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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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펜
작품등록일 :
2019.02.20 09:12
최근연재일 :
2019.05.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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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7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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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이긴 건 아니지만 지지 않는 법.

DUMMY

무슨 동화속에 마녀들이 쓸법한 무쇠솥이 있는가하면, 스팀펑크 세계관에서나 나올법한 물건 또한 있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겠다 찬찬히 뜯어보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내가 무슨 은쟁반같은 물건을 보고 있을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말씀하신대로 수정 했는데 다시한번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은쟁반인가요?"

"하하 아닙니다. 이건 마법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적성테스트기입니다."

"예? 그런것도 가능해요?"

"가능합니다. 개발 당시엔 마법사에 한 획을 그을 획기적인 발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 때문에 1성탑으로 좌천되고 말았죠."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말투에서 인생의 진한 쓴맛이 느껴졌다.


"그......적성테스트기? 그게 뭔가 결함이나 문제가 있었나요?"

"아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만약 결함이나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세상에 이 물건을 내놓지 않았을겁니다."

"그런데, 왜......."

"손님께선 궁금한게 많으시군요. 계속 서서 얘기하긴 그러니까 잠시 자리를 옮기시죠. 제가 차라도 한잔 내드리겠습니다."


원래는 손님 접대용 테이블이었겠지만 지금은 수북하게 쌓인 설계도며 서류뭉치가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대충 한데모아 테이블 가쪽에 쌓아놓은 그는 찻주전자 대신 실험용 비커와 한쪽 면에 이가 조금씩 나간 컵을 들고왔다.

만약 백작가에서 내놓았다면 백작님부터 집사장님까지 이어지는 내리갈굼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혼돈의 티타임이 시작됐다. 

도대체 부엌은 뒀다가 뭘 할건지 모르겠지만 찻잎까지 가져온 걸 보면 여기서 직접 끓일 모양이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맞은편 의자가 뒤로 드르륵 밀려났다, 앞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작은 빛이 일어나더니 허공에서 물길이 소용돌이치며 비커로 빨려 들어갔다.

오오

마치 디즈니 만화를 직접보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비커 안에 찻잎을 되는대로 붓기 시작했다.


촤르륵


고작 두잔 분량의 물에 말도 안되는 양의 찻잎이 들어갔다.

물을 끓인 뒤에 찻잎을 넣는게 순서인데 순서의 잘못됨을 떠나 아직 끓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진한 색이 우러나오는 걸 봐서는 몸서리쳐지게 쓸게 분명했다.

방금까지 디즈니다 뭐다해서 잠시 메르헨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내가 잠시 잊었었다. 

지금은 혼돈의 티타임이란 걸.

보기만해도 쓴맛이 입에 느껴지는 것 같아 내가 인상을 쓰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무슨일 있으십니까?"

"아......"


할 말을 고르는지 아님 마땅히 설명할 말이 없는지, 둘중 어느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참을 '아......'로 일관하던 융푸 마법사님이 입을 열었다.


"마법은 2개까지 밖에 캐스팅이 안되거든요. 차를 끓일려면 비커를 허공에 띄우고 바닥에 불꽃을 만들어야하는데 그럼 투명화 마법을 취소해서 되서요."


처음엔 그저 내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라면 사람이 무서운 건지도 모른다. 

나에겐, 혹은 누군가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이 사람에겐 이렇게나 고민하고 망설여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자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제가 눈을 감을테니 편하게 투명화 마법을 푸세요."

"아니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무리 안 하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시간내서 제 얘기를 들어주실려는 분이 앞에 계신데 이런걸로 망설일 순 없죠."



곧이어 소리도 없이 커튼의 장막이 벗겨지듯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사람이 스르륵 나타났다.

직접 눈으로 보는 융푸 마법사님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놀란 이유는 대륙인과는 다른 타는듯한 붉은 머리도 아니었고 마치 술에 취한듯 불그스름한 피부색도 아니라 나보다 고작 두세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는 모습 때문이었다. 

공방의 직원이 분명 20살 전후라고 했지 이렇게 어리다고 하진 않았다.



"저한테 여길 소개해준 공방 직원이 융푸 마법사님은 20살 전후라고 하셨는데요."



