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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끈을 풀어 헤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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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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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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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6)

DUMMY

“같이 온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맞습니까?”


“무슨 소릴 하는 게요?”


“조금 전 분명 위에서 사람을 본 것 같은데······.”


“저 위에서 말이오? 사람이 올라가기엔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 않소? 이런 날씨에 저런 곳에 올라갔다가는 낙사하기 십상이오.”


“당신도 저 위에서 떨어진 것 아닙니까?”


“허, 사람이 어떻게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진단 말이오?”


“부채 바람으로 비닐도 찢는데 그쯤이야······.”


남자는 쉽사리 의심을 거두려고 하지 않았다. 인수가 몸을 숨기고 있는 옥상과 선비를 번갈아보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어딜 달아날 셈이오!”


그것을 두고 볼 선비가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욱 강하게 나가기로 작정했다. 흑접선을 허공에 거칠게 휘두르자 바닥이 깨지며 사방에 파편이 튀었다. 그곳에 작은 매화가 피었다가 사그라졌다. 군자검법 풍류였다.


남자가 어깨를 흠칫하며 제자리에 섰다. 한순간이지만 빛을 내며 피었던 매화를 본 것이다.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허공을 휘두른 부채질에 부서진 바닥은 의심할 나위 없는 실제였다.


“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몰라도 더 이상 할 말 없습니다. 위에 있는 사람부터 내려오라고 해요. 누가 있는 게 확실하니까.”


“난 이곳에 혼자 왔소.”


“방금 내가 본 게 있는데 그걸 믿으라고? 못 믿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본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선비는 곤란한 표정으로 옥상을 쳐다보았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필 그때 번개만 치지 않았다면······.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뭘 고민합니까? 곤란한 것 같은데. 역시 누가 있는 게 확실하잖아요. 전 더 할 말 없습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싸워서 이길 자신도 없고.”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오. 당신은 지금 몰래 시체를 태우려다가 걸렸소. 지금 신고하면 살인죄까지 누명을 쓸 것이오.”


“마음대로 해요. 혼자서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정의의 사도 같은 거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만. 괜히 주절주절 내뱉었다가 의뢰한 사람들과 원한 관계에 있다거나 하면 나중에 보복을 당할 거 아닙니까. 입을 함부로 놀려서 죽을 바에는 차라리 감옥에 가겠습니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아직 죽고 싶은 생각 없어요.”


“내가 두렵지 않소?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당신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란 것을 모르시오?”


“하? 시체를 태우는 것도 잘못됐다고 으름장을 놓던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고 협박을? 평생 나쁜 짓이라곤 무단횡단조차 안 해본 것 같은데, 당신 같은 사람은 사람 못 죽여요.”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리 조심성 많은 사람이······. 죽은 뒤에는 후회조차 할 수 없지 않소.”


남자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태도가 너무도 당당해서 선비는 한동안 멍하니 그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생각했던 결과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자 선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죽일 수 있다고 협박은 했지만 죽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더 이상 어설픈 협박 따윈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선비는 눈앞의 남자와 바닥의 시체를 번갈아보았다. 남자에게 얻은 정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그러나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다.


“그토록 죽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소. 업보일 뿐이니 날 원망하지 마시오!”


당황한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급하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을 벌렸지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온몸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투둑. 투둑. 남자의 몸을 감싼 우비 위로 빗줄기가 떨어졌다. 선비는 웅덩이에 얼굴을 박고 쓰러진 남자의 몸뚱이를 뒤집었다. 차가운 빗줄기가 얼굴을 때려도 남자는 깨어나지 않았다.


“······죽었어요?”


어느새 옥상에서 내려온 인수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으며 다가왔다. 선비가 대답을 하지 않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코밑에 손가락을 댔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놀랐잖아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설마 했어요.”


“목숨으로 죗값을 치룰 만한 일은 아니지 않소. 이 자에게 계속해서 시신을 보내고 있는 자라면 모를까.”


“한 사람 짓이라고 생각해요?”


