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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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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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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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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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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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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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초전

DUMMY

어느새 전쟁이 시작된 지 사흘이 지났다. 제국군은 연승을 거두며 빠르게 왕국의 영토를 침범. 그들이 지나간 길에는 부서진 건물과 썩는 시체들이 남았다.


역전의 정예들이 모인 제국군은 빠르게, 하지만 철저하게 알트레아 왕국을 집어삼켜갔다. 그나마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던 왕국군의 대부분이 전멸. 국왕이 체제하는 왕도를 지킬 병력도 거의 남지 않았다.


기껏 손에 넣은 왕국이 폐허가 되어버릴 참인데도 불구하고, 마왕군 주둔지의 옥좌에 앉은 나는 태평했다.


계단 밑으로는 요직을 맡은 부하들이 나열해있다. 왼쪽부터 카니앗, 린, 가름, 그리고 스키잔이다.


“그래서, 어떤가? 가름. 현 상황은.”


내가 묻자 다른 자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가름이 고개를 살며시 든다.


“보스가 예상하셨던 대로 제국의 침공은 순조롭습니다. 길어야 하루만 있으면 왕성도 박살이 나지 않을까요.”

“그 직전에 적들을 막는 게 계획입니다. 시이나 렌을 보낸 것도 그런 이유라고 들었습니다만.”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가 조용히 가름의 말에 내용을 보태며 의문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말 그녀에게만 맡겨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자는 이전에 명령에 불복한 전적이 있지요. 고작 인간의 나라라고는 하나 거점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을 제국에 넘겨주는 건 뼈아픕니다.”

“뭐... 나도 완전히 안심이 되는 건 아니긴 한데ㅡ”


가름의 말이 늘어지기 전에 린이 날카롭게 끊었다.


“가름은 조용히 하고 있어. 그리고 카니앗 씨. 그건 일부러 보스에게 얘기하지 않아도 내가 처리했으니 안심해. 그것보다, 마왕군의 훈련은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스키잔.”

“걱정할 것 없습니다, 린.”


스키잔이 눈을 감은 채 대답한다.


“마왕님께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두신 덕분에 저는 종답게 충실히 움직이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마왕군의 사기와 충성심은 최상의 상태입니다.”


내가 구태여 개입하지 않아도 대화가 잘 흘러가는 걸 보고 마음이 놓였다. 다들 자신의 책무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키잔. 새로운 군복의 느낌은 어떤가?”


내가 묻자 스키잔이 더욱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위대하신 분의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시이나에게도 전해준 군복은 마왕군의 공식 복장이 된다. 종족에 따라 몸집의 크기가 하늘과 땅 정도의 격차가 있었기에 군복을 준비하는 건 절대 쉬운 절차가 아니었지만, 소속감과 서로간의 유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결과는 입는 사람도, 만든 사람도 만족할 정도의 훌륭한 것이다. 보통은 알몸 상태를 선호하는 스키잔 같은 정령도 입고 있을 정도면 외형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고 봐도 되겠지. 언제나 정장 차림인 린과 가름까지도 오늘은 군복을 입었다.


“우리의 전투를 선보일 때가 머지않았다. 데뷔전이라는 건 중요한 것이지. 마왕군의 공포를 세상에 제대로 새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전생에 가지고 있었던 힘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 원래 부렸던 부하들보다 훨씬 믿음직한 부하들이 내 휘하에 들어온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말이 많으면 불가능이라고 생각될 일까지 해낼 수 있다. 전쟁을 계획하던 나라의 윗대가리들은 분명 이런 기분이었겠지.


마왕이라는 역할을 받은 이상, 철저하게 그 역할을 준수해줄 생각이었다. 새로운 인마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암살자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스?”


린이 서슬 퍼런 목소리로 묻는다. 내 저택에 침입하고도 살아나간 그 소녀에 대한 분노는 그녀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행방을 추적하려했지만 묘하게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습니다. 제국에 돌아간 걸까요?”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나를 죽이라는 제국의 명을 받았다. 아직 왕국령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커. 허나 찾아보려고 애써봐야 의미 없는 일이다. 이걸 보면 알 수 있지.”


