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피트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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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피에르와소
작품등록일 :
2019.03.09 00:54
최근연재일 :
2019.06.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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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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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61화

DUMMY

"아르보레가 왜?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니네가 이렇게 숨도 안쉬고 달리는 건데?"


"일단 가서 보는게 먼저야. 우리도 설명해주고 싶은데! 수습하는게 먼저인것 같아!"


"헥헥."


미친듯이 달리는 미르네와 그 뒤를 따르는 리피트. 그리고 헥헥대며 따라오는 디위티까지. 리피트는 대기실로 돌아와 기계도 벗고, 곧바로 미르네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리피트는 주차장에 도착하고 나서, 왜 그렇게 미르네와 디위티가 자신을 부르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리피트 일행의 자동차가.. 박살이 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냐면요..."


한가운데에 쭈그려 앉아있던 아르보레가 우물쭈물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ㅡㅡ


"방금 꺼 엄청 재밌었다 그치?"


"네. 쭈욱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느낌이 최고였어요."


미르네와 디위티 그리고 아르보레 이렇게 세사람은 리피트와는 달리 주변에 있는 여러 놀이기구를 잔뜩 즐기고 다녔다. 방금도 바이킹이라는 신기한 놀이기구를 즐기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새로 오픈 했어요! 더울때 온 몸을 시원하게 만들어줄, 공포의 끝! 귀신의 집으로 놀러오세요!"


알바를 하고 있는 듯한 골렘에게서 전단지를 건네받은 세사람.


"흠... 무섭다는데? 한번 가볼래?"


"그럴까요? 전 이런거 엄청 좋아해요."


"그...그래? 저는 무서운 건 조금..."


유적지에서 탔던 수많은 놀이기구들 전부 큰 만족감을 느낀 세명이었기에, 귀신의 집이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아르보레가 무서운 걸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아르보레가 귀신의 집이란 말에 몸을 벌벌 떨자, 남은 두 사람은 곧바로 귀신의 집을 포기했다. 대신 다른 놀이기구들을 선택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간. 세사람은 대관람차라는 놀이기구에서 오늘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바이킹이 제일 재밌었던 것 같아. 왔다갔다 하는게 즐거웠어."


웃는 미르네와


"저는 번지점프요. 세명이서 같이 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즐거운 표정의 디위티


"나는 롤러코스터가 제일 좋았어. 열차를 맨몸으로 타는 느낌이 들어서 신선했어."


그리고 행복함이 가득찬 아르보레.


"그나저나.. 리피트는 어디 간거지?"


"그러게요. 분명히 따라오고 계셨는데 어느순간 사라져버리셔서.."


미르네는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쫓아내버렸다.


"알아서 잘 하겠지. 이거 끝나면 우린 먼저 차에 돌아가자."


"네."


미르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두사람. 그 때 관람차 안에서 바깥을 내려보던 아르보레의 눈에 사람들이 아직도 줄을 서 있는 곳이 보였다.


'어떤 곳이길래 아직도 사람이 저만큼이나 있는걸까?'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는 아르보레. 그녀는 그곳이 '귀신의 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으... 무서운 건 싫은데...'


그래도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있는걸 보면 최소한의 재미가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아르보레. 심지어 저 곳은 아르보레 때문에 두사람이 가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그래!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다고. 번지점프도 했는데 충분히 할 수 있어!'


아르보레는 두 주먹을 꽉지며 굳게 마음을 먹은뒤, 두 사람에게 말을 꺼냈다.


ㅡㅡ


"으...으으..."


"저기, 아르보레? 무서우면 안 가도 돼. 억지로 갈 필요 없어."


"맞아요 아르보레 님. 저흰 유적지를 충분히 즐겼으니까 그냥 돌아가도 되요."


"아니... 할 수 있...을...거야."


골램의 몸으로도 덜덜덜 떠는 아르보레. 그걸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미르네와 디위티. 두사람은 안가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수록 아르보레는 들어가겠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고, 결국 세사람은 이 일이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채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뒤, 귀신의 집 내부에서,


"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아르보레! 괜찮아! 저거 괴물 아니야, 침착... 뭐야? 아르보레? 얘 어디갔어?!"


"갑자기 없어지셨어요!!"


ㅡㅡ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지팡이 속으로 돌아왔는데..."


