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천지개벽
러시아 크렘린 궁.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았던 덕분에 대통령을 몇 번이나 해 먹고 있는 사람이 장관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가 한국에 어디까지 내어줘야 할지 의견을 말해 보시오.”
“...”
모두가 침묵하자 푸차의 눈썹이 실룩했다.
그 모습에 한 장관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우리가 먼저 항복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
그런 그에게 푸차 대통령은 살기를 쏘아 보냈다.
화들짝 놀란 장관이지만, 일단은 대통령이 먼저 말을 하게 해야 했다.
그게 협박일지라도.
“중국처럼 우리도 먼저 은행의 돈과 금괴를 모조리 잃고 나서 말인가?”
“...!”
그제야 모두의 얼굴에 심각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런 그들을 둘러보며 혀를 찬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미국과 비교하는 것조차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미국조차 지금은 완전히 허리를 굽히고 있어. 그동안 우리는 중국을 부추겨서 미국과 세계 질서에 금을 만들고 있었어.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대한민국의 지킴이 때문에 모든 계획이 쓸데없는 일이 되어 버렸어. 당신들도 알다시피 지금 중국은 완전히 알맹이 없는 쭉정이가 되어 버렸지. 바보 같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저런 중국을 봐 주고 있다 보니, 중국이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이잖아. 자. 이런 국제 정세에서 우리가 중국처럼 버텨보자고?”
대통령의 질타가 끝나자, 반대쪽에 앉은 장관이 입을 열었다.
“각하의 혜안에 경의를 표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우리의 지킴이로 모셔오는 것이지만, 그건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 몽골이 사실상 나라를 대한민국에 가져다 바치겠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을 저들이 미워하지 않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대통령의 눈치를 살짝 살피는 장관이다.
대통령은 특유의 깊은 눈매로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
이에 살짝 마른 침을 삼킨 장관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제안은 무조건 국경을 맞대지 않는 선까지 양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즉, 바이칼 호수부터 그 이북까지 선을 그어서 동쪽은 모두 대한민국에 양도하는 거지요.”
“...흐음. 바이칼...”
대통령이 신음을 흘리며 바이칼을 되뇌자, 또 다른 장관이 말을 받았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고구려가 영토를 가장 넓게 가져갔었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 고구려조차 몽골, 카자흐스탄 정도였지, 그 이북 지역으로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연해주, 블라디보스톡과 사할린 정도만 넘겨줘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대신 모스크바까지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철로를 확대하는 사업을 제안해서 러시아와 대한민국의 교통을 연결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흐음. 그것도 좋군. 또 다른 의견은 없나?”
“...”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그 모습에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돌아가서 깊이 고민해 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러시아가 고민에 빠진 사이 중국에는 대 이주가 시작되었다.
21세기의 엑소더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돈인지, 누구 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통장에 상상도 못 했던 돈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장이 즐거우니 가족도 웃을 수 있었다.
이사? 먼 곳으로 옮겨 가야 하는 점?
오히려 지긋지긋한 가난과 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미 암흑가에서는 오래전에 거처를 옮겼다.
떠나는 이들을 괴롭힐 사람들도 없었다.
그저 어디로 가야 할 지 그것만 걱정이었다.
그런들 어떠하리, 이 정도의 돈이 있으면 어디라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중국의 굴기’가 크게 작용했다.
열차, 비행기, 버스, 트럭 등.
사람과 짐을 옮길 수 있는 모든 교통편을 엄청나게 몰아줬다.
동북 삼성의 모든 도로와 철로, 공항, 부두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춘절이나 설 연휴가 아님에도 이리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중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얼마 전 중일 전쟁, 국공 전쟁의 피난행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 일반인들에게는 공포로 군림하던 군대도 피난 행렬에 동참했다.
중국 정부에서 가장 신경 써서 빼돌리는 집단이 군부였다.
그나마 잃어버리지 않은 3세대 무기라도 알뜰하게 챙겨야 했다.
이들 동북 삼성에 주둔했던 군벌을 인디아와 네팔, 부탄과 국경을 맞대는 티벳 자치구 지역으로 옮기기로 했다.
사실 중국의 군부는 자치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 때문에 동북 삼성에 자리하고 있던 군부는 그 자리에 남고 싶었다.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경의 한마디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옮기게 되었다.
‘몽땅 빼앗기고 쫓겨날래?’
다행히 북경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북경에서도 동북 삼성의 군부가 자신들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다.
북경 군구나 남경 군구를 동원해서 공격할 수도 없었으니까.
기존 티베트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군구에서 반발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로서는 가장 강력한 군구가 자신의 자리에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다른 군구보다 강력하고 산업기반도 컸던 동북 삼성 군구를 통해서 자신들의 군구도 키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어차피 둘 다 변방의 군구여서 소외감이 통하기도 했고.
여차하면 이번 기회에 독립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신장 위구르 독립투쟁단에서는 대한민국 지킴이의 발표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지긋지긋하던 중국놈들을 더는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보다 더 좋은 점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혜택이 자신들에게도 내려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들 다음으로 기뻐한 곳은 뜻밖에도 카자흐스탄이었다.
그동안 중국과 맞대고 있던 국경 지역은 거의 중국인으로 뒤덥힌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중국에 항의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항의와 중국인을 내몰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생필품 때문이었다.
