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리도 같은 민족인데
강원도와 경상도 쪽에서는 고성의 통일 전망대로도 모이게 했다.
금강산 관광이나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사람이 잘 찾지 않던 곳에 엄청난 차량과 인파가 몰려들었다.
짐을 끌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밝은 세상’이라는 작업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손짓을 따라 눈길을 돌리니 커다란 간판으로 ‘접수대’라고 쓰여 있다.
접수대도 엄청나게 넓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줄은 길지 않았다.
일 처리가 무척 빠른 모양이었다.
잠시 서 있기도 전에 앞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름과 생년월일, 주민번호 뒷자리만 부르면 바로 ‘몇 호 차’라고 불러준다.
그 말을 듣고 또 다른 버스가 서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되었다.
짐이 커서 낑낑거리는 게 힘들었지만, 남녀 누구도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들 너무나 바빴고 상황은 서로가 비슷했기에.
한 여자가 ‘밝은 세상’ 조끼를 입고 길을 안내하는 한 남자에게 투덜거렸다.
“이런 건 남자들이 옮겨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던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냉정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물었다.
“이름?”
“...? 한소정이에요. 그건 왜 묻는 거죠? 짐이나 좀 들어달라니까.”
그는 그녀의 이름을 듣고는 귀에 연결된 무선 마이크를 켰다.
그리고는 앞에 선 여자의 귀에도 똑똑히 들리게 말했다.
“한소정. 집으로 돌아간답니다.”
“...? 무, 무슨 소리예요? 짐이 무거워서 짐 좀 들어달라고 했지, 내가 언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어요!”
그는 별 대답이 없었다.
그저 지그시 그녀를 바라봐준 후 자기 할 일을 하러 떠나버렸다.
그렇게 돌아서는 그를 그녀는 계속해서 불렀지만, 한 번 돌려진 고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씩씩거리면서 처음 가려고 했던 버스로 짐을 끌었다.
버스에 타려고 하자 그 버스 앞에 선 또 다른 ‘밝은 세상’ 조끼를 입은 여성이 물었다.
“이름?”
“... 한소정이예요.”
“흐음. 한소정씨. 탑승 취소되었군요. 집으로 돌아가세요.”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새벽부터 집에서 나와 여기까지 이 무거운 짐을 끌고 왔는데, 남자한테 짐 좀 옮겨 달라고 했다고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라니요. 이게 말이 돼요!”
그렇게 큰소리로 외쳐대자, 주변에서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밝은 세상’ 조끼녀는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기 짐 하나 챙기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사람이 앞으로 수많은 학생의 인생을 어떻게 책임지려는 거예요? 같은 여자로서 여자 망신 다 시키는 당신에게 귀싸대기를 올려붙이지 못하는 게 속상할 뿐이에요. 여기서 더 개쪽당하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배우세요. 다음!”
조곤조곤 그러나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한 그녀가 ‘다음’이라고 외칠 때는 근엄함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힘들게 짐을 옮겨왔던 다른 여자들도 아무 말 없이 갈 길을 갔다.
짐을 부탁하려고 했던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자기 잘못 보다는 ‘밝은 세상’을 저주하기 바빴다.
그렇게 몇 명의 여성들과 남성들은 ‘밝은 세상’을 저주하며 쫓겨나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수십 대의 버스가 사람들을 가득 채운 채 출발했다.
이들은 북한 전역에 있는 초등, 중등, 고등 교육 기관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한 사람씩 타고 있던 ‘붉은 세상’ 조끼인들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들도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저 나눠주는 자료대로 설명하고, 손바닥 컴퓨터에 나오는 대로 사람들을 배치하라는 지시만 받았다.
그들의 설명을 듣는 모두는 최대한 집중했다.
얼떨결에 오기도 했지만,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엄청난 긴장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설명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그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게 했다.
“걱정하는 마음이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먼저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킴이 어르신이 여러분들을 지키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아아.”
“아.”
그제야 여기저기서 안도하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방송이나 동영상을 통해 느꼈던 지킴이 어르신들의 능력이라면, 어디를 가도 걱정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 북한에는 그동안 공산주의와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심에 세뇌된 많은 사람이 사라졌다.
그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겼지만, 특히 가장 큰 문제가 교육자들이 많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래서 ‘지킴이 어르신들’이 여러분들을 부르게 되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각 지역의 초등, 중등, 고등 교육 기관으로 파견될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또 다른 안내사항이 기다릴 것이다.
그것에 맞춰서 그 학교의 교육 내용과 체계를 바꾸고 안정시켜야 한다.
숙소 등은 당장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것도 이른 시일 안에 ‘지킴이 어르신들’이 개선할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교육자 중에 사라지지 않은 사람도 남아 있다.
그 사람들과 잘 협력해서 학생들 지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달라.
‘지킴이 어르신들’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고.
앞으로 통일과 개발, 발전을 위한 밑거름을 여러분들 힘으로 만들어가 줘야 한다.
‘붉은 조끼’ 사람들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얼굴이 더욱 굳어지는 사람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또한, 매주 금요일 저녁부터 원하는 사람은 집으로 다녀갈 수도 있다.
이 버스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 토요일 오전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갈 것이다.
일요일 오후와 저녁에 북으로 올라올 것이다.
이어서 준비된 손바닥 컴퓨터를 한 대씩 나눠주었다.
거기에는 마누스 조에서 준비한 ‘가르칠 때의 유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당분간 조직은 없이 ‘밝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를 지원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저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해 달라.
그렇게 급조된 교육자들이 북한 전역의 학교로 파견되었다.
버스는 중간중간 몇 사람씩 내려주고 또 나아갔다.
