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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끈을 풀어 헤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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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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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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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8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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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담 (4)

DUMMY

갑자기 나타난 검은 옷의 괴한이 마담을 덮쳐 기절시켰다. 괴한은 마담을 어깨에 둘러메고 가게 문을 열어 동전 하나를 던지더니 그대로 달아났다.


선비와 인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선비가 먼저 다급히 몸을 날렸다. 인수도 뒤이어 며칠째 계속된 무소식에 꺼두었던 카메라를 켜고 선비를 뒤쫓았다.


괴한은 공사장을 향해 뛰었다. 괴한의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사람을 어깨에 둘러멨음에도 가벼운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에 선비는 속력을 줄이며 뒤따라오는 인수를 향해 조심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선비는 뒤꿈치를 바짝 세우며 양상군자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소리 없이 짓다 만 건물의 벽을 따라 움직이는 선비의 모습은 숙련된 도둑과도 같았다.


괴한은 선비와 인수의 추적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괴한의 움직임은 볼수록 놀라웠다. 괴한이 지나간 공사장의 흙바닥에는 발자국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공사장을 가로질러 갈 것 같았던 괴한은 맨홀 앞에서 속력을 줄였다. 맨홀 뚜껑은 반쯤 열려 있었다. 괴한은 그대로 미끄러지며 뚜껑을 밀어내고 맨홀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뚜껑이 닫혔다.


마담을 납치해 맨홀 안으로 사라지기까지 불과 30초도 지나지 않았다. 괴한이 마담을 납치하는 동안 주변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선비는 인수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양상군자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뒤 맨홀에 귀를 기울였다.


극도로 예민해진 선비의 귓가에 괴한의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지더니 이내 한순간 사라졌다. 선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괴한이 걸음을 멈춘 것인지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진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선비는 고민하더니 인수에게 손짓하고는 조용히 맨홀 뚜껑을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아래에 있었다. 도시의 불빛과 달빛조차 닿지 않았다.


아래로 들어가기 전 선비는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인수에게 시선을 보내고 아래로 내려갔다.


인수가 뒤이어 내려오고 맨홀의 뚜껑이 닫히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선비의 뛰어난 안력도 소용이 없었다.


섣불리 발조차 내딛지 못했다. 코를 찔러오는 역한 냄새도 정신을 어지럽혔다. 괴한이 무슨 수로 이 어둠을 헤치고 달아났는지 의문만 가득했다.


그때 인수가 선비의 곁으로 다가왔다. 인수의 카메라는 분명하게 어둠에 가려진 모습들을 비추고 있었다. 선비는 인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터의 빛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카메라에 의지해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갔다. 양상군자를 운용하며 움직였기에 서로의 기척은 희미했다. 역한 냄새에 정신이 흐트러져 자꾸만 어깨를 부딪쳤다.


선비는 인수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깜짝 놀란 인수의 어깨가 들썩이며 기척을 발산했다. 선비는 내공을 주입해 인수의 몸속에서 날뛰는 기운을 부여잡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선비의 기운에 인수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서늘하고 정갈한 기운은 언제나 포근하게 느껴졌다.


선비는 인수의 팔을 붙잡고 눈을 감은 채 걸음을 옮겼다. 코끝을 맴도는 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괴한의 발소리가 사라지던 순간을 떠올리려 애썼다. 발소리가 줄어들던 빠르기를 가늠하며 괴한의 행방을 가늠했다.


선비가 발을 멈춘 곳은 맨홀에서 200미터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카메라의 눈을 빌려 주변을 살핀 선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장과 벽 어디에도 괴한이 한순간에 사라질 법한 장소는 없었다. 몇 걸음을 더 걸어가 주변을 살펴보아도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인수는 잽싸게 한쪽 벽면에 손을 가져가며 선비에게 반대쪽 벽을 가리켰다. 인수의 의도를 눈치 챈 선비는 반대쪽 벽면을 매만지며 걸었다.


습하고 미끈거리는 감촉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상을 구겼다. 소름 끼치는 감촉에 오늘 이후로 한동안은 손을 쓰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벽을 매만지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하수도의 벽을 만지는 손길은 점점 다급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괴한은 멀리 떠날 것이었다. 만약 그 사이 마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비록 그녀가 자초한 일이라 하더라도 부탁을 수락한 이상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신중하게 벽을 매만지던 선비는 갑자기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어깨를 들썩였다. 양상군자로 기척을 지운 인수였다. 그는 카메라로 반대편 벽면을 비추며 손짓했다.


