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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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9.02.26 18:54
최근연재일 :
2019.03.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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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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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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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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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 타협하다

DUMMY

희연은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선글라스를 쓰고 방에서 나왔다. 그런 희연의 모습에 배여사나 나경은 평소와 다르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디가?”


“잠깐 나갔다 올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희연의 모습 뒤로 배여사의 짙은 한숨이 이어졌다. 희연의 집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재희는 희연의 모습에 깜짝 놀라 차에서 내려 그녀의 앞으로 왔다.


“김희연씨, 이건 무슨 컨셉이지?”


“재희야, 우선 여기에서 좀 벗어나자. 어디든, 다른 데로 가. 조용한 곳.”


희연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재희는 아무 말 없이 희연의 손목을 잡고 차로 데려가 태웠다. 운전을 하는 내내 희연과 재희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재희의 차가 멈춘 곳은 조용한 한강 둔치였다. 차가 멈추고 재희는 몸을 틀어 희연을 빤히 쳐다봤다.


“얼굴 안 보여줄 거야? 아까 그렇게 보내고 마음에 걸려서 왔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얘기하기 싫어?”


재희의 말에 희연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혹시 울었어?”


희연이 다시 말이 없었다.


“운거야? 그래?"


재희가 희연의 팔을 잡아 돌려 세웠다. 하지만 희연은 재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김희연씨, 나 좀 봐봐.”


그제야 희연이 고개를 돌리자 재희가 조심스레 희연의 선글라스를 벗겨냈다. 오랫동안 울었는지 희연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재희는 조심스레 희연의 부은 눈 주변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만지고 있었다.


“왜 울었는지 물어도 얘기 안 할 거지?”


“그냥, 엄마랑 다퉜어.”


희연의 바싹 마른 목소리가 버석거리며 들려왔다. 재희는 그게 다가 아님을 알지만 희연이 모른체 해주길 바라는 것 같아 농담으로 받아치기로 했다.


“애도 아니고 엄마한테 혼났다고 운거야?”


별것도 아닌 재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희연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재희는 손으로 희연의 뺨을 감싸듯 잡은 채 그녀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울지 마.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졌어.”


희연이 재희의 말에 눈을 흘기자, 재희는 미소를 머금고는 희연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울지 마, 맘 아프니까.”


감겼던 희연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자 숨이 닿을 거리에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희연은 그런 재희를 보기만 하는데도 눈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져 그의 뒷덜미를 그대로 잡아당겨와 입을 맞추었다.


희연의 입술은 다른 여느 때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재희의 입술을 찾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물은 쉬이 멈추질 않았다.


재희는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희연이 다 쏟아 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결국 재희의 품에 안긴 채 한참을 울고 나서야 희연의 울음이 겨우 진정이 되었다.


“재희야.”


“응?”


“찬바람 맞고 싶어.”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한강둔치를 걸으니 희연의 기분이 그런 대로 괜찮아 졌다. 한강을 멀리 바라보던 희연이 갑자기 재희에게 물었다.


“백조가 물에 우아하게 떠 있지만, 물밑에서는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 바둥바둥 갈퀴질 한다고 하잖아.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걸까?”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


“재희야, 너는 어떤 부류인 것 같아?”


“글쎄, 굳이 두 개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후자일 것 같은데? 백조처럼 살라고 하면, 마음을 속이는 것 같아서 사는 게 고달플 것 같아.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그냥 한강을 보고 있으려니 백조가 생각이 나서.”


희연은 제 옆에 서 있는 재희를 쳐다봤다. 이제 보니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재희야, 지금 나는 백조가 된 것 같아. 이제 이 갈퀴질도 그만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재희가 희연의 시선을 느끼고 쳐다보자 아련한 희연의 눈과 마주했다. 희연은 애써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재희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


“음.. 좋다. 이렇게 오래오래 있고 싶다.”


희연의 입에서 염원과 같은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염원을 알지 못하는 재희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안 돼. 감기 걸려.”


“치, 그냥 ‘그러자.’ 라고 해주지.”