내가 들어 올린 검지에 흑색 빛이 보이더니 쏜살같이 사방에 퍼져나간다. 과거 네이아르 백작의 영애를 구할 때 썼던 탐색 마법이다. 순식간에 찾고자 하는 대상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마법이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유리에라는 암살자와 연관된 물건이 있었으면 찾기 수월할지도 몰랐겠지만. 내 탐색 마법에 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몸을 숨기고 있다는 소리다.


“괜히 제국의 비장 카드가 아니라는 거다. 자신의 위치를 들키지 않도록 여러 수를 쓰고 있다는 것이지.”


상급 파괴마법 버스트를 맞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던 유리에는 단순한 암살자가 아니다. 한번 싸워본 걸로 결단 내리기에는 성급할지도 몰랐지만 그것만은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있다.


언젠가 반드시 죽여주리라 생각하며 나는 말했다.


“굳이 이쪽에서 힘들게 찾으려고 노력할 것도 없다. 알아서 때가 되면 나타날 테니 그때 처리하면 될 일이다.”


당연하지만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것보다 시이나의 데뷔 무대나 감상해보도록 할까. 결행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


마족의 신분으로 모험자 길드에서 잡다한 의뢰를 가끔 맡으며 왕국의 차별 속에 살아온 소녀. 하지만 더 이상 무능한 그녀가 아니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부하도, 우수한 무기도, 잘 짜여진 작전도 주었다.


그걸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제 본인의 역량에 달렸다는 소리다.


나 말고 내 부하들에도 인정받기 위해서는 시이나 렌이라는 웨어울프의 진정한 능력을 모두 앞에 선보일 필요가 있다.


“슬슬 시작할 때로군.”


탐지 마법을 응용해 폐교회 내부의 영상을 허공에 띄우며 내가 말했다.



“시이나? 뭐야, 그 차림은.”


수레에서 묵직한 박스를 옮기기에 바쁘던 제이드가 방문자를 확인하고 놀라 물었다.


“별거 아니야. 이번에 너희들을 관리하는 역할로 내가 뽑히게 됐어.”


시이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지만 자꾸만 다른 아인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같은 아인이라지만 수상쩍은 군복 따위를 입고 방문한 시점에서 이질감을 보이는 건 당연하겠지. 그녀의 입장이 반대였어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아... 그렇게 된 건가.”


혼자 뭘 생각하는지 제이드는 알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시이나?”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거라면.”

“우리는 그럼 이제 왕국군 밑에 들어간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제이드의 질문에 누구랄 거 없이 동조하는 소리를 냈다. 확실한 거부감이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묻어났다.


일반적인 평민이라면 군에 들여보내준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겠지만, 그들이 평소 받아온 취급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시이나는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인간 놈들 밑에서 일하는 것 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진 않아. 나도 정식 군에 들어온 건 아니야, 제이드. 이번은 너희들의 협력을 구하는 입장으로 봐줬으면 해.”

“그런가. 그럼 다행이고. 뭐, 그 검은 옷한테 밉보이는 순간 우리들은 사망이라는 건 똑같구만.”


그것 말고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눈치였지만 제이드는 더 캐묻지 않았다. 류셀에 대한 두려움이 궁금증보다 더 컸다는 것이다.


“그래도 시이나가 와줘서 다행이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훈련받을 때 지도를 네가 해준 것도 다 그런 이유인가.”


제이드는 의자를 하나 빼서 시이나 앞에 놓았다. 별다른 사양 없이 거기에 앉은 시이나가 물었다.


“마타고트는? 함께 있던 게 아닌 거야?”

“저기 있어. 네가 와서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제이드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확실히 고양이 귀의 소녀가 자신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마타고트를 만나면 불행이 찾아온다고 하더만. 지금 내 꼴이 딱 그 꼴이야.”


자조하듯 말하면서도 제이드는 싫은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둘의 관계는 꽤 복잡한 것이겠지. 시이나는 더 깊게 파고들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미 연락은 받았겠지만 제국군은 이미 코앞까지 와있어. 우리가 있는 베르돌트 성문도 동문이 10분 전에 돌파 당했어.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절망적인 상황이구만. 동문에서 여기까지 말을 타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잖아.”