자체 생산은 거의 러시아계가 장악한 상태로 물가가 비쌌다.
다른 길은 카스피해로부터 수입하는 경우였다.
그 물건들도 운송비가 비싸, 전체적인 물가가 비쌌다.
질은 떨어지지만, 중국산은 가격에서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내버려뒀더니, 카자흐 국경 지역의 카자흐 영토에는 어느새 중국인들이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래서 늘 골치를 썩이고 있었는데, 이번 조치로 중국인들이 모두 밀려 나가버렸다.
카자흐스탄 외교부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대한민국 정부에 생필품을 수출해 달라는 협조요청을 보낸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연락을 받은 외교부에서 청와대로 보고했다.
문대통령은 즉각 지킴이 어르신에게 메일을 보냈다.
‘혹시 대한민국과 몽골, 카자흐스탄의 국경으로 공간도약 고속도로를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마누스의 질문을 받은 테라니우스는 ‘당장 해 줘야 합니다.’라고 강권했다.
‘헐헐’ 웃은 마누스가 바로 청와대로 연락해서 가능하다고 알렸다.
아울러 어디와 어디를 연결할지 장소만 알려달라고.
문대통령은 외교부와 산업자원부의 협력으로 아예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까지 공간도약 고속도로를 연결하기로 했다.
지금 전 세계에서는 공간도약 고속도로가 최고의 화제가 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 대한민국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공간도약 고속도로다.
많은 나라에서 자기네 나라에도 공간도약 고속도로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일이 세계에 알려지면, 더욱 많은 나라에서 도와달라고 매달릴 것이다.
문대통령과 외교부, 산업자원부 장관 등은 이번 일로 전 세계 고속도로 건설 공사를 얼마나 수주하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고 좋아했다.
문대통령의 연락을 받은 마누스는 테라니우스에게 우리나라의 모든 고속도로에도 공간도약 차선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테라니우스는 바로 시작하겠다고 흥분해서 외쳤다.
마누스는 문대통령에게 답장을 보냈다.
‘우선 대한민국의 모든 고속도로에 공간도약 차선을 만들고 이어서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에도 만들어 주겠다.’
마누스의 연락을 받은 문대통령은 바로 외교부에 지시를 내렸다.
‘관세청과 출입국관리실 등을 설치할 계획을 세워주세요.’
이제 남한의 전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공사에는 주변에 있는 모든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동원되었다.
마법사와 기사가 한 명씩 파견 나와서 그들에게 마나를 찍었다.
그들이 어디로 가더라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감자들의 관리에 대한 어려움을 이유로 망설이던 소장이나 행안부 공무원들도 마법사의 한 마디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못 믿나?’
각 현장에 파견된 마법사들은 딱 한 번 시범을 보였다.
온몸에 문신으로 도배한 한 수감자를 문신 개구리로 만들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온몸을 벌벌 떨었다.
다시 사람으로 바꿔주자, 문신 개구리가 되었던 수감자들도 순한 양처럼 변해버렸다.
서로 알력 다툼이니, 체통이니, 위신이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근으로는 일당을 시세에 맞게 지급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술을 가진 수감자들이 너도나도 튀어나왔다.
기술직은 최소한의 시세가 한 배 반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과 기사들은 ‘클클클’ 웃으며 기술을 확인하고 받아들였다.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 많은 돈, 특히 날이 갈수록, 써도 써도 쌓이기만 하는 돈을 써야만 했으니까.
미사일 엔진 연구소에서는 사거리와 중량 제한 때문에 고심에 빠졌다.
그런 이들을 보고 마법사는 단 한 문단만 말했다.
‘지금 누구 눈치를 보는 게냐?’
위성 발사까지 할 정도로 이미 관련 기술은 준비가 끝나 있었다.
지킴이 어르신 덕분에 이제 전 세계 어디든 날려보낼 수 있는, 심지어 저 우주와 달까지도 날려보낼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부서인 미사일 방어 연구부서에서는 지킴이 어르신이 내어준 설계도로 작은 포탄까지 요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전함, 전차, 전투기, 잠수함 등의 스텔스 기능은 전선만 연결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든 파장 흡수판을 개발할 수 있었다.
물론 당장 생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흡수판을 설계도대로 잘 만들어서 부착하기도 했다.
그런데 작동을 하지 않는다.
연구소에서나 작동 실험에서는 최고의 성능을 보였던 제품이었는데.
모두가 어리둥절해할 때, 마법사가 나섰다.
“처음 만들 때나 작동 실험을 할 때는 내가 언제나 마법을 걸어주었었다. 내가 특별히 손을 움직였는데, 그걸 본 기억이 있는가?”
“...? 아, 네. 맞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그 흡수판의 마법진을 활성화한 것이야. 이 제품들은 모두가 최종적으로 마법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어서, 마법사가 활성화해 줘야만 작동을 할 수 있게 되네. 그 점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사용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네.”
“아, 네. 역시.”
마법사는 전국을 순회하게 되었다.
엄청난 귀빈으로 대접받으면서.
그 모습을 마누스 조에서는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다른 조의 마법사들도 달려와서 그런 장면을 구경했다.
“이야! 저 정도면 황제가 부럽지 않은데? 헐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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