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홍익백성
일왕이 사과문을 발표하자, 가장 당황한 것은 오히려 중국이었다.
그동안 중국은 중화라는 미명으로 얼마나 북한과 남한에 심한 갑질을 해 왔던가.
거기에 전화금융사기라는 이름으로 국가적이고 조직적으로 한국인을 괴롭혀 왔던가.
개인 기업에서 해 먹은 경우도 많았지만, 사실 중국 정보부에서 해 먹은 경우가 더 많았다.
이 사실은 한국의 정부에서도 암암리에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동안은 서로가 쉬쉬하며 넘어갔었다.
하지만 일왕의 사과문 발표를 보자, 그동안 해 먹었던 것이 이제는 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라도 돌려줘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돌려주지?
그리고 사실 중국 정보부 중에서 전산정보과는 세계 최고가 아닌가.
최대한 민간 기업 흉내를 냈으니까, 정부에서 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한 배상 요구가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또 세밀하게 계산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거기에 구체적이기까지.
저렇게 세밀하게 조사하는 것은 중국 정보부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그걸 해 냈다.
오래된 자료라 그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만으로도 몇십 년은 걸릴 일인데.
며칠 고심해 보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여러 비서관을 불러 고민을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두 손을 든 주석은 자신이 속한 파벌의 원로들을 불렀다.
그 원로들에게 일본의 상황과 한국 지킴이라는 존재들의 능력을 설명했다.
또한, 그동안 중국이 행했던 한국과 북한에 대한 많은 일을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생각할 때, 일본 다음으로 배상을 요구할 곳은 중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아무리 숨기려고 애를 써도 결국에는 다 털린 최신형 전투기 도난 사건도 저들의 소행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중국 내에는 단 한 톨의 핵무기나 생화학 무기 등 전략, 전술 무기가 남아있지 않다.
그 모든 것을 다 훔쳐간 귀신 같은 존재들이 바로 저들이다.
원로들이라고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상상이 가는 존재들이어야 대책이라는 것을 내어놓지.
결국, 다른 파벌의 원로들과 수장들을 불러서 대책회의를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바로 다른 파벌의 원로들과 수장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석궁에서 중요한 일로 전체 회의를 하자고.
하지만 모두가 콧방귀를 끼었다.
지금 주석궁으로 들어가는 것은 제 발로 함정을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주석궁에서 그 연락을 받자, 오히려 다른 두 파벌에 속한 군부에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예 이참에 중국을 나누자고 덤빌 모양새를 취했다.
주석은 그 정보 보고에 책상을 치며 분노했다.
그러다 자신이라도 그동안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면, 자신을 믿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중국은 최소한 세 개로 쪼개질 수도 있을 것이다.
주석은 그동안 자신의 파벌이 앞으로도 계속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독재를 준비해 오고 있었다.
이제 거의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 지킴이들 때문에 물거품이 된 상태였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결단을 내린 주석은 다시 연락을 돌리라고 지시했다.
세 파벌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곳.
거의 중립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곳에서 만나자고.
경호원이든, 군대든 데리고 오고 싶은 대로 데리고 오라고.
그렇게 중국에서는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보자고 회의를 여는 가운데.
일왕궁 상공에 다다른 마법사가 일왕궁 앞마당, 정문 쪽을 향해 약한 지진 마법을 뿌렸다.
진도 5 정도나 될까?
범위도 지름 50미터 정도.
그 덕분에 정문과 그 주변 조경이 조금 흔들렸을 뿐, 티도 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는 있지도 않은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이런 마법도 자주 써야 범위나 강도를 잘 알게 되는데... 에잇. 모르겠다. 뭐 심하게 썼다고 뭐라 하진 않겠지. 클클클.”
이번에는 제대로 마나를 쏟아 부었다.
진도 9의 지진이 일왕궁 정문을 중심으로 반경 100미터 이상 펼쳐졌다.
갑작스러운 강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정문과 그 주변이 완전히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일왕궁 밖 광장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은 그 갑작스러운 강진으로 강제로 춤을 추게 되었다.
여기저기 비명이 난무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저로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에잉. 양손으로 비비면 되잖아앙. 켈켈켈.”
지진의 범위가 마구 넓어지면서 일왕궁 건물까지도 일부는 초토화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너무 신 나게 마법을, 그것도 오래간만에 재미있게 뿌려대다 보니, 조금, 아주 조금 과했나 보다.
“이크. 이제 그만 놀고 돌아가야겠구나. 에혀. 아쉬워서... 그냥 가기 섭섭한데, 좀 더... 아냐, 아냐. 이 정도만 해도 정신 차리겠지. 안 차리면 더 좋고. 켈켈켈. 다음에 다시 오면 아주 제대로 놀아주면 될 테니까. 칼칼칼칼.”
그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시 공장으로 날아가는 마법사였다.
반면에 총리관저로 날아온 마법사는 총리관저 입구부터 정문 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면서 마법을 뿌렸다.
진도 9의 강진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제대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덕분에 아름답다고 호평받았던 총리관저 정원에 일직선으로 된 거대한 고랑이 생겨 버렸다.
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던 마법사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흐음. 이걸로는 좀 밋밋하지 않나? 오래간만에 운석 소환도 좀 해 볼까나? 이왕이면 현관 앞에 떡하니 구멍을 뚫어주고? 켈켈켈.”
