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리도 같은 민족인데
새 몸을 입은 기사 가족들이 최우선으로 채용되었다.
이 부분은 시운이 강력하게 요청했다.
가족들에게 잘 지내는 걸 보여주는 것이 첫번째 효도라고.
일본의 기업 중 사 할이 ‘밝은 세상’의 소유가 되었다.
그 사 할이 일본을 지탱하던 대기업의 팔 할이었다.
일본 정부는 망연자실했다.
앞으로 세금에서 많은 부분 포기해야 했다.
총리실에서는 가장 먼저 예산안 수정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거대한 악몽이 지나고 나자, 오히려 총리의 인기가 올라갔다.
그 이유는 배상 문제를 빨리 해결한 공로였다.
일본의 최신예 첨단 전투기, 전투함과 잠수함을 대한민국에 인계하는 날이 다가왔다.
공군, 해군 장관이 직접 공항으로 영접을 나갔다.
원래는 대한민국의 해군 함정이 각 해군 기지로 직접 들어올 계획이었다.
총리실에서 대통령을 간곡하게 만류했다.
‘제발 더는 이 나라의 위신을 떨어뜨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래서 대한민국 공군, 해군 장교와 부사관, 사병들이 특별기들을 타고 날아왔다.
그중에서 도쿄만에 있는 최신예 함선과 잠수함을 인수받기 위해 하네다 공항에 내린 대한민국의 군인들을 환영하는 자리였다.
사실, 환영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더는 악몽을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 정중하게 넘겨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공군들은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준비된 군 수송기로 갈아탔다.
전국에 퍼져있는 공군기지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교들은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부사관들도 코에 바람이 들어 있고.
병사들은 가끔 눈치 없이 저들끼리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다행히 주변에 있는 장교들이 눈치를 줘서 조용히 넘어갔다.
일본에서 자체 개발한 모든 첨단 무기와 전투기, 함선에 대한 정보는 이미 마누스가 다 챙기고 있었다.
이번에 삼켜버린 기업 중에 주요 군산업체도 모두 포함되었고.
그에 대해서는 모두가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일본은 일본대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대로.
사실 대한민국 정부로서도 ‘지킴이 어르신’들을 상대로 뭔가를 요청할 수가 없었다.
사실 조마조마하다.
누군지도 모르고, 얼마나, 언제까지 도와줄지도 모르는 존재들이어서.
그래도 준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미련한 일이어서, 일단 무조건 챙기고 보는 것이다.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이 너무도 엄청나기에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일본을 가장 두렵게 만든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남쪽의 섬들을 가라앉힌 자연재해를 그들이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일왕궁과 총리관저 박살 사건이었다.
어떤 무기로도 그런 자연재해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아직은.
그런데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났다.
어떤 낌새도 없이.
정보라면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미국 대통령이 침묵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백악관 지붕 위에 수많은 핵미사일이 떠 있는 동영상.
그것은 일본 정치인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러니 저 ‘지킴이’라는 존재들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아예 먹지도 않았다.
그저 ‘지독한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요즘 일본은 수많은 관광객이 들이닥쳤다.
상인들은 환호를 올렸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속으로 울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거나, 일본을 떠나기 전에 꼭 들르는 곳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일왕궁 앞이었고, 또 하나는 총리관저 근처였다.
거기다 그들은 그 지진 흔적 앞에서 꼭 사진을 찍고 떠났다.
거기다 ‘꺅꺅’거리기까지.
그 주변을 지키는 경찰들은 무표정하게 자리만 지킬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 두 곳 주변을 진입 금지 구역으로 선정하자는 말도 나왔었다.
그때 한 장관이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게 괘씸하다고 다른 곳에 그런 지진을 일으키면 어쩔 겁니까?”
“...!”
특히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기도 했다.
어떤 우익단체 젊은 회원은 조금 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회의 중에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그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뭇매를 맞고 쫓겨났다.