“나 대회 끝나는 날, 우리 데이트 할까?”


“그래, 그러자.”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는데도 재희의 품이 따뜻해서 그런지 희연은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들을 잡지 못하고 속절없이 흘러가게 둘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며칠 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 출전권을 두고 벌이는 한국 내셔널 바리스타 챔피언쉽 국가대표선발전 당일이 되었다.


희연은 이날을 위해 월차를 내어 쉬는 날이었지만, 자신이 따라 가겠다고 하면 재희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말을 하진 않았다. 대신 아침 일찍 재희의 얼굴을 보고 잘하라는 말만은 해주고 싶어 아침 일찍 그를 찾아왔다.


희연은 재희를 대회가 열리는 곳까지 바래다주고 늦은 출근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차에서 인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재희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온 마음과는 달리 그보다 더 긴장한 희연을 오히려 재희가 다독여야 했다.


“잘 하고 올게.”


“응. 끝나면 전화해.”


“응.”


희연에게 입을 맞춘 재희가 아쉬운 듯 차에서 내려 대회장으로 향했다. 희연은 대회장으로 향하는 재희의 모습을 눈에 오래오래 새겨 넣었다.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든 재희는 어디에 있든, 누구의 옆에 있든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자신의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재희의 옆에 있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궁금해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자존감이 낮아진 건지,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희연은 뭘 어떻게 해야 미련이 남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갑작스런 헤어짐에 과연 미련이 안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개의 마음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마지막 그 다음을 생각했을 때, 그를 생각한다면 나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가 덜 힘들 테니까.


그러나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가 힘들어도 함께 하는 지금만큼은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함께하는 이 시간들을 온전히 내 시간들로 만들어 즐기고 싶었다.


고생했을 그를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정도는 해서 먹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집에 남겨야 할 흔적들이 너무 많았다.


완성되지 못할 사랑이었지만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안녕을 고하는 그 순간의 이유들이 희석될 것만 같았다.


‘사랑해.’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헤어지고 나면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하게 남아 있게 될지 알기에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그와 하고 싶은 것들은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시작도 하기 전에 안 된다 말하는 우리의 사랑과 너무도 닮아서 마음이 미어지게 아파왔다.


희연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좀 더 이기적이게 굴어서 미련이라도 남지 않게 그의 마음 따위 상관없이 나의 애틋한 마음을 다독여야 할까? 아니면 미련조차 남을 수 없게 모든 흔적들을 지워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의 애달픈 사랑을 배려해야 하는 것일까?


결론이 나지 않아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들을 겨우 진정시킨 희연은 결국 타협하기로 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배려하기로 했다. 그가 바라는 진짜사랑은 아니더라도 ‘한때 좋아했었지.’ 정도 만으로라도 남았으면 했다.


직접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곳에서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이기로 했다. 애틋한 사랑대신 그 무엇보다도 야릇하고 진득하게 마음과 마음을 엮은 진한 입맞춤을 오래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사랑해.’가 아닌 ‘미안해.’로 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하기로 했다.


늦은 오후가 되자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대회가 끝났다고 말하는 재희의 목소리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나 대회장 앞인데 이쪽으로 올래?”


희연은 대회의 결과를 묻지는 않았다. 이미 지난 것들에 안타까움을 더하는 것보다는 지금 그와 함께 할 것들에 의미를 두는 게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차가 되어 있는 차 쪽으로 오는 재희가 보이자 희연은 마음이 급해져 차에서 내렸다. 저도 모르게 이미 그녀의 발은 저절로 그에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는지 뛰다시피 해서 희연에게로 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재희의 품에 안긴 희연의 목덜미 위로 그의 뜨거운 숨이 닿았다. 그에게서 나는 익숙한 커피향이 희연을 감싸 안았다.


“수고했어, 재희야.”


“응.”


맞닿은 가슴위로 빠르게 뛰고 있는 재희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말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던 재희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나, 2등 했어. 그런데 대회가 끝나고 시상식을 할 때까지도 괜찮았던 심장이 당신을 보니까 미칠 듯이 뛰어서 이대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이제야 진정이 되는 것 같아. 윤재희의 심장을 뛰게 하고 진정시키는 사람은 김희연뿐 인가 봐.”