“모르겠소. 같은 사람이거나 조직이거나. 일단 이 자를 옮겨야겠소. 가만히 뒀다가는 저체온으로 죽을지도 모르오.”


“아, 제가 옮길게요.”


인수가 남자를 어깨에 멨다. 성인 남성을 가볍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서 허약했던 예전의 모습은 없었다. 어엿한 무림인이었다.


선비는 인수의 등 뒤에서 흔들리는 남자의 손을 슬쩍 붙잡았다. 남자의 손은 굳은 살 없이 부드러웠다. 그리고 미량의 내공을 흘려보냈다. 꽉 막힌 혈도는 그가 한 번도 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인수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오. 혹시 내공을 익힌 흔적이 있나 했건만 평범한 일반인이었소.”


“선비님도 의심이 많이 늘었네요?”


“이미 순진하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큰일을 치르지 않았소.”


선비의 무거운 목소리에 숙연해진 얼굴로 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건물 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적당한 곳에 기절한 남자를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불법시체훼손······이라고 해야 하나. 살인증거인멸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죗값을 치를 거예요.”


인수는 정신을 잃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범죄자를 향한 혐오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올라 눈살을 찌푸렸다.


그 사이 선비는 화장차 안을 조사했다. 특별히 눈길이 가는 물건은 없었다. 조수석 앞 글러브 박스를 열어보자 쓸 만한 것이 몇 개 보였다. 여벌의 우비와 지갑이 있었다.


인수와 자신의 우비를 한 벌씩 챙긴 뒤 지갑을 살폈다. 지갑 안에는 신용카드 두 장과 주민등록증 그리고 운전면허증이 들어 있었다.


“기리철.”


선비는 신분증에 적힌 남자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름도 묻지 않았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이름을 확인한 순간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최면술사의 이름도 그랬다. 마곤익. 독특한 성과 이름 그리고 피터스 어학원의 역사와 행보 등을 종합한 결과 중국에서 넘어온 가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했지만 조선시대 왜와 손을 잡았던 검계의 행보를 떠올리면 가능성은 높았다. 무림시대의 종지부를 찍게 된 청나라 말기에 갈 곳을 잃은 방랑무인들에게 손을 뻗었을 것이다.


기리철. 그저 평범해 보였던 자였다. 하지만 드문 성 씨와 독특한 이름. 역시 수상했다. 지금 상황에 성과 이름으로 의심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판단하는 것은 사치였다. 모래알만 한 실마리라도 손에 쥐어야 했다.


현장으로 돌아온 인수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


“뭐 좀 찾았어요?”


“딱히. 이름이 독특하다는 것과 여벌의 우비뿐이었소.”


선비는 고개를 저으며 챙겨두었던 우비를 건넸다. 우비를 건네받는 인수의 표정이 꺼림칙했다.


“화장범이 쓰던 우비라니. 기분이 별론데요.”


“무엇이오? 그 해괴한 호칭은?”


“영상 제목 뽑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 것부터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 자의 이름은 기리철이라오.”


“기리철? 독특한 이름인데요? 아······? 설마?”


“그 설마가 마곤익을 떠올린 것이라면, 그렇소. 비록 추측의 근거는 빈약하나 우리가 가진 것이 그뿐이니 실마리가 도처에 있다는 전제로 움직여야 하오.”


“탐정이 된 기분인데요? 마주치는 모든 것을 단서라고 생각해야겠어요.”


“이런 일이 평범하게 일어나진 않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오. 그리고 미리 말했다시피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준비를 좀 하겠소.”


“아······.”


인수는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다녀오겠소.”


선비는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인수는 얼굴을 붉히며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름 낀 하늘과 시야를 가리는 빗줄기 그리고 조명 없는 건물 안.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보이지 않을 환경이었지만 구태여 오해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잠시 뒤, 돌아온 선비가 문을 두드렸다. 우비를 입은 채 차 안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인수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라지 마시오. 나 구선비요.”


“아?”


