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홍익백성
TV 뉴스의 한 부분으로 ‘오늘은 000과 그 가족이 실종되었습니다.’라는 방송이 정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환영을 받았던 방송은 전직 대통령 4인 방과 그 가족의 실종 소식이었다.
전, 노, 이, 박.
특히 노골적으로 뻔뻔한 모습을 보여, 백성들의 공분을 샀던 전.
그와 그의 가족들 실종 소식에 온 백성이 환호성을 보냈다.
거기에 이, 박의 경우에는 여론 조작을 통해 어떻게든 빼내려던 세력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더는 그 두 사람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
자신들도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까.
검찰, 변호계, 법원조차 원칙대로 처리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중이었다.
그래도 뒤에서 힘을 쓰던 세력들이 교묘하게 압박했기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드디어 하나둘씩 자신들을 압박했던 인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원칙’을 세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이제 좀 제대로 해 보려고 했더니, 그 대상과 가족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그들을 경호하던 사람들이나 감방에서 모시던 사람들마저도 망연자실했다.
눈앞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도 있었으니.
특별히 방송에서는 그들이 그동안 빼돌렸던 나랏돈에 대한 정보도 세밀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 돈을 어디에 투자하고 어디에 썼는지도 자세하게 밝혀주었다.
그 재산을 어떻게 환수했는지도 자세하게 밝혀주었다.
끝으로 그들의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아직은 안타까운 현실이 ‘국가의 돈은 눈먼 돈’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밝은 세상’에서 잘 불리고 키워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쓰겠다고 밝히며 끝을 맺었다.
그 방송을 본 백성들이 환호를 내질렀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며 씁쓸해 했다.
다만 반가운 것은 그동안 그들이 탈세했던 모든 세금을 일시불로 국세청에 완납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금액이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의 두 배가 조금 모자랐다.
아 물론 전직 대통령들의 탈세금액이 아니다.
그동안 사라졌던 모든 이들의 탈세금액 합계다.
특히 재벌들의 탈세는 정말 중범죄 수준이었다.
이러니 세금 내면 X신 소리를 해 대던 사람들이었다.
또 한 TV 뉴스에서는 묘한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편의점 옆의 좁은 골목에 대여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근처를 지나던 한 노인이 그 골목을 지나치다가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런 장면은 편의점에서 설치한 숨겨진 CCTV의 화면이었다.
그 노인이 그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다짜고짜 그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질렀다.
안타깝게도 음성 녹음은 지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동영상의 시점이 바뀌면서 음성까지 녹음된 내용이 흘러나왔다.
아이 중에 이런 일이 생기면 항상 동영상을 녹화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아이가 찍은 것이었다.
그 노인의 말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어린 나이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늙어서 고생하게 돼! 당장 꺼!”
그러자 아이들이 슬쩍 덩치 큰 남자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또 재미있는 일을 경험하겠다는 기대감이 비쳤다.
슬금슬금 움직여서 노인을 포위했다.
언제든지 덩치 큰 아이가 신호하면 바로 뭇매를 놓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웬걸?
그 아이가 노인 쪽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담배를 바닥에 떨구고 신발로 밟아 꺼 버린다.
그 모습에 노인이 오히려 약간 움찔한 기색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다들 담배 끄자.”
“...? 엉? 담배 끄라고?”
“그래. 담배 끄자.”
“그, 래. 알았어.”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이 아이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나둘 담배를 끄기 시작했고, 곧 모두가 담배를 껐다.
동영상을 촬영하던 아이도 담배를 끄느라 화면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예전 같았으면, 어린 애들이 담배를 피우건 말건 그냥 지나쳤어. 그런데 내가 얼마 전에 ‘지킴이 어르신’ 덕분에 다시 살게 되었어. 내가 폐암 말기라 남은 삶이 2개월도 안 남았었거든. 나도 너희 나이 때부터 담배를 피웠어. 그러니 폐가 제대로 남아났겠어? 그래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킴이 어르신이 날 다시 살려 주신 거지. 그때 내가 무척 기분 좋았어. 생각해 봐.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얻게 된 건데. 그런데 어느 순간 지킴이 어르신들에게 부끄럽더라고. 내가 담배를 더 늦게 배우고, 조금만 피웠더라면 이렇게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고. 너희 생각은 어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어?”
