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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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3.23 21:35
연재수 :
2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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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50,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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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5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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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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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
9쪽

아인종 소녀와 만나다

DUMMY

홀로 남겨진 나는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판타지 게임의 마왕이라면 수백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다녀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내 꼴을 보라. 길 잃은 미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분명 이곳이 알트레아? 왕국의 서부 평야지대라고 했지...”


여기가 왕국의 서부라고 한다면, 동쪽으로 가면 사람들이 사는 왕국이 나올 터. 나는 터덜터덜 걷기 시작하다, 문득 생각을 바꿨다. 굳이 내가 거기까지 걸어갈 필요는 없었다.


“전이.”


나를 중심으로 작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이른바 전이 마법이라는 것이다. 목적지는 일단 시야에 들어오는 제일 동쪽으로 설정해 놓았다.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주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직 평야 지대에 있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성벽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앞에는 농작지로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무심코 그쪽으로 다가서려다, 멈칫했다.


“나, 마왕이었지.”


스키잔은 나를 마족을 다스리는 왕, 마왕이라고 했다. 인간종이 아닌 건 확실하겠지. 나는 이 세계에서 마족이 인간에게 있어 어떠한 존재인지 전혀 몰랐다.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을지, 아니면 서로 혐오하며 적대하고 있을지.


만일 후자의 경우가 맞다면, 마왕인 내가 인간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혹시나 마왕이라는 것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까 체크한 바로는 내 외견은 살아있었을 때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인간이었다.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난 만큼 외견은 조금 바뀌어도 좋았겠지만, 여자아이로 오해받는 일이 종종 있는 곱상한 얼굴도 그대로였다. 적어도 인간들에게 발각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만 일단은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열심히 일하느라 내가 지나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는 농민들을 지나쳐, 성문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이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다음!”


경비병 둘이 창을 들고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일종의 검문이었다. 줄은 길었지만 의외로 내 차례는 금방 찾아왔다.


“다음!”


가벼워 보이는 갑옷을 입은 경비병의 앞에 서자 그가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경비병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통행증 달라고, 통행증! 외지인이냐?”


물론 내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없는 거냐? 수상한데...”


경비병이 수상쩍다는 듯이 나를 훑었다.


이 세계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알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왕국이라는 곳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통행증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모양이다. 벌써부터 내 뒤의 사람들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통행증도 없으면 꺼지라는 식의 거친 말들이 오갔다.


“이봐, 소년. 어디에서 왔지?”


경비병은 경계심이 바짝 올라간 목소리를 냈다. 할 수 없지, '그걸' 쓸 수밖에 없다.


내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경비병의 몸이 굳더니 눈의 초점이 흐릿해졌다.


“난 아무 문제없어. 지나가도 괜찮아. 그렇지?”

“아무... 문제... 없다...”


경비병이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거보라는 듯이 작게 웃었다. 마법이라는 거, 생각보다 편리하군.


“잠깐!”


웬 여자아이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나와 경비병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비병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바, 방금 뭐였지...?”


혼란스러워하는 경비병에게 여자아이가 말을 걸었다.


“저랑 아는 사이예요, 행크 씨.”

“아... 시이나. 이 사람은 누군데?”

“크리스 씨, 맞죠? 오랜만이네요. 몇 년 만인지...”


후드를 뒤집어 쓴 여자아이가 내게 말을 맞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도와줄 생각이었나.


“그래, 오랜만이네.”


나도 여자아이를 아는 척 했다. 쓸데없는 참견에 불쾌하다는 얼굴을 바로 만들지 않는 것도 처세술의 일환이다.


“그런 고로, 제 동행인으로 통과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왕도에 볼일이 있어서요.”

여자아이가 부탁했다.

“안 될 건 없다만... 괜한 일 만들지 말라고?”


경비병은 어물거리며 우리를 통과시켜주었다.


성문을 통과하니 시끌벅적한 상점가가 나왔다. 어느 정도의 치안도 유지되고 있는지, 군데군데 위병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리 둘러봐도 마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그 의문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내 이름은 크리스가 아냐.”

“알고 있어요.”


여자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안 돼요, 이런 곳에서 마법을 썼다간... 그것도 경비병한테요.”


내가 쓰려던 마법은 상대에게 '암시'를 거는 마안이다. 암시가 풀리면 딱히 부작용도 없을 터. 하지만 이 녀석은 내가 그걸 쓰려던 것을 간파하고, 마법사용을 막기 위해 끼어든 것이다.


“... 어떻게 알았지?”


여자아이는 대답 없이 나를 끌고 어두운 뒷골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후드를 벗어 한 손에 들었다. 그제서야 드러난 건 단발로 자른 검은 머리칼과 늑대 귀. 인간종이 아닌, 아인이었다. 엉덩이 부근에는 꼬리도 달려있다. 웨어울프. 즉 나와 같은, 마족이라는 소리다.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일단 마법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요.”


내 안광이 붉은 빛을 내는 것을 보고 마법이 발동 직전 상태라는 것을 본 것이겠지.


“그런가.”


내가 말이 없자 여자아이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상당히 고위 마족이신 것 같은데.”


이 아이는 내가 마왕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인간으로 보이는 내 겉모습에 불구하고 내가 마족이라고 알아챘다는 건, 아마 내 몸의 구성 전체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을 일정 부분 감지한 결과일 것이다.

웨어울프는 마법은 제대로 쓰지 못하는 종족인 주제에 그런 '감'이 뛰어났으니까.


