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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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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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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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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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사람을 죽이다

DUMMY

나는 이곳의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그런 지식도 같이 주입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의 내 상식은 갓난아기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보다 수월히 정보 수집을 할 수 있겠지.


내게서 뭘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원하는 게 맞아떨어진다면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


“거절...”


내가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지 늑대귀가 풀이 죽어 접히다시피 내려갔다.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그럼 잘 부탁한다.”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차분히 말한 것에 비해, 여자아이는 금방이라도 방방 뛸 것 같았다.


“내가 도와줘야 할 것에 대한 건 지금은 자세히 밝힐 수 없는 건가?”

“... 때가 되면, 알려드릴게요. 지금은... 죄송합니다.”


내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런 제안에 승낙하는 건 위험했지만, 지금의 나는 찬 물 더운 물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그런가. 나는 류셀이라고 한다.”


내 이름을 밝히자 여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시이나 렌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시이나는 웨어울프인건가?”

“네, 하지만 저 말고 다른 웨어울프를 만날 일은 좀처럼 없을 거예요. 웨어울프 종은 이 근처에서 보기 힘드니까요.”


시이나는 어느새 후드를 다시 뒤집어 쓴 채였다.


“웨어울프라면, 햇빛에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텐데.”

“...그 이유가 아니에요.”


이유에 대해 추가로 물을 필요는 없었다. 한 무리의 사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뒷골목이니, 양아치들도 있기 마련이겠지.


“이게 누구야, 새침하기로 소문난 늑대 아가씨 아니야?”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단순한 양아치가 아니다. 저들은 시이나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다. 천박함이 묻어나는 말투나 제대로 씻지 않은 것 같은 불쾌한 냄새는 내가 그들에게 살의를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쓰레ㅡ”

“...비켜주세요.”


내가 눈을 찡그리며 관여하기도 전에 시이나가 사내들에게 차갑게 말했다.


“우리들은 그냥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시ㅡ이나.”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사내가 촐싹댔다.


“아니면 그런 선량한 시민을 날려버릴 셈이야? 마족이 인간을 습격했다는 소문이 퍼질 텐데?”


사내가 어느새 다가와 시이나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런 건...”


시이나가 머뭇거렸다.


“좋은 거 가르쳐줄테니까, 나랑 저~기 가지 않을래?”


그렇게 집적대는 사내를 보고, 나는 알겠다는 소리를 냈다.


저 놈은 시이나가 마족이란 것을 이용해서 그 몸을 범할 생각인 것이다. 저항이라도 했다간 마족이 인간을 공격했다는 소문을 퍼뜨릴 테고, 말하는 것을 보아 아마 피해를 보는 것은 마족일 것이다.


“시이나.”

“... 류셀 씨, 류셀 씨는 말려들지 말아주세요. 여긴 저 혼자서 어떻게든ㅡ”

“뭐라는 거야, 나라는 남자를 앞에 두고 다른 남자랑 노닥거리는 거야?”


사내가 시이나의 허리에 감은 손을 점점 올렸다. 시이나가 앗, 하는 소리를 냈지만 저항은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웨어울프는 마법을 쓰는데 뛰어나진 않지만 엄청난 악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시이나. 이 남자들을 공격하면 피해가 발생하나?”


그런 와중에, 내가 물었다.


“그건ㅡ”

“당연하지!”


사내가 시이나의 말을 끊었다.


“어디서 구르다 온 뼈다귀인진 모르겠지만 부외자는 빠져 있어! 너희 마족은 70년 전의 인마전쟁에서 졌잖아? 사실상 우리의 노예나 다름없다고.”


노예라는 대목에서 시이나의 몸이 움찔했다.

“노예가 주인을 공격하다니, 말도 안 되지! 주인이 하라는 대로 다리나 벌리면ㅡ”

“시이나. 이곳에는 위병이 있는 것을 보았다. 어째서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지 않는 건가.”

