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홍익백성
이 일에 대해 마누스가 대통령에게 주문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당하라.
매섭게 질타하라.
일본을 지배한다 생각하라.
그 덕분에 협상단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의 눈을 협상단으로 몰아넣은 테라니우스 조의 마법사와 변호사들은 조용하게 일본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선 마누스가 조사하고 의뢰를 넣어둔 변호사 사무실부터 들렀다.
일본 안에서 기업 인수 합병에 가장 많은 성과를 보여준 법무 법인이었다.
대표 변호사에게 안내받아 처음 내민 것은 ‘밝은 세상’이라는 한글만 적힌 작은 명함이었다.
다른 글자는 전혀 없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표 변호사는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다짐해 왔다.
허리를 170도로 꺾으며.
대표로 왔던 마법사가 고개를 까닥였다.
그의 입에서는 중후하지만 유창한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기대하고 있겠소. 이 법인이 어르신들을 실망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오.”
“무,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온 힘을 다해서 처리하겠습니다.”
“여기 우리 자료를 챙긴 변호사들이 있으니, 필요한 일은 협조를 받도록 하시오.”
“네,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변호사들을 남겨둔 마법사는 그 길로 밖으로 나오며 사라져 버렸다.
밖으로 안내하던 대표 변호사는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방금 사신을 눈앞에서 만났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두 다리를 흔들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옆에서 영문을 몰라 하던 비서가 깜짝 놀라서 그를 부축했다.
그 덕분에 정신을 차린 대표가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방금 그 사람과 함께 왔던 변호사 9명이 여전히 자리에 서 있었다.
대표는 이들도 혹시나 그 무서운 존재일까 봐 겁을 먹었다.
그때부터 대표는 더욱 최선을 다했다.
정말 이 일에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그 법인 안에서 가장 일 잘하기로 소문난 변호사는 모두 불러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상황에서 법이라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놀게 된 변호사들이었다.
덕분에 불려 온 변호사들은 한국에서 온 9명의 변호사가 내놓은 자료를 가지고 신이 나서 일에 뛰어들었다.
미리 대표 변호사가 다른 변호사들을 불렀다.
다른 방으로 모은 후 그들에게 간단하게 말했다.
“저분들은 한국의 지킴이들이 보낸 분들입니다. 이번 일에 따라 우리의 목숨뿐만 아니라 이 일본의 생사가 결정될지도 모릅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죠?”
“헉!”
“헛!”
“지, 킴이...”
그렇게 일본의 우량 제조 기업들이 조용하게 사냥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온 정신이 배상문제 협상에 쏠려 있어 그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국제적으로도 외국 기업이나 개인이 자국의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었고.
협상단이 공식적으로 일본을 털어대고, ‘밝은 세상’이 조용하게 일본 기업을 사냥하는 동안.
대한민국의 많은 백성은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은행의 입금 소식에 놀라게 되었다.
평상시에 은행에서 전화받을 일이 없었던 소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신종 전화금융사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돈을 찾으라거나, 어디로 입금하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저 ‘밝은 세상’으로부터 돈이 입금되었으니 확인 바란다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긴가민가한 생각에 통장을 들고 은행을 방문했다.
그리고 은행 창구에서 통장에 찍힌 돈을 보고는 깜짝 놀라 통장을 떨어뜨렸다.
마누스와 테라니우스 조에서는 그동안 확인된 위안부, 강제 노역, 군역 등의 피해자에게 직접 돈을 송금했다.
만약 본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그 후손을 찾아 일일이 송금했다.
모든 후손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서.
그럼에도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아직 금괴를 판 건 아니었지만, 이미 많은 돈을 대한민국으로 들여오는 중이었기에.
이 정도 돈을 나눠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인원을 합하니 327만 명이 넘었다.
그들에게 일인 당 10억씩을 배상하기로 했다.
모두 합해 3,270여조 원.
100억 원씩을 나눠준다고 아깝겠는가.
