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시운의 방랑
시운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당황했다.
지금까지 어떤 불의를 봐도 피하기 바빴다.
힘도 없었고, 나나 내 가족이 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해 왔다.
이제는 힘이 생겼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도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피해버렸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저 형님, 누님들에게 떠넘겼다.
그런데 이제 형님들과 누님들도 서서히 손을 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한민국의 지킴이라는 본분은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 외 세계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려는 모습이다.
비록 자신이 그들 영혼의 주인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자신이 ‘부탁’이라는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면 따라줄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모른 척하고 지내고 있지만,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를 존재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이 저 형님, 누님들을 이 세계로 초대할 때에 그들에게 자유와 평안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저분들은 자기가 부탁하지도 않아도 알아서 자기 주변과 이 나라, 더 나아가 주변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더 나아가서 아예 누구도 엉뚱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존재들에게 여기서 더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자기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나머지는 자기가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가 뭘, 얼마나 해 나갈 수 있을지 알 수도 없고, 알 능력도 없다고 자신을 낮추게 된다.
아직도 자기 능력에 현실감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해 보고 싶어졌다.
이제 가족에 대한 걱정도 없어졌다.
아이들이 자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이 정도면 정말 말 그대로 ‘죽어도 여한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에게 혼자 며칠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한다고 말릴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내조차 나이가 드니, 자기 시간 보내기에 정신이 없다.
오히려 시운이 그녀의 일상에 끼어들까 봐 신경 쓰는 눈치다.
생각을 마친 시운이 마누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운의 마나가 혼란스러웠던 것을 신경 쓰고 있던 마누스도 고개를 돌려 시운과 눈을 맞췄다.
시운이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 제가 저놈들을 혼내 주고 싶습니다.”
“오오! 그러시게. 그럼 몇 명을 추려 보겠네.”
시운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누스가 지원을 꺼냈다.
그러나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들 하고 싶은 연구들이 많을 텐데, 저 혼자 돌아다녀 보겠습니다.”
“혼자?”
그러자 옆에서 시운의 말을 신경 쓰던 마법사와 기사들도 고개를 들었다.
“혼자?”
“혼자?”
다들 놀란 모습이었다.
시운이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하려는 모습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게 된다.
다들 놀라는 모습에 시운이 쑥스러운 듯 어설픈 미소를 그렸다.
“에이. 형님, 누님들. 제가 뭐 어린 앱니까? 혼자 해 보겠다니까 다들 너무 놀라시는 데요?”
시운의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마누스가 대표로 시운을 놀렸다.
“헐헐헐. 그동안 자네가 혼자 뭔가를 하려고 나선 경우는 몇 번 없었네. 기억에서 지워진 건가? 클클클.”
“... 하. 하. 하. 제, 가 좀 그렇긴 하죠?”
그렇게 다들 잠시 웃었다.
이어서 마누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뭘 하고 싶으신가?”
“이제는 지구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무리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도 옆 동네처럼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 전에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저놈들을 혼내주고 싶습니다.”
“그러시게. 좋은 생각일세. 그럼 이왕 하는 것 우리도 도우면 더 좋지 않겠는가?”
마누스의 제안에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시다시피 이 세상에서 저를 어쩔 수 있는 무기는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거기다 형님들과 누님들도 하고 싶은 연구가 많으시고요. 기사 형님이나 누님들도 이곳저곳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을 거고요.”
마누스와 주변 존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긴 한데, 우리야 뭐 소털같이 많은 시간에...”
그런 마누스에게 시운이 살짝 미소를 보여주었다.
“제가 형님들과 누님들을 이 세상으로 모셔올 때, 자유롭고 평화로운 여생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족하다 보니, 형님들과 누님들이 저쪽 세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보내시게 되었지 않습니까? 거기다 제가 생각도 못 했던 이런 큰일들을 해 주시고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가 해 나가 봐야지요.”
“헐헐헐. 좋은 생각일세. 그럼 자네가 알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시게.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할 테니,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네, 형님.”
마누스는 마법사들과 기사들의 현재 상태와 성정을 설명했다.
시운은 자신도 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용히 들어주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마법사들은 호기심의 존재들이 아닌가? 그러니 자기 연구에 빠져 살더라도 무언가 새로운 일에 가끔 바람을 쐬고 싶어지지. 거기다 기사들은 자꾸 움직이고 싶어 하고. 그러니 원하는 마법사와 기사들에게 돌아가며 자네를 따라다니게 하세. 자네를 보호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존재들이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자네가 안내해 준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떤가?”
“하. 하. 하. 역시 형님은 못 당하겠습니다. 상대가 거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능력은 꼭 배우고 싶은데. 하하하.”
결국, 마누스가 모든 마법사와 기사에게 시운의 뜻을 알리고, 원하는 존재들은 신청하도록 협상했다.
시운이 외유할 때마다 돌아가며 시운을 따라 나서기로.
시운도 흔쾌히 승낙했다.
시운으로서도 잘 느끼고 있다.
사실 마법사건 기사건 이곳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원한다면 개인 집이나 공장, 마법진 등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럼 원하는 존재 그 누구에게든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중에 누구도 시운의 곁을 떠난 존재가 없다.
워낙 독립적인 존재들인데도, 시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인간적인 정이 들어서라는 생각은 사실 시운도 하지 않는다.
다만, 굳이 따로 나가서 혼자 살아가기가 싫기 때문일 것이다.
시운도 비록 삼백여 명이 넘는 존재들이지만, 개인적으로 긴밀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는 스무 존재가 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외의 존재들이 서먹하거나 어색한가 하면, 그건 또 전혀 아니다.