노인의 입에서 죽다가 살았다는 말에 아이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조용하게 그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 아이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축하해요. 정말 다행이네요. 앞으로 담배를 줄여 볼게요. 아시겠지만 당장 끊는 건 힘들잖아요.”
“그, 그래. 그것만 해도 다행이지. 이것 참. 어린아이들에게 내가 주책을 부렸네.”
“아니에요. 저희도 지킴이 어르신 생각하면, 잘 살아야죠.”
“그려. 그래야지.”
“혼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오냐. 고맙다. 커흠. 그나저나 자네 부친께서는 무슨 일 하시나?”
그 아이가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경찰관이세요.”
“오! 그랬구나. 널 보니 비리 경찰은 아니신 모양인데?”
“사실, 완전 고리타분하시죠. 그게 완전 싫었는데, 지킴이 어르신 덕분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아빠도 얼마 전에 지킴이 어르신 덕분에 승진했다고 자랑하셨고요.”
“너도 그러고 보면, 지킴이 어르신이 은인인거네?”
“네. 그래서 행동도 조심하려고 해요.”
“그래. 그러자. 앞으로도 잘 살아보고.”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노인은 돌아갔다.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눈빛을 읽은 그 아이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새끼들아. 철 좀 들어라. 지금 세상에서 지킴이 어르신들이 못 보는 게 있겠냐?”
“아아! x될 뻔했네.”
“어휴. 역시”
아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그 아이는 다시 ‘피식’ 웃었다.
“앞으로는 진짜 잘 살자. 까불다가 골로가지 않으려면.”
“그래. 진짜...”
그 시간 공장 마누스 조의 한 마법사는 CCTV와 위성 화면을 통해 그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넓게 감시하다가 특별한 낌새가 보이면, 그 부분만 확대해서 보기도 했다.
그러다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소리까지도 키워서.
그리고 이 어린놈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날아가서 응징할 준비를 해 두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 버렸다.
그 마법사는 있지도 않은 혀를 끌끌 차 버렸다.
“에잉. 아쉽네. 직접 가서 이놈들을 혼쭐내면서 재미 좀 보려고 했더니. 클클클.”
그 동영상이 여러 친구의 개인 통신망을 통해 돌다가, 결국에는 TV 방송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어느 TV에서는 발 빠르게 ‘지킴이 어르신 동향’이라는 부분을 정기적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매일 일어나는 특별한 일 중에서 ‘지킴이 어르신’과 관련된 부분은 그대로 방송했다.
꼭 그분들과 연관되지 않고, 그저 신기한 일을 제보받았더라도, 거의 그분들과 연결해서 방송을 틀었다.
그 방송사는 그 부분 덕분에 대박을 치고 있다.
다른 방송들은 다 죽을 쑤는 방송사여서 존폐의 위기까지 겪고 있었는데.
그 방송이 이 방송국을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방송국이 마누스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이 방송에서 등장인물들을 숨기기 기법으로 감추면서 생생하게 방송했다.
그 댓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격세지감’이었다.
예전에는 훈계하는 어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어린아이들조차 지킴이 어르신을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반응이었다.
‘밝은 세상 순간 치료기’ 생산 공장이 직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이 하루에 열심히 만든다고 해도 하루에 200개를 넘기지 못했다.
다들 바쁜 관계로 그나마 덜 바쁜 마법사에게 하루에 한 개씩만 만들라고 할당량을 내려줬어도 그랬다.
