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천지개벽
파라피나는 국회 법사위의 고문 자격을 얻었다.
법사위는 국회의원의 국회의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법안을 각 상임위에서 만들어 올리면, 문구나 여러 가지 조항들을 검토한다.
상임위에서도 각 파벌이나 로비 단체에 의해 법 조항이 수정되지만, 법사위가 가장 많은 역할을 해 왔다.
파라피나가 법사위에 참여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위원이 사라졌다.
요즘 법사위와 상임위 등의 하는 업무가 예전과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각 의원이 법안을 만들어오면, 그걸 먼저 정당의 원내 회의에서 수정한다.
수정안을 상임위에 올리면, 상임위에서 또는 다른 당의 원내대표들과 협상한다.
협상을 통해 또 한 번의 수정이 되면 상임위에서 결정한다.
상임위에서 결정한 법안이 법사위에 올라간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진행된다.
법사위 상임 고문이 된 파라피나가 자신이 준비한 법률 수정안을 법사위 위원에게 나눠준다.
그럼 그 안을 상임위에 넘긴다.
상임위에서는 그 안을 다시 자기 당으로 가져가서 검토한다.
검토한 안을 가지고 다른 당의 원내 대표들과 협상한다.
그 협상안을 가지고 다시 상임위에 올리고, 상임위에서 다시 수정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법사위로 올라온다.
파라피나는 어이가 없게 느껴질 때가 많다.
자신이 내려준 법안의 초안에서 많은 부분이 바뀌어 올라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폐기했는지 올라오지 않는 것도 많았다.
파라피나가 살기를 피워올리자, 법사위에 모인 위원들이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파라피나가 마법사들 사이에서나 젊은 측이고, 낮은 지위를 가졌지, 일반인들에게도 낮은 지위를 가진 존재는 아니었다.
파라피나도 한 왕국을 좌지우지했던 위대한 마법사로 존중받았던 존재였다.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법사위원들은 그런 파라피나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파라피나는 간단하게 말했다.
“이것들이 그나마 국회의원이라고 존중해 주려고 했더니, 아주 죽여달라고 용을 쓰는 꼴이네.”
“사, 살려주십시오. 다시, 다시 해 오겠습니다.”
“다시 해 오겠습니다.”
책상에 느긋하게 앉아 있으면서도 혹시 어떻게 나오나 눈치를 보고 있던 모든 위원이 바로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이들도 개구리가 되는 영상을 봤다.
파라피나가 법사위 상임고문이라고 나타났을 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잘 못 보이면 개구리가 되거나 잡혀가서 패가망신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의 원내대표들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찔러나 봐.’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게 지금까지 법안이 수정되어 온 이유였다.
그런 이들에게 파라피나가 다시 말했다.
“차라리 국회의원이라는 것들을 모조리 개구리로 만들어 버리고, 새로 뽑는 게 좋겠어. 이번 기회에 개구리 국회를 한 번 만들어 볼까?”
그런 파라피나의 말에 모두가 다시 ‘제발 살려주세요.’ 라며 벌벌 떨어댔다.
그런 이들에게 파라피나가 다시 말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만 더 기회를 주겠어. 백성을 위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개구리로 만들어줄 수밖에 없어. 자기 당으로 돌아가면 내 말 분명히 전해. 이따위 쓰레기들은 다시 가져가.”
“네, 넵.”
파라피나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자, 한참 후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는 위원들이었다.
위원들이 그런 추태를 부리는 동안 서기나 국회 행정처에서 나온 직원들은 고소를 머금고 있었다.
위원들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 위원은 ‘그러게 이러면 안 된다고 그리 말했는데.’라고 투덜거렸다.
또 한 위원은 ‘법사위에서 벗어나야겠어. 이러다 제 명에 못 죽겠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각 당의 원내대표실에서도 고성이 오갔다.
법안을 수정하자고 주장했던 모든 의원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였다.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개구리가 될 뻔했어! 당신이 법사위 들어가!’
아무리 고참 의원이더라도 목숨 앞에서는 대우해 줄 여력이 없었다.