그 말에 융푸 마법사님은 그저 미소만 지은채 마력이 담긴 손가락을 까딱했고 어디선가 로브를 걸친 20대의 청년이 우리 앞으로 걸어 들어왔다.



"공방 직원이 말하던 사람은 이 사람입니다."

"융푸 마법사님의 조수분인가요?"

"하하 아닙니다. 그저 저대신 밖을 나가기 위해 만든 의체입니다."

"예?"

"잘 보십시오."



융푸 마법사님이 오른손을 들더니 청년도 오른손을 들었다.

융푸 마법사님이 왼손으로 머릴 쓰다듬자 청년도 왼손으로 머릴 쓰다듬었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골렘처럼 명령을 수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제 행동과 목소리를 대신 전달해주는 꼭두각시 같은겁니다."

"그래도......대단하네요. 진짜 사람같아요. 그럼 목소리는요?"



내가 지금까지 들은 융푸 마법사님의 목소리는 상당히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도무지 내 눈앞의 모습과는 괴리감이 심했다.



"목소리는, 이 목소리 변조기로 바꿨습니다."



로브의 앞섶을 여미는 브로치를 떼자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앳된 목소리가 나왔다.

모습을 드러내놓고 나선 융푸 마법사님은 한결 편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비커를 공중으로 띄워 불꽃을 일으켜 차를 팔팔 끓이셨다. 

아니나 다를까 진한 녹황색의 색깔을 뽐내는 차를 따라 내게 슥 내미셨다.

난 세상 어색한 표정으로 차를 받아들고 일단은 융푸 마법사님이 차를 마실때까지 기다렸다.

자기도 사람일텐데 그 쓰라린 쓴맛을 보면 나한테 마시지 말라고 할게 분명할거란 계산이었다.

융푸 마법사님은 거리낌없이 차를 마시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 놓으셨다.

혹시 쓴데 애써 감추는가 싶어 내가 표정을 면밀히 살폈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이었기에 난 이 차를 어떻게 할까 정말 수도없이 고민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차가 식기 전에 드시죠."


그러면서 날 지긋이 쳐다보는데, 그 무언의 압력에 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길로 찻잔을 들어 입술에 살짝 갖다댔다.


"?!"


목으로 넘기기도 전에 이미 향기만으로 쓴맛이 뇌리에 고스란히 꽂히는 느낌은 또 처음이었다.

살짝 벌려진 입술을 타고 차가 입안으로 들어왔을때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토가 나올것 같았지만 가슴을 꾹 누르며 억지로 약간 올라온 위액과 함께 차를 삼켰다.



"표정이 엄청나신데 정말 무슨일 있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달달달 떨리는 손으로 냄새마저 오지 못하게 찻잔을 멀리 놓은 뒤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아까 1성탑으로 좌천되셨다고 하셨는데 1성탑이 뭔가요?"



분명 안내데스크의 누나도 여길 1성탑이라고 불렀다.



"1성탑은 말 그대로 탑이 1개뿐인 마탑을 의미합니다. 마탑은 최대 5성탑까지 존재하며 대륙 내에 5성탑은 마도왕국 리슈파이어 밖에 없습니다." 

"탑 수가 높으면 뭔가가 다른가요?"

"물론이죠. 마탑이 국가를 가리지 않고 각국의 국고로 운영되는건 아시죠?"



알턱이 있나.

내가 이쪽 관련 계통으로는 완전 까막눈인걸 이제야 인지했는지 원숭이도 알아듣게끔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탑은 각국의 국고 예산을 모아 마법사들의 연구자금과 운영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탑수가 많은 마탑이 더욱 많은 예산을 편성 받을테고, 자연히 그쪽으로 유능한 인제가 모이죠."

"그럼 마법사님은 원래 몇성탑에 계셨어요?"

"여기로 오기 전까진 4성탑에 있었습니다."



발명품도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을 사용할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눈앞의 인물이 말도 안되는 거물인걸 이제야 알게됐다.



"그런데 적성 테스트기가 무슨 문제라고 사람을 좌천까지 시킨데요?"

"하아."



융푸 마법사님은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차를 한모금 마셨다.