“위병은 시민의 질서를 지켜요... 그리고 마족은 시민에 해당이 안 되니까...”


과연. 이런 양아치들에게도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는 논리로 보장되지 않는 건가. 마족은 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하나만 묻지. 이 자들은 너를 전에 범한 적이 있는가?”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시이나의 얼굴이 빨개지고 꼬리를 빳빳이 세웠다.


“잘 들리지 않았나? 다시 반복하지. 이 자들은 너를 전에ㅡ”

“없어요! 자꾸 귀찮게 해서 피해 다녔어요!”

“그럼 이번 건은 성폭행 미수로 보겠다. 중한 범죄긴 해도 사형당할 정도는 아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한 번 다시 확인했다.

“실례.”


나는 시이나를 잡아끌며 사내를 밀었다. 세게 밀 생각은 없었지만 새롭게 얻은 신체의 능력 덕분인지 남자의 몸이 붕 뜨며 날아갔다.


뒤로 엉덩방아를 찧은 그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뭐하는 짓ㅡ”


나는 지저분한 게 묻은 것처럼 손을 닦고 주문을 외웠다.


“버스트.”


[ 팡! ]


그와 동시에, 내 손가락으로부터 검은 빛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그 반동에 내 코트가 펄럭였다.


빛은 가는 곳마다 파괴를 흩뿌리며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갔다.


성폭행 미수범들의 몸을 감싸고도 멈추지 않았다. 빛에 닿은 것은 잔해도 없이 소멸했다. 소리도 없이 타들어가는 검은 불꽃을 남기고. 지저분한 뼈와 살이 얼마나 있더라도 이 마법을 막진 못했다.


그 빛은 내가 손을 내리고 나서야 멎었다.


“...이게.. 무슨...”


시이나가 놀랐는지 입을 벌렸다.


“고위 파괴마법. 버스트다.”


아까전만 해도 뒷골목치고는 꽤 깔끔하게 닦여있었지만, 지금은 시야가 닿는 곳까지 붕괴해 있었다. 범위를 좁혀서 발동하지 않았으면 주위가 전부 파괴됐겠지.


폭풍이라도 휩쓸고 간 것 같은 광경 속에, 사내들의 모습은 없었다.


“시체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파괴했다. 이러면 살인죄를 물을 수 없겠지, 위병이 있다 해도.”


물론 목격자가 없다는 전제에 한해서였지만, 적어도 내 탐지마법에 걸린 목격자는 없었다.


만일 목격자가 있었다면 불가피하게 죽어줘야 했을 것이다. 냉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와 이 '도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평범한 가족이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고 있었다 해도 애 어른 할 것 없이 사이좋게 저승으로 보내줬겠지.


A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B라는 것을 한다.

단지 그 사실관계만이 존재할 뿐.


“... 류셀 씨, 당신은 대체...”

“쓰레기를 없앤 것뿐이다. 저런 사회의 해악은 죽여 두는 게 좋아.”


물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내들을 죽인 건 그런 공리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것들. 마음 같아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주고 싶었다. 저 놈들이 손을 댄 게 시이나의 허리가 아니라 내 몸이었다면 지체 없이 죽여 버렸을 것이다. 쓰레기 주제에 자신의 분수도 알지 못하는 불쌍한 폐기물들.


범죄에는 미학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건가? 아무런 철학도 없이 저런 동네 양아치 짓이나 하는 3류 범죄자는 매우 심기에 거슬린다. 초등학생이 고작 컵라면을 끓여놓고 미쉐린 레스토랑의 셰프 앞에서 콧대를 내세우는 것 같다.


범죄라는 건 결국 하나의 비즈니스다. 정말 시이나를 납치해서 그 몸을 범하고 싶었다면 이런 대낮의 길거리에서 하지 말고 야밤에 치밀하게 짠 계획을 실행했어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범법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냉정한 사고와 효율적인 수단으로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조잡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건 쓰레기나 저지르는 실수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가 그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 규칙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이다. 그 놈은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살인과 협박을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이끌어냈다는 건 인정하고 있을 셈이다.


