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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끈을 풀어 헤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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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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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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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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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9)

DUMMY

선비는 여인들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른 명 남짓한 수의 여인들 중에는 대화를 나눴던 마담도 있었다.


여인들은 선비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우산도 없이 걸어온 여인들은 비에 흠뻑 젖은 채였다. 눈은 탁하지 않았다. 초점도 명확했다. 사이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선비는 입을 틀어막았던 리철을 혈을 짚어 제압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비스듬히 아래로 내려온 흑립의 챙을 부여잡으며 턱을 당겼다. 자신을 쳐다보는 수많은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다.


“다들 이른 새벽부터 어인 일이시오?”


“그 남자를 풀어줘요.”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여자가 대답했다. 옷차림과 분위기로 보아 이곳 방석집 거리에서 우두머리격인 것 같았다. 다른 이들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이 자가 어떤 자인지 알고 하는 소리요?”


“알아요. 그러니까 풀어줘요.”


“그대들도 이 자와 한패요?”


“그 사람이 여기 보호자에요. 무슨 권리로 그 사람을 위협하는 거죠?”


“보호자? 무엇을 보호하는지 모르겠소만 이 자는 범죄를 저질렀소.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이 말이오. 그대들은 이 일과 무관한 것 같으니 어서 돌아가시오.”


“우리의 생계를 보호해주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위협하려면 경찰에 신고를 하던지 하세요. 어서 풀어줘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오. 물음에 대신 대답한다면 이 자를 풀어주겠소. 이 자의 정체는 검계요? 아니, 이 자가 속한 무리의 뿌리는 검계가 맞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 자가 누구에게 사주를 받고 있는지 아시오?”


“그런 걸 제가 알 리 없죠.”


“공사장으로 시체를 운반한 자가 있었을 것이오.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있소?”


“몰라요. 우린 각자의 일에 함부로 침범하지 않아요.”


“흐음. 내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있긴 하오?”


“없는 것 같네요.”


선비는 리철을 안고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무의미한 대화였다. 여인들은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의지가 없었다.


사람이 하늘로 솟는 비현실적인 장면에도 여인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선비는 이들 또한 검계와 무관하지 않음을 확신했다.


“놀라는 시늉이라도 할 법하건만 놀라지 않는구려.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오.”


“우리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은 없으니까요.”


“······호오.”


선비의 탄성은 다른 이에게 닿지 않을 만큼 작았다. 우두머리격인 여인의 목소리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시종일관 담담했던 반응을 생각하면 이례적이었다.


방석집의 여인들은 쏟아지는 비에도 꿋꿋하게 건물 위에 올라선 선비를 쳐다보았다. 선비는 그들의 악다구니에 혀를 내둘렀다.


내공을 품은 인수조차 추위에 몸을 떨지 않았던가. 한기를 머금은 빗줄기는 무턱대고 견딜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를 증명하듯 여인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선비는 이내 몸을 돌렸다. 정신을 지배당한 것도 아니건만 못지않게 충성심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리라.


“당장 멈춰요!”


여인의 날카로운 외침에 선비는 고개를 돌렸다. 선비의 고개를 움직이게 한 것은 여인의 목소리가 아닌 뒤이어 들려온 청아한 금속음이었다.


방석집 여인들은 모두 칼을 손에 쥐고 있었다. 손가락 크기의 날을 가진 작은 칼은 은장도를 떠올리게 했다. 여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날을 손목 위에 댄 채 선비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짓들이오?”


여인들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침묵시위라도 하듯 입을 꾹 다물고 선비를 노려볼 뿐이었다.


선비가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때였다. 우두머리격의 여인의 손이 단호하게 움직였다. 여인의 손목에 새겨진 붉은 선은 순식간에 빗줄기에 씻겨내려 갔고, 이내 다시 생겨나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피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끊어낸 것은 실핏줄 따위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당장 생명에 지장을 줄 만한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으나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경고였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선비는 모른 척하지 못했다.


“목숨을 담보로 이 자를 지키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우리의 보호자에요.”


“무엇으로부터 보호한단 말이오? 경찰도 이곳은 단속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소만.”


“인력 낭비니까요. 아무 영양가도 없어요. 손님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오가는 돈은 몇 푼에 불과하죠. 그 사람은 우리의 생계를 보호해요.”


“생계라 하였소?”


“우리 그리고 딸린 식구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려면 그 사람이 필요해요. 보호자이자 가장이에요.”


“신원불명의 시신을 소각하고 벌어들인 돈이오. 무고한 희생자들이오. 그들의 가족들은 지금도 살아 있다고 믿으며 찾고 있지 않겠소?”


“무고하지 않다면 이대로 물러날 건가요?”


“뭔가 아는 것이 있소?”


“적어도 무고한 사람은 없었을 거라는 사실은 알아요. 죽은 사람들은 죽인 사람들과 비슷한 부류일 거예요. 짧은 사이 서울 한복판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는데도 경찰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아무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의미겠죠. 사회의 축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에요.”


