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 그리고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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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잠이최고야
작품등록일 :
2019.03.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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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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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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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4)

DUMMY

어둠이 내려앉은 성전, 온통 악의 정령들로 가득 했다. 마르멜로는 성전에서 가장 밝은 달빛이 내려오는 꼭대기에서 희미한 달빛을 느꼈다. 그녀 곁으로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마르멜로는 단번에 그의 존재를 알아챘다.



" 심심해서 왔니."



에리카는 그녀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달빛이 있는 곳 대신 검은 그림자에 숨어 마르멜로와 같은 자세로 앉았다.



" 코리우스 애송이를 두고 네가 웬일로 나를 찾아왔을까."


" 코리우스는 그들을 감시하러 갔어."



감시는 원래 네 일 아니었나. 매번 그 애를 지켜봤잖아. 이번에도 그때도. 에리카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들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마르멜로는 작은 파이프를 꺼내 담배를 피웠다. 그녀의 입에서 보라색 연기가 새어 나왔다. 독한 냄새가 아닌 달콤하고도 유혹적인 향이다. 그 향에 취해 눈과 귀가 멀어버린 것 같았다.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향에도 에리카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의 연기는 그들이 있는 방안에 가득 찼다. 그는 검은 지팡이를 꺼내 들어 그들이 있는 방에 검은 선을 그었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게. 그들이 있는 방은 이제 누구도 들어오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둘만 남은 방에서 마르멜로가 입을 열었다.



" 왜 돌아왔어. 그 애 곁에 있지 그랬어. 도망가야 했어. 너는."


" 그건 나도 너에게 묻고 싶은 말이야."



우린 알고 있다. 빌어먹을 우리의 존재는 악이라는 것에 발 묶여 있는 존재다. 악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 간악하고 없어져야 할 괴물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였다. 아무리 도망쳐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 어쩌면 히아신스와 코리우스처럼 살아가는 게 편하겠지만 에리카와 마르멜로는 다른 것을 알아버렸다. 괴물도 감정을 느낀다. 악도 사랑을 느낀다. 사랑을 알게 된 괴물을, 더 이상 사랑하는 이를 해치지 않는 괴물을, 그를 지키기 위해 굶는 괴물을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악은 뭘까. 히아신스가 악일까. 에리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마왕의 슬픔에서 태어난 존재다. 그는 슬픔을 주기도 하지만 슬픔을 거둬가는 존재다. 우리 모두 같은 존재다. 다만, 지나치거나 혹은 감정이 없는 존재로 만들 뿐이다. 억지로 히아신스의 곁으로 갔지만, 에리카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긴 삶에서 그들을 이해할 존재는 오로지 그들뿐이니까. 악만이 악을 이해하니까. 그러나 마르멜로는 모든 걸 부정했다.



" 난 항상 떠나고 싶었어. 나 자신이 너무도 싫었지. 나는 한때 중독돼서 죽었지만, 중독을 통해서 자유를 찾고 싶었어. 내가 있는 현실은 갑갑하고 암울했지. 내가 정령이 되어 깨어난 순간에 내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너희는 모를 거야."



그리고 한때 한 남자를 만나 잠시 숨통이 트였다. 그는 불처럼 환한 남자였다. 나를 발견하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게 손을 뻗어주던 그 사람. 마르멜로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에리카는 그녀의 향에서 슬픔을 느꼈다.



" 마르멜로. 이번에 그들이 이기면 우린 정말로 죽게 되겠지."


" 그러겠지. 우리가 이기면 그들이 죽을 거고."



히아신스가 그 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이리스도 우리가 살아있지 않기를 바랐겠지. 마르멜로는 쓴 미소를 지었다.



" 결국 우리는 죽음의 길로 가네. 다알리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네."


" 우린 죽으면 바로 소멸이야. 환생 따윈 없어."



농담도 못 하니. 마르멜로가 그를 질책했다. 에리카는 공허했다. 순간 마르멜로의 눈이 붉게 빛났다. 안대로 가려졌지만, 에리카도 마찬가지였다. 히아신스가 그를 불렀다. 갈 시간이네. 마르멜로는 연기를 모두 흡수했다. 어느새 방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디에도 그녀의 연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에리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전 마르멜로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 마르멜로. 죽지 마."



죽지 마. 마르멜로. 문득 그의 말이 떠올랐다. 마르멜로의 짙은 보랏빛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픽 웃었다. 그녀는 담배를 한 모금 마셨다.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후. 그녀는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오랜만에 숨통이 트였다. 정말이지.



" 아름다운 밤이야."



그녀는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속삭였다. 그녀의 입가는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에리카는 히아신스의 부름에 성전으로 내려왔다. 히아신스는 부서진 석좌에 앉아 에리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검은 연기가 되어 나타난 에리카 앞에 섰다. 히아신스. 에리카의 나지막한 부름에 히아신스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 에리카. 왔구나."



네게 줄 것이 있어. 히아신스는 자신의 검은 구멍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검은 구멍에서 짙은 검은 연기가 나와 작은 공을 이루었다. 히아신스는 에리카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 네 것이야. 어서 먹어."



강한 감정의 덩어리들. 그 안에서 인간의 감정이 요동쳤다. 고통과 절망과 허무로 이루어진 그 응축을 저 자신은 원했다. 에리카는 그것을 받았다. 손에 쥔 감정은 온통 짙고 뜨거웠다. 문득 궁금해졌다.



" 이렇게 해서 힘을 모으는 이유가 뭐야. 히아신스."