"골렘의 몸까지 함께 돌아왔다? 빙의는 풀린 상태로?"


"네... 그리고 보시다시피.. 골렘이 원래는 엄청 큰 거였나봐요.."


리피트는 박살이 난 자동차의 한가운데를 쳐다봤다. 그곳엔 거대한 크기의 골렘이 대자로 뻗어있었다. 골렘의 모습이 아르보레의 체형과 다른 이유는 간단했는데, 빙의마법을 시전하면, 평소에는 거대한 크기의 골렘이 그 사람의 체형에 맞게끔 압축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르보레가 지팡이로 넘어오면서 그 빙의 마법이 풀리자, 골렘은 당연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고, 그걸 감당할 내부 크기가 안되는 리피트 일행의 자동차가 내부에서부터 박살이 나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저렇지만, 아까는 골렘이 난동을 부려서 그나마 멀쩡하던 차체도 모두 때려부숴먹었습니다.


한마디 거드는 워크. 말그대로 가루가 되어버린 '자동차였던 것'의 모습들이 보이기도 했다.


"난동은 왜 부린거야?"


"도난방지 시스템처럼 되어있던 것 같더군요. 제가 분석해서 정지시켜버렸습니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리피트는 쓰러진 골렘을 그냥 아공간에 집어넣어버렸다. 소형화 마법을 통해 작게 만들어 구석에 툭 집어던져버리는 리피트.


"하아...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되지?"


리피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해가 지고 모두들 밖으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딱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은 리피트 일행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사이 주차장엔 어느새 리피트 일행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밖으로 나가있자."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유적지 밖으로 나온 리피트 일행. 다음 목적지도 없다보니 정처없이 떠돌게 될지도 몰랐다.


"이대로는 안돼."


리피트는 남은 일행들을 돌아봤다. 어느새 디위티의 품에 안겨 쌔액쌔액 잠들고 있는 루아를 보곤, 리피트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얘들아 나한테 방법이 있어."


리피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리피트에게 꽂혔다. 리피트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한번 희생해볼게."


ㅡㅡ


우웅, 우우웅. 도로 위를 요상하게 생긴 차 한대가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괜찮으신거죠? 무겁다던가 그런건.."


"하나도 안 무거워. 걱정하지마."


"이게 뭐야... 이상하게 편안해서 더 기분나빠."


"싫으면 내리던가. 이거 이래뵈도 엄청 힘들다고."


"뭔가 리피트 님이 너무 안쓰러워요..."


애처롭게 리피트를 쳐다보는 보석의 정령 디위티.


우우웅, 위이잉.


이상한 기계소리와 함께 천천히 나아가는 마치 수레처럼 생긴 차. 이 위에 리피트 일행이 모두 올라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리피트는,


눈을 감은채 아르보레의 품에 안겨있었다. 식은 땀을 뻘뻘흘리면서.


그렇다. 지금 리피트는 '빙의'마법을 이용해 수레 골렘이 되어있었다.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바퀴를 열심히 움직이는 리피트. 리피트의 그런 헌신덕에 수레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거 나름 튼튼하다구.'


리피트는 아공간에 집어넣었던 골렘이 주인을 잃은 상태가 된 걸 알고는 곧장 이 계획을 떠올렸다. 골렘을 수레처럼 바꾼뒤 자신이 빙의하는, 정상적이라면 쓸일이 없는 계획. 어쨌든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고, 리피트는 열심히 바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약 2시간, 단순히 길을 따라가던 리피트가 번뜩 무언가를 일행들에게 물었다.


"헉, 헉. 얘들아 근데 우리 어디로 가야돼?"


"...글쎄? 우리 유적지는 다 돌아서 갈 데가 없는데?"


"그래? 그러면, 헉, 그 뭐야 헉헉, 베르시스 왕, 왕국 지도, 그거 봐봐..."


숨이 차는지 말을 잇지 못하는 리피트. 아까는 하나도 힘이 안든다며 허세를 부렸지만, 사실은 미칠듯이 힘들었다.


빙의 덕에 수레가 느끼는 모든 걸 느낄수 있었고, 리피트는 본인까지 포함해 5명의 성인과 1명의 동물을 업은채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음... 이거는 뭐야? 좁은 곳에 다 모여있네?"


