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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슈퍼 담배K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다홍
작품등록일 :
2019.02.18 19:23
최근연재일 :
2019.03.26 22:23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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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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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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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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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pack 3. 소원 (2)

DUMMY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익숙한 골목길에 서 있었다. 낡은 가로등과 낯익은 대문, 다름 아닌 그의 집이었다.

언제 집 앞까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종례가 끝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거쳐 왔을 교문과 대로의 풍경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입김과 방정맞게 들썩대는 심장이 그가 전력으로 뛰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집 앞에 선 김연은 왠지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완벽하리만치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언제나처럼 학교에 가서, 언제나처럼 없는 사람인 양 지내다, 언제나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불안했다.

주말의 그것은 오늘 아침까지 계속된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외로움에 못 이겨 스스로가 불러낸 삿된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스팔트 위에 내려앉았던 아침의 첫 눈송이처럼 녹아 없어질, 그런 허무한 망상 말이다.

덜컹.

대문이 열리고 아담한 마당이 보였다.

군데군데 쌓인 눈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김연은 곧장 안쪽 문으로 향했다.

철컥, 문이 열리며 가라앉아 있던 내부의 공기가 김연에게 달려들었다. 집을 비운 짧은 시간 동안 식어 버린 공기는 밖의 그것보다 조금 더 차갑게 느껴졌다.


“···다녀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며 김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김연은 가방을 바닥에 툭 던지듯 내려놓고 집 안 이리저리를 서성거렸다.

화장실, 부엌, 안방, 거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아 잠가 두는 창고 문까지 열고 집 안을 배회했다.

쓰레기통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이전에 버렸던 쓰레기들 위에 담뱃갑과 라이터들이 들어간 그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털썩.

김연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길게 누워 중얼거렸다.


“···소원 좋아하네···.”

-정했니?

“정하고 자시고···!”


다음 순간 김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목소리는 천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김연이 번뜩 고개를 들었다.

황급히 올려다본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처음 그때처럼, 시가렛은 머리만 불쑥 내민 채 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연이 망연자실하게 입을 열었다.


“꿈이 아니었어?”

-나갔다 오더니 정신이 나갔구나? 하긴, 이런 집에서 사는 것치고 어째 지나치게 멀쩡하다 했어. 너 알고 있어? 이 집에는 멀쩡하지 않은 물건이 멀쩡한 물건보다 훨씬 많아.

“사라지지··· 않은 거야?”

-자꾸 헛소리할래? 소원도 다 듣지 못했는데 사라지긴 어딜 사라져. 아, 그러고 보니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고 뭐하는 거야? 내가 모르는 이 나라의 풍습인 거야? 혹시 2층도 열어야 해?


순간 김연은 정신이 확 드는 것을 느꼈다. 색깔이 있다면 빨간색이 분명할 무언가가 목 위로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저기, 언제부터 봤어?”

-가방 내려놓을 때부터일까? 허우적대면서 문만 열고 다니는데 말을 걸 수가 있어야지. 쓰레기통 보고 소파로 갔을 때야 진정된 것 같아서 말한 거지만··· 아!


거기까지 말한 시가렛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너 혹시 날 찾아다닌 거야?

“······.”


서늘하던 집 안의 공기가 빠르게 덥혀졌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집이 밖보다 추울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 내 말이 맞지? 그래! 나 이런 거 진짜 잘 맞춘다니까!


유쾌하기까지 한 시가렛의 말을 들으며, 김연은 조용히 돌아 앉아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다.


***


잠시 후, 방에서 나온 김연의 모습에 시가렛이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난 그 옷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시끄러. 겉모습으로 모든 걸 판단하지 마.”


막 옷을 갈아입고 나온 김연이 자신 없게 투덜거렸다.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다름 아닌 토요일 새벽의 그 화려한 추리닝이었다.


-이 집에는 멀쩡하지 않은 물건들이 굉장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그건 손가락에 꼽히는 물건이야.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옷을 산 거야?


시가렛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연은 딱히 변명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물론 필요에 의해 구입했다. 모자라는 존재감을 채우기 위한 기대 심리로 구매했던 추리닝이고, 불과 저번 주까지만 해도 입고 돌아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알아보는 사람, 아니, 요정이 하나 생겼다고 이렇게까지 후회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시의 자신을 뜯어말리고 싶었다.

시가렛이 알 만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무 생각 없었구나.

“······.”


김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오해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 추리닝의 가격이 꽤 셌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걸 생각하고 샀다는 사실이 훨씬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뭐, 좋아.


탐탁지 않은 눈으로 추리닝을 살피던 시가렛이 허공에서 다리를 한 차례 꼬았다.


-날 그렇게 찾아다녔다는 것은 아마도 소원 때문이겠지?


전혀 다른 이유였지만, 김연은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자칫 속물처럼 비춰질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와 시가렛은 만난 지 채 3일도 지나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니 어쩌니 같은 말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입이 찢어져도 못한다. 더군다나 김연은 지금 어째서 자신이 이런 말을 떠올리는지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스무 개나 남았으니까 부담 없이 말해 봐.