그날 저녁 TV 뉴스 시간에는 온통 배상금 얘기로 떠들썩해졌다.
특히 뒤르칸트가 직접 동영상을 촬영해서 각 방송사 제보란에 보낸 영상 덕분이었다.
뒤르칸트는 ‘밝은 세상’에서 먼저 피해자들이나 그 후손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그 금액은 배상금 청구 금액을 개인별로 나눠서 계산했다고 했다.
미리 지급한 배상금은 일본에서 직접 받아내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제부터 이 나라에는 그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들끓었다.
배상문제 협상장에서는 당당한 대한민국의 협상 대표와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사정하는 일본 대표들의 모습이 참으로 대조적으로 보였다.
대한민국의 협상 대표들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킴이 어르신들의 뜻을 우리가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였다.
특히 TV를 통해 일왕궁과 총리관저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를 확인했다고 은근한 협박도 곁들였다.
앞으로 ‘지킴이 어르신’들이 허락한 협상 시한도 일주일이 남지 않았다는 말로도 협박을 더 했다.
그제야 일본 협상 대표단에서는 솔직한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배상해 주고 싶어도 해줄 능력이 없다.
일본에는 금괴든 외국의 국채든 외화든 아주 씨가 말라버렸다.
대한민국의 대표단은 이미 그 사실을 듣고 왔으면서도 놀라는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런 일본의 완전 항복 선언 이후에 대한민국의 협상 대표단은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독도가 대한민국 땅임을 전 세계에 공표하라.
동해를 일본해라고 한 표기를 전부 동해로 고쳐라.
교과서 내용을 전부 개정하라.
7광구는 대한민국이 독자 개발한다.
대마도와 독도에서 가까운 일본의 섬들을 모조리 대한민국에 할양하라.
일본 대표들은 그 말에 펄쩍 뛰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동해 대부분을 대한민국에 내어줘야 했다.
그런 일본 대표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보이는 대한민국 대표였다.
“지킴이 어르신들의 전언에 의하면, 그렇게 반대할 테니, 아예 그 섬들을 바닷속으로 처박아버리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허억!”
“허엇!”
“헛!”
“히엑! 그, 그럼 내일 다시 협의해 보십시다. 일단 우리도 돌아가서 회의해 봐야 할 문제니...”
그렇게 부리나케 자리를 벗어나려는 일본 대표단을 대한민국의 대표단이 급하게 붙잡았다.
“아아. 이왕 가서 회의하려거든 마저 듣고 가십시오.”
“...? 무, 뭔가 또 있는 겁니까?”
“아니, 그럼 겨우 그 섬 몇 개로 배상을 끝낼 생각이었습니까?”
“으윽. 그, 그게...”
“자자, 잠시 자리에 앉으세요. 그리고 마저 잘 듣고 가서 회의하세요. 아마 시간도 얼마 없을 겁니다. 우리가 협상을 포기하고 일본을 떠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우리 지킴이 어르신들만 알고 있으니까요.”
일본 대표들 표정은 하나같이 사색이 되었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 푼이라도 깎을 자리가 아니라, 최대한 빨리 배상문제를 해결해야 할 자리라는 걸.
대한민국 협상단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도 이미 다 알고 왔습니다. 일본 중앙은행을 비롯해서 지금 일본 땅에는 금괴든 외화든 외국 국채든 남은 게 하나도 없지요?”
“...”
그때부터 조목조목 대한민국의 요구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자위군을 자위대로.
군비 감축과 기존 최신 무기를 대한민국에 무상으로 양도.
앞으로 군비에 대한 대한민국의 승인.
일본의 전범 기업이 보유한 모든 재산을 대한민국에 환수.
대한민국에서 팔려온 모든 사람의 신병확보 및 부채 탕감 후 귀국 협조.
7광구는 대한민국이 독자 개발하고 일본은 어떠한 관심도 두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인수할 일본 기업에 대한 세금 면제.
배상금액에 대해 20년간 분할 납부.
다음날 일본 협상단은 무조건 항복을 외쳤다.
