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 심부름센터44
소설은 소설일 뿐입니다.
“이. 이렁 양아치 등이나 하능...”
“호오, 네가 한 짓이 양아치 짓 인줄은 아는 모양이구나. 시간 없다. 빨리 서명해라!”
“몽, 몽해. 아, 아잉, 앙, 앙해”
“돼지 같은 놈이 앙앙거리기는.”
손가락 사이에서 놀던 유엽비도가 손등을 뚫고 책상에 박히자 돼지 멱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꾸웩!”
“손가락이 쓸데없이 너무 많지? 하나씩 자르다 보면 말을 듣겠지?”
“쓰, 쓰, 씅겡...”
“이호, 쓰기 쉽게 서류를 펼쳐 줘라.”
“사유리 넌 이놈의 재산을 조사해서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대출계약금액으로 집어넣고 너와 계약한 변호사를 지금 오라고 해.”
“네.”
“이호, 너는 오태룡이 한태 전화해서 빨리 들어오라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어이, 돼지 서명 다 했나?”
“사유리는 변호사가 오면 바로 강제압류 집행하라고 해.”
“네, 오빠.”
대호는 전화를 꺼내 권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일인가?
“부산에도 지부가 있지요?”
-그러네만?
“조폭들이 내가 아는 금융회사에 난입을 해서 좀 망가트려 놨습니다. 정리 좀 부탁드리려고요.”
-흐흐, 그런 부탁이라면야, 얼마든지 환영이지.
“여긴, 연산동에 있는 해피머니라고 합니다. 바로 처리 부탁드립니다.”
-잠깐만 기다리게. 경찰병력도 필요한가?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내가 묻어버리고 말지요. 좌우간 이놈들 햇빛 볼 필요 없는 놈들입니다.”
-알았네, 제대로 맛을 보여주라고 일러놓지.
바로 코옆에서 통화내용을 들은 부장과 사장이란 놈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그런 놈들에게 이호가 실실 웃으며 비웃었다.
“히히. 정신 나간 놈들, 내가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거라고 했지?”
책상에 박혀버린 손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돼지가 끙끙 앓는 소리로 사정을 했다.
“으흥, 으흥, 이 손부터 어떻게 좀..”
“흐흐, 돼지. 남 아픈 거 구경하는 건 재밌고 너 아픈 건 못 참겠냐?”
“형님, 아라비안나이트에도 손님이 왔었던 모양인데요?
“구로다씨를 보호하려다 오태룡씨가 좀 다친 모양입니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답니다.”
“돼지, 거기도 네가 보낸 거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눈알을 굴려대며 눈치만 보던 부장이란 놈이 대신 연신 방아깨비 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 일타쌍피로 먹으려고 작정했었구만. 저걸 아예 지금 죽여 버리고 말까?”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란 생각이든 돼지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엉망이 된 몰골로 들어선 오태룡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팀장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쯧, 너야말로 그 꼴이 뭐냐?”
“혼자선 안 되겠어서 동기들을 좀 모아갖고 일을 하려고 상견례 겸 아리비안나이트에서 구로다씨와 한잔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놈들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꼴이 좀 우습게 됐습니다.”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사유리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이런 일을 만들어? 너도 사회 물을 먹더니 해이해진 모양이구나?”
“시정하겠습니다.”
“쯧, 이미 지나간 일이다, 앞으로나 잘해.”
“사유리 그러고 보니 어떻게 된 거냐? 네게 붙어 다니던 건 어디로 갔지?”
“저도 모르겠어요, 저 돼지 같은 놈이 들어오니까 허겁지겁 사라졌어요.”
“그래..? 이호 저놈 지갑 좀 이리 줘봐라.”
지갑 속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빛바랜 부적에서 신통력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응? 악귀소멸부? 저런 놈이 갖고 있을만한 신통력이 아닌데?
“너 이건 어디서 난거냐?”
“엉, 엉니가 옝날에 중 것이여. 엉젱강 웡귀헌티 죽을지도 모른담서.”
“무당이셨냐?”
고개를 끄덕이는 놈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더니 망연한 빛이 흘렀다.
“히힝, 엄니가 올개 죽을 운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맞았네.”
신통력이 대단한 무당이었던 모양이로군.
“으허헝, 죽을 것 같으면 목숨임자 헌티다 부적을 싼 종이를 펼쳐보라고 하시드망요.”
대호가 낡은 부적을 조심스럽게 펼치자 조그만 글씨가 삐뚤빼뚤 적혀져있었다.
〔못난 놈, 목숨 한번만 살려 주시구랴, 은혜는 내세에 갚것소.〕
“허, 이런 대단한 어머니를 두고.. 넌, 어찌 그렇게 모자라게 살았는지 모르겠구나.”
“.....”
“네 어머니 글씨를 봐라, 이 모자란 놈아.”
“으흐흐흥, 엉니..으흥.. 엉니..”
“쯧, 네 어머니 덕에 살아난 줄이나 알아라.”
“사유리, 저놈 재산을 몰수하거든 먹고 살만큼만 돌려줘. 알았지? 그래도 정신 못 차리면 방법 없는 거고.”