“응.”


희연은 지금 재희의 말이 그 어떤 고백보다도 애절하게 들려와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네 마음은 나도 알고 있다는 걸 표현할 정도의 대답만 겨우 해야 했다.


서로의 품에서 떨어진 후 희연이 미리 알아봐둔 깔끔한 가정식 한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재희가 준비한 데이트를 했다.


“우리 어디가?”


“지난번에 그 영화는 아니지만, 그 감독의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있어서 그거 보러 가. 그 감독 영화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해서 온 곳은 일반 극장이 아닌 교외의 자동차 극장이었다. 평일의 늦은 밤이라 그런지 차량은 많지 않았다.


매점에서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사와 차에 오른 재희가 희연에게 커피 두 개를 내밀었다.


“잠깐 들고 있어봐.”


희연이 양손에 커피 두 개를 들자, 재희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당겨와 입술을 훔쳤다. 장난스럽게 쪼옥, 쪼옥 시작한 베이비키스는 조금씩 입술위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들고 있던 커피에 손이 묶인 희연 때문에 불편했는지, 재희는 커피를 차량 컵홀더에 내려놓고는 다시 희연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


희연 또한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 그의 목을 감쌌다. 맞닿은 입술이 뜨거웠다. 말랑한 것이 서로 닿으며 입에서 시작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맞닿은 움직임에 가슴이 저릿해져 왔다. 차분했던 입맞춤이 이내 걷잡을 수 없이 급해졌다. 재희의 손이 희연의 허리를 바짝 당겨오자 두 몸이 가깝게 닿았다.


이미 영화는 상영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영화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 야릇하고 진득한 입술이 서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재희의 손이 희연의 얇은 니트 안으로 들어와 맨살에 닿았다.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온 손은 브래지어 안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어 희연의 맨가슴을 움켜쥐었다.


이 야릇한 행위에 희연의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그녀의 가슴을 움켜 쥔 재희의 손길도 떨려왔다. 희연은 이 익숙지 않은 떨림이 너무도 좋았다.


서로를 원하는 마음이 더해져 제 가슴을 잡아 쥐는 그 손길이, 서로의 혀를 옭아매는 이 농밀한 키스가 끝이 나지 않길 바랐다. 참을 수 없는 자극에 저절로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희연은 그를 기다리면서 이쯤 하는 걸로 자신과 타협을 했음에도 자꾸만 그와 좀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고픈 마음이 커지고 있음을 알았다. 욕심이란 것이 고개를 들어 치고 올라 올 때마다 희연은 그의 품을 좀 더 힘껏 껴안았다.


차 안에 열기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 열기에 희연은 재희와 함께한 두 번째 영화도 결국에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작가의말

이미 줘버린 마음을 거둬들이는 그 심정이 어떨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서로 등을 돌려 마주하고 있더라도 그 마음만은 간직하고 있다면, 조금은 길더라도 서로가 다시 마주 볼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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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 허락받다 19.03.02 9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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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 결심하다 19.03.02 10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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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비우다 19.03.01 102 2 11쪽
34 34. 아쉬워지다 19.03.01 99 2 11쪽
33 33. 바라다 19.03.01 103 2 9쪽
32 32. 해명하다 19.03.01 97 2 10쪽
31 31. 마주하다 19.03.01 113 1 10쪽
30 30. 고백하다 19.03.01 92 2 13쪽
29 29. 오해하다 19.03.01 88 2 9쪽
28 28. 어긋나다 19.03.01 102 3 11쪽
27 27. 신경쓰이다 19.03.01 117 1 10쪽
26 26. 거래하다 19.03.01 95 2 10쪽
25 25. 재회하다 19.03.01 92 2 10쪽
24 24. 미안해하다 19.03.01 107 2 13쪽
» 23. 타협하다 19.03.01 98 2 12쪽
22 22. 울다 19.03.01 94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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