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시운의 방랑
19. 시운의 방랑
그렇게 대한민국의 넓어진 영토가 몸살을 앓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마누스와 테라니우스 조가 머무는 공장은 조용했다.
처음 시작했던 공장에는 그 두 조만 남았다.
나머지 학파들은 주변에 공장을 여러 곳 짓고 뿔뿔이 흩어놓았다.
테라니우스 조는 24시간 전 세계의 주식 시장을 주무르고 있다.
잠도 필요 없다.
화면에 떠오르는 숫자에 그저 흐뭇한 눈빛만 보낼 뿐이다.
반대로 마누스 조에서는 약간 심각한 눈빛이다.
아직도 세계가 조용해지지 않았다.
뒤르칸트를 통해 그렇게 경고했음에도 여전히 테러가 벌어지고 있다.
아울러 욕심을 접고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물릴 만도 할 텐데, 아직도 그대로다.
이름이나마 양심적으로 ‘점령군’이라고 붙이고, ‘평화유지군’이라는 간판을 뗀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이 점은 원로 회의에서 ‘일단은 정부를 지켜보자.’로 결론을 내렸다.
원로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었다.
시운이 없을 때 나눈 대화였다.
‘우리가 시운의 지킴이지 대한민국의 지킴이는 아니다.’
‘시운을 위해 대한민국의 위상과 안전을 높인 것 아닌가.’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가 대한민국을 마음껏 주무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각자 하고 싶은 연구에 빠지게 되면, 지금처럼 계속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 아닌가.’
‘마누스 조도 하고 싶은 연구들이 많을 텐데, 지금처럼 계속 매여있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인공지능에 맡기고 몇 사람만 신경 쓰는 게 어떤가?’
사실 마누스나 테라니우스 조에 속한 마법사도 전형적인 마법사다.
그래서 다른 학파의 마법사들이 자기 연구에 빠지는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다른 원로들이 그런 심정을 이해해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일단 비상 상황만 정리되면 그러겠다고 대답한 마누스였다.
생활마법 학파에서는 마누스의 주문에 또다시 환호하고 있다.
정기 운행할 우주선 제작을 의뢰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돈’을 벌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게는 20인 승부터 크게는 500인 승까지 다양하게 주문을 받았다.
이 우주선들은 이제 기존에 운항하던 여객기를 대체할 것이다.
‘밝은 세상 한국 항공’이나 ‘밝은 세상 아지아나’ 등이 우선하여 매입해서 운항할 것이다.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기에 우선은 ‘밝은 세상’에 속한 항공사들에 먼저 취항하고 다음으로 국내 여객기 운항 회사에서 구매를 희망하면 판매할 생각이다.
기능은 이전 우주선보다 많이 떨어진다.
투명화 기능이나 모든 파장 흡수 기능을 뺐다.
다만, 불의의 공격을 받으면, 그 공격을 흘릴 수 있는 특수 보호막 기능은 넣게 했다.
미사일의 파편을 바로 곁에서 맞게 되더라도 이 보호막이 흘려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는 민간 항공기가 외부의 공격으로 추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부의 폭탄 테러도 사전 감지를 통해 비상 경계음을 울리고, 마누스 조에 자동으로 통보될 것이다.
그럼 마누스 조에서 그 화물의 출처와 배경까지 탈탈 털게 될 것이다.
마누스는 모든 학파의 마법사에게 한가지 도움을 요청했다.
저쪽 세상의 말로 ‘에고 아티팩트’라고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물건에 지능과 인격을 부여하는 방법 연구였다.
지금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인공지능은 사실 인공지능이라고 하기 어색했다.
그저 더 많은 상황문을 스스로 만들고 그에 대한 대답을 주어진 규칙에 따라 스스로 토해내는 방식이다.
오죽하면 알파고라는 것도 기존 자료를 계산해서 답을 내어놓는 수준이지 않은가.
‘지능’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한 그런 것 말고, 진정으로 학습과 생각, 윤리를 바탕으로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지능체를 연구하기로 했다.
시운은 마탑 설립에 대한 얘기 중에, 아이들의 마법 실력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다.
그 이후로 부쩍 아이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마탑을 세우게 되고, 많은 사람이 마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물론 마법을 배워봤자, 마나 발전기 근처에 있지 않으면, 또 마나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줄 마나 보호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런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글쎄?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그래서 자기 아이들은 특별하게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일었다.
그런 이유로 요즘은 거의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있다.
마누스와 테라니우스가 있는 공장과 그 근처에 있는 생활학파에는 낮에만 들른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속이 터질 때가 많다.
처음에는 마법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함에 빠져 열심히 배웠다.
알다시피 무언갈 배운다는 것, 또 숙련도를 올린다는 것은 무한 반복의 중노동이 아니던가.
아이들도 그런 무한 반복의 중노동에 지쳐버렸다.
이제는 어떻게든 마법 교육과 마나 수련에 빠질 핑계를 만들어 오기 시작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핑계라서 처음 한두 번은 혼을 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지겨움을 느끼는 일을 계속 하게 하는 것도 고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고민이 많아진 시운이다.
자기는 사실 무한 반복의 중노동으로 마법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거래 형식을 빌어 무한 반복 주입으로 배운 것이었다.
다만 그걸 숙련한다고 무한 반복 중노동을 하긴 했다.
그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딴 일로 시간 보내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가 못했다.
