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홍익백성
그때 회의실 문에서 다급한 노크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문이 열리며 여성 비서가 들어왔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바로 마법사와 눈이 마주쳤다.
얼마나 놀랐는지, 바로 비명인지 딸꾹질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허이꾸야! 끼우꾹. 끼우꾹. 끼우꾹.”
이어서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철퍼덕 주저앉아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계속 딸꾹질만 심하게 할 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잠시 후에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런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있지도 않은 혀를 끌끌 찬 마법사가 그녀를 향해 왼손 검지 뼈다귀를 내밀었다.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려고 일부러 연한 연둣빛 마법도 더했다.
그녀에게 그 상태로 심신 안정과 치료 효과를 더하는 마법을 쏘았다.
꼭 그 뼈다귀 손가락 끝에서 연둣빛의 레이저가 발사되는 듯한 신기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 빛이 그녀의 가슴 중앙에 닿자, 곧이어 몸 전체를 연둣빛으로 감싸버렸다.
무슨 큰일을 당할 줄 알고 눈마저 질끈 감아버린 그녀와 그 모습을 놀란 눈에 입을 쩍 벌린 채 바라보는 모두였다.
그러나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눈을 질끈 감았던 그녀가 살포시 눈을 떠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마법사가 끌끌끌 웃으며 말을 쏟아냈다.
“너무 놀라서 숨마저 쉬지를 못하더구나. 어린아이가 죽는 꼴을 보려고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어서, 내 특별히 너를 살렸다. 죽을 놈들은 여기 이놈들과 일왕 가족들이지 너처럼 힘없는 어린아이는 아니니라. 내가 네 몸에 힘도 넣어주었으니, 이제는 편하게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어나 보아라. 옳지. 그래, 무슨 일이기에 그리 급하게 문을 열었느냐?”
“...? 아! 고, 고맙습니다. 지, 금 천황 폐하께서 총리님과 장관님들을 급하게 찾으십니다.”
그 대답에 마법사는 다시 한 번 끌끌끌 웃었다.
그러다 웃음을 멈추고는 두 눈빛을 섬뜩하게 바꾸며 일갈했다.
“굳이 찾아갈 필요 없다! 이제 일본에서는 왕가고 뭐고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아울러 네놈들과 그 가족들은 구족을 멸하게 될 것이다!”
“으허헉!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뭐, 뭐든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모두가 살려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흐뭇해진 마법사였으나, 겉으로는 더욱 살벌한 기운을 풀풀 풍기며 그들에게 마나로 겁박했다.
그들은 무언가에 짓눌린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갈수록 숨조차 쉬기 힘들어져 갔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총리와 장관들만 골라서 심신쇠약 저주 마법과 온몸에 종기가 덕지덕지 일어나는 저주 마법도 걸어버렸다.
아마도 이제부터 온몸이 시뻘건 반점으로 가득 찰 것이다.
거기에 갈수록 기력이 떨어진다고 느낄 것이다.
온몸을 계속 긁어도 갈수록 가렵고 따가울 것이다.
그렇게 해 놓고 마법사가 마지막 일갈을 던졌다.
“마지막 기회를 줄 것이다! 이제부터 네놈들은 온몸이 썩어들어갈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내 친히 또렷하게 지켜볼 것이다! 일왕이건 네놈들이건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그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린 마법사였다.
그가 있는 동안에는 두려움 때문에 잘 몰랐다가, 그가 떠나자 온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우선 얼굴이 가려워 얼굴을 긁으니 바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이, 이게 뭐야! 얼굴에 뭐가 이렇게...”
“으윽! 저도 뭔가가 잔뜩 난 것 같습니다. 온몸이 다 가렵고 따갑고...”
모두가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주저앉아 있다가 마법사의 말에 일어서 있던 여비서는 슬금슬금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온통 붉은 반점들이 가득 돋아나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전염병을 옮게 될까 두려워졌다.