한계와 소원이란 말을 같이 쓰는 철면피 요정이 뻔뻔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뻔뻔한 말에 김연은 비로소 냉정해질 수 있었다.


“···소원의 한계라는 것, 너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쉽지만 그래. 난 본질로 향하는 질문에 대해선 일체 답할 수 없어.

“내가 소원을 말하면 너는 최대한 한계에 맞도록 중재해서 이루어 준다, 이렇게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틀린 말도 아니야. 그전에 한 가지 충고하자면 넌 지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어. 말 그대로 이건 소원이고, 아직 스무 가지나 남아 있지. 어차피 밑져 봐야 본전이니까 일단 원하던 걸 말해 보는 건 어때? 어릴 때 이루고 싶었던 꿈 같은 건 하나쯤 있는 법이잖아?


시가렛의 말에 김연은 자신의 추리닝을 슬쩍 쳐다봤다.

말도 안 될 정도로 튀는 추리닝이다. 그러나 이걸 입고 대로를 활보해도 사람들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


김연은 문득 깨달았다. 너무도 당연시되어 버린 현실이라 타개할 방법이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제자리만 빙빙 돌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포기했을 뿐, 처음부터 그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길어지는 침묵에 시가렛이 답답한 듯 말했다.


-넌 하늘을 날고 싶다거나,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꿈도 없어?

“없어.”

-뭐?

“시가렛, 넌 혹시 존재감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


단호하게 말하는 김연에게 시가렛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이 빌라는 소원은 빌지 않고 또 무슨 짓인가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네가 이뤄 주는 한계 있는 소원의 범주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 말에 시가렛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난···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싶어. 그저 평범하게, 인식되지 않는 일 없이 누군가에게 기억되며,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싶어.”


많은 재능을 가진 김연이다.

그러나 이를 알아주는, 인정해 주는, 하다못해 질투하는 이들조차 없다.

폄훼는 없지만 이해도 없다.

남는 것은 오로지 허무뿐.

김연은, 그것을 강제로 깨달아야 했다.


“나는 더 이상 잊히고 싶지 않아.”


허무를 깨닫고 머지않아, 그것과 가장 가까운 개념이 죽음이라는 것을 은연중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모두의 기억에서 잊힐 때다.’ 어느 미디어의 명대사에 따르면 김연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죽었다. 그렇게 10년을 죽고 또 죽으며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말 그대로의 존재감.”


어느새 고개를 반쯤 수그린 김연이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이 소원, 들어줄 수··· 있겠어?”

-그래.


시가렛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김연에게 날 듯이 다가와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

-네 소원은 이루어질 거야.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김연에게 시가렛은 그 아름다운 얼굴로 환하게 웃어 주었다.

파앗!

이어 눈부신 빛이 시가렛에게서 터져 나왔다.

김연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필설로 형용키 힘든 뭔가가 몸에서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동시에 빛 속에서 시가렛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마치 화약을 발라 놓은 듯 연이어 터져 나가는 자신의 부츠 장식들을 보며, 그녀는 명백히 당황하고 있었다.

김연은 생각했다.


‘···씨발, 뭔가 잘못됐구나.’


그리고 생전 처음 속으로나마 욕을 했다는 것에 별다른 감흥도 없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뚜벅뚜벅.

고급 양복을 차려 입은 호리호리한 체형의 사내가 붉은 융단이 깔려 있는 호화로운 복도를 가로질렀다.

금발 벽안의 사내는 이윽고 커다란 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문짝 하나가 사내의 덩치보다 두 배 정도는 컸다.

사내가 문 바로 옆 책상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며 물었다.


“마스터는?”

“아침 식사 중이십니다.”

“들어가겠다. 기별을 넣어라.”

“네? 하지만···.”


여성이 망설였다. 그들의 주인은 자신의 식사 시간이 침범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사내도 모르지 않을 것인데 오늘따라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삑!


-켈빈이군. 들여보내.


그때 그녀가 있던 자리에서 인터폰이 울리더니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성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사내, 켈빈은 곧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큭···.”


안으로 들어선 켈빈은 작게 신음을 흘렸다. 동향 전체가 유리로 이루어진 방이라 오전, 특히 이 시간대에는 그에게 힘겨웠다.


“실망시키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자네는 꽤 유능한 인재거든.”


예의 목소리가 켈빈의 고막을 두드렸다.

켈빈은 주위를 감싼 불쾌한 아침햇살을 감내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넓은 방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창문이 보였다. 그 너머로 뉴욕의 고층 빌딩들이 마치 성냥갑처럼 보이고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의 ‘103층’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 그 중앙에, 켈빈의 주인이 햇살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 장엄한 모습에도 켈빈은 무릎을 꿇거나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햇살을 마주 보고 있는 이 상황이야말로 그가 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의였기 때문이다.

켈빈은 꼿꼿이 선 자세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여덟 시경, 저희 측 점성술사가 패턴 그린의 반응을 포착했습니다.”

“호오···.”

“오차는 약 삼 분. 최초 관측을 보고받고 곧바로 위치를 추적했지만 반응에 비해 사라진 시간이 너무 빨라서 범위는 좁힐 수 없었습니다.”

