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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끈을 풀어 헤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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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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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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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5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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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리에이터 (5)

DUMMY

그림자들의 공격은 예고도 없이 시작됐다. 송곳 같은 칼을 찔러왔다. 소리는 물론이고 움직임도 없었다. 칼은 그림자의 몸통에서 솟아났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산속에 울렸다. 선비는 황급하게 펼친 흑접선으로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한 충돌의 여파에 몇 걸음이나 뒷걸음질 쳤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인수도 덩달아 밀려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선비는 본능적으로 흑접선을 휘둘렀다. 숲속 어디에도 나무는 있었다. 그것은 곧 그림자가 서 있고, 언제든 공격이 시작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절묘한 순간 찔러오는 칼이 또 한 번 흑접선을 때렸다. 조용하고 은밀한 존재감에 비해 육중한 무게감이 선비의 몸을 다시 밀어냈다.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싸늘한 직감에 선비는 몸을 비틀며 흑접선을 뻗었다.


뒤통수를 노리고 다가오던 송곳 같은 칼이 인수의 귓가를 지나치더니 흑접선과 부딪쳤다. 연이은 충격에 선비의 몸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괴한은 셋. 찰나의 시간차를 두고 이어진 세 번째 공격은 이미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선비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려 오로지 등만 바라보고 있던 인수는 재빨리 그녀의 무게중심을 바로잡아주었다. 그와 동시에 움직이는 선비의 몸을 따라 함께 움직였다.


흑접선을 올릴 시간도 없었다. 선비는 중심이 돌아오자마자 급하게 몸을 비틀었다. 선비문 특유의 여유를 잃은 몸놀림에 두루마기가 천둥소리를 내며 거칠게 휘말렸다.


공격은 선비의 팔뚝을 스치는 것에 그쳤다. 그럼에도 알싸한 고통이 전해졌다. 평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고통은 불에 덴 것처럼 피부를 파고들며 주변으로 퍼졌다.


그러나 팔뚝의 상태를 돌볼 새도 없었다. 선비의 몸은 태풍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끊임없이 위태로웠다. 숨을 고를 여유조차 주지 않고 몰아치는 공격에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찰나의 실수로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그것으로 전투의 승패가 갈릴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선비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잠깐이라도 숨을 돌리고 싶었으나 그림자를 빌어 공격하는 괴한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시간이 조바심이 나는지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요했던 공격은 점점 거칠어졌다.


선비보다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인수였다. 요동치듯 재빠르게 움직이는 선비의 몸을 따라서 함께 움직이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부자연스럽게 방향을 틀고 몸을 꺾었는지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은 부하가 느껴졌다.


“으······.”


인수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지만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선비를 향한 눈먼 칼에 꽂혀 순식간에 수십 개의 바람구멍이 생길 터였다. 그리고 평정심을 잃은 선비가 그 뒤를 이으리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신음에 선비의 마음은 급해졌다. 인수가 아니더라도 이 난관을 어떻게든 벗어나야 했다. 이대로는 그저 죽음을 유예할 뿐이었다.


언제나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던 흑접선의 안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인수의 눈을 가려 위험에 빠뜨릴 위험이 있었다.


주특기인 경공도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괴한들의 발재간도 선비와 인수에 못지않았고, 여전히 수많은 그림자들이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진을 치고 있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목숨을 노린 칼들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남은 것은 맞서 싸우는 것뿐이었다. 군자검법 풍류가 그려낸 매화에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지던 그림자를 떠올리면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공격을 펼칠 때 드러나게 될 빈틈이었다.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해야 할지도 몰랐다. 팔뚝을 스친 공격에도 몸을 잠식하던 알싸한 고통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그러나 고민은 잠시였다. 이미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인수의 신음소리도 끊임없이 경고를 보냈다. 망설일수록 공격이 실패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단전의 내공이 요동쳤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기운이었다. 살기라고는 한 줌조차 담아내지 못하는 군자검법이 살초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의 격렬함이 혈도를 타고 올라왔다.


폭발적인 기운이 흑접선으로 몰려들었다. 반사적으로 내뱉는 안개가 순식간에 주변 숲을 덮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안개를 뚫고 은은한 빛을 머금은 기둥들이 선비를 중심으로 솟아났다.