그에게 주먹을 휘두른 회원들 입에서는 똑같은 말이 터져 나왔다.
‘빠가야로,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
그렇게 일본 문제는 조용하게 완료되었다.
일본의 기업은 다시 활기를 얻기 시작했다.
‘밝은 세상’에서 인수(?)한 기업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기존의 회사 이름 앞에 한글로 ‘밝은 세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순위에 모든 ‘밝은 세상’의 기업이 들어갔다.
그 기업들의 사훈이 변경된 때문이었다.
‘회사가 책임지는 사원, 사원이 책임지는 회사’
일본에서도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서 인수한 일본 회사에서 직원의 평생을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일본의 젊은이들이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 다니는 경력자들조차도 언제든 길만 열리면 이직할 생각이다.
공장에서는 여전히 바쁘다.
이번에는 아예 마나 발전기를 제품으로 만들어 팔기로 했다.
기존 화력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동력 부분을 회전 마법진을 부착한 마나 발전기로 교체하기로 했다.
사전에 대통령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주 후부터 전국에 있는 화력,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해서 무동력 회전 터빈을 만들어 주겠다고.
아울러 변전소에도 작은 무동력 발전기를 설치해 주겠다고.
그 메일을 본 대통령은 바로 비서실장과 지식경제부 관련 수석을 불렀다.
그들에게 ‘지킴이 어르신’의 전언을 전했다.
관련 장관을 비롯해 모두에게 화력, 원자력 발전소의 무동력 회전 터빈 교체 사실을 알리게 했다.
또한, 변전소에도 작은 무동력 발전기를 설치해 주신다고.
그에 대한 준비 사항을 확인하게 지시했다.
지식경제부 수석이 나가자, 정무 수석과 기획재정부 관련 수석을 들게 했다.
“이번에 특별히 들어온 세금 있죠? 갑자기 너무 큰 자금이 들어와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던데요.”
“사실 그런 점이 걱정이기도 합니다.”
“그럼 아예 그걸 지킴이 어르신들에게 맡겨서 기금으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어르신들이 투자도 하십니까?”
수석의 질문에 문 대통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확인하지는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정도의 능력자분들인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자금운용도 잘해 주실 것 같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 생각이 괜찮으면, 내가 메일로 한 번 여쭤보려고요. 어때요?”
“...”
“...”
한참 고민하던 두 수석이 함께 입을 모았다.
“일단 여쭤보시죠. 그래서 좋다고 하시면, 아예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가가 운영하는 모든 연기금을 다 운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락할게요.”
문 대통령의 메일을 받기 전에 이미 회의를 끝낸 마누스 조에서는 테라니우스에게 뜻을 물었다.
“대통령군이 우리한테 자금운용을 맡기고 싶어하는데, 어떠신가? 좀 도와줄 수 있으시겠는가?”
“아유. 물론이죠. 돈이야 많을수록 작용하는 힘이 더 커지는 거니까요. 거기서 떨어지는 우수리도 넉넉하게 챙길 수 있고요.”
“헐헐헐. 그러세, 그럼.”
그렇게 메일이 오기도 전에 이미 답이 내려졌다.
사실 마누스 조에서나 테라니우스 조에서는 각종 연기금의 운용 실적을 보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정말 마르지 않는 화수분 취급을 하고 있었으니.
테라니우스는 이번에 정리한 재벌들의 기업을 모두 ‘밝은 세상’ 소유로 변경했다.
워낙 많아서 대기업의 구 할에 가까웠다.
섬으로 날려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사라진 인원 중에서 거의 20%만이 집으로 돌려 보내졌다.
그런 이들도 재산중에서 5%만 인정받고 모두 빼앗겼다.
그동안 탈세했던 세금과 ‘밝은 세상’에 대한 기부금으로.
아울러 그들이 소유한 모든 주식까지도.
해외 숨긴 재산과 부동산도 예외 없이.