저쪽 세상에 살 때, 개인적으로도 조금씩은 다 정을 나누어 왔었기에.
어느 누가 되었든, 함께 다닌다면 시운으로서는 더할 수 없이 반가운 일이다.
마누스가 시운에게 말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나나 우리 학파 마법사 중에 누구에게든 먼저 알려주게. 그럼 미리 그곳의 정보를 추려 주겠네.”
“아! 그게 좋겠네요. 하.하. 고맙습니다.”
“별말을...”
시운은 마누스 조에서 다른 건물을 돌았다.
다니면서 새로운 마법에 대해서도 자료를 얻었다.
당분간 이곳을 들르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서 미리 인사도 나눴다.
특히 생체마법 학파에서는 머리 아픈 생체 마법도 배우게 되었다.
의사나 인간의 몸에 대해 많은 시간 연구에 빠져들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마법이 많았다.
그래도 자료를 보면서 마법 사용법을 배우자, 일단 정리는 되었다.
다른 학파에 들러서도 새로운 마법을 배웠다.
시운은 열하루가 지나서야 인사와 새로운 마법 배우기를 마칠 수 있었다.
고개를 흔들었다.
‘여행 한 번 떠나기 힘드네.’
그동안 가족들에게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밝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나마 ‘어디를 가느냐, 얼마나 갔다 올거냐’ 등으로 걱정을 비춰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이나 아내는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뿐이다.
특히 아내는 자기도 가자고 할까 봐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내는 지금 이 주변 사람들과 지내면서 매일 등산도 다니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느라 바쁜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같이 가겠다는 빈말이나마 듣고 싶었는데, 그게 없으니 약간 서운하긴 했다.
한편에서는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서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렇게 시운은 기사 두 존재와 소형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생활 마법 학파에서는 시운 전용으로 고급스럽게 우주선을 고쳐 주었다.
외형은 별로 건들지 않았다.
어차피 투명화 마법을 걸고 다닐 것이기에.
다만 속은 대형 여객기의 최고급 특등석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방이 세 개로 나뉘어 있다.
한 방은 넓은 고급 침대까지 마련되어 있다.
한 방은 주방 겸 거실, 또 한 방은 안락의자와 앉은뱅이 탁자, 화상 통신 장치까지 준비되어 있다.
무기도 다양했다.
번개 마법을 위력을 조절하며 다양하게 발사할 수 있다.
광역 잠들기 마법, 태풍 마법, 눈보라 마법, 심지어 지옥의 불꽃 마법까지 준비되어 있다.
거기에 조종석에서 조종간에 마법을 사용하면, 그 마법을 10배나 증폭해서 발사하는 장치까지 준비해 주었다.
비록 전투기의 미사일처럼 몇십 킬로미터 밖에서 공격할 수는 없다.
그래도 최대 이 킬로미터 밖에서는 마법으로 공격할 수 있다.
마법도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이다.
용의 둥지처럼 공간확장 마법을 사용했고, 창고 방도 여섯 개를 만들어 두었다.
그 모두 보존 마법이 걸려 있다.
무엇을 넣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시운이 좋아하는 먹거리 완성품과 재료를 가득 채웠다.
시운이 가장 먼저 목표를 정한 곳은 시리아였다.
시운이 마누스 학파가 정리하는 화면에서 한참 동안 살폈던 곳이었다.
그 화면에 나타나는 정보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화가 났다가 헛웃음이 났을까.
시운은 그 화면을 통해 정보를 정리할 때 생각을 굳혔다.
자신으로서 굳이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생각이 없다.
그저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서로 이익을 위해 말 그대로 지랄 발광해 대는 짓을 없애버리고 싶어졌다.
누가 잘했고, 누가 정의고 이딴 것 생각하는 것도 머리 아프다.
정보를 정리하다 보니, 어차피 모든 분쟁의 동기는 ‘이익’ 때문이었다.
정부군 뒤에 있는 러시아, 이란, 레바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
반정부군 뒤에 있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카타르 등.
어느 쪽에도 적대 당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암암리에 후원을 받고 있는 IS.
시운으로서는 그렇게 정리되는 정보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TV나 소식들을 통해 그저 테러단체만 욕했었다.
하지만 그 뒷면의 정보들을 확인해 보고는 그저 ‘인간의 욕심’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오죽하면 ‘이 지구에서 가장 위협적인 기생충은 인간’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까.
그래서 시운은 시리아부터 날아오고 싶었다.
열두 시간을 날아온 시운은 우선 한반도보다 작은 시리아와 시리아에 공습해 대는 주변 국가의 공군비행장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시리아 안에 있는 무력단체와 무기들만 날려버린다고 시리아가 조용해질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시운의 우주선이 느긋하게 시리아 내부와 외부를 날아다니는 동안에도.
많은 전투기가 날아다니며 폭격도 하고, 서로 전투도 하고, 아예 보자마자 도망가기도 했다.
그런 전투기들은 주로 터키와 이란에서 드나들었다.
미국제 전투기도 있었고, 러시아제 전투기도 있었다.
스웨덴제나 프랑스제도 보였다, 비록 소수였지만.
시운은 시리아와 그 주변 나라의 지도를 띄워놓고 위치마다 표시를 시작했다.
- 작가의말
오늘 글은 시운이 뺑이 치게 되는 이유를 늘어놓는 부분입니다.
가뜩히나 재미 없는 제 글에서 유독 더 재미 없을 부분이군요.
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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