다른 나무들과 비등할 정도로 키 높은 대나무 숲이 선비와 인수를 원형으로 감쌌다. 군자검법의 네 번째 초식인 기개였다. 기세 좋게 공격해오던 그림자의 칼들은 고고한 자태로 촘촘하게 자라난 대나무 숲에 닿자마자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선비심공의 기운이 만들어낸 작은 숲은 선계의 숲을 옮겨다 놓은 듯 아늑했고 신비로웠다. 그러나 하얀 대나무 숲 안에서는 평화로운 광경과 어울리지 않게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에는 고통이 섞여 있었다. 인수는 다리를, 선비는 어깨를 부여잡은 채 숨을 헐떡였다. 특히 선비의 어깨는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갑옷처럼 질긴 흑비녀의 두루마기가 찢겨진 일은 처음이었다.


놀란 인수가 다리를 절며 선비에게 다가갔다.


“선비님! 괜찮아요?”


“별일 아니라오.”


“별일 아니긴요. 피가 나잖아요. 색도 이상해요.”


“······금방 괜찮아질 것이오.”


빈말이 아니었다. 선비심공의 정순한 기운이 상처에 고여 있는 사이한 기운을 검붉은 피와 함께 몰아내고 있었다. 그러자 화끈거리는 고통도 서서히 잠잠해졌다.


선비는 주변을 감싼 대나무 숲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은밀하고 강력한 그림자들의 공격을 차단하기에 탁월했으나 내공의 소모가 너무 심했고, 잠깐 숨을 돌리기에 급급한 일시적인 방법일 뿐이었다. 형상화된 기운이 흩어지는 순간 여지없이 공격이 재개되리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어깨의 상처로 인해 움직임은 더욱 둔해졌다. 몸 상태가 완벽할 때도 온 힘을 다해야 가까스로 공격을 피할 수 있었건만 이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위기를 타개할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답은 하나였다. 괴한들을 제압하는 것. 그러나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선비심공의 기운에 괴한들이 몸을 빌리고 있는 그림자가 소멸됨을 확인했지만 그것이 괴한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림자를 공격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만약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어깨가 아닌 목을 내줘야 할지도 몰랐다.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위기에 머릿속이 아득했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느꼈던 위기는 진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언제나 뒤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도망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었다.


군자검법에 의해 솟아난 대나무 숲이 입자가 되어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선비는 흑접선을 고쳐 잡았다. 새삼스레 손바닥 가득 무게감이 느껴졌다. 두 사람 몫의 목숨을 쥐고 있었다.


“인수.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요. 말이 씨가 된다잖아요. 저도 저지만 선비님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선비님이 여기서 쓰러지면 저런 나쁜 놈들이 더 활개 치고 다닐 거예요.”


고개를 돌리자 굳은 표정으로 선비를 바라보고 있는 인수가 있었다. 믿음으로 충만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미세하게 떨리는 입가는 그가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선비문의 유일한 제자라는 생각에 사고가 정지했던 것이리라. 위험한 전투에 직접 뛰어들 날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날이 당장 내일이라도 찾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했다. 무기를 쥐어주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한 명의 무림인이 되도록 가르쳐야 했다. 자신의 죽음이 곧 그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생각해야 했다.


주변을 밝혀주던 대나무 숲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무 그늘에 서 있는 그림자들은 여전했다. 음침하고 과묵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경고나 전조도 없이 공격이 재개될 것임을 알았다.


선비는 공격을 기다리지 않았다. 단전의 내공이 또 한 번 요동쳤다. 혈도를 따라서 흐르는 내공은 마치 수문이 열린 댐에서 쏟아지는 강물처럼 격렬했다. 그 험한 기운에 팔을 감싼 두루마기마저 흔들렸다.


칠흑의 안개가 경고를 하듯 주변을 감쌌다. 이번에도 안개의 규모는 숲을 통째로 삼키려는 것처럼 거대했다. 그 순간 가지만 앙상했던 숲에 매화가 한가득 피었다.