그리고 긴 마법 영창을 마치고 총리관저 현관 앞, 지진 마법이 시작된 지점에 맞춰서 운석을 소환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자리에 운석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살짝 빗나간 운석이 총리관저 중앙 건물을 그대로 강타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가 얼마 전에 본 영화를 흉내 내며 육두문자를 쏟아냈다.
“에이. 씨파. 더럽게 안 맞네. 돌아가면 또 선배들한테 한 소리 듣겠구먼. 다른 건 괜찮은데, 꼭 해골바가지 심어! 이 소리가 제일 듣기 싫은데. 그래도 뭐, 이왕 이렇게 된 것 저놈들 잠시 놀라게 해 주고나 갈까?”
총리는 총리실 바로 옆 회의실에서 장관들과 회의 아닌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제 사과문을 들었을 테니, 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대한 회의였다.
대부분의 장관은 한국에서 협상 실무 대표단을 구성해서 오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어차피 중국, 러시아, 북한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힘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에 우호적인 세력이 한국에서 힘을 써 주면, 더 잘 될 것으로 낙관하기도 했다.
그때 갑작스러운 강진의 충격이 전해져왔다.
지진에 대한 대비가 본능에 새겨 있던 사람들답게, 바로 회의용 탁자 아래로 몸을 구겨 넣었다.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여파가 그치지도 않았는데, 곧이어 커다란 충격과 함께 본 건물에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충격과 소리로 짐작해 보면, 커다란 뭔가가 떨어진 것이지 폭탄이 터지는 것은 아니었다.
건물 일부가 무너지고 그 충격 때문인지, 탁자 위로 천장에서 전등이나 여러 파편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탁자 아래에서 잔뜩 몸을 구기고 있던 이들이 더욱 몸을 움츠렸다.
잠시 후 지진의 후유증이 가신 것처럼 건물의 떨림이 없어졌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여전히 탁자 아래에 숨어 있는 총리와 장관들이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허억! 초, 총리님. 괜찮으십니까?”
“아아. 난 괜찮네. 밖은 어떤가? 그리고 뭔가가 떨어진 것 같은데 뭐가 떨어졌는가?”
“밖은 난리입니다. 그리고 잠시 나와 보시겠습니까?”
비서실장의 말에 탁자 밖으로 천천히 고개를 내미는 총리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장관들도 자라처럼 목을 조심스럽게 내밀기 시작했다.
목을 빼고 주변을 둘러본 총리와 장관들이 별 이상이 없는 듯하자, 탁자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게 된 상황에 비명을 토했다.
“으헤엑!”
“끼으악!”
“으에엑!”
“이, 이게 무슨 일인가?”
그들 눈에는 자신들이 있던 회의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부서져 사라져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만약 회의실에서도 총리 쪽으로 모여있지 않았다면, 대형 참사를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상에 장관들은 온몸을 떨어댔다.
그만큼 건물 한쪽이 부서지고 떨어져 나간 모습은 등골을 오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절로 떨리는 음성이 총리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운석이 떨어졌습니다, 운석이.”
“...? 뭐? 운석?”
“네, 그렇습니다.”
비서실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만약 총리가 회의실에 있지 않았다면, 지금 운석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아야’ 소리도 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대신 총리 부속실 직원들만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하는 존재가 형광등 켜지듯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검회색 로브에 두 눈만 시뻘건 빛을 발하는 존재였다.
분명 한국의 지킴이로 알려진 그런 존재였다.
그 존재를 본 모두가 입을 떡벌렸다.
“헉!”
“헛!”
“흐억!”
그 존재는 총리와 장관들에게 한 번씩 두 눈을 맞추었다.
그 존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절로 눈길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런 그들을 향해 그 존재는 뼈가 갈리는 듯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그따위를 사과문이랍시고 떠벌렸어! 그게 무슨 사과문이야! 우리의 염장을 찔러서 화병으로 죽길 바란 거였어! 한 번 다들 죽어 볼 테냐! 아예 이번 기회에 이 섬들을 모조리 바닷속으로 집어처넣어 줘야 정신을 차리겠어!”
“사, 살려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우리는 말렸는데, 저기 총리가 우겨서 그렇게 한 겁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누군가의 고자질에 모두의 시선이 총리에게로 쏠렸다.
총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방금 말한 이에게 눈길을 돌렸다가, 다른 이들의 눈길을 받고는 절로 그 이상한 존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더욱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들었을 때보다 더 빨리 눈길을 아래로 던졌다.
그의 두 눈빛은 꿈에 볼까 두려울 정도로 불길한 붉은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래쪽이 뜨뜻해져 오기 시작했다.
그 느낌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온몸을 벌벌 떨어대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애원하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총리가 온몸을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살려달라고 빌어댔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는 더욱 음산한 목소리로 그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이렇게 화가 나게 해 놓고 살려달라는 소리가 잘도 나오는구나! 살고 싶으면 살 수 있을 말을 했었어야지! 인제 와서 살려달라고 빌어! 이 무슨 파렴치한 헛소리야!”
마법사의 큰소리에 장관들조차 온몸을 벌벌 떨며 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