선비는 인수가 가리킨 곳으로 몸을 날렸다. 선비의 손이 빠르게 벽면을 훑었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없을 미세한 차이였다.


그러나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을 만져보고 눌러봐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착각인가 싶어 다시 살펴보았지만 역시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어 무시하기 어려웠다.


벽을 노려보며 고민하는 선비를 옆에서 지켜보던 인수는 잠시 카메라를 어깨에 메더니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수상한 벽면을 짓눌렀다.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였다. 선비는 벽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서야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았다. 주변을 감싼 어둠보다 벽면의 어둠이 조금 더 짙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수가 다시 들이밀자 벽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곳에는 전에 없던 틈새가 있었다. 성인 한 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선비는 인수를 한 차례 쳐다보고는 앞장서서 틈새로 들어갔다. 벽면은 한 사람만을 허락하고 입을 닫았다. 인수는 일련의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했다.


좁은 틈새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비좁은 통로. 앞장선 선비는 인수의 카메라를 받아 화면에 의지해 걸었다.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에 선비는 인수에게 몇 걸음 떨어져서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선비의 발걸음은 한없이 조심스럽고 예민했다. 이토록 어둡고 좁은 통로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할 판이었다.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이상한 낌새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걸음을 멈추고 물러날 작정이었다.


틈새는 깊었다. 코를 찌르던 역한 냄새도 이제는 희미했다. 맨홀에 들어오고 흐른 시간만큼의 시간이 더 흘렀건만 여전히 눈앞은 어둡기만 했다. 선비는 초조함에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깊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어느덧 냄새도 나지 않았다. 선비가 걸음을 멈춘 것은 이미 틈새에 들어와 30분을 넘게 걸었을 무렵이었다. 옅은 불빛이 발끝에 닿았다.


좁은 통로의 끝이었다. 무쇠로 만든 것 같은 차갑고 단단해 보이는 철문이 세워져 있었다. 성냥 한 개비를 피운 것보다 단출한 조명이 철문의 주위를 밝혔다.


선비는 지금까지 눈이 되어 준 카메라를 인수에게 넘기고 철문 가까이에 다가갔다. 철문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선비는 흑접선을 꺼내 철문에 가져다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벽면의 장치를 떠올린 선비는 철문을 밀어보았다. 단단한 겉모습과 어울리게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체중을 싣기 위해 몸을 기울인 순간이었다. 희미한 말소리가 철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철문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굵고 울림이 컸다. 알 수 있는 것은 목소리의 주인이 남자이며 나이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들린 목소리에 선비는 다급히 인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얇은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번 목소리의 주인은 여자였다. 너무 작아 마담의 목소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으나 서둘러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선비가 내공과 체중을 실어 철문을 밀었고, 인수도 선비의 머리 위로 팔을 뻗어 힘을 보탰다.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간힘에 두 사람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선비심공의 기운이 혈도를 따라 요동쳤다. 팔뚝에도 두툼한 혈관이 솟았고,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희미한 신음마저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철문이 미세하게 움직임을 보였다. 거기까지였다. 철문은 벌레 한 마리가 지나갈 틈만 만들어주더니 다시 자리를 지켰다.


선비와 인수는 자리를 옮겨 벌어진 틈을 공략했다. 그러자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만 같았던 철문도 스르륵 몸을 틀었다. 손도 넣을 수 없을 만큼 비좁았던 틈은 이제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 충분할 만큼 넓었다.


철문 너머에는 돌을 깎아 만든 방벽이 높게 세워져 있었다. 방벽 곳곳에는 조명이 걸려 있었다. 전통적인 방식의 호롱불이었다.


선비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작디작았던 목소리가 보다 선명하게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들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거리 때문인지 침입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선비가 앞장서서 철문을 통과했다. 그 순간 선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철문은 벽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위에 두꺼운 무쇠로 된 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일종의 잠금장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재활용할 수 없는 각도로 휘어져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철판이 부러졌다면 지금쯤 마담을 납치한 자들과 대치를 하고 있었으리라.


그저 높다고만 생각했던 방벽은 천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땅을 깎아서 만든 모양새였다.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다시 입구를 찾아야 했다.


