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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끈을 풀어 헤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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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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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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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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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8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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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리에이터 (2)

DUMMY

그로부터 한 달.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새로운 실마리가 없었기에 촬영을 할 일도 없었고, 새로운 영상을 올리지 않으니 도용당할 영상도 없었다.


사람들은 언제 영상에 열광했냐는 듯 빠르게 관심을 거뒀다. 인수가 몸담고 있는 세계는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변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영상이 쏟아지기에 당연했다.


영상을 도용한 자 또한 지난 일을 잊고 새로운 영상들을 올렸다. 그 자에게 인수의 영상은 자신의 수많은 영상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인수도 지난 일은 애써 잊으려 했다. 지금 그가 처한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 그럴 만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었다.


두렵기도 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조직보다 확실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영상 도둑이 더 까다롭게 느껴졌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을 것만 같았다. 법이 그의 편을 들어주리라는 믿음도 없었다. 영향력이라는 이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몸 안에 정순한 기운을 품고 있다지만 그것이 음모론을 믿던 성격까지 바꿔주지는 않았다.


인수는 마른세수를 하며 심호흡을 내쉬었다. 깊고 무거운 숨에 해결할 수 없는 걱정들을 실어 뱉어내려 했다. 언제까지 선비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그는 별채 한쪽에 고이 모셔둔 외투를 집었다. 검은색 동정이 달린 짙은 회색의 두루마기였다. 이 두툼한 겨울용 두루마기는 며칠 전 선비가 준 선물이었다.


두루마기는 언제나 근엄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어울릴 것처럼 고루해 보였다. 전대 장문인이 생전에 즐겨 입었던 유품이라고 했다.


부담스러운 선물이었다. 전대 장문인이 선비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감히 이유를 묻지 못했다. 그 자체로 선물의 가치를 훼손할 것만 같았다.


두루마기는 그 크기만큼이나 무거웠다. 세월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놀랍도록 몸에 맞았다. 선비가 인수의 몸에 맞게 재단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 선비가 귀중한 전대 장문인의 유품에 가위를 댔을 리 없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전대 장문인의 풍채가 눈에 선했다. 꾸준한 수련으로 넓어진 어깨와 덩치는 땀내 나는 헬스장에 당당히 어깨를 펴고 들어가도 좋을 정도라고 내심 자부하고 있었던 인수였기에 놀랍기만 했다.


인수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이렇게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리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두루마기 때문이었다. 옷의 무게가 그를 단정하게 했다.


주름 하나 없이 단정하게 두루마기를 입고 별채를 나서자 선비가 그를 반겼다. 오랜만에 보는 두루마기가 반가운지 입가에는 옅은 미소마저 띄고 있었다.


“잘 어울리오. 두루마기가 다시 주인을 찾은 것 같소.”


“아, 어······. 고마워요.”


“너무 어색해하는 것 아니오? 많이 궁금한 모양이오. 그대에게 전대 장문인의 두루마기를 선물한 이유가 말이오.”


“그렇······죠?”


“아무도 입지 않는 옷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누군가 입어야만 의미가 있는 게 옷 아니겠소?”


“많은 사람들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나도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라오. 겨울이 다가오는데 마침 그대와 잘 맞을 것 같아서 선물한 것이오.”


인수는 짙은 회색의 두루마기를 내려다보았다. 너무 생각이 많았던 것일까. 확실히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었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선비에게로 향했다. 늘 그렇듯 검은색 원피스였다.


짙은 회색의 두루마기와 한복을 닮은 검은색 원피스. 그 무채색의 대비가 내심 마음에 들었다. 하얀색 두루마기와 그 위에 걸친 검은색 쾌자도 짙은 회색의 두루마기와 조화를 이루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고마워요. 소중하게 입을게요.”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오. 그럼 이만 출발하는 게 어떻소? 갈 길이 꽤 멀다고 들었소만.”


“멀긴 하죠. 뛰어가면요. 정말 뛰어갈 생각이에요?”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일은 최소화하고 싶소. 아직 장로를 믿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오. 언제 어디서 우릴 노리고 있을지 모르지 않소? 그들이 무고한 사람들이 휘말리는 것 때문에 싸움을 피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오. 오히려 그런 상황을 이용하지 않겠소?”


“음······. 뛰어야겠네요.”


“늘어난 내공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라오.”


인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환약을 먹은 뒤로 단전이 바닥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오래전 많은 무림인들이 그러했듯 가슴 한구석에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갈까요?”


바깥으로 향하며 인수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상기된 얼굴은 감출 수 없었다.


선비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인수가 느끼고 있을 감정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싶다는 생각. 그녀도 한 번 겪었던 일이었다.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빈집으로 남아 있는 선비문 주변의 주택 옥상. 그곳에 서서 인수는 지도를 보며 목적지까지의 경로와 거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준비 됐어요?”


“되었소.”


“그럼······ 갈까요?”


“그러시오.”


인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난간 앞에 섰다. 그리고 목적지를 가늠하듯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장거리 여정의 선봉장은 선비가 아닌 그였다. 이유는 단 하나. 인수가 이 여정의 시발점이 될 정보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회색의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인수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두루마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어쩐지 기분 좋았다.


