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시운의 방랑
시운은 사전에 마누스 조의 이 지역 담당 마법사에게서 상세한 정보를 얻어왔다.
시리아 내전의 원인부터 그동안의 과정, 전망까지.
그 덕분에 아마도 지구 상에서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게 되었다.
심지어 흔히들 배후 세력이라고 하는 인간들이나 단체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배후 세력들은 상황과 이권에 따라 이쪽저쪽을 가리지 않고 지원해 왔다.
딱히 한 세력만 지원해 오는 세력들도 있지만, 어차피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어서 한 세력만 지원하지 않았다.
시운이 더 화를 내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살아있는 사람들, 특히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을 바둑판의 작은 돌멩이보다 더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라고 규정해 버릴 정도로.
시운이 마나화되어 가면서 가장 강한 철학으로 자리잡은 이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뿌렸으면 그 뿌린 것만 거둬야 한다.’
마나를 얻었으면, 그 얻은 마나로만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마나를 얻음과 함께 느끼게 된 힘에 취해서 더 많은 것, 다른 무언가로 갈아타게 되면서 인간임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
시운이 마법사들, 특히 흑마법사들에게 머리가 터질 정도로 주입받은 내용이었다.
시운도 그런 지식과 경험을 주입받을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본인이 겪어 보지 못한 것까지 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에.
하지만 성장하면서 마나화까지 닿게 되고 보니, 정말 뿌린 것만 거둬야 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시운은 뿌린 것 그 이상, 더 나아가 모두가 죽고 혼자라도 살아남아 모든 걸 독식하겠다고 덤비는 인간들을 혐오하게 되었다.
이번 시리아 지역 정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거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또 하고 싶은 일이 앞으로 이 세계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그동안 자신도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서지 않은 것은 ‘뿌린 자의 책무’에 강하게 짓눌린 점도 컸다.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가 오기도 했다.
마나화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신선처럼 자신을 마나로 흩어버릴지,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이 세상에 남아 자기 힘을 사용할지.
마나화가 완성되어 갈수록 가족에 대한 애틋함도 엷어졌다.
거기에 자기가 없어도 이제는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생겼고.
그런데 자신의 여리고 바보같은 심성에 불을 질러 버렸다, 시리아 배후 세력들이.
그렇다고 무턱대고 폭주하기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소심한 본능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자기 생각과 실력 발휘가 앞으로 이 땅을 살아갈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시운은 마누스 조에서 받은 정보대로 시리아 중심부터 동심원 형태로 시리아 전 국토를 둘러보았다.
다음으로 시리아를 중심으로 주변 국가들도 돌아보았다.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란, 터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주변 해역에 떠 있는 미국 함대들까지도.
역시 가장 위협적인 해충은 IS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리 정보를 통해서 알게 되었던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이놈들이 가장 위협적인 이유는 일반 국민 틈에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따로 군부대를 가지고 있는 다른 세력과 달리, 이놈들은 일반 국민 거주 지역 안에 숨어 있다.
그것도 같은 건물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그러면서 일반 국민들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때로는 총알받이로, 때로는 노예로, 심지어 몸종으로까지.
더 나아가 무한 보급 대상으로.
시운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자기 몸에 작은 생채기만 나도 아프다고 펄쩍펄쩍 뛰는 놈들이다.
그러면 남이 아픈 것을 보면, 최소한 ‘아프겠네.’라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놈들은 ‘남의 아픔은 곧 나의 기쁨’이라는 생각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처럼 확인되었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사방에 흩어져 있는 수뇌부였다.
아무리 뒤에서 지원해 주는 세력이라도 수틀리면 언제든지 자신들을 제거하려 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늘 흩어져서 생활하고 활동한다.
한 조직의 수뇌가 몰살당해도 다른 수뇌부가 그 활동을 이어받아서 테러와 전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와 운영을 세분화해 두었다.
확실히 세계적인 단체는 테러 단체라고 할지라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시운은 마누스 조에서 준 정보를 토대로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첫 번째 목표는 IS의 모든 수뇌부 ‘소멸’이다.
말 그대로 ‘소멸’이다.
누구도 알 수 없게 그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하는 것이다.
사로잡아서 뒤를 캐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마누스 조에서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
배후 세력이나 IS에게 거액을 건넨 여러 단체나 개인도 모두 파악하고 있다.
그저 대한민국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내버려두고 있을 뿐.
그래서 시운은 그저 간단하게 ‘소멸’만 시키려 마음먹었다.
배후 세력들은 마누스와 테라니우스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털어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지금보다 더 큰돈이 필요할 때라던가, 한꺼번에 많은 인력이 필요할 때라던가.
시운은 두 기사에게 자기의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 기사는 드디어 할 일이 생겼다고 두 눈을 반짝였다.
시운이 설명할수록 밝아지는 네 눈을 보며, 시운이 잠깐 마른 침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시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불쌍하지도 않은 놈들, 명복도 못 빌어준다.’
시운의 생각은 단순했다.
이미 파악하고 있던 수뇌부들이 숨어있는 건물 상공 10미터 높이의 좌표를 확인한다.
모두 열여덟 곳이다.
가장 먼 곳부터 지그재그 형식으로 ‘소멸’ 작업을 시작한다.
한 곳마다 시간은 37초.
방법은 단순 무식하게.
수뇌부들과 호위 병력, 거기에 눈에 띄는 사람 중, 무기를 소지한 모든 이들.
거기에 시간이 남으면, 주변을 오러와 마나로 탐색해서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챙긴다.
사실 다른 건 없고 쇳덩이와 화약을 챙긴다는 개념이다.