원내대표들은 하나같이 사색이 되었다.
원내대표들은 다시 모였다.
결론은 쉽게 났다.
‘개구리 되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원안대로 합시다.’
그런 대표 중에 구나라당 대표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이거야 원. 누가 국민의 대표인지 모르겠네.’
그런 그에게 다른 대표들이 쌍심지를 켰다.
‘아직도 당신네가 이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도 개구리가 되어 봐야 정신 차릴 거요?’
‘국민의 뜻을 우리가...’
‘닥쳐욧! 우리 사이에서도 그런 입에 발린 소리나 할 거면, 다시는 보지 맙시다!’
다음날부터 올라오는 법조문이 바뀌었다.
파라피나가 마누스의 정보를 토대로 대한민국의 실정에 맞게 수정한다고 했던 법안 중에서 문화나 국민 정서 등에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수정안으로 제출되었다.
그때부터 파라피나는 입을 다물고 법사위의 위원들 말을 듣기만 했다.
법사위의 위원들은 위원장부터가 너무도 진지하게 회의에 임했다.
서로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고, 가급적이면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켜나갔다.
가장 바빠진 사람들은 서기와 사무처 직원들이었다.
예전처럼 서로 싸움도 해 주고 해야, 몰래 쉬기도 할 텐데, 지금은 너무 빨리 진행되어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였다.
법사위나 상임위에서는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 많은 법령과 시행령 등을 언제 이렇게 세밀하게 수정했는지.
한편 테라니우스가 새 몸을 입은 기사들을 연결해 준 전 세계의 축구단, 야구단에서는 다들 난리가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특별한 체력 단련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한 곳도 있다.
입단 시험 중에 가장 중요한 체력 검증에서 다들 최고점을 받은 것이다.
체력, 민첩, 근력 등에서 그동안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체구는 왜소한데 어떻게 이런 체력과 근력이 나오는지 너무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3부 혹은 4부에 입단하려던 계획이 구단측의 요청으로 다들 2부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축구도 야구도.
당연히 기본기와 여러 기술도 기존 최고의 선수 못지않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런 이들에 대한 소식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요 리그가 아니면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운동선수에 대한 취재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야구는 메이저리그, 축구는 각 리그의 최상위 구단에 소속된 한국 선수만 취재하던 것이 세계 어떤 리그, 어떤 구단에 소속되어 있어도 소식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조중동 세 개 언론사가 앞장서서 알렸다.
새 몸의 가족들이 가장 행복해했다.
중국은 난리가 벌어졌다.
은행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비밀리에 관리하던 금고에서 금괴와 위안화가 모조리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 곳을 지목했다.
‘대한민국의 지킴이’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불매운동이니, 무력시위니, 주석궁 대변인의 성명 발표로 협박이라도 잔뜩 했을 것이다.
이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저 나오느니 한숨이요, 뭐로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만 앞섰다.
차라리 나라를 저 멀리 아프리카로 옮기자는 말도 나올 정도다.
어차피 저 대한민국 근처에 있다가는 나라가 제 꼴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툭하면 들고 튀는 데다, 뭐라고 하소연도 못 하고, 그렇다고 무슨 증거도 없고.
그동안 아프리카의 자원을 긁어모으기 위해 많은 돈과 인력을 송출했으니, 차라리 아프리카로 나라를 옮기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그나마 현재라도 가진 무기를 들고 가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영국, 미국, 프랑스가 섭정 형식으로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인구와 무기라면 최소한 아프리카 대륙의 반 이상은 차지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질 때, 드디어 응답이 내려왔다.