시운이 아이들에게 ‘앞으로 마탑이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도 마법을 배우게 될 거야. 그때 너희보다 다른 사람이 더 마법을 잘 쓰면 너희 기분이 어떨까?’라고 꾀어 보았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역시 ‘무한 반복 중노동’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래서 시운의 고민은 ‘자기처럼?’이었다.
자신 정도의 능력만 되어도 얼마든지 아이들에게 마나를 주입할 수 있다.
거기에 필요한 지식도 조금씩 주입해 줄 수 있고.
자신이 무지막지하게 당해 보면서 실증했다.
상대에 따라 어느 정도 주입하면 될지를.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자신처럼 반쪽짜리 마법사가 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쉽게 얻은 만큼, 어설퍼지는 것이 실력이고 능력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시운은 결론을 내렸다.
어른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길을 제시하는 것까지라는 사실을.
다만,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이들에게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경고는 해 주었다.
‘너희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그저 그런 마법사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건 너희의 선택이고, 선택은 책임이 따른다. 세계 최초로 마법을 배우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특권으로 최고의 마법사가 될 기회를 너희 스스로 차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시운은 이어서 체육관 한쪽에 일명 ‘마법의 구슬’을 만들어 주었다.
그 돌은 커다란 수정이었다.
거기에 마법 지식을 단계별로 주입해 두었다.
조건은 기초부터 7단계의 마법까지 매번 한 개씩만 전달되도록.
아이들 한 명에 한 개씩 만들어 주느라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였다.
다음으로 자수정 목걸이에 마법을 부어서 나눠주었다.
그 마법은 그걸 지니고 있는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기능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체육관과 집 주위에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마나와 어울려 살았다.
그러나 이곳을 벗어나면 마나가 몸에서 조금씩 빠져나간다.
그래서 몸 안에 모아두었던 마나를 지키는 훈련을 해야 했다.
일상에서 그 훈련이 자동으로 진행될 때까지.
마나가 적을 때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의 마나 고리가 3개에 이르자, 점점 힘에 겨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시운이 생활 학파의 도움으로 마나 보호 목걸이를 만들었다.
이제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도 목걸이를 두 개나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목걸이 뭉치만 따로 빼서 기존 목걸이에 붙여주었다.
모양은 이상하지만, 안전과 건강을 위해 절대로 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것도 절대로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고.
이제 시운은 가족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풀 수 있었다.
그동안 자기 인생, 일, 돈, 거기에 가족만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갖지 못한 힘을 갖게 되어서도 그저 좁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그저 자기 인생, 일, 돈, 거기에 가족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이제 돈, 일, 거기에 가족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듬직하고 든든하며, 걱정 없고, 꼭 모든 걸 다 이룬 것처럼 풍성함으로 마음이 가득했다.
꼭 모든 걸 다 이루고 죽는 어떤 사람이 마지막에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하는 심정이라고 할까.
그렇게 시운의 마음이 서서히 저물어갈 때.
마누스 조에서는 연신 끌끌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시운은 마누스 조와 테라니우스 조에 인사를 건네기 위해 들렀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고, 호기심이 생겼다.
시운이 가까이 다가와 없는 혀를 끌끌 차대는 마법사들이 바라보는 화면을 살폈다.
거기에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군대와 민간군사기업이 보였다.
한 마법사당 여러 개의 화면을 켜놓고, 각기 다른 장면을 보이고 있다.
한 화면만 바라보기에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그 내용은 수시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이 마법사들은 그런 화면을 적게는 여섯 개에서 많게는 여덟 개까지 켜 놓고 확인하고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마나로 움직여서 몸은 한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눈도 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초점이 풀려있는 듯 보인다.
이런 모습은 시운도 할 수 있다.
뇌를 몇 개로 분할 운영하면 된다.
그렇다고 매일 매시 매초 이렇게 지속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이런 생활을 쉬지않고 이어오고 있다.
역시 놀라운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시운도 이번 기회에 수련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마법사 뒤에서 뇌를 분리하고, 시각을 전체화 했다.
그러자 모든 화면이 실시간으로 사진 찍듯 눈에 들어오고, 그 내용이 각 뇌에서 자동으로 정리된다.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뇌가 과한 반응을 일으킨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 대마법사라 할 수 있다.
한참 그 상태로 견뎌내자, 이제는 적응의 단계에 들었는지, 머리가 아픈 것도 뜨거워지는 것도 줄어드는 것을 느끼겠다.
그렇게 한참을 보면서 분석까지 해 보자, 절로 한숨이 나온다.
역시 ‘인간의 천적은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의 천적은 인간의 욕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이 마법사가 보는 화면에서는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전투, 학살, 테러, 약탈 등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 잠시 스쳐 가는 화면에는 그 배후 인물이나 조직까지 나타났다 사라졌다.
시운은 그 속도를 따라잡아 나갔다.
그리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비록 초월적 존재만큼 마나가 늘었고, 고리도 다 채워가지만,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운에게.
이들의 행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게 했다.
시운도 얼마 전에야 테러의 배후가 진성 테러단체가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악질적이고 악마적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운이 오래전 종말론의 실체라는 영상을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일종의 극단적인 암흑 배후론이라 웃고 넘겼다.
지금 이 화면을 보니 결코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 인간을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고 이익을 위해 테러를 지원하는 것을 보니.
- 작가의말
또 죄송합니다.
몇 분들이 시운 = 쥔공 이 너무 임무를 등한시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주셔서 부리나케 수정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쥔공을 마구마구 굴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괘씸하긴 했죠, 오로지 ‘자기’ 밖에 모르는 게?
결국, 괘씸하면 굴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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