학교에 도착한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어색한 몸짓으로 커다란 짐을 끈 채 학교로 들어섰다.
학교 정문 앞에서 방송에서나 가끔 보았던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 반겨주었다.
그가 자신을 이 학교에 남겨진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를 따라 학교로 들어가서 교무실에 모였다.
그 선생님과 소개하고, 지금까지의 교재와 교과 내용을 확인했다.
북한 교사가 내미는 것을 본 모두가 자신이 받은 것도 내놓았다.
손바닥 컴퓨터였다.
북한 교사들은 그걸 받기는 했는데, 사용법은 남에서 온 교사들에게 배우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모두 서로 도우며 손바닥 컴퓨터를 켜서 지킴이 어르신들이 내려준 지침을 확인했다.
북한의 교사들도 지킴이 어르신들이 내려준 지침을 다시 확인하며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가르쳐야 할 과목도 정했고, 시간표도 다시 확인했다.
급식에 대해서도 지침이 있었다.
근처에 사는 여성들을 직원으로 뽑아서 식당을 운영하기로 했다.
남에서 올라온 교사들을 위한 숙소도 안내받았다.
학교 근처, 당 간부나 정치 위원 등이 살았던, 이제는 빈집 몇 곳을 배정받았다.
그곳도 매일 관리 해 줄 사람이 올 것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갔다.
군대에 대한 지침도 내려졌다.
‘밝은 세상’이라는 글이 앞 뒤로 크게 쓰인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군부대들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다들 두려움을 안고 방문했다.
워낙 북한군에 대해 남한에서 위협적인 방송을 많이 접했었기에.
역시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입구에서 차량이 다가오자 정차시키는 군인들도 총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지킴이 어르신들의 지령’ 때문에 모든 무기를 무기고에 집어넣고 그곳을 잠가뒀을 뿐이었다.
정문에 선 차량의 조수석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그 사람을 본 병사들이 일단 경례를 올렸다.
그들이 보기에 옷에 ‘밝은 세상’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기에.
며칠 전에 방송에서 ‘밝은 세상’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으라는 지시를 들었었다.
남아 있는 간부들도 그 방송을 보고, 다른 병사들에게 그 말을 그대로 따르자고 지시했었고.
병사의 경례를 받고 어색하게 웃은 사람이 병사에게 말했다.
“이 부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넵! 잠시만 기다리시라요!”
다시 차에 타서 기다리자, 초소에 들어갔다가 한참 후에 다시 나온 병사가 한 건물을 가리켰다.
“저곳으로 가시면 됩네다.”
“고맙습니다.”
인사하는 그들에게 다시 경례를 붙인 병사가 차단막을 올리게 했다.
차단막이 오른 것을 확인한 운전자도 인사를 건네며 차를 움직였다.
그들이 그 건물 앞으로 달려가자, 그 건물 현관에서 여러 병사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중에는 옷이 다른 사람도 몇 보였다.
저들이 장교들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안내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밝은 세상’ 조끼를 입은 운전자와 그 상급자 둘이었다.
그들은 먼저 장교들에게 자신들의 용무를 밝혔다.
‘저희는 지킴이 어르신들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두 사람 중에서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이는 사람이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장교 모두가 주의 깊게 듣는 모습이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 두 조끼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안에서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랐다.
조끼인들은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 장교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처음 들어올 때, 겁을 먹었던 두 사람은 오히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노력이 통한 것인지, 시간이 갈수록 장교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나중에는 간간이 웃음소리도 내었다.
장교들에게 설명을 마치고 모든 병사를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장교들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이 타고 온 차는 사륜구동 짐차였다.
운전석, 조수석, 뒷자리까지 있는 5인승 사륜구동.
그 짐칸에는 기름통이 잔뜩 실려 있었다.
뒷좌석에서 마이크와 스피커를 꺼내 차 지붕 위에 올렸다.
모든 병사가 훈련장에 모였다.
요즘 주변으로 경계 근무를 나가는 병사도 없었다.
그저 지킴이 어르신이 보낼 ‘밝은 세상’ 사람들만 기다리는 중이었고.
그래서 빨리 모일 수 있었다.
모인 병사들을 보며 상급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킴이 어르신이 보낸 ‘밝은 세상’ 소속 회사 직원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에게 지킴이 어르신들이 전하라는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선 지킴이 어르신들이 여러분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제야 너희를 돕게 되어 미안하다. 그동안 준비할 것이 많아서 이제야 돕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아입네다, 아입네다. 이제라도 와 주셔서리 무어라...”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에 성명서를 읽던 직원도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리되었다.
그는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조선의 인민들도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서로 감시할 필요가 없다. 오직 우리 지킴이들만이 너희가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는지, 그것만 감시할 것이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 성명서에는 이제부터 모든 군인은 직업 군인으로 나라에 충성하게 될 것이다.
직업 군인의 수는 지금보다 삼 할만 있으면 좋겠다.
물론, 원하는 사람은 계속 군대에 남아 있어도 좋다.
직업 군인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직업 교육을 받게 해 주겠다.
교육비와 생활비 등 직업을 갖기 전까지 필요한 모든 돈은 지킴이 어르신들이 책임져 주겠다.
원한다면 직장도 알선해 주겠다.
장사를 원하면, 일정 교육을 받은 다음 지킴이 어르신이 장사할 길도 열어주겠다.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아시다시피 작가란 엄청난 공부가 필요한 존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글도 서서히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올리던 글을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 드립니다.
제게 공부시켜 주십시오.
앞으로 어떤 내용을 이어 가야할 지 조언을 해 주십시오.
참으로 부끄럽지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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