"그거.. 아르칸.. 아르칸 성국..."


"아르칸 성국? 그게 어딘데?"


"내.. 고햐.."


이젠 말도 잇지 못하는 리피트. 수레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리피트는 왠지 자신의 온 몸이 땀으로 적셔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리피트의 상황도 모르고 미르네는 열심히 궁금한 점을 물어왔다.


"아르칸 성국이라니, 그러고 보니 언니의 이름이 붙어있는 마을이네? 거긴 언니를 다들 알고 있는거야?"


"아.. 아니.. 그냥 그렇.. 붙여졌.. 아무.. 헉.."


"뭐라고? 말 좀 끝까지 해봐."


"모... 모.."


"모?"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르네.


"모...못 가겠어..."


타고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달달달 떨리는 리피트 수레와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는 리피트의 본신. 남은 일행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잠깐 숙연해졌다. 잠시 뒤 침묵을 깬 건 이 사단의 원인이 된 아르보레였다.


"저기... 리피트 님."


"헉...헉... 왜?"


"사실 아까부터 생각난건데요... 저희 그냥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아르보레는 말을 하면서도 머뭇거렸다. 리피트라면 당연히 처음에 먼저 생각해봤을 만한 내용이였고, 그럼에도 굳이 이들을 모두 업고 가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르보레의 예상대로 리피트는 곧장 반론을 말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는데, 일단 대산맥의 결계가 완전히 풀린게 아니잖아. 그래서 우리가 못 넘어갈 거 같더라고."


"그렇군요."


확실히 리피트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대산맥의 결계는 텔레포트 마법도 막아내는...


"잠깐만, 우리 저번에 남부제국 갈때, 여기서 텔레포트 마법진 타고 가지 않았었나?"


두눈을 크게 뜬채 벙찐 표정을 짓는 리피트. 그의 옆에서 미르네가 정확히 말해줬다.


"여기서 북 제국의 군부시설로 이동했었지. 그런걸 보면, 결계도 순간이동까지는 막을 순 없는 모양이야. 이동하는 방식이 달라서 그런가?"


리피트는 벙찐 표정 그대로 시계를 찾아 쳐다봤다. 약 3시간. 리피트가 수레가 되어 이들을 업고 온 시간이었다.


"허..허허..."


리피트의 등짝이 아파왔다. 허탈함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리피트.


와장창!


"꺄악!"


"야! 뭐하는거야!"


다리에 힘이 풀린 수레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고, 그위에 누워있던 이들은 모두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찌어버렸다.


그제서야 빙의를 풀어버리는 리피트. 허탈한 표정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몸은 열심히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어디로 갈거야?"


"우리는 갈곳이 한군데 밖에 없어."


리피트는 미르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지팡이를 통해 '그 용'에게 말을 걸었다.


-데르카스, 그쪽으로 이동 좀 할게.


-네? 텔레포트 말씀이신가요?


-응.


-어... 그게 조금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저랑 제 안사람.. 그러니까 밀레느와 저는 지금 테르덴 가에 없거든요.


-허?


ㅡㅡ


-일단은 제가 말해 놓겠습니다.


-미안해. 맨날 민폐만 주네.


-아닙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으흠... 방금건 못 들은 걸로 해주십쇼.


리피트는 마나를 끊어내어 데르카스와의 대화를 종료했다. 데르카스가 공작가에 연락을 할 만큼의 시간을 기다린 뒤 마법진을 타면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독립이라니..."


현재 데르카스와 밀레느가 공작가에 없는 이유는 두 사람의 독립을 위해서였다. 원래라면 공작가의 하나 남은 딸이 독립한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데르카스가 그동안 뭘 해놓은 건지 황제가 새로이 얻은 땅들을 테르덴 가에게 수여했다고 한다. 문제는 황제가 엄청난 크기의 땅을 수여하는 바람에 테르덴 공작가가 아예 옮겨야 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고. 황제는 내심 테르덴 가를 단순한 공작가를 넘어서 공국으로 격상시키려는 계획인 듯 해서, 새술은 새 부대에 담자며 가문의 본진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리피트 일행이 텔레포트 했을 땐 맞아주는 이들보다, 가문을 정리하고 있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리피트 님, 여긴 어딥니까?"