“네.”
국안부 부산분국에서 출동한 요원들을 이끌고 온 팀장을 대호가 불렀다.
권 차장이 뭐라고 지시를 했는지 몰라도 자신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는 팀장에게 대호가 넌지시 일렀다.
“처음에는 저것들을 다 묻어버리려고 했었는데, 한번더 갱생의 기회를 주기로 했소. 그러니 경찰 쪽에 잡음 안 나도록 병원치료를 마치고 돌려보내주시오. 그리고 잠시만 기다리시오.”
“사유리 잠깐 나좀 보자.”
잠시 후 사유리에게서 봉투 하나를 받아든 대호가 팀장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팀원들 데리고 출동하느라 애썼으니 회식이나 한번 하시오.”
“아, 아닙니다.”
거부하는 팀장에게 대호가 자신의 지갑속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권 차장이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내가주는 건 괜찮으니 받으시오.”
“모,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말과 함께 봉투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는 고개를 숙였다.
돼지의 손등에 박힌 비도를 가볍게 뽑아내며 말했다.
“그럼, 지부장의 일처리를 믿겠소.”
“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라비안나이트에도 망가진 물건들이 제법 있다고 하니 구급대원들을 불러서 그것들 처리도 부탁합시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구로다와 오태룡의 동기로 보이는 이들이 다 올라왔다.
“장사 준비 안하고 다, 이리와도 되는 거야?”
구로다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오태룡씨 덕분에 위기를 넘겼고 업장은 웨이터들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오늘 장사는 좀 늦게 시작될 것 같습니다.”
“흐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몇 놈 본보기로 죽여 버린다고 소문을 내.”
“이미, 소문이 다 났을 겁니다. 싸우는 동안 쳐다보고 간 양아치들이 하나둘이 아니니까요.”
“오태룡이, 네 동기들도 너와 함께 하기로 한 거야?”
“네, 팀장님.”
국안부의 지부장이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본 뒤로 오태룡의 동기들은 새로 입대한 신병처럼 바짝 굳어있었다.
“그놈의 팀장은 차라리 형이라고 불러라.”
“헤헤헤, 네. 형님.”
“오늘은 고생을 했으니 동기들과 함께 맘에 드는 곳에 가서 한잔하고와.”
“형님은요?”
“난,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걱정 말고 먼저들 가, 일찍 끝나면 나도 갈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모두들 나가고 난 뒤 대호가 사유리에게 물었다.
“아직 안돌아 온 거야?”
“네, 아직요..”
“하긴 보통신력을 가진 부적이 아니었으니, 영이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로군.”
“사유리 어머니의 영이 맞는 거지?”
“.... 네.”
“아무리 어머니의 영이라고 해도 생과사의 경계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붙어있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닌데 말이지.. 그만 귀천시켜 드리는 건 어때.”
“안돼요, 그렇게 되면 난 전혀 의지할 대가 없어요.”
흠, 어머니라니 딸을 위한다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가 오겠지.
“사유리, 빨리 돌아오게 할 방법이 있는데, 할래?”
“방법이 있으면 해주세요.”
“그럼 손 좀 내밀어 봐.”
“네.”
대호는 비도를 꺼내 사유리의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뽑아냈다.
어느새 사유리의 뒤에 나타난 귀가 흐릿하게 흔들렸다.
“이제 피를 귀에게 뿌려줘.”
사유리는 손끝에 맺힌 핏방울을 튕겼다.
허공에 핏방울이 사라지고 조금 색이 짙어진 귀를 보며 대호가 혀를 찼다.
자식의 피를 주었는데도 현신을 못할 정도로 타격을 받은 건가?
“쯧, 사유리. 이게 최선인가 보다.”
“어.. 어, 엄마..”
자식으로서 자연스럽게 아는 거다, 어미와 같이 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후우, 사유리. 울 필요 없다. 원래부터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는 걸 너도 네 엄마도 알고 있었던 사실 아니냐? 그러니 때가 되었다고 슬퍼할 필요 없다는 말이다.”
“흐흐흑, 알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천륜 아닌가요?”
“그것도 살아있을 때의 얘기인거다. 죽음으로 끊어진 연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네 능력으로 모를 것도 아니고, 네 어머니만 더 힘들게 만들 뿐이란 걸 정말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
“영체가 소멸되면 환생조차 못한다는 걸 잘 알거다. 그러니 그만 늦기 전에 보내드려라.”
“어, 어떻게.. 흐흐흑.. 어, 엄마..”
안개 같은 영체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제 두 번 다시 말 안한다, 알아서 하려무나.”
대호는 사무실을 나와 전화를 꺼내들고 오태룡의 번호를 눌렀다.
“어디에 있는 거냐?”
-여기 연산교차로 쪽에 블루스카이라는 술집입니다. 지금 오십니까?
“그래 가서 보자.
허, 이놈들 술집 찾는 데는 도가 텄구나. 이런 집은 또 어떻게 찾았나?
말로만 듣던 텐 프로가 이런 곳이구나 싶었다.
재미있게 보셨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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