고개를 돌리자 정원을 산책하듯 여유로운 몸놀림으로 허공을 날고 있는 선비가 보였다. 할 말이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여정은 순조로웠다. 내공이 늘어난 만큼 쉽사리 지치지도 않았고, 날씨도 도와주고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들뜬 기분에 발이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돌렸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제아무리 빠르다한들 선비가 따라오지 못할 리 없었다.


사소해보였던 문제는 목적지를 수 킬로미터 앞두고 불거졌다. 늘어난 내공을 과신했던 탓이리라. 단전의 기운이 서서히 바닥을 보였고,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인수는 뒤늦게라도 선비보법의 구결에 따라 흐르는 내공의 흐름에 신경 쓰기로 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살펴본 선비의 안색은 그와 달리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쉬었다가 가자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봉장을 맡은 이상 어떻게든 쉼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바닥을 드러낸 체력에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가쁜 숨을 숨겨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을 모를 리 없음에도 선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처럼 곁에 다가와 팔을 붙잡아주지도 않았고, 격려의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은연중 그 사실이 신경 쓰였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가 보이는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인수는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서둘러 운기를 해 텅 빈 단전을 채웠다.


운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인수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두루마기의 무게조차 버거울 만큼 천근만근 무거웠던 몸이 다시 깃털처럼 가벼웠다.


힘겨웠던 여정이었다.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켰다. 당초 예상보다 30분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쉬지 않고 세 시간 동안이나 경공을 운용한 것이다.


“······힘든 여정이었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오?”


대답 대신 돌아온 되물음에 인수는 선비의 눈치를 살폈다. 여정 중 보여주었던 태도의 연장선이었다. 선비의 태도가 쌀쌀맞게 느껴졌다. 평소 선비의 성품을 생각하면 그럴 리 없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느껴졌다.


인수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짐작 가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그를 더욱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크게 실수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선비님 혹시······.”


“혹시?”


“혹시 제가 뭔가 실수한 일이······ 있을까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소?”


“글······쎄요?”


“없다는 말이오?”


인수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모든 대화를 떠올리려 애쓰며 말실수를 한 적은 없는지 찾아보려 했고,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적은 없는지 돌이켜보았다.


그러나 전혀 짐작 가는 일이 없었다. 선비와는 친구 사이도 아니었고, 이성적으로 감정이 오고가는 관계도 아니었다. 협박에 가까운 계약으로 시작된 관계였고, 지금은 존경하는 스승이자 장문인이다. 말과 행동은 언제나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없는 것 같아요.”


“같소? 없소?”


“없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오.”


“그럼 어째서······.”


“과거의 많은 이들이 강호초출이라는 이름을 달고 무림으로 첫걸음을 했다오. 강호초출들은 예외 없이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했다고 하오. 그 과정에서 불구가 되거나 죽는 이들이 수두룩했다고 알려져 있소.”


“선비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요.”


“늘어난 내공을 시험하기에 좋은 기회였소. 선비문 안에서는 한계까지 내공을 사용할 일이 좀처럼 없으니 말이오. 스스로 한계를 느껴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오. 백문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소?”


“휴······. 선비님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어요. 화가 난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사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제가 할 줄 아는 건 경공이랑 양조술뿐이잖아요.”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오.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불필요한 걱정이었다고 생각해서요. 좀 놀란 거예요.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는지 걱정했거든요.”


“하나뿐인 제자를 향한 노파심이었다고 이해해주시오.”


“알았어요. 사실 평소보다 들뜨긴 했죠. 평소보다 정교하지 못하게 경공을 운용했어요. 내공이 늘어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럼 서로 잘못한 게 있으니 퉁칩시다. 어떻소?”


선비가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인수는 눈을 크게 뜨며 내민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나쁜 짓은 빨리 배운다고 했던가. 언젠가 그가 했던 행동이었다. 나쁜 짓은 아니었지만 선비와는 어울리지 않아 일탈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뭔가 잘못됐소? 이럴 때 쓰는 걸로 알고 있소만.”


“아, 아니에요. 퉁쳐요, 퉁. 휴, 오늘 여러 번 놀라네요.”


“첫 여행은 원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들었다오. 그대가 말한 곳이 저곳이오?”


“맞아요.”


선비가 가리킨 곳은 공원이었다. 일반적인 공원은 아니었다. 공원 안에서는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고, 주변에는 흔적만이 남은 집터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른바 유적공원이었다.


인수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잠시라도 잊기 위해 다른 관심거리를 찾으려 했다. 그것은 무림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인터넷 이곳저곳에 설화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들 속에 진실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도달한 곳이 이곳 유적공원이었다. 2년 전 발굴된 조선시대 집터에서 수상한 표식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몰라도 학자들은 포도청에 근무하던 포졸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발견된 표식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인수는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학자들을 뛰어넘는 고고한 학식을 지녔기 때문은 아니었다.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하오문의 탈문 표식이었다.