이 세계에서 쓰이는 마법은 인간도, 마족도 쓸 수 있다. 하지만 대기 중의 '마나'라는 것을 모아서 마법을 쓰는 인간과 달리, 마족은 주로 체내에서 생성되는 '마나'를 사용해서 마법을 썼다.


마나는 마법의 발동에 필수적인 것으로, 마법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족이 대기 중의 마나를 사용 못하는 건 아니니, 마법 전투로 간다면 대부분의 경우, 체내와 체외의 마나를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마족이 유리했다.


일단 가는 곳 마다 마왕이 납셨다고 떠들어봐야 내게 좋을 건 없었기에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사고로 인해 기억에 혼란이 왔다. 일단 여기서 정보 수집을 할 생각이야.”

“정보.. 수집 말인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 세계ㅡ 아니, 이곳에 대한 역사, 문화 같은 것들.”


인간종, 아인종과 같은 '생물'에 대한 정보는 이미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이 나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부딪혀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교과서로 배운 지식은 실습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법.


게다가 내겐 마법과는 조금 다른 힘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기에, 내가 어디까지 조심해야 될 필요가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마왕의 힘이 절대적이 아니라면 몸을 사릴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난 또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 아픈 경험은 이제 사절이다.


“그런 거라면, 도와드릴게요.”


여자아이가 흔쾌히 제안했다.


“말해두지만, 난 돈도, 돈이 될 만한 것도 없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여자아이는 내 옷차림을 보더니 물었다.


“정말요? 지금 걸치고 계신 코트만 해도 상당한 물건 같은 냄새가 나는데...”


그거야 나도 알지. 강제로 그 '지식'을 주입당한 덕분에, 내가 걸친 것이 평범한 옷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런 것을 '마법 아이템'이라 부른다.


내가 걸친 코트만 해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 마법이다. 바느질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마법으로 단번에 만들어진 것. 효과는 여러 가지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의 마법 및 물리 공격을 무효화할 수 있는 모양이다.


“일단 나도 입을 옷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어쨌든 네 협력에는 감사하지만, 나는 무일푼이다.”

“저도 딱히 대가를 바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굳이 뭐를 해주신다면,”


여자아이는 말했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뭐를?”

“일단 저와 같이 행동하시는 걸로 족해요. 부탁드립니다.”


웨어울프 소녀는 수수께끼 같은 부탁을 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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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최후의 편지 +1 24.02.17 17 2 15쪽
293 소녀는 어둠을 빛으로 착각한다 +1 24.02.10 17 2 12쪽
292 엄습하는 어둠 +1 24.02.03 18 2 16쪽
291 어둠과 함부로 마주한 그들의 말로 +1 24.01.27 19 2 13쪽
290 밀정 +1 24.01.20 23 2 15쪽
289 두 늑대가 바라보는 곳은 +1 24.01.14 24 3 12쪽
288 태초의 유물 +2 24.01.13 23 3 12쪽
287 어둠 속의 살육 +3 24.01.07 31 4 14쪽
286 새롭게 펼쳐지는 무대 +3 24.01.06 27 3 13쪽
285 족쇄를 찬 소년 +1 23.12.30 31 3 12쪽
284 운명을 속삭여라 +1 23.12.25 27 3 13쪽
283 아멜리아 비 리히트 +2 23.12.23 26 3 13쪽
282 왕녀의 비밀 +1 23.12.16 28 3 13쪽
281 그녀만이 뭔가 다르다 +3 23.12.09 28 3 14쪽
280 잿빛 위화감 +3 23.12.02 34 3 12쪽
279 암살 시도 +1 23.11.25 28 2 14쪽
278 세계에게 사랑받다 +1 23.11.18 40 3 13쪽
277 막으려는 자, 부수려는 자 +2 23.11.11 36 2 13쪽
276 사이코메트리 +4 23.11.04 40 3 15쪽
275 레벤 연합의 탈락, 계속되는 전쟁 +1 23.10.28 37 3 12쪽
274 목숨만을 건지다 +1 23.10.21 34 3 13쪽
273 정령술사 프엘리냐 +1 23.10.19 35 3 12쪽
272 또 다른 싸움 +3 23.10.11 39 3 13쪽
271 류드라이 +4 23.10.05 37 3 13쪽
270 뱀의 눈에 비친 것은 +3 23.09.23 46 3 14쪽
269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 +1 23.09.10 50 3 14쪽
268 어둠으로부터는 피할 수 없다 +1 23.08.31 53 2 9쪽
267 고유 이공간 +1 23.08.29 49 3 12쪽
266 그의 의지로 검게 칠해진다 +2 23.08.23 51 3 14쪽
265 가브리엘의 지팡이 +2 23.08.14 56 3 14쪽
264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최강종 +2 23.08.08 60 3 15쪽
263 드워프와 인간 +3 23.07.30 54 3 16쪽
262 어둠을 처단하는 창 +3 23.07.15 54 3 15쪽
261 금속은 생각보다 무르다 +3 23.07.05 61 3 13쪽
260 천사와 대척점에 선 것은 +2 23.06.18 71 3 15쪽
259 기술의 진보는 곧 살육의 진보 +3 23.06.10 65 3 16쪽
258 포신이 품은 마법 +3 23.05.20 69 3 10쪽
257 피의 무게는 죄의 무게만큼 +3 23.05.18 71 3 11쪽
256 신의 활, 그 시위가 품는 것은 +1 23.05.14 64 3 16쪽
255 매듭을 짓지 않으면 +2 23.05.09 66 3 14쪽
254 공중 요새 +3 23.04.29 69 3 16쪽
253 마도 vs 고유스킬 +5 23.04.05 74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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