비명횡사한 몇 천의 시체를 기반으로 ‘우리 회사’는 높은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가지.”


나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시이나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떴다. 버스트를 쓰느라 큰 소리를 내었으니 위병이 달려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판단해서였다.


“그 자는 네가 마족이라는 것을 이용하려 했다. 오히려 죽이지 않는 선에서 저항하다 부상이라도 입히면 네게 불리하게 작용했겠지.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나는 최대한 사건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려 서두르며 설명했다.


“아니면, 저것들은 시이나에게 득이 되는 인물이었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살려두는 게 좋았던 건가.”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시이나가 멈춰 섰다.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그녀는 후드를 벗더니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부디, 부족한 몸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류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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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최후의 편지 +1 24.02.17 17 2 15쪽
293 소녀는 어둠을 빛으로 착각한다 +1 24.02.10 17 2 12쪽
292 엄습하는 어둠 +1 24.02.03 18 2 16쪽
291 어둠과 함부로 마주한 그들의 말로 +1 24.01.27 19 2 13쪽
290 밀정 +1 24.01.20 24 2 15쪽
289 두 늑대가 바라보는 곳은 +1 24.01.14 24 3 12쪽
288 태초의 유물 +2 24.01.13 24 3 12쪽
287 어둠 속의 살육 +3 24.01.07 32 4 14쪽
286 새롭게 펼쳐지는 무대 +3 24.01.06 28 3 13쪽
285 족쇄를 찬 소년 +1 23.12.30 31 3 12쪽
284 운명을 속삭여라 +1 23.12.25 27 3 13쪽
283 아멜리아 비 리히트 +2 23.12.23 27 3 13쪽
282 왕녀의 비밀 +1 23.12.16 28 3 13쪽
281 그녀만이 뭔가 다르다 +3 23.12.09 29 3 14쪽
280 잿빛 위화감 +3 23.12.02 34 3 12쪽
279 암살 시도 +1 23.11.25 28 2 14쪽
278 세계에게 사랑받다 +1 23.11.18 40 3 13쪽
277 막으려는 자, 부수려는 자 +2 23.11.11 36 2 13쪽
276 사이코메트리 +4 23.11.04 41 3 15쪽
275 레벤 연합의 탈락, 계속되는 전쟁 +1 23.10.28 37 3 12쪽
274 목숨만을 건지다 +1 23.10.21 34 3 13쪽
273 정령술사 프엘리냐 +1 23.10.19 35 3 12쪽
272 또 다른 싸움 +3 23.10.11 39 3 13쪽
271 류드라이 +4 23.10.05 37 3 13쪽
270 뱀의 눈에 비친 것은 +3 23.09.23 46 3 14쪽
269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 +1 23.09.10 50 3 14쪽
268 어둠으로부터는 피할 수 없다 +1 23.08.31 53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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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드워프와 인간 +3 23.07.30 54 3 16쪽
262 어둠을 처단하는 창 +3 23.07.15 54 3 15쪽
261 금속은 생각보다 무르다 +3 23.07.05 61 3 13쪽
260 천사와 대척점에 선 것은 +2 23.06.18 71 3 15쪽
259 기술의 진보는 곧 살육의 진보 +3 23.06.10 65 3 16쪽
258 포신이 품은 마법 +3 23.05.20 69 3 10쪽
257 피의 무게는 죄의 무게만큼 +3 23.05.18 71 3 11쪽
256 신의 활, 그 시위가 품는 것은 +1 23.05.14 64 3 16쪽
255 매듭을 짓지 않으면 +2 23.05.09 66 3 14쪽
254 공중 요새 +3 23.04.29 69 3 16쪽
253 마도 vs 고유스킬 +5 23.04.05 74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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