전날 협상단이 총리를 비롯한 모든 장관에게 큰 꾸지람을 받았다.
하지만 협상단의 한마디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말 안 들으면 바닷속에 처박아버리겠다.’
그렇게 일본의 사과와 배상 협상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을 맺었다.
두 나라의 대표단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 대표단의 표정은 너무도 달랐다.
한쪽은 웃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얻은 듯 당당한 모습이었다.
반대는 모든 것을 다 잃은 듯했고.
일본 대표단이 배상에 대해 발표했다.
그 내용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전역과 일본 전역,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되었다.
전 세계는 경악했다.
2차대전이 끝나고 근래에 들어서는 자국의 영토를 다른 나라에 할양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랬던 역사가 대전환을 맡게 된 것이다.
그것도 그동안 미국의 우산 아래에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던 두 나라 간에.
이 일을 놓고 많은 나라에서는 국제문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방송에서 각자의 생각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바로 옆에 있는 두 나라는 모두가 방송을 통제했는지, 그에 대해 단 한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특히 중국 정부에서는 북한 문제는 고사하고 간도문제까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러시아는 혹시 옛날에라도 대한민국의 땅이었던 지역을 자신들이 가졌는지 확인하느라 많은 역사학자가 동원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에서는 다급한 지령 하나가 문교부에 하달되었다.
그동안 동북아공정을 위해 실었던 교과서 내용을 전부 대한민국의 역사로 바꾸라는 내용이었다.
또 하나의 지령은 선양군구에 떨어졌다.
선양군구에 속한 16, 39, 40 집단군은 모두 북한 국경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라는 내용이었다.
다음으로 북해함대에도 북한과 남한에서 최대한 떨어지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다음으로 북한과 남한에서 암약하고 있는 정보원들에게 무조건 철수를 명령했다.
또한, 그동안 대한민국에 하던 모든 해킹이나 전화금융사기 등에 대해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의 완전 항복 선언 후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내용은 프랑스가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모든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최대한 찾아서 빠른 시간 안에 반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에서도 문화재 반환에 대한 성명 발표가 있었다.
그에 따라 세계에서는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찾느라 모든 박물관이 발칵 뒤집혔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반환하겠다고 자국 문화재청에 신고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결국, 지금 전 세계는 대한민국의 ‘지킴이’ 덕분에 온통 난리가 벌어져 버렸다.
북한에서도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들도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대한민국을 괴롭혀 왔던가.
물론, 그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자신들의 생존 문제도 있었고, 또 남한 정부에서 비밀리에 요청했던 일도 있었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자신들이 남한을 수없이 괴롭힌 꼴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어떤 전략 무기도 남은 게 없다 보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안했는데.
이제는 일본 문제가 정말 할 말 없이 끝나버렸으니.
다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들 차례가 아니겠는가.
북한 가까이에 살면서 탈북 주민들을 인신매매하던 많은 조직도 겁을 집어먹었다.
그래서 눈치 빠른 조직의 간부들은 그동안 모았던 재산을 처분하고, 현금을 챙겨 도주하기 시작했다.
일단 중국 어디를 가든 무조건 숨어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빨리 현금을 만들어서 중국 전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에서는 금괴 판매에 대한 문의 메일에 대해 답장도 즉각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내용은 ‘얼마를 부르던 무조건 매입하겠습니다.’라고.
마누스 학파에서는 난감해졌다.
서로 경쟁이 되어야 경매처럼 해서 최고로 높은 금액을 받을 텐데.
이건 세 나라가 똑같이 얼마를 부르건 무조건 매입하겠다고 덤비니.
그래서 마누스와 테라니우스는 잠시 회의를 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래도 미국에 주는 게 가장 편하겠다고.
금액은 요즘 시세의 두 배만 부르자고.
그렇게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고는 두 마법사가 켈켈켈 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웃고 있는데, 마누스 조의 한 마법사가 마누스 곁에 급하게 나타났다.
“큰일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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