“죽여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오?”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이 한 사람씩 줄어간다고 생각하세요.”


“궤변이오.”


선비는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히 말했다. 빗물을 머금은 두루마기를 털어내며 떠날 채비를 했다. 자리를 뜨면 다른 이가 손목의 상처를 돌보리라. 보는 이 없고, 알아주는 이 없는 시위를 계속할 리 없었다.


그것이 안일한 생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불과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른 명 남짓한 여인들이 일제히 손목을 그은 것이다. 일제히 쏟아낸 피에 빗물이 고인 바닥은 붉은 기운마저 감돌았다.


선비는 여인들의 극단적인 시위에 말도 잊은 채 망연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두덩이를 두드리는 굵은 빗줄기에도 부릅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술에는 광기와 닮은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만들 두시오.”


여인들이 반대쪽 손목에 칼을 대는 것을 보자마자 선비가 중얼거렸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생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몰라도 도저히 빼앗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인들을 손목에 댄 칼을 빼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선비를 쳐다볼 뿐이었다. 대화의 여지도, 협상의 여지도 없었다. 정해진 시간이 흐르면 행동할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선비는 품에 안고 있는 리철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일전의 최면술사에 비하면 말단에 불과했다. 범죄를 저지른 자다. 다만 죽은 자를 향한 범죄였다. 그것으로 산 자를 책임졌다.


그러나 그가 책임지는 눈앞의 여인들 또한 떳떳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여인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의 축을 벗어난 사람들. 이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선공후사(先公後私)라 하였고,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하였다. 그러나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 여기고 서른 명분의 마음의 짐을 짊어지기에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선비의 고민이 길어졌다. 그마저도 사치였다. 여인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말끔했던 반대편 손목에도 길쭉한 자상이 새겨졌다. 양쪽 손목에서 흘러내리는 피에 옅은 선홍빛을 띠던 바닥은 어느덧 선명하게 붉었다.


그 광경에 놀라는 것도 잠시. 선비는 한순간 느껴진 변화에 품에 안은 리철을 쳐다보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리철의 몸이 미역처럼 늘어졌다.


어떻게 보아도 죽은 것 같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영혼에도 무게가 있다고 했던가. 기분 탓인지 체중마저 줄은 듯 느껴졌다.


리철의 쌍둥이가 벌떡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바닥에 방치되어 있던 그는 순식간에 방석집 여인들에게 달려갔고 이내 무리 사이로 몸을 숨겼다. 건물 위에 올라서 있던 선비는 물론 가까이에 몸을 숨긴 채 촬영을 하던 인수도 반응하지 못할 만큼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서로 원한이 있으면 너희들끼리 해결하라고! 왜 여기서 난리야? 아무것도 몰라. 나 같은 말단이 뭘 알겠냐고!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어? 그럴싸한 명분으로 약해빠진 생계형 범죄자들 괴롭히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려고? 힘에 걸맞은 일을 해!”


리철의 쌍둥이는 악에 바친 목소리로 외쳤다. 비를 맞으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의 얼굴은 간절했고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선비가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방석집 여인들은 리철의 쌍둥이를 보호하듯 촘촘히 간격을 좁혔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 때문인지 멈추지 않는 손목의 피는 빗줄기와 함께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여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비는 그런 그들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품에 안은 리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축 늘어진 고개와 팔다리. 점혈을 짚었을 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인수.”


선비는 폐건물 안쪽에 몸을 숨긴 인수를 작게 부르고는 다시 위로 솟았다. 그리고 인수도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만 물러날 것이오.”


선비의 담담한 말에 인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메라를 정리했다. 방석집 여인들의 패기는 그로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삼십여 명이 한데모여든 탓인지 발밑의 웅덩이는 거센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희석되기는커녕 더욱 짙어져만 갔다. 이들의 손에 들린 칼끝이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불안했다.


선비는 여인들의 손이 다시금 움직이려하자 미련 없이 몸을 돌려 폐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옥상을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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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 마담 (10) 19.04.01 31 0 15쪽
30 3. 마담 (9) 19.03.29 32 0 18쪽
29 3. 마담 (8) 19.03.27 37 0 14쪽
28 3. 마담 (7) 19.03.25 45 0 14쪽
27 3. 마담 (6) 19.03.22 42 0 12쪽
26 3. 마담 (5) 19.03.20 42 0 17쪽
25 3. 마담 (4) 19.03.18 45 0 19쪽
24 3. 마담 (3) 19.03.15 45 0 13쪽
23 3. 마담 (2) 19.03.13 43 0 18쪽
22 3. 마담 (1) 19.03.11 59 0 13쪽
21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10) 19.03.08 52 0 12쪽
»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9) 19.03.06 35 0 10쪽
19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8) 19.03.04 48 0 16쪽
18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7) 19.03.01 52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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