려주기만 하면, 1시간도 되지 않아 일본 열도를 뒤흔들어 줄 수 있었기에.
그럼 그다음부터는 지금처럼 쓸데없이 세계 눈치를 본다든지, 대한민국의 입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인데.
지금도 작은 움직임 하나라도 놓칠까 정밀 감시를 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원로들은 또 붙잡힐까 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남은 이는 시운과 케로마, 마누스, 테라니우스.
케로마가 마누스를 돌아보았다.
“그래. 별 다른 변화가 있는가?”
케로마는 마누스가 잡자, 특별한 일이 생긴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도 다른 원로들 못지않게 연구하고 싶은 것이 차고 넘쳤다.
그런 케로마의 말에 마누스가 웃는 눈빛을 보냈다.
“다른 게 아니고, 일본 중앙은행 지하 대금고에 잠겨 있는 금괴하고 국채들, 외화들 때문입니다. 아, 물론 일본 왕궁과 이곳저곳 금고에 잠겨 있는 문화재들도 있고요.”
“으응? 그게 왜?”
케로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에 대한 감시야 이미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로 빼돌린다고 해도, 그 빼돌리는 것을 중간에 뺏어오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런 케로마에게 마누스가 대답했다.
“이놈들이 그것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하는데 말이죠. 도저히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더군요.”
“그럴 만도 하지. 그 많은 것들을 옮기려면, 사람도 장비도 시간도... 어휴... 과학으로는 너무 불편한 게 많아.”
“헐헐헐. 그렇지요. 그래서 저희가 좀 도와주면 어떨까 하고요.”
“으잉? 어떻게 말인가?”
조용히 듣고 있던 시운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미 얘기가 오갔던지 테라니우스는 그저 두 눈만 반짝이고 있다.
“컬컬컬. 이걸 어디에 숨길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뭐겠습니까?”
“아하! 할할할. 그거 탁월한 생각일세. 할할할할.”
“...?”
케로마는 이미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소시민 시운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시운을 돌아본 마누스가 조용하게 말했다.
“숨길 물건을 없애주면, 고민거리가 사라지지 않겠는가?”
“아하!”
그제야 시운도 이해했다, 완전히.
하지만 금새 안타까움이 그 얼굴에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케로마가 중후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시운. 적이 되는 순간 결단코 동정해서는 안 되네. 적에게 동정심을 갖는 순간, 나와 내 편은 지옥으로 떨어질 수가 있음이야.”
“아. 그, 렇지요. 넵. 알겠습니다. 덤비는 놈은 확실하게 죽여라.”
“그렇지. 죽은 자는 말도 없지만, 더는 나와 내 가족을 괴롭히지도 못하네. 꼭 명심하시게.”
“넵.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운에게 확답을 받으며, 시운의 마음을 강하게 했다고 생각한 케로마가 환한 눈빛을 보내 주었다.
시운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자신의 결단으로 이 기사들과 마법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는지.
거기에 자신이 이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지.
물론 아직 현실감은 부족하지만.
그렇게 시운도 동의하자, 마누스와 테라니우스는 느긋하게 웃어넘겼다.
잠시 후 테라니우스가 말했다.
“이게 금괴하고 국채, 외화를 처분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려.”
그 말에 마누스가 대답했다.
“요즘도 미국이 금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세계 기축 통화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고 있네. 그걸 극복해 보려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세계 금 시장에 금만 보이면 싹쓸이해 가고 있고. 금괴는 그 두 나라에 경매에 부쳐서 팔면 좋다고 할 걸세. 아니면 미국도 끼워 넣으면 더 좋겠고.”
“헐헐헐. 역시 마누스님은 전 세계를 한눈에 내려보십니다, 그려.”
“역시 대단하네, 그려.”
“형님, 대단하십니다. 하하하.”
다시 잠시 더 칭찬이 이어지고, 테라니우스가 말을 이었다.