기사들은 이 세계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철의 강도였다.
워낙 검과 오래 살아오다 보니, 철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된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 세계의 철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성질의 폭이 너무도 넓었다.
그래서 기사들은 쇳덩이를 보면, 자동적으로 군침을 흘리게 되었다.
다음으로 혼을 쏙 빼놓은 것이 화약이었다.
그래서 기사들이 시운에게 무기와 화약을 챙기자고 제안한 것이다.
사실은 쇳덩이와 화약을 챙기고 싶은 것이지만.
명분도 좋지 않은가.
무기를 남겨두면, 또 어떤 놈들이 다른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게 될지.
시운도 무기와 화약에 대해서만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만이라도 무기 청정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살아왔기에.
드디어 활동이 시작되었다.
시작 전에 마누스에게 활동 계획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누스가 여섯 명의 마법사와 열두 명의 기사를 데리고 바로 나타났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티가 너무 났지만, 그걸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신 난다고 두 눈을 반짝이는 이들에게여서 더욱더.
하지만 시운과 함께 있던 두 기사는 노골적으로 씩씩거렸다.
그렇다고 마누스에게 대놓고 대들지는 못했지만, 서로 들으라는 듯이 꿍얼거리는 작은 반항은 버릴 수 없었나 보다.
그에 마누스 옆에 있던 기사 중의 원로가 슬쩍 오러를 피워올렸다.
“재미있는 건 콩 반쪽이라도 나눠 먹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크흠. 누가 뭐라 했습니까?”
“흠흠. 뭐, 그야 당연하지요.”
그렇게 두 기사의 불만을 잠재운 후 작업을 시작했다.
열여덟 곳을 일곱 개 조로 배당해야 했다.
시운은 가장 중요한 본부를 마누스 조에 배정했다.
마누스는 시운의 뜻을 알아채고 싱긋 눈빛을 보였다.
다섯 개의 지점에 한 개 조씩 배정했다.
나머지 열두 지역을 시운의 조에서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조에서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시운의 조에서는 아쉽지만 그래도 열두 개나 할당받은 것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끝으로 시운은 모두를 돌아보며 한 마디만 건넸다.
모두도 그 말을 따라 했다.
“소멸.”
“소멸.”
“소멸.”
“소멸. 켈켈켈.”
사실 ‘소멸’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 방법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그저 가장 빨리 숨을 끊어 놓는 것.
어차피 극심한 고통을 준다고 해서 반성할 놈들도 아니고.
최대한 빠르게 이 세상에서 지워주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소멸’이라는 유치한 인사를 끝으로 모두가 투명화를 사용했다.
그리고 미리 시운에게 전해 받은 담당 구역의 좌표대로 공간이동으로 사라졌다.
여기저기 마나 파동이 터져 나왔지만, 잠시 돌개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정도로만 여길 것이다.
모두가 떠난 후 시운은 남은 두 기사와 눈을 맞췄다.
두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운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도 시작할까요? 옥상에서 42초 후에 다시 보는 걸로 하면 되죠?”
“설렁설렁해도 되겠구먼. 그럼 쇠붙이와 화약도 다 챙겨올 수 있겠고. 켈켈켈.”
그렇게 시운이 먼저 사라지고 두 기사도 투명화로 몸을 감췄다.
시운은 건물 세 채에 나뉘어 있는 인기척을 확인했다.
시운은 오른쪽 건물, 두 기사가 중간과 왼쪽 건물을 맡았다.
시운은 오른쪽 건물 맨 위 구석 방으로 이동했다.
더위에 낮잠 자던 세 명 중 한 명이 어떤 기척을 느꼈는지, 살짝 꿈틀댔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움직임이었다.
잠들었던 세 명의 머리에 작은 구멍이 하나씩 생겼다.
이어서 피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시운은 이미 그 주변에 있던 모든 무기, 칼, 총, 총알, 수류탄, 알라봉 등을 모조리 아공간에 챙겼다.
그들의 구멍에서 피가 조르르 흐를 때, 시운은 이미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시운이 사용한 것은 얼음 화살이다.
굳이 불을 내거나 피를 많이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나도 적게 들고 효과도 확실한 얼음 화살이 가장 편하게 생각된 이유였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던 사람들도, 더위에 늘어져 물담배를 머금던 이들도, 독한 담배 연기로 너구리 소굴을 만들던 사람들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방에 모였어도, 그들의 머리 한 곳에 구멍이 뚫리는 시간은 0.5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들 바로 앞사람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자기 머리가 얼어버렸다.
이어서 주변에 널려있는 무기들을 챙겼다.
수뇌부의 방과 그 앞의 비서실 겸 경호실에서는 시간이 두 배나 걸렸다.
우선 수뇌부 방으로 들어가 수뇌부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 주었다.
옆으로 쓰러져가는 그를 마나로 묶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음으로 거기에 널브러져 있는 노트북, 위성 전화기, 일반 구형 핸드폰, 비밀 공간에 숨겨진 돈다발, 무기들.
사람 ‘소멸’하는 것보다 숨겨진 것 챙기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모든 걸 챙긴 후 다시 한 번 방안을 탐색했다.
고개를 끄덕인 시운이 투명화한 상태로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밖에 있던 이들이 그래도 나름 질서를 지키려는 건지 각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일어난 것을 끝으로 ‘후두둑’ 거리며 다시 쓰러졌다.
시운은 일부러 그들의 얼굴을 무시했다.
그저 묵묵히 그들의 몸에 있던 무기와 전화기, 노트북, 책상 서랍에 있는 여러 USB 등을 챙겼다.
- 작가의말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더워도 행복은 쭈욱 이어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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