철옹성 같았던 철문과 비교하면 방벽 내부로 이어지는 입구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가 빠진 것처럼 둥글게 내부를 둘러싼 방벽 중 한 곳이 휑하게 뚫려 있었다.


방벽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선비는 뚫린 입구로 다가갔다. 양상군자가 진정으로 활약할 시간이었다. 그늘 아래로 녹아든 선비는 발소리도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입구 바로 곁에 서서 선비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을 살폈다. 바깥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원형의 방벽을 따라서 천장에 닿을 듯 키 높은 대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대나무로 만든 집이 다섯 채 있었다. 그중 네 채는 원룸 크기였고, 나머지 한 채는 다른 것에 비해 유독 컸다. 산적들의 산채가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목소리는 집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선비는 인수에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대나무 정원을 가로질러 정면에 있는 가장 커다란 집으로 까치발을 들고 움직였다. 영물이 된 고양이의 가죽으로 만든 갓신에도 내공을 주입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얘긴 뭐, 너무 진부한 이유니까 넘어가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겠나?”


남자의 목소리였다. 굵고 울림이 컸기에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들었다고 짐작했건만 목소리가 선명해지자 숨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탈문을 하려면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말은 들었어요.”


분명한 마담의 목소리였다. 침착함을 가장하려는 듯 잔잔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은지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선비는 대나무 저택의 지붕 위로 조심스럽게 몸을 날렸다.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발을 헛디뎌 숨을 삼켜야 했다. 양상군자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높이 뛸 수도 없고, 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다. 까다롭다고 느껴질 만큼 섬세한 기운의 흐름을 요구했기에 다른 무공과 함께 운용하기도 어려웠다. 극성에 이르면 그림자조차 숨길 수 있다곤 하지만 그 정도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라면 다른 무공을 배우는 쪽이 백번 나았다.


“우리 하오문의 식구들이 많은 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야. 연회비도 없이 무료로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해준다고. 헌데 말이지. 그런 혜택을 무료로 누릴 수 있는 건 가족이 되겠다는 계약을 했기 때문이야. 가족이란 건 종신계약이라고. 계약을 파기하는 쪽이 위약금을 내는 건 사회적 통념이지.”


선비는 완만하게 경사진 지붕 위에 바짝 엎드린 채로 대화를 엿들으며 언제 둘 사이에 개입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간부로 추정되는 남자와 마담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집만 다섯 채. 아무도 없을 리 없었다. 아무리 눈앞의 상대가 힘없는 마담이라 할지라도 너무 무방비했다. 게다가 마담을 납치한 자도 있지 않은가.


사방이 조용한 것이 오히려 신경 쓰였다. 기척을 느낄 수 없는 상대. 하오문에 그만한 경지를 이룬 무림인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묘한 술법을 익혔으리라. 선비의 상상력으로는 이들이 익힌 술법의 한계를 짐작할 수 없었다.


“대신 조직에서 원하는 소식들을 전해줬잖아요. 처음 들어올 때는 눈과 귀만 빌려주면 충분하다고 말했어요. 그걸로 값을 치르는 거라고.”


“그래. 잘 알고 있군. 하오문의 눈과 귀가 되겠다는 계약을 한 것이야. 이미 한 몸이 된 눈과 귀를 뜯어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나? 탈문을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해.”


“말장난하지 말아요.”


“말장난? 뭐, 마음대로 생각하게. 그럼 심사를 시작하지.”


“심사?”


“가치를 판단할 거야. 아니, 이미 판단했다. 탈문의 표식을 남긴 지 시간이 꽤 지났지? 그동안 자네의 뒷조사를 좀 해봤어.”


선비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지붕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대나무 저택에 가려져 있던 광경은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방벽 내부의 중앙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고, 그 앞에 짧은 계단과 커다란 석재의자가 있었다. 석재의자는 관상용으로 해도 좋을 만큼 컸다. 평범한 사람의 체격으로는 팔걸이에 양팔을 올려놓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오문의 간부로 짐작되는 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몸통만 한 팔걸이 한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오래된 법정을 보는 듯했다. 노인은 재판장처럼 높은 의자에 앉아 공터 한가운데에 서 있는 마담을 내려다보았다. 단단하고 커다란 석재의자 때문인지 노인의 체구는 어쩐지 더 커보였다.