안에 남은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은 온몸을 긁어대며 저절로 튀어나오는 비명을 쏟아냈다.
한참을 긁으면서 비명을 쏟아내던 그들을 대표해서 총리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구급대 불러! 어서! 으아악!”
두 마법사가 돌아오자, 공장에서 그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잘했다고 환호를 보내 주었다.
운석 소환 마법을 삑사리 내어 혼이 날 줄 알았던 마법사도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칼칼칼 거리며 함께 웃었다.
특히 총리와 장관들을 혼내준 마법사는 극찬을 받았다.
그 옆에서 일왕궁을 방문했던 마법사는 입술이 있었으면 입술을 삐죽였을 정도로 칭찬의 차이가 컸다.
그런 마법사를 향해 그가 속한 학파장이 한소리 뱉었다.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이네. 혹시 그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클클클. 죄송할 건 없고, 앞으로는 좀 더 마음을 다잡으시게.”
“네, 학파장님.”
“그래도 수고했네. 그 정도만 했어도 놀란 일왕이 총리를 부르고 난리가 아니었어. 클클클.”
잠시 대화가 줄어들자 시운이 테라니우스에게 물었다.
“형님, 근데 일본 기업의 주식들은 왜 다 긁어모으신 거예요?”
“마누스님을 통해서 알아보니까, 세계에서 제품의 성능이 가장 좋은 나라는 독일이라는구먼. 하지만 내구성이 뛰어난 제품은 일본제품이라고 하고. 자동차만 봐도 성능은 독일 차가 가장 좋은데, 잔고장 없이 오래 쓰는 차는 일본 차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차를 좋아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런 말도 있다고 하더군.”
“에? 어떤 말이요?”
“결혼할 때 일본 차는 사지 마라.”
“에? 그건 또 무슨 이유예요?”
“헐헐헐. 고장이 안 나서 차를 바꿀 핑계가 없다나 뭐라나. 클클클.”
“허얼. 그 정도로 잔고장이 안 나는 모양이네요?”
“뭐, 우스갯소리지만, 일리는 있는 모양일세.”
“그럼 그것하고 일본 기업 주식 긁어모은 것하고 무슨...”
“아. 얘기가 옆으로 샜군. 그래서 아예 일본 기업을 우리가 운영할까 하네. 마누스님의 조언에 의하면, 일본은 기계를 잘 만드는데, 마케팅이라고 하나? 물건을 포장하고 알리는 능력이 떨어지는 모양일세. 대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그 부분과 또 영업하는 능력은 뛰어난 것 같다고 하시고. 그래서 아예 일본에서 만들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팔게 되면, 세계를 우리가 먹을 수 있고, 일본을 하청으로 부릴 수 있을 것 같더군. 어떤가, 우리 생각이?”
“우와! 생각하는 규모 자체가 엄청나게 크시네요. 허어.”
“헐헐헐. 글로벌 아닌가, 글로벌. 헐헐헐. 거기다가 어느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어서 일본으로 쓸어갔던데, 이제부터는 우리가 반대로 할 생각이지.”
“이야. 제대로 돈을 긁어모으겠네요? 하하하.”
“헐헐헐.”
다음 날 아침.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단상.
그 위에는 어제와 달리 창백해진 일왕과 온 얼굴에 붉은 반점으로 떡칠한 총리와 장관들이 늘어섰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건 말건 일왕은 서둘러 사과문을 다시 발표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무조건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원하는 대로 무엇이건 배상하겠습니다.’
어제와 같은 외교적인 미사여구도 전혀 없었다.
일왕은 그 간단한 사과문을 재빨리 낭독하고는 서둘러 사라져버렸다.
총리를 비롯한 모든 장관도 그 자리를 서둘러 빠져나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멍하게 선 기자들만 남았다.
그 사과문을 들은 일반 시민들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외국인 기자든 일본인 기자든 누구를 막론하고 그런 이들을 탓할 수 없었다.