현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면 과거에서 찾아보자는 심산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선비도 동의했다. 하오문의 장로를 만난 뒤로는 조직에 대한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목적지를 확인한 선비와 인수는 옥상에서 내려와 보통의 사람들처럼 걸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가 유적공원의 인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입구에 도착하는 동안 유적공원으로 향하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유적공원의 입구는 그럴 듯하게 꾸며져 정돈된 느낌을 주었고, 많은 유적지 때문인지 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입장은 무료였다. 두 사람의 범상치 않은 복장은 경비원의 눈길을 끌었지만 출입을 제지당하는 일은 없었다.


원래의 형태를 잃은 집터를 몇 군데 지나자 발굴이 한창인 현장이 그들을 반겼다. 고고학자로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흙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적어도 인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학자들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흔치 않은 관람객을 발견했기 때문이거나 한복을 입고 자신들보다 과거에 더 가까운 듯 행동하는 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발굴현장과 몇 개의 유적지를 지나자 10평 남짓한 집터가 나타났다. 두 사람의 목적지였다. 부서진 벽면에 남은 표식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해준 것일까. 집터를 둘러싼 울타리는 다른 유적지에 비해 견고했다.


“저기 있네요.”


인수가 가리킨 불규칙한 높이로 남아 있는 벽면에는 사진으로 봤던 탈문의 표식이 있었다.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희미했다.


“확실히 이상하오.”


“그러게요.”


탈문의 표식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는 안 됐다. 마담이 하수도에 남겼던 표식은 며칠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특별한 안료를 사용했거나 표식을 확인하자마자 지웠을 터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표식을 확인하기 전에 집이 무너졌다거나.”


“아니면 표식을 지울 필요도 없을 만큼 하오문의 위세가 대단했거나.”


“설마요. 이 집은 포졸의 집이었대요. 뭐······ 그렇게 높은 지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금으로 치면 경찰이잖아요? 그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으면 하오문에 대한 기록들이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었을 거예요.”


“이것을 달리 설명할 근거가 떠오르지 않아 해본 말이라오.”


두 사람은 울타리 주위를 돌며 집터를 유심히 살폈다. 희미하게 남은 탈문의 표식을 제외하면 집터는 그저 집터일 뿐이었다. 세월에 사그라진 건축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흐음······. 여기 오면 뭔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별 거 없네요.”


“지금까지 뭔가 남아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소.”


“여기 사람들은 땅을 파서 발견한 오래된 물건을 소중하게 보관하길 좋아하잖아요. 저쪽에 박물관이 있대요. 이 주변 땅에서 발견한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다고 했어요.”


“없던 기대가 생기는구려.”


그들은 집터를 미련 없이 떠났다. 유적공원은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박물관까지 가는 길 동안 다섯 개의 집터와 공원의 조경을 책임질 나무 수십 그루를 지나쳐야 했다.


박물관 주변은 공원에서 가장 고즈넉했다. 박물관은 선비문 본채와 별채를 합친 것보다 컸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유명한 건축가를 고용했는지 디자인도 평범하지 않았다. 그토록 공들인 공간을 찾아오는 관람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박물관을 이렇게 크게 지을 필요 있었을까요.”


“찾아오리라 믿고 크게 지은 것이 아니겠소?”


“그럴 리가요. 사람들이 과거의 유물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거예요.”


“많은 관광지들이 그곳에 과거의 유물이 있기 때문에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소만.”


“아주 커다랗거나 아주 오래된 유적지는 유명하죠. 흥미를 끌기 좋잖아요. 가장 오래됐다거나 가장 크다거나. 상징적인 특징을 가진 거죠.”


“그대는 가끔 회의적이거나 염세적인 생각들로 가득할 때가 있는 것 같소.”


“음, 전 늘 제가 현실을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불과 수백 년밖에 되지 않았고, 건물 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유물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없다는 게 그 증거라면 증거 아니겠어요?”


“세상 어딘가에는 작고 충분히 오래되지 않은 유물을 전시하지만 사람이 북적이는 박물관이 있지 않겠소? 허나 난 이곳의 고요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구려.”


“선비님을 닮아가나 봐요. 저도 여기가 아늑해서 참 좋네요.”


“개인 박물관이 생긴 것 같지 않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게 꼭 안 좋은 일만은 아닌 모양이오.”


“그러게요. 느긋하게 구경하고 가요. 관리인한테는 미리 말해뒀어요.”


“정말이오?”


“그럼요. 당연히 농담이죠. 몰랐어요? 이런 박물관은 원래 입장이 공짜에다 시간제한도 없어요.”


선비는 고개를 저으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인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선비를 이끌었다. 그렇게 그들은 유적지에 대한 토론과 시답잖은 농담이 뒤섞인 대화를 하며 박물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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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 마담 (6) 19.03.22 44 0 12쪽
26 3. 마담 (5) 19.03.20 43 0 17쪽
25 3. 마담 (4) 19.03.18 46 0 19쪽
24 3. 마담 (3) 19.03.15 48 0 13쪽
23 3. 마담 (2) 19.03.13 44 0 18쪽
22 3. 마담 (1) 19.03.11 6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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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9) 19.03.06 35 0 10쪽
19 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8) 19.03.04 5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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