“국채 문제는 대통령하고 상의해 봐야겠지요? 아무래도 그걸 쥐어 주면 국제적으로 더 큰 힘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건 뭐 그렇게 하시게. 국채 팔아서 돈으로 바꿔봐야 정치적인 이익보다 크지는 않을 듯하니.”
“그도 그렇지. 돈도 힘을 써야 가치가 있는 거지, 힘도 없는 돈은 그저 숫자와 다를 바 없지 않던가.”
“네, 그렇습니다.”
시운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돈이 왜 힘이 되는지, 돈이 많아도 힘을 쓰지 못하는 건 뭔지, 돈이 많으면 좋기만 하지, 왜 단순한 숫자와 같은지.
여전히 소시민이기만 한 시운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뭐, 그까짓 국채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저 형님들이 알아서 잘 사용하시려니 하고 넘겼다.
다음으로 마누스가 또 물었다.
“일본을 털어먹는 최종 범위를 어디까지 하면 좋겠습니까?”
“가장 좋은 건 우리나라의 식민지를 만드는 건데...”
“크흠. 그걸 이 나라 정치가들이 해낼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작은 공국 하나 집어삼켰다가 오히려 먹혀버린 왕국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내가 보기에도 이 나라는 정치와 행정이 너무 낙후되었어. 왜 이렇게 발전을 못 했지?”
“친일파 기득권층 박멸을 못 한 게 가장 큰 원인이더군요. 프랑스는 친독파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해서 깔끔하게 시작했던데 말이지요.”
“크흠. 뭐,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긴 하네. 크헐헐.”
“헐헐헐. 그렇기도 합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으니, 뼈가 삭을 시간도 없습니다, 그려. 헐헐헐”
“하하하. 이렇게 바쁘셔서 형님들 새 몸은 언제 갈아입으실지 걱정입니다.”
시운이 뜬금없이 새 몸 얘기를 꺼내자 세 마법사는 움찔 떨었다.
잠시 후 케로마가 말했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이 세상, 특히 이 나라의 지킴이로 우리가 나서게 되면서, 이런 모습으로 그냥 쭉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듯해. 우리로서는 이 모습에 이미 적응해 있기도 하고. 요즘 새 몸 입은 아이들이 적응에 힘들어하는 것 보면서 느끼는 것도 많고.”
“아아.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형님들처럼 그렇게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몸이 참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잦거든요. 소털같이 많은 시간에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헐헐헐. 그러세.”
이번에는 케로마가 마누스에게 물었다.
“그럼 일본 정부로부터는 뭘로 배상을 받아낼 것인가?”
“아, 네. 그건 아무래도 섬으로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은 가진 섬이 많으니까요. 예를 들면, 대마도라든가 독도와 가장 가까운 섬들 몇 개 받으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도 못할 것 같고요. 대신 배상금 지급은 우리가 금괴 판 돈으로 대신 지급하는 걸로 하고 말이지요.”
“뭐, 그것도 깨끗하겠구먼.”
“특히 사과는 꼭 받아내겠습니다. 앞으로 반쯤 식민지로 활용하려면, 우리 백성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필수니까요.”
“흐음. 그렇지. 무엇보다 자존감이 높아야 뭘 해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
그렇게 일본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렇게 헤어진 네 존재는 각 자의 일에 빠져들었다.
마누스가 몇 마법사를 불렀다.
“자네들이 가서 물건들 좀 챙겨오게나.”
“네.”
마누스는 아공간을 열고 준비했던 서류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모두 열세 명의 마법사들이 서류 한 장씩을 받아 읽었다.
한 존재당 여섯 곳을 방문해야 했다.
한 존재는 그 내용 중에 금괴가 760톤이 넘는 것을 보았다.
깜짝 놀라서 외쳤다.
“아니! 이 많은 금괴를 가져와서 어디다 쓰시렵니까?”
“헐헐헐. 자네도 놀랐는가? 그 정도면 크라시리우스의 둥지보다 더 많은 금이지?”
“아고. 그럼요. 비교도 안 되지요.”
“헐헐헐. 그거 가져다가 팔 걸세. 물론 대한민국에도 일부 나눠줄 거고.”