물론 난 마시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차를 받지도 않은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마법연구와 마도공학엔 일반인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금액이 들어갑니다. 물론 각국에서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긴해도 그것만으론 부족하죠. 그래서 마법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기초마법서를 파는것도 마탑 재정에 한 축입니다. 그런데 이 마법이란게 익히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익힐 수 있는건 아니거든요. 마법을 익히고자 마탑의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중 마법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약 7할입니다. 무려 7할! 하지만 그들은 그것도 모르고 마법을 익히는데 너무 많은 금액을 쓰고 있습니다. 전 그런 사람을 수도없이 많이 봐왔습니다."


거기까지 열변을 쏟아낸 목을 차로 달랜 뒤 곧이어 입을 열었다.



"여동생의 결혼식 비용을 들고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이, 인생역전을 꿈꾸며 도둑질까지 해서 번 돈으로 마법서를 샀지만 결국은 경비대에 잡혀 감옥에 갇힌 사람까지, 있지도 않는 소질에 인생을 쏟아붓고 망가지는 사람이 수도 없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마탑을 드나들고 있죠. 그게 안타까워서 만든게 적성테스트 장치였는데 제가 있던 탑주가 그걸 탐탁지 않게 여겼고 저의 지위는 물론 적성테스트기의 발표까지 막고서 저를 여기에 보내버렸죠."



흔하디 흔한 스토리였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익의 이익을 저버린건 물론이고 그 관계자까지 처벌하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 하나보다 다만 그게 실화고 지금 내 눈앞에 당사자가 있다는게 문제지만.

마법에 소질이 필요한지도 오늘 알았고 소질이 없는 사람이 7할이 넘는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그래서 마법사가 준귀족에 속하는 대접을 받는걸테지만, 사람들은 밝은 면만 보려고 하고 그 이면에 마법사 지망생으로만 끝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를것이다. 내 옆집 형도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 한사람 이었을테고.



"후, 제 이야기를 이렇게 남한테 길게 한 건 정말 오래간만인 것 같네요."

"저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들은 건 오래간만인 것 같네요."



그리고 서로를 향해서 씨익 웃었다.

지금 이 순간만은 왠지 같은 마음인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좋은 취지의 발명품 같은데, 여기서 이렇게 빛을 못 보는게 아쉽네요."

"저도 그렇긴 한데 이걸 만약 세상에 발표했다간 4성 탑주가 기를 쓰고 절 파멸시키려 들걸요?"

"나쁜놈이네요."

"그렇죠 나쁜놈이죠. 기왕 이렇게 된거 손님이라도 한번 적성테스트 받아 보실래요?"

"그냥 편하게 레이지라고 부르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름을 묻는게 늦었네요. 그럼 레이지 씨도 편하게 뒤에 마법사님같은 호칭 빼고 이름만 부르세요."


너무 뒤늦은 통성명을 하고 공짜라는 말에 혹해 적성테스트를 받아보기로 했다.

혹시 모르지 나도 '크큭 내 오른손엔 흑염룡이 잠들어있지' 같은 말을 하게 될 날이 올지.

융푸 씨는 적성테스트기를 테이블에 올리고 나한테 설명을 해줬다.



"여기에 레이지 씨의 피를 떨어뜨리면 적성이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임신테스트기나 혈당검사기랑 비슷하네요."

"예? 그게 뭐죠?"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피는 얼마나 떨어드려야 하나요?"



설마 손목이라도 긋고 한 바가지씩 쏟아 부어야 하는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렇게까진 아니었지만 한두 방울 갖고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건네받은 나이프를 손바닥을 갖다대고 한참을 망설이다 눈을 질끈 감고 과감하게 그었다. 그리고 주먹을 꽉쥐었다.

피가 주먹 사이로 주르륵 흘러 은쟁반 같은 매끈한 표면위로 번지듯 떨어졌다.

무분별하게 퍼지던 피가 어느 순간부터 스르륵 미끄러지며 글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늦었습니다. 

편하게 읽어주세요.

그리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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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4.영지전 19.04.13 153 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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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새우는 고래싸움에 등터지기 싫다. 19.04.08 199 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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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3.새우는 고래싸움에 등터지기 싫다. 19.04.02 19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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