아직도 어제의 그 엄청났던 지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TV로 보고 있던 중국의 지도부는 다시 회의를 열게 되었다.
얼마 전에 열었던 회의에서는 일단 좀 더 지켜보자.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아야 좀 더 쉽게 대책을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
특히 일본을 보니 시간도 넉넉하게 주던데.
하지만 일왕궁과 총리관저에서의 대규모 사태를 확인한 그들은 결코 편하게 기다릴 수 없었다.
일본처럼 앉아서 기다리다가 두드려 맞은 후에 사과하고 배상하지 말고, 사전에 미리 사과하고 배상하자고 입을 모았다.
그래야 잃을 것도 적을 것이고, 다른 손해도 입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모았다.
다른 때 같으면 어떻게든 상대 진영을 물고 늘어졌을 사람들이 이번에는 한목소리로 뜻을 모았다.
일왕의 ‘무조건 사과’이라는 방송을 본 대한민국에서는 전국에서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온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말이 있었다.
‘지킴이 어르신들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백성들의 눈에도 일왕궁과 총리관저 앞의 대참사 현장이 고스란히 비쳤다.
그래서 백성 대부분이 ‘속 시원하다.’라고 소리쳤다.
위안부, 노동자, 군인 등 강제로 징용을 당했던 어르신들이 저마다 한을 풀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 시간 세계의 뉴스는 긴급 특집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제목이 아주 자극적이었다.
‘일본 열도 침몰. 대한민국의 수호신, 일본을 침몰시켰다.’
그 방송에서는 일왕궁 앞과 총리관저 앞마당, 부서진 총리관저마저 화면으로 송출했다.
그날 저녁 마누스가 대통령에게 메일을 보냈다.
일본에 요구해야 할 최소한의 배상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대마도 등의 섬들 이름과 위도도 적혀 있었다.
메일 내용을 확인한 대통령은 장관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거기서 지킴이 어르신들이 보낸 메일을 공개했다.
메일 내용 중에 ‘지킴이 어르신이 실무협상 자리도 꼭 지켜볼 것이다.’라는 말을 일본 실무자들에게 꼭 전하라는 부분도 있었다.
개인에게 배상할 내용에 대해서는 ‘지킴이 어르신’들이 세밀한 자료를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그분들이 처리하겠다고 했다.
‘밝은 세상’ 이름으로 들어가는 모든 금액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세금도 걷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모든 배상금은 오로지 국고에 넣으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장관이 만장일치로 외쳤다.
‘누구 돈에 욕심을 내겠습니까!’
아울러 그 외에 대한민국이 일본에 요구할 부분을 정리했다.
독도 문제는 얘깃거리도 되지 못했다.
동해 표기 문제부터 독도 문제, 대마도를 비롯한 몇 개의 섬들.
거기에 배상금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우선 정부에 대한 배상금은 기존 차관을 갚는 것으로 대체하자고 결론지었다.
일본 국정 교과서 내용 수정과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 금지 법령 등도 요구하기로 했다.
자위군도 자위대로 다시 각하시키는 부분도 요구하기로 했다.
이 부분은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할 사항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장관들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어디인지는 잘 알게 되었기에.
그렇게 회의로 바쁜 청와대와 달리 공장에서는 다른 이유로 무척이나 바빴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에 금괴 570톤에 대한 구매 의사를 타진했다.
세 나라는 그 연락에 긴급 안보회의를 열었다.
경제 관료 회의가 아니라 안보회의를 먼저 열었다.
이들이 금괴를 팔겠다고 하는 숨겨진 뜻이 무엇일까.
누구도 이 금괴가 어디서 났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뻔하지 않겠는가.
아직 배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국이라는 국가도 아닌 일반 단체에서 금괴를 팔겠다고 나서다니.
이건 분명히 일본이 보유했던 금괴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대통령이나 주석이 안보회의를 소집하자, 득달같이 달려온 관료들이 가장 먼저 뱉은 말은.
‘이번에는 우리입니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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