“아. 그, 렇습니까?”
“왜 아쉽나? 우리도 크라시리우스처럼 금괴 깔고 잠이나 잘까? 컬컬컬.”
“헐헐헐. 뭐, 그냥 놀란 거지요. 헐헐헐.”
그렇게 열세 명의 마법사가 우주선을 타고 출발했다.
그들이 가진 아공간 마법만 가지고는 부족해서 아공간 팔찌도 세 개씩 챙겼다.
이어서 마누스는 대통령에게 메일을 보내게 했다.
내용은 일본이 보유한 미국 국채 약 3천억 달러 치를 이번에 미리 가져올 것이라고 전하게 했다.
또한, 일본의 금괴 약 760톤 정도를 자신들이 가져올 것이라고 알리게 했다.
우선 그 금괴 중 일부를 정부가 원한다면, 정부에 제공하겠다.
남은 금괴는 미국, 러시아, 중국 중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르는 곳에 팔겠다.
그 돈으로 모든 배상금을 정부 대신 처리하겠다.
일본이 보유한 외화도 모두 가져올 예정인데, 정부에서는 이걸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가?
만약 특별한 대안이 없다면, 자신들이 국부 늘리기에 쓰겠다.
특히 미국 국채의 경우 대한민국 정부가 보유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낫겠는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번 일로 일본의 사과를 꼭 받아주겠다.
문화재도 다 챙겨올 예정인데, 그것의 처리 문제도 생각해 두도록 전했다.
그동안 지진 등의 피해로 복구 비용이 필요할 테니, 그것도 보조하겠다.
이번에 보니 복지 예산을 증액하려는데, 야당에서 딴죽을 심하게 거는 모양이더라.
지진 피해 복구 비용으로 30조, 복지 예산 증액분으로 100조를 지원하겠다.
단, 이 지원금은 지정 기탁금이기에 사용 내역에 대해 철저하게 감사할 것이다.
전전 대통령의 경우 전대 대통령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가 부채를 줄여놓았더니, 자기 사욕을 채우기 위해 국책 사업을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자원개발이라는 미명으로 해 먹은 돈이 수십조가 넘더라.
그런 일은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놈이 보이면, 일본보다 더 탈탈 털어낼 것임을 분명히 강조하라.
이번 금괴와 국채, 외화, 문화재 등을 다 챙겨오면, 일본이 배상할 능력을 잃게 된다.
정부에서는 그 배상을 섬으로 받는 것이 어떤가?
대마도와 독도와 가장 가까운 섬 모두를.
그 외 정부에서 돈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
이런 내용을 담게 했다.
그 메일을 받은 대통령은 긴급 비상 경제, 외교 각료 회의를 소집했다.
각 수석뿐만 아니라, 장관과 차관들까지 불러들였다.
장관과 차관들은 또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몰라 허둥거렸다.
서로 청와대 비서실에 전화해서 무슨 일인지 물어왔다.
하지만 비서실에서도 지금 대통령 집무실에 불려간 비서실장밖에는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모든 수석, 장관, 차관들은 서둘러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수석들이나 장관들은 그나마 가까웠으니 다행이었다.
실무자의 정점이라고 할 일부 차관들은 세종시에서 달려와야 했다.
그들을 위해서 아예 화상 회의를 겸해서 열기로 했다.
화상이 연결되고 또 모일 사람이 다 모이자, 비서실 직원이 준비한 자료를 돌렸다.
그 전에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지킴이 어르신들이 일본 길들이기를 시작하신 것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모신 것은 어르신들이 제게 보내주신 문의 사항 때문입니다. 지금 나눠드리는 자료는 절대로 대외비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정도면 다들 잘 알고 있겠습니다만, 지킴이 어르신들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살피고 계십니다. 만약 농담으로라도 오늘 있었던 내용이 밖으로 흘러나가게 된다면, 그분은 편히 살지 못하게 될 겁니다. 나 또한 그 점을 깊이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 점 명심해 주시고, 회의를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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