“확정된 범위는 어느 정도지?”

“아시아와 유럽권입니다. 현재 관측 상황으로는 오세아니아 역시 절반 정도 걸쳐져 있습니다.”

“훗, 지구 절반을 뒤져야겠군.”


보고를 듣던 사내가 가볍게 조소했다.


“켈빈.”

“네, 마스터.”

“지금 이 시간부로 그 일대에 흘러가는 자금의 흐름을 살펴. 이유 없이 막대한 부를 쌓은 사람이나 돌연 신비한 능력을 발현하는 사람들도 찾아라. 그리고 다음 반응에는 충분히 대비해서 오차를 일 분 이내로 줄여. 세 번째 반응이 나타나기 전까지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아, 십자회 늙은이들도 충분히 견제하도록. 우리가 그랬듯, 그들 역시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몰라.”

“···네, 마스터.”


조금 늦춰진 켈빈의 대답에 사내가 웃는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 아직 아침은 네게 힘들겠군. 오늘은 꽤 만족스러웠으니 그만 나가 봐. 나도 식사나 마무리해야겠어.”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켈빈은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간신히 답하고 힘겹게 돌아섰다. 몸 전체에서 보일 듯 말 듯 피어나는 하얀 김과 함께 켈빈은 햇살 가득한 방을 나섰다.

덜컹!

커다란 문이 닫히는 것을 본 사내가 천천히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침대 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새하얀 나신의 여성이 실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핏기 없는 여성에게서는 이미 어떠한 기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새 식었군.”


혀를 차면서도 사내는 여성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그리고 여성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하지만 아주 입맛 도는 소식이었어.”


푸르게 빛나던 눈동자가 금빛으로 반전됐다. 아침 햇살 속에 새하얀 송곳니가 드러났다.


“진··· 이번에는 놓치지 않아.”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는 듯한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


“롱기누스의 창이 나타났습니다.”

“롱기누스!”

“그 배덕의 창이!”


어두컴컴한 지하 밀실에 보이지 않는 파랑이 일었다.


“정확히 오늘 저녁 열 번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 프로페쟈 경께서 예측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분명 십칠 년 전, 지난 세기말에 나타났던 것과 동일하다고도 하셨습니다.”

“허어!”

“한 세기에 걸쳐 두 번이나 나타나다니···.”

“신께서는 어찌 이런 시련을 우리에게 주시는 건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소리들 속에는 우려가 가득했다.

그때 처음의 낭랑한 목소리가 밀실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기이한 일은, 이번에 나타난 창이 모두 열아홉 조각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입니다.”

“열아홉 조각?”

“그 롱기누스의 창이 말인가!”


순식간에 믿기지 않는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들이 알기로, 롱기누스의 창은 사라지면 사라졌지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 형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쾅!


“조용!”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중앙 쪽에 있던 노인이 들고 있던 은장으로 바닥을 찍으며 일갈했다.

다시 고요해진 가운데 노인이 물었다.


“스텔라여, 프로페쟈 경께서는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나?”

“네, 대주교님. 대략적인 위치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화를 주도하던 목소리의 주인, 스텔라가 고개를 숙였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대주교가 스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텔라, 너는 지금 당장 현재 남아 있는 템플 나이트 전부를 동원해 롱기누스의 창을 모아라.”

“대주교!”

“안 됩니다!”


주위에서 만류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대주교는 개의치 않고 몸을 돌렸다.


“지금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템플 나이트는 저 스텔라를 포함해 겨우 여섯이오. 주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 햇빛 아래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주스러운 존재들을 벌써 잊었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만약 그들에게 발각이라도 되면···.”

“대체 언제까지 사육당하고 있을 것인가!”

“······!”


우웅!

대주교의 호통에 밀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은장을 쥐고 있는 주름진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난 이 신성 교구가 지금껏 존재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배려 때문이란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소. 그렇기에, 롱기누스의 창이 나뉜 지금을 적기로 판단했소.”

“대주교님, 설마···!”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주교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들의 경악에 쐐기를 박듯, 대주교의 목소리가 다시 밀실을 울렸다.


“스텔라!”

“네, 대주교님.”

“롱기누스의 창은 신을 꿰어 죽인 성스럽고도 더러운 창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는 알고 있겠지?”

“······.”


스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대주교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섰다.


“그 침묵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답이구나. 스텔라여, 그대에게 어떤 시련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깃들기를 바라겠노라. 아멘.”


가슴 앞에서 성호를 그은 대주교가 스텔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희미한 빛이 스텔라의 몸 전체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어둠과 사제복으로 가려졌던 그녀의 미려하고 앳된 얼굴이 슬쩍 드러났다.


“그 은총 성심으로 받들겠나이다. 아멘.”


스텔라가 성호를 긋자 그녀의 몸에 머물던 빛들이 점차 점멸하며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빛을 받아들인 스텔라는 미련 없이 밀실에서 빠져나왔다.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는 스텔라의 눈은 마치 그녀가 가진 이름처럼 밝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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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ck 3. 소원 (2) 19.02.25 144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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