만발한 매화가 발하는 빛이 밤을 밝혔다. 군자검법의 첫 번째 초식 풍류. 이토록 많은 매화를 피운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한 송이 매화를 피웠기에 완전히 다른 무공처럼 느껴졌다.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인수도, 괴한도, 심지어 선비도. 모두가 넋을 잃고 사방을 뒤덮은 매화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찰나의 감상이 끝나고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매화 때문인지 나무 곁에 서 있는 얼굴 없는 그림자가 더욱 음침했다.


매화는 피어나자마자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대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며 바닥을 향했다. 눈먼 잎에 닿은 그림자가 먼지처럼 사라졌을 때 상황은 급변했다.


그림자의 몸을 빌린 괴한들의 공격이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허무하리만치 무위로 돌아갔다. 매화가 일제히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자의 송곳 같은 칼은 매화의 잎에 닿자 마른 흙처럼 부서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칼자루의 끝과 닿은 몸도 먼지처럼 흩어지더니 이내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림자가 사라지자 괴한의 모습이 드러났다. 닌자라는 말에 화를 내며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던 자였다.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란 모습이었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의 거친 주름과 팔을 감싼 모습에서 그가 느끼고 있을 고통이 느껴졌다.


선비의 역공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매화의 잎은 숲 전체를 덮을 만큼 많았다. 솜처럼 가벼워 천천히 내려앉는 눈을 보는 듯했다. 제아무리 날쌘 동물이라도 눈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무엇도 잎을 피해갈 수 없었다.


자신의 땅인 양 선비와 인수를 포위하고 있던 그림자들은 한순간에 먼지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괴한들은 이미 그림자에게서 떨어진 지 오래였다.


부상을 당한 괴한의 곁에 두 명의 동료가 서 있었다. 그들은 떨어지는 꽃잎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심기 불편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림자에서 벗어난 그들은 더 이상 선비심공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선비는 의연한 표정으로 괴한들을 마주보았다. 그러나 속사정은 전혀 달랐다. 두 번에 걸쳐 대규모 초식을 사용한 탓에 허해진 단전이 불안했다.


다행스럽게도 괴한들도 사방에 그림자를 뿌리는 기이한 수법을 다시 사용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소모전으로 간다면 불리한 것은 분명 선비였다. 그럼에도 괴한들은 그림자 인형들을 불러오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그리 간단한 수법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다.


선비는 흑접선을 강하게 붙잡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기세를 잃고 싶지 않았다. 괴한들은 예측할 수 없는 수법들을 사용했다. 차라리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선비가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괴한들의 반응은 매서웠다. 매화에 상처를 입었던 괴한이 짧은 칼을 빼들며 달려들었고, 나머지 두 명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괴한은 선비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속도로 마주 달려와 눈 깜짝할 사이에 선비와 무기를 맞댔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귀를 때렸다. 그 순간 흑립에 가려진 선비의 표정은 경악에 가까웠다.


비등한 빠르기의 적과 이렇게 맞붙었던 적이 있었던가. 처음 느끼는 속도감이었다. 괴한의 칼을 막은 것은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선비는 괴한과 거리를 벌리려 했다. 놀라고 있을 새도 없었다. 사라진 두 명의 괴한. 십중팔구 기습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괴한은 끈질기게 칼을 맞대며 따라붙었다. 기습의 우려에 선비는 속수무책으로 추격을 허락해야 했다. 그리고 사라졌던 괴한들의 예정된 습격이 이어졌다.


그림자 인형들이 그랬던 것처럼 괴한들은 나무의 그늘에서 솟아나 기습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선비는 자신을 추격하던 자의 칼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허리를 꺾으며 안개를 흩뿌렸다.


괴한들이 휘두른 칼은 기세 좋게 안개를 갈랐지만 선비에게 닿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허공에 난초를 수놓는 군자검법의 두 번째 초식 절개. 안개 속에서 유려한 자태로 피어난 난초에 칼의 궤적이 바뀐 것이다.