선비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의 대화 속에서 장막에 가려져 있는 조직들의 실체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탈문하는 데 뒷조사까지 필요해요?”


“우리 하오문에 가져다준 이익과 조직 내 영향력 그리고 알고 있는 정보의 깊이 등이 심사요소다. 자네는 15년 전에 강남지부의 요정에서 일을 시작했더군. 그리고 나이가 차서 원정팀에 합류했고, 5년 전에 이쪽 동네에 가게를 차렸지.”


“그랬었죠.”


“15년이라. 긴 시간이지. 심사에서는 큰 감점요인이야.”


“왜죠?”


“우리는 이익을 가져다주고 조직 내 영향력이 높은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 게다가 긴 시간 동안 내부정보도 알게 모르게 많이 접했을 테고.”


“전 묵묵히 일만 했어요.”


“그렇게 얘기하겠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를 테니까. 자, 그럼 계산을 해보자고. 자네가 조직 내에서 15년 동안 쌓은 영향력과 내부정보들로 우릴 배신했을 때 감당해야 할 위험부담금과 15년 동안의 보호비를 합한 금액과 자네가 그동안 하오문에 가져다준 이익을 비교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걸 어떻게 비교하죠? 어디 적어두기라도 했나요?”


“그러게 말이야. 어디 좀 적어두지 그랬나? 기록이 없으니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추산해 보았지. 자네는 대략적으로 12억 정도의 위약금을 내야 할 거야.”


마담은 말을 잃은 채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계산을 해볼 필요도 없었다. 가진 재산을 모두 통틀어도 위약금의 10분의 1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너무 많아요. 말이 안 되잖아요. 어떤 계산으로 12억이라는 금액이 나왔죠?”


“젊을 때 굉장히 많은 돈을 벌지 않았나? 보호비는 수익에 비례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받지 않은 거야.”


“수수료를 엄청 떼 갔잖아요.”


“수수료와 보호비는 별개지. 흐음, 위약금이 불만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우리 하오문에 가져다줬다는 증거를 대야 할 거야. 그런 증거가 있나? 없을 것 같네만.”


“······재산을 다 털어도 위약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요.”


“알다마다. 자네 같은 사람이 처음일까? 아니지. 하오문이 생긴 이래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입맛대로 탈문을 하려고 시도했다네.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이제는 저기 거리에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며 말이야.”


“그게 잘못인가요?”


“그런 소망을 갖는 건 잘못이 아니지. 하지만 우리들은 하오문을 그저 인생의 발판으로 쓰려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아. 그것이 규율이라 부르는 것이지. 조직이 조직으로 있을 수 있는 토대라 이 말이야.”


“그때는 너무 어렸어요. 뒤늦게라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죠? 너무 과한 처사잖아요.”


“너무 간단한 문제 아닌가? 위약금을 내면 돼.”


“그렇게 많은 돈은 없다고 말했잖아요.”


“모두 그렇게 말하곤 했지. 그런데 다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더군. 그거 알고 있나? 사람은 누구나 비싼 것들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걸.”


마담은 노인이 나지막이 내뱉은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그리고 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탈문의 표식을 남긴 뒤 사라졌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노인의 말은 그녀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 무뎌진 탓일까. 마담은 잠시 잊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이유. 그것은 법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조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마담은 처음으로 고개를 등 뒤로 돌렸다. 도움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선비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두려움의 원인을 잠시 잊게 만들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마담에게 선비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하오문 근거지에 정적이 흘렀다. 마담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노인은 턱을 괴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선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고요가 불안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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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3. 마담 (8) 19.03.27 37 0 14쪽
28 3. 마담 (7) 19.03.25 45 0 14쪽
27 3. 마담 (6) 19.03.22 42 0 12쪽
26 3. 마담 (5) 19.03.20 42 0 17쪽
» 3. 마담 (4) 19.03.18 45 0 19쪽
24 3. 마담 (3) 19.03.15 45 0 13쪽
23 3. 마담 (2) 19.03.13 43 0 18쪽
22 3. 마담 (1) 19.03.11 59 0 13쪽
21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10) 19.03.08 52 0 12쪽
20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9) 19.03.06 34 0 10쪽
19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8) 19.03.04 48 0 16쪽
18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7) 19.03.01 52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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