“그 말대로야.”


시이나는 검은 단발을 스스로 살짝 헝클어뜨리며 눈을 감았다.


“왕국의 중심에 있는 왕성으로 가기 전에 놈들을 막는 게 이번 목표야. 왕도가 뚫리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져.”


이 폐교회 안에 있는 게 이번에 쓸 수 있는 모든 병력이다. 왕국으로부터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류셀이 불가능한 작전을 줬을 리는 없다. 충분히 성공 가능하니 자신에게 이런 역할을 줬을 것이다


“그럼 역시 그 작전대로 하자고?”

“그래.”


시이나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말했다.


“제국군은 여기서 멈춰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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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최후의 편지 +1 24.02.17 17 2 15쪽
293 소녀는 어둠을 빛으로 착각한다 +1 24.02.10 17 2 12쪽
292 엄습하는 어둠 +1 24.02.03 18 2 16쪽
291 어둠과 함부로 마주한 그들의 말로 +1 24.01.27 19 2 13쪽
290 밀정 +1 24.01.20 24 2 15쪽
289 두 늑대가 바라보는 곳은 +1 24.01.14 24 3 12쪽
288 태초의 유물 +2 24.01.13 24 3 12쪽
287 어둠 속의 살육 +3 24.01.07 32 4 14쪽
286 새롭게 펼쳐지는 무대 +3 24.01.06 28 3 13쪽
285 족쇄를 찬 소년 +1 23.12.30 31 3 12쪽
284 운명을 속삭여라 +1 23.12.25 27 3 13쪽
283 아멜리아 비 리히트 +2 23.12.23 27 3 13쪽
282 왕녀의 비밀 +1 23.12.16 28 3 13쪽
281 그녀만이 뭔가 다르다 +3 23.12.09 29 3 14쪽
280 잿빛 위화감 +3 23.12.02 34 3 12쪽
279 암살 시도 +1 23.11.25 28 2 14쪽
278 세계에게 사랑받다 +1 23.11.18 40 3 13쪽
277 막으려는 자, 부수려는 자 +2 23.11.11 36 2 13쪽
276 사이코메트리 +4 23.11.04 41 3 15쪽
275 레벤 연합의 탈락, 계속되는 전쟁 +1 23.10.28 37 3 12쪽
274 목숨만을 건지다 +1 23.10.21 34 3 13쪽
273 정령술사 프엘리냐 +1 23.10.19 35 3 12쪽
272 또 다른 싸움 +3 23.10.11 39 3 13쪽
271 류드라이 +4 23.10.05 37 3 13쪽
270 뱀의 눈에 비친 것은 +3 23.09.23 46 3 14쪽
269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 +1 23.09.10 50 3 14쪽
268 어둠으로부터는 피할 수 없다 +1 23.08.31 53 2 9쪽
267 고유 이공간 +1 23.08.29 49 3 12쪽
266 그의 의지로 검게 칠해진다 +2 23.08.23 51 3 14쪽
265 가브리엘의 지팡이 +2 23.08.14 56 3 14쪽
264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최강종 +2 23.08.08 60 3 15쪽
263 드워프와 인간 +3 23.07.30 54 3 16쪽
262 어둠을 처단하는 창 +3 23.07.15 54 3 15쪽
261 금속은 생각보다 무르다 +3 23.07.05 61 3 13쪽
260 천사와 대척점에 선 것은 +2 23.06.18 71 3 15쪽
259 기술의 진보는 곧 살육의 진보 +3 23.06.10 65 3 16쪽
258 포신이 품은 마법 +3 23.05.20 69 3 10쪽
257 피의 무게는 죄의 무게만큼 +3 23.05.18 71 3 11쪽
256 신의 활, 그 시위가 품는 것은 +1 23.05.14 64 3 16쪽
255 매듭을 짓지 않으면 +2 23.05.09 66 3 14쪽
254 공중 요새 +3 23.04.29 69 3 16쪽
253 마도 vs 고유스킬 +5 23.04.05 74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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