그래서 아예 수출까지 할 생각에 공장을 만들고, 공장에서 찍어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 생각이었기에 다양한 직종에서 직원을 구했다.
우선 경리부터 뽑기로 했다.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줘야 했기에.
채용 조건은 특별하지 않았다.
학력 무관.
건강 무관.
외모 무관.
경력자와 신입을 따로 뽑는다.
공장은 지금 있는 공장 근처의 빈 공장을 사버렸다.
생산 동에는 마나 발전기와 마법진을 도배했다.
사무 동에는 딱히 변화를 주지 않았다.
‘밝은 세상’이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역시 위대했다.
신입 세 명, 경력 네 명을 모집하기로 했는데, 신청한 사람은 사만여 명이 넘었다.
사실 지금 우리나라에 실업률은 역사상 가장 낮은 상태다.
이미 일본으로 많은 사람이 빠져나갔다.
세계에서도 많은 기업이 한국인을 뽑아갔다, 그것도 유례없는 조건으로.
그래서 이번에 경리를 뽑는데도 많은 사람이 지원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경리들을 뽑아도 별로 할 일도 없었고.
그저 다른 직원들 업무 보조나 하고, 전화나 받고, 경리 업무 조금 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다만 일의 강도를 최소화해 주기 위해 많은 인원을 뽑으려는 것이었다.
그게 일곱 명이었는데, 신청자가 사만여 명이 넘은 것이다.
이력서를 빠르게 살핀 마누스 조에서는 탄식을 토했다.
“아니! 잘 다니는 직장도 있으면서 왜 우리한테 오려는 거야!”
그 옆에 있던 마법사가 웃었다.
“켈켈켈. 우리가 그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거구먼. 켈켈켈.”
그 옆에 있는 다른 마법사가 거들었다.
“전에 생체 학파 마법사가 그러더군요. 이건 뭐 아이돌보다 더 인기 좋아서 놀랐다고요.”
“헐헐헐. 그야 그렇지. 우릴 어디 아이돌과 비교하겠어? 켈켈켈.”
“허얼.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일곱 명 뽑는데, 사만여 명이 신청하다니...”
“헐헐헐. 고생 좀 하시게. 켈켈켈.”
사실, 문제가 있긴 했다.
근무 조건이 그것이었다.
근무 시간 일 8시간, 주 40시간 자율.
연중 휴가 30일 이내 자율.
24시간 사설 어린이집 운영.
구내식당 24시간 운영 및 뷔페식.
기본 연봉 3천만 원부터.
본인이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까지 평생직장.
‘지킴이 어르신’ 정기 건강검진(가족 모두 포함).
육아 휴직 보장 3년.
출퇴근 차량 제공.
사원 공동주택 제공.
이런 내용은 그날 각 TV 뉴스에도 방송을 타게 되었다.
그 덕분에 다음 날에는 10만여 명이 더 입사신청을 해 왔다.
담당 마법사는 기겁해서 외쳤다.
“이놈들이 미쳤나! 그걸 왜 방송해!”
한숨을 내쉰 마법사가 할 수 없이 ‘모집 마감’을 눌렀다.
그리고 14만여 명 중에서 일단 서른 명을 뽑았다.
있지도 않은 눈알이 빠질 뻔했다고 투덜거렸다.
신입 부문 18명, 경력 부문 12명이었다.
그들의 이력 중에 가장 중요하게 본 부분은 이력이었다.
알바든 직장이든 한 곳에서 오래 일한 경력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다음으로 봉사 경력도 살폈다.
직장이나 알바 현장에서의 역할도 살폈다.
주로 남을 섬기는 일을 꾸준히 해 온 사람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면접에서 기억을 읽고 최종 선택을 마쳤다.
예정보다 많은 열두 명을 뽑게 되었다.
면접에 참여했던 마법사들이 입을 모아 아깝다고 한 인물들이었다.
물론, 면접은 마법사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였다.
면접에 참여했던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을 보이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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