"여기? 아, 맞다. 너네 둘은 여기에 와 본적이 없겠구나. 여긴 테르덴 공작가야. 북부제국에 3개밖에 없는 공작가 중 하나지."


리피트는 질문을 한 워크와 루아를 달래는 디위티에게 약간의 설명을 보태주었다. 그 설명을 다 들은 워크는 어디선가 종이 묶음을 꺼내더니 리피트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제가 기록한 테르덴 가와 황제에 관한 정보들입니다."


호기심을 느낀 리피트가 첫장을 슬쩍 읽어보았다.


[ 테르덴 가에 새롭게 등장한 데르카스란 인물이 뛰어난 전공을 올림. 그 덕에 테르덴 가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중. 예전부터 누구보다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가문이었던 테르덴 가이기에 황제는 이들의 권력을 더 올려주고 싶어함. 때문에 이번에 얻은 영토를 이용해 테르덴을 공국으로 만들 생각중. 절차는 모두 끝났으며 발표만 남은 상황. 쥘렌 드 테르덴 공작은 공식적으로는 거절 중이지만, 이미 공국의 준비를 하고 있음...등등 ]


"와."


뒤쪽의 몇장을 더 읽어본 리피트는 감탄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워크가 적은 내용은 조금 딱딱하긴 했지만, 누구와 누가 만났고,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등등. 중요한것들만 글로 적어놓은 최고의 정보들이었다.


"진짜 대단한데? 이거 뭐. 정보상으로 바로 시작해도 되겠어. 떼돈 벌겠는데?"


"과찬이십니다."


워크의 능력은 어떤 정보길드도 비교도 되지 못할 만큼 정확하고 다양했다. 이런 정보들은 언제든 그리고 어떻게든 리피트에게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리피트는 다시금 워크를 쳐다봤다. 그는 더이상 피곤한 회사원의 모습은 하고 있지 않았다. 혈색이 도는 밝은 피부, 윤기나는 머리카락, 당당히 펴진 어깨와 번쩍이는 치아가 인상적인 환한 웃음.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과로를 통해 건강을 되찾은 일의 정령 워크의 모습. 리피트는 자신이 복덩이를 찾은 것 같아 즐거워졌다.


"리피트 님~~!"


저 멀리서 리피트를 마중나오는 펠튼이 보였다.


리피트 일행은 펠튼을 따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ㅡㅡ


"우리는 남부제국의 북부 지역을 먹게 될걸세."


"공국은 확정이신건가요?"


"그렇지. 황제폐하께서 계속 공국을 만드려고 하시더군. 자신에게 힘을 실어달라면서 말이야."


리피트는 쥘렌과의 대화를 통해 워크가 가져온 정보들이 정확하다는 걸 또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사이를 가로막고있던 국가들은 어떻게 되나요?"


"모셀랑 왕국은 영토를 다른 이득을 얻는 조건으로 국가를 팔았어. 애초에 그곳에 모여서 싸움만을 즐기던 이들인데다가 강하기 까지 한 자들이다 보니 별 생각이 없어보이더군. 왕족은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특수한 위치가 될것 같아. 그들말곤 나머지는 딱히 큰 변화가 없겠지만... 나머지 두 국가, 아슈디온 왕국과 카르넴 왕국은 거의 사라진다고 봐야지. 아마 우리나 엘프들의 국가로 합병되고 영토를 잃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네."


"그렇군요."


"뭐. 그런 이야기는 접어두고, 일단 자네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데."


리피트는 음흉한 미소를 짓는 쥘렌을 보며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뭔가요?"


"자네, 진짜 귀족이 되어 볼 생각 없나?"


"귀족이요?"


"그래. 우리 가문이 공왕이 되면, 공국안에서만큼은 우리 가문이 작위를 내릴 수 있어. 당연하겠지만, 제국의 공작위 밑에만 줄 수 있겠지."


리피트는 마음이 혹했다. 하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귀족이라니, 억지로 받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준다는 걸 거절하고 싶지도 않은게 바로 귀족이란 작위였다.


"자네가 귀족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마탑의 인증과 제국의 특별훈장을 가지곤 있지만, 그게 결국 자네가 진정한 의미의 귀족이라는 건 아니지 않나. 귀족이 되면.. 자네의 부모님과 앞으로 태어날 자식, 모두가 귀족이 될걸세. 그러니 거절하지 말고 귀족이 되어 나와 내 딸 그리고 사위를 좀 도와주게."