절묘한 초식 운용으로 위기를 타개했으나 삼인조의 협공은 시작에 불과했다. 삼인조의 합격진은 일전에 겪었던 흑풍회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


한 명이 시선을 끌면 주변에 동화되어 몸을 숨긴 나머지 두 명이 기습을 가했다. 단순하지만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선비에 버금갔고, 주변의 환경에 동화되어 몸을 숨기는 은신술은 놀랍도록 완벽했다.


선제공격으로 서둘러 한 명을 전투불능으로 만들겠다는 선비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오히려 몸에 생채기가 늘고 있었다. 그림자의 몸을 빌린 공격처럼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으나 점점 늘어나는 상처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공격을 감당하는 선비의 표정이 점점 초조해졌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선비의 실력은 괴한 개개인의 실력을 웃돌았으나 세 명을 한꺼번에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선비의 눈동자에 망설임이 가득했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능성. 단 하나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확신은 없었다. 확신할 수 없었다.


목숨이 오고가는 절제절명의 순간. 다른 방법이 전무함에도 불완전한 무언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았다. 운명을 운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선비를 자꾸만 몰아붙였다. 늘어나는 상처만큼 반응은 늦어졌고, 이에 더욱 상처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어느새 하얀 두루마기의 태반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때 괴한을 향해 돌멩이가 매서운 속력으로 날아왔다. 어찌나 빠르던지 대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였다.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감에 선비는 압박하던 괴한은 거리를 벌렸고, 선비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돌멩이를 던진 장본인은 인수였다. 전투에 개입했다는 긴장과 흥분에 극도로 상기된 표정이었다. 터질 듯이 뛰는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선비는 인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인수의 도움으로 잠깐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나 괜한 행동이었다. 괴한들이 작정하고 인수를 노린다면 막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선비와 무기를 맞대고 있는 괴한의 시선이 찰나의 순간 인수를 향했다. 불길한 예감이 싸늘하게 선비의 등골을 스쳤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시야의 사각에서 다른 두 명의 괴한이 기습을 해왔어야 했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그동안의 고민이 무의미했다. 선비는 불확실한 가능성에 미래를 걸기로 결정했다.


선비를 중심으로 낙엽이 휘몰아졌다. 그녀에게 뿜어져 나오는 패도적인 기운에 괴한도 뒷걸음질을 쳤다. 본능을 건드리는 흉포한 기운이었다.


흑접선을 쥔 자세도 달라졌다. 몽둥이를 든 모양새였다. 흑접선을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일었다. 아주 신경질적이고 짜증스러운 손짓이었다.


언제나 선비의 주변을 감돌던 여유로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온몸으로 내뿜는 기운은 분노였다. 대상이 불분명한 분노였다. 모든 것을 향한 무분별한 분노였다.


낯선 선비의 모습에 인수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매일 함께 지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옷차림이 아니었다면 분명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갑자기 변한 선비의 분위기에 괴한은 어딘가에 있을 동료들과 시선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빠르게 발을 놀렸다. 그는 표적을 바꿔 인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괴한은 뒤통수에 느껴지는 싸늘한 감각에 몸을 비틀며 방향을 틀어야 했다. 괴한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몽둥이가 된 흑접선이 지나갔다.


괴한은 서둘러 선비와 거리를 벌렸다. 분명 작은 부채인데도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진 것이다. 공격을 허용했다면 머리가 짓눌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선비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한 번 점찍은 적은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평소보다 날쌔고 날카로운 움직임이었다.


흑접선은 이번에도 괴한의 정수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머리와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려던 괴한은 다급히 머리 위로 칼을 들었다.


칼을 쥔 괴한의 손목이 무력하게 꺾였다.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저항하길 포기하고 거대한 힘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볼품없이 튕겨나가 나무에 등을 부딪쳤다.


괴한은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선비를 쳐다보았다. 선비의 공격을 막은 팔을 움직이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웠다. 뼈에 금이 갔거나 부러진 듯했다. 당분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 자명했다.


그런 괴한을 노려보는 선비의 눈빛이 매서웠다. 흑립에 가려져 있건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살기등등했다. 손에 들린 부채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한 살상력을 흉기였다.


“······선비님?”


인수가 나지막이 선비를 불렀다. 너무도 낯선 모습에 목소리마저 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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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 마담 (3) 19.03.15 4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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