중국의 모든 TV가 아침 7시부터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뒤르칸트가 중국어로 열심히 떠들어댄 덕분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앞으로 중국의 국경은 얼마 전에 진시왕이라는 놈이 만든 만리장성 이남 지역으로 한다. 아울러 만리장성 이남 4km까지는 비무장지대로서 누구도 살 수 없다. 그 지역에 사는 인간들은 무조건 만리장성 위나 아래로 피해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도 중국은행 계좌를 만들어라. 신강 위구르와 티벳, 내몽골, 동북 3성까지 모두 비워라. 위에 말한 지역에 사는 한족들에게 배상금과 위로금, 이사 비용을 지급하겠다. 당장 내일부터 중국은행에 가장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라. 그 계좌에 돈을 넣어 주겠다. 그 돈 받으면 일주일 안에 만리장성 이남 지역으로 이사 가라. 한족 이외의 사람은 그곳에 남아도 좋다. 만약 이사 가고 싶으면, 마찬가지로 중국은행 계좌를 만들어라. 돈만 받고 이사 안 가면 어떻게 되느냐고? 헐헐헐. 간이 얼마나 큰지 열어서 확인해 줄 것이다. 켈켈켈.’
이런 방송이 온종일 계속되었다.
중국 지도부는 할 말이 없었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지킴이에게 항의할 수도, 어떻게든 버텨보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그저 망연자실해서 동북 3성에 있는 모든 군대를 만리장성 이남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라고 닦달할 뿐이다.
다음날부터 중국은행의 모든 지점에 대소동이 벌어졌다.
위에서 말한 지역에 있는 지점에서만 대소동이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지역에 사는 사람이 전부 중국은행 지점으로 몰려들었다.
새로 개설하려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돈을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동안 무서워하던 공안이 떠서 총부리를 들이대도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중국 정부에서 전체 TV 방송을 통해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위에 지킴이가 말한 지역과 관련된 신규 계좌 개설이 아닌 경우에는 중국은행을 이용할 수 없다는 성명이었다.
다른 은행 업무는 다른 은행을 이용하라고.
만약 이를 어길 때에는 중국 공산당에 반항하는 행위로 여기고 바로 즉결 처형도 할 수 있다고.
그제야 전국이 가라앉았다.
다음으로 바빠진 곳은 부동산 중개소였다.
변호사들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위 지역에서 내려올 사람들을 생각하니, 당장 부동산값이 치솟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부동산을 선점하려는 욕심이었다.
다시 다음날 그런 움직임을 확인한 정부에서 또 한 번 성명을 발표했다.
‘어제를 기준으로 부동산의 주인이 바뀐 경우 다시 원상태로 돌려라. 그리고 부동산의 가격이나 임대료는 이틀 전의 시세로 동결한다. 만약 이를 어길 때에는 중국 공산당의 힘을 보여주겠다. 즉결 처형도 불사하겠다.’
중국에서는 작은 몸부림으로 철광석과 희토류 등의 전략 자원을 수출 금지해 보았다.
얼마 전에 일본을 굴복시킨 비장의 한 수였기에 다시 한 번 써먹어 보려는 얄팍한 수였다.
하지만 다음날 바로 부두에 야적했던 모든 항구의 철광석과 희토류가 사라져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유전지대에서는 그동안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던 원유마저 끊어져 버렸다.
철광석 광산도 입구가 파묻혀 버렸다.
다시 파려면 몇 달이 걸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보고를 받았다.
내몽골 지역에서 몽골 국경 아래를 지나 몽골 땅 아래로 파고들어 가던 희토류 광산도 입구가 완전히 파묻혀 버렸다.
망연자실해진 정부에서 다시 성명을 발표했다.
‘항만 관계자가 실수로 철광석과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당자들을 모두 처형했습니다. 앞으로는 결코 수출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심려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전하는 성명인지 알 길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대변인도 저렇게 공손하게 발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왜 저런 성명을 발표하고, 저 성명을 듣게 하고 싶은 존재가 누구인지를.
중국은 그저 망연자실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기서 또 어떤 트집을 잡힌다면, 중국이라는 나라를 고스란히 들어서 대한민국에 바쳐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중국의 지도부는 다시 한 번 ‘중국의 굴기’를 내세웠다.
다만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완벽한 ‘한족 이주’를 위해 노력하자고.
이런 일이 생기면 다른 나라에서는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었다.
그 어느 나라도, 그 어떤 정부에서도 중국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는 곳이 없었다.
그저 침묵으로 자기 나라나 잘 챙기려 할 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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