리피트의 마음은 이미 쥘렌의 제안을 받는 걸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건 은근한 협상이었다.


'일단 살짝 튕기고 봐야지.'


"에이~ 제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귀족이 될 수 있겠어요."


"어허. 남부제국 최고위 상층부를 모두 묶어둔 게 자네 덕이라는 건 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네."


리피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새 자신이 한 일이 퍼진 모양. 쥘렌이 그의 눈치를 보곤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물론 자네가 단순히 귀족이란 말에 혹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알고 있네."


'혹 했는데요.'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자네가 그런 사사로운 욕심에 휘둘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네. 그래서 더더욱 자네를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거고."


'사사로운 욕심에 많이 흔들리고 있는데요...'


리피트의 속마음을 모르는 쥘렌은 계속해서 리피트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사위도 자네가 꼭 우리 쪽 사람이 되었으면 하더군. 자네는 우리 가문의 가장 중요한 측근이 될걸세. 내가 약속하지."


쥘렌은 리피트가 제안을 거절할 거라 생각하는지 왠지 초조해보였다. 아니, 평생을 정치와 함께 해왔을 공작이니 어쩌면 지금의 모습도 연기일 지 몰랐다.


그래도 뭐 어떤가. 귀족을 시켜주겠다는데. 리피트는 그 제안을 거절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세요. 처음부터 거절할 생각 없었어요."


"그,그런가? 그거 참 다행이구만!"


쥘렌은 덥썩 리피트의 손을 잡았다.


"일단 공국이 선언되면 곧장 자네에게 작위를 내리겠네. 맞아, 자네의 일행들에게도 작위를 내려야겠군."


"하하. 감사합니다."


리피트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 쥘렌에게 미소지었다.


"그러면 밀레느와 데르카스는 지금 땅을 보러 다니고 있는 건가요?"


"그렇네. 평소의 우리 가문이라면 아마 점령지에 있는 멀쩡한 성 중 하나를 골라 그곳에서 살았을 걸세. 애초에 우린 건물을 짓는 그런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이지."


쥘렌은 앞쪽에 놓인 차를 한모금 홀짝였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리 공국이라고 해도 새로이 국가가 세우는 거지 않나. 그러다보니 황제 폐하께서도 왕궁만큼은 지으라고 하시기도 하셨고, 또 저번에 자네 덕에 돈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말이야. 왕궁을 짓고도 넘칠만큼 돈이 있으니, 굳이 안 지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잘 생각하셨어요. 어쨌든 왕궁을 지을 생각이시니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그렇지. 아직 터도 잡지 못했으니 시간이 꽤 걸릴걸세. 나는 그 사이에 인재들을 열심히 포섭해야하고."


리피트는 쥘렌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럼 나중에 데르카스한테서 연락을 받고 찾아뵙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뵐 수도 있구요."


"알겠네. 그리고 정말 고맙네. 공국이 세워지는 그 즉시 제일 먼저 자네를 귀족에 앉힐겠네."


리피트는 쥘렌의 방에서 나와 배정받은 손님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모두들 이곳을 정리하고 있는지 이전에 비해 꽤 많은 물건들이 사라져있었다.


"짐들을 정리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리피트는 허전해진 방안을 둘러보며 침대에 누었다.


'그나저나... 공국이라니, 시간이 지나면 아마 데르카스랑 밀레느가 공왕과 공왕비가 되는건가? 아닌가? 여왕이라고 봐야하나?'


테르덴 공작가가 세울 공국에 대해서 상상해보는 리피트.


제국 10검에 들어가는 기사, 그리고 아르칸 주신이 처음으로 만든 생명체 태초의 드래곤 데르카스. 또..


'...벌써 최강인데?'


데르카스가 누구인가, 바로 드래곤 중의 드래곤, 같은 드래곤들도 싸인을 받고 사진을 찍는 어나더 레벨의 드래곤 아닌가. 그런 드래곤이 계약직인 수호룡도 아니고, 왕의 사위로 머무르고 있다. 그럼 이미 최강국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거기에 만약 리피트 일행까지 공국에 지낸다면? 미르네는 애초에 신이고, 아르보레는 세계수의 정령이며, 루아는 신수, 말그대로 신급의 영물이었다.