그들은 이제 어디 가서 부자라고 내세울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사라졌던 사람들은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온 사람 중에 정치인도 몇 있었다.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참 대단한 정보력이었다.
그런 기자들에게 딱 두 마디만 말했다.
‘정치 은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람들의 공통된 행동이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묵직한 서류 상자와 함께 경찰서로 들어간 것이었다.
‘밝은 세상’ 소속이 된 기업에는 딱 두 가지의 원칙을 내세웠다.
‘1. 소유와 경영의 분리.’
‘2. 동생동성(同生同成) 함께 살고 함께 성공하자.’
한국의 ‘밝은 세상’ 소유 기업들도 기존 기업 이름 앞에 ‘밝은 세상’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일본에 있는 ‘밝은 세상’ 소유 기업과 유사한 기업들은 서로 정보와 연구를 공유하기로 했다.
‘밝은 세상’ 소유가 된 기업의 모든 임직원이 대대적으로 환호했다.
급여와 복지에 가장 민감한 이들이었다.
그들도 뉴스를 통해, 서로의 정보를 통해 ‘밝은 세상’ 기업의 직원 대우를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랬는데 이제는 자신들도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고 발표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믿고 있다.
일주일 동안 많은 마법사가 전국으로 날아다니며 발전소를 개조했다.
청와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상시 대변인이 기자회견 하듯 간단했다.
하지만 그 충격마저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지킴이 어르신들이 대한민국 안에 있는 모든 화력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를 고쳐 주셨습니다. 앞으로는 동력이 전혀 필요없는 완전한 무동력, 완전한 무공해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에 따라 앞으로 전기 요금을 더욱 낮추도록 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기자회견을 마쳤다.
대변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기다렸다.
기자들은 그 간단한 내용에 어안이 벙벙했다.
주로 들리는 내용은 ‘뭐야, 끝이야?’였다.
그러다 한 기자가 벌떡 일어나며 손을 흔들었다.
대변인이 지목해주자, 그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발전소가 무공해 발전을 하게 된 겁니까? 그럼 관리 비용 외에 연료 구입 비용은 전혀 들지 않게 된 겁니까?”
대변인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제야 이해하셨습니까?”
“우와, 우와!”
그제야 많은 기자가 벌떼처럼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성격 급한 기자들은 큰소리로 질문을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느긋하게 미소 지은 대변인은 한 사람을 지목해 주었다.
그가 선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 시끄러워서 외치지 않으면 들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떤 원리로 무동력 발전이 가능한 겁니까?”
“현장에 있었던 기술자들도 설명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자세한 원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보고받기에는 지킴이 어르신 여러분이 각 발전소를 방문하셨고, 회전 터빈에 빛으로 그림을 그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증기를 잠갔는데도 터빈이 회전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다음에는 그냥 자동으로 계속 돌고 있다고도 했고요.”
“우와! 진짜 마법사들이신가?”
“아아!”
어느 한 기자의 말에 주변의 기자들이 탄성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상 문학에 등장하는 마법사가 지킴이 어르신의 정체일 수도 있겠다고 상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기자들은 정신없이 타자하기 시작했다.
질문도 없었다.
뻘쭘해진 대변인이 자리를 벗어나는데도 어느 기자 한 명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변인은 슬쩍 한 기자의 기사를 살폈다.
그리고는 입을 딱 벌렸다.
이 기자만 그런가 하고 다른 기자의 기사도 살폈다.
그런데 비슷하다, 내용이.
그래서 다른 기자의 내용도 살피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대변인이 기자가 쓰는 기사를 살핀 적도 처음이었고.
기자들이 자신의 기사를 누가 보든 말든 정신없이 써나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대변인이 본 모든 기자의 기사가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대변인은 울상이 되었다.
자신이 발표한 ‘무동력, 무공해 발전’이 제대로 알려져야 할 텐데, 오히려 ‘지킴이 어르신은 마법사’라는 제목이 전부였으니.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