분명 선비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며칠 전 자신이 사다주었던 셔츠와 청바지에 조금 전 선비가 건넸던 우비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 당황스러웠다.


선비가 자신의 얼굴을 어색한 듯 매만졌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오. 인피면구라 하오. 비고에 있던 것을 꺼내왔소.”


“아! 인피면구!”


인수가 놀라며 외쳤다. 그것도 잠시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인피면구면 혹시······ 맞죠? 사람 피부로 만든 가면.”


“그렇소. 보통 죽은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겨 만든다고 알려져 있소. 아마 이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오.”


“어후······. 왠지 꺼림칙하네요.”


“마찬가지라오.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것을 허락할 사람은 없을 테니 보통은 금방 장례를 치른 사람의 무덤을 파헤쳐 벗겨냈다고 하니 말이오.”


“그런 얘길 들으니 더 섬뜩한데요. 귀신이라도 쓰인 거 아니에요? 남의 얼굴 가져갔다고 원한이라도 품지 않았을까요?”


“말을 아끼시오. 말이 씨가 되겠소.”


“으스스해서요. 이 새벽에 눈앞에 시체도 있는데 갑자기 죽은 사람 얼굴 가죽까지 쓰고 나타나니까, 어휴.”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소? 귀신이 된 자를 언급하면 찾아온다는 얘기 말이오. 그만하시오.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훼손된 시신이 있어 이미 귀기가 꼬이고 있소.”


귀기라는 말에 인수가 불안하게 주변을 살폈다. 장소, 날씨, 시간 어느 것 하나 모자라지 않았다. 귀신이 나타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분위기였다.


“그럼 얘기는 그만하고 어서 가죠. 가야 할 곳도 그리 내키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큰 기운은 느낄 수 없었으니 조심한다면 소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남자들은 그런 곳에 익숙하다던데 인수 그대는 아닌가 보오?”


“음, 여자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던데 사실 열에 아홉은 호기심에 한두 번 가봤거나 아예 근처도 가지 않거나 그럴 거예요.”


“그렇소? 듣던 것과는 다르구려.”


“정보가 힘을 지닌 세상이에요. 게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죠. 어딘가 한 곳에서 정보를 얻었다면 한쪽으로 편향된 정보일 가능성이 높아요. 정보를 생산하는 건 결국 사람이고, 이미 정보에는 생산하는 사람의 가치관이 들어가게 되죠. 거기에서 또 정보를 선별하는 사람의 가치관이 개입돼요. 우린 그걸 보는 거예요.”


“호오, 새삼 그대가 달리 보이오. 생각이 꽤 깊소.”


“아하하······. 그냥 익숙해서요. 선비님이 무공에 익숙한 것처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두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선비와 인수가 나란히 걸음을 멈췄다. 촌스럽고 투박한 간판과 그 흔한 창문조차 달려 있지 않은 수상한 외관. 흔히 방석집이라 부르는 유흥주점 앞이었다.


처음 계획과 달리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선뜻 문에 다가가지 못했다. 굳게 닫힌 문은 낯선 이의 방문을 거부하듯 폐쇄적이었다.


그렇게 문 앞을 서성이던 때였다. 손도 대지 않은 문이 저절로 열렸고, 선비와 인수는 경계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한 여자였다. 원피스인지 잠옷인지 모를 만큼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옷 위에 얇은 외투 하나를 걸치고, 관리할 시기가 지난 것 같은 머리카락을 대충 풀어헤친 모습은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거야?”


어딘지 모르게 탁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초면부터 말을 놓았지만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옷차림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좋지 않은 안색 때문인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젊다고 하기도 늙었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굳이 말하자면 청년과 중년의 경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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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 마담 (3) 19.03.15 42 0 13쪽
23 3. 마담 (2) 19.03.13 43 0 18쪽
22 3. 마담 (1) 19.03.11 58 0 13쪽
21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10) 19.03.08 52 0 12쪽
20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9) 19.03.06 34 0 10쪽
19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8) 19.03.04 48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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