'루아가 여기있으면 나도 여기있겠지.'


그리고 리피트 또한 정상적인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상당한 강자였다. 더군다나 위에 언급한 이들 중 기사단장인 펠튼을 제외하면 다들 죽지도 않는 자들이기도 했다.


'미래가 밝구나.'


아마 테르덴 가문이 세울 공국은 영원하지 않을까. 저런 강자들 사이에서 리피트가 할 일이 있을까. 아니, 아마 하는 일없이 빈둥대고 있을 게 뻔했다.


'나는 뭐... 나중에 정보 길드 같은 거나 운영할까?'


문득 일의 정령 워크가 가져다주던 자료가 떠오른 리피트. 리피트는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생활이 모두 마무리 지어지면 워크의 도움을 받아 여유롭게 정보상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유적지를 다 돌았구나.'


살짝 딴 길로 새어버린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리피트는 큰 일을 하나 마무리 지은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건 데른 할아버지가 준 연구소 지도 뿐. 하지만 이곳들은 왠지 가기 꺼려졌다. 왜냐하면,


한 곳씩 들릴때마다 데른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였다. 제국의 유적지는 한 곳 한 곳 들린뒤 X표를 칠때마다 정복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데른의 유품인 지도에게 그런일은 별로 하고싶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그때 가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는 리피트였다.


"그럼 일단은 그놈의 '악'을 없애는데 최선을 다해야겠네."


앞으로 할 일은 미르네의 바람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미르네의 힘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야 한다는 뜻일텐데...


"리피트."


리피트는 뜬금없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리피트의 눈앞엔 성인 여성 하나가 서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왠지 모를 후광덕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그녀가 누군지 안 리피트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아르칸 주신님."


리피트는 그녀의 위엄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여기. 이걸 받아요."


그녀는 리피트에게 두개의 알약을 내밀었다.


"미르네가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힘이에요. 그녀에게 전해주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공손히 알약을 받는 리피트. 그가 아공간에 알약을 집어넣는 것까지 확인한 아르칸 주신이 말을 꺼냈다.


"리피트. 당신 덕에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힘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아닙니다."


따뜻한 신의 음성에 어쩔줄 모르는 리피트.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지만, 저한텐 '악' 이걸 처리하는게 우선이에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아직은 제 힘이 부족하구요. 미안하지만 리피트 당신의 힘을 조금 더 빌리고 싶어요.


아르칸 성국, 그곳에서 제 성물을 하나만 가져와 줄래요? 성물은 아르칸 성국의 수도 대신전 지하에 있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곳을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아르칸 주신은 지팡이 속으로 사라졌고, 리피트는 다음 목적지를 정한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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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트 일대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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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4화 19.06.03 267 1 19쪽
64 63화 19.06.02 142 1 20쪽
63 62화 19.06.01 139 1 25쪽
» 61화 19.05.31 152 1 23쪽
61 60화 19.05.29 143 1 29쪽
60 59화 19.05.27 152 1 18쪽
59 58화 19.05.26 165 1 21쪽
58 57화 19.05.25 168 1 23쪽
57 56화 19.05.24 168 1 26쪽
56 55화 19.05.22 157 1 16쪽
55 54화 19.05.20 146 2 21쪽
54 53화 19.05.19 157 1 14쪽
53 52화 19.05.18 177 1 19쪽
52 51화 19.05.17 181 2 23쪽
51 50화 19.05.15 175 1 16쪽
50 49화 19.05.13 172 1 30쪽
49 48화 19.05.12 189 1 21쪽
48 47화 19.05.11 202 2 25쪽
47 46화 19.05.10 182 1 22쪽
46 45화 19.05.08 207 1 21쪽
45 44화 19.05.06 217 1 31쪽
44 43화 19.05.05 175 1 16쪽
43 42화 19.05.04 183 1 21쪽
42 41화 19.05.03 176 1 19쪽
41 40화 19.05.01 182 1 12쪽
40 39화 19.04.29 199 1 21쪽
39 38화 19.04.19 193 1 30쪽
38 37화 19.04.17 189 1 20쪽
37 36화 19.04.15 188 1 22쪽
36 35화 19.04.14 224 1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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