이미 네 배는 가득 찼잖아. 절대 갈증 때문이 아니다. 복수도 아니다. 히아신스는 그의 물음에 웃음을 터뜨렸다. 난생처음 듣는 그의 웃음에 에리카는 긴장했다. 그의 힘을 받아들인 그는 전보다 인간의 감정에 충실했다. 마치 인간 같았다. 그는 이런 말을 싫어하겠지만. 광기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린 히아신스는 갑자기 웃음을 뚝 멈췄다. 그는 다시 본래의 히아신스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는 검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전율에 가득 찼다.



" 맞아. 갈증이 아니야. 너도 알지? 난 우리의 아버지에게 실망했어. 그깟 감정으로 태어난 그는 그것들로 파멸했지."



감정만 몰랐다면 그는 더 완벽했을 텐데 말이야. 그는 나약했어. 히아신스의 말에 아쉬움이 묻었다. 그는 에리카는 지나쳐 석 좌로 향했다. 에리카는 히아신스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석 좌에 앉은 히아신스는 에리카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성전에 달빛이 내려앉았다. 그는 달빛에 반사되어 밝은 빛을 띠고 있는 에리카를 바라보며 그의 숨겨둔 야망을 말했다.



" 난 달라. 난 죽음이 될 거야. 에리카."



죽음을 지배할 거야. 꿈의 신을 넘어선 죽음의 신. 히아신스의 힘은 차고도 흘러넘쳤다. 멜론처럼 그는 무지 막하게 엄청난 힘을 끌어모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의 힘은 신과 버금갔다. 힘이 센 정령은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 에리카는 히아신스에게서 나오는 강한 압박에 두려움을 느꼈다.



" 죽음의 신이 되어 다른 신에게 도전하게?"


" 그들이 날 부정한다면 그래야지."



하지만 그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그들은 자기밖에 모르거든. 그들을 위협하지 않으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아.



" 이렇게 많은 인간을 죽이는데도?"



에리카의 말에 히아신스가 깔깔 웃었다.



"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 인간을 죽였어. 에리카 생각해봐. 세상에 화염으로 죽은 인간과 물에 빠져 죽은 인간과 질병으로 죽은 인간들로 넘쳐나. 그들은 한 번도 인간을 살린 적 없어. 그들은 그저 지켜볼 뿐이야."



인간의 영혼을 거두어 죽음에게 넘길 뿐이야. 그 죽음을 이제 내가 하겠어. 내가 신이 되면 우리는 다시는 죽지 않을 거야. 소멸하지 않을 거야. 더는 감정의 정령이 아닌 죽음의 정령으로 살게 해줄게. 우리를 위해서. 히아신스는 손을 뻗어 달빛을 가렸다. 에리카는 다시 완전한 어둠에 갇혔다. 이미 어둠 속에 있는 그는 밖에서마저도 빛을 잃었다. 그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 갔다. 정말로 그들은 죽음과 함께였다.



*





이안과 이사벨라는 여정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남겨진 이사벨라의 저택에서 아이리스 일행은 상의했다. 어디로 떠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히아신스와 어떻게 맞설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했다.


클레이의 예상대로라면 히아신스 곁에는 에리카와 코리우스 그리고 마르멜로를 포함한 상급정령 셋과 하급 정령들이 있다. 이쪽은 정령을 보지 못하는 사프란과 싸움을 전혀 하지 못하는 클레이와 그들을 모두 상대하기 벅찬 아이리스 오직 셋뿐이다. 그들에게 펜던트가 있어 함부로 덤비지 못할 테지만 이건 불리한 게임이다. 이 상황이 너무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이건 신의 힘이 전적으로 필요했다.


쓰고 싶지 않았지만 남은 두 소원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클레이의 기분이 한없이 낮아졌다. 이상하리만큼 신의 움직임이 없었다. 그들의 고민은 계속됐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사프란의 말대로 일단 쉬고 내일부터 어디로든 가보기로 했다. 아이리스는 정령과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아이리스는 답답한 저택을 떠나 무작정 어두운 숲속을 걸었다. 정령을 찾아 걷던 그는 코리우스를 처음 만났던 그 공터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췄다. 어둠의 흔적이 가득한 이곳에 아이리스는 두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 아이리스



아이리스. 그 이름은 두 목소리로 나뉘었다. 맑은 그들의 목소리와 악의 기운으로 가득한 낮은 목소리. 두 정령은 모두 아이리스를 불렀다. 마치 선과 악처럼. 그는 그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공간은 신성한 힘과 악의 힘이 뒤섞여 있던 자리였다. 이상하게도 그는 상반된 그 힘을 받는 순간 신성한 힘보다 악의 힘에 더 끌렸다. 목이 마르듯 온 신경이 검은 힘에게로 쏠렸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에게 두려움이 잠식했다. 그 안에 있는 이 커다란 힘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악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힘에 잠식된 그 정령들처럼. 감정의 힘. 검은 힘. 짙고 향기로운 그 힘을.



" 아이리스."



사프란의 목소리에 아이리스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다. 그는 죄를 지은 것처럼 손을 뒤로 가렸다. 그 힘을 원한다. 그 뒷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한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이리스는 애써 웃는 얼굴로 사프란을 맞이했다.



" 사프란, 여기서 뭐 하는 거죠?"


" 나야 뭐, 너와 같은 이유일 거 같은데."



사프란은 픽 웃으며 아이리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잠이 안 와서 말이야.



" 그냥 이곳이 떠올랐어. 그날 이곳에서 너희들의 그런 모습을 보았잖아. 모두 이상한 것을 보고, 힘을 쓰고."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힘도 없는데. 사프란은 총을 꺼내 들었다.



" 나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어. 나는 너희와 달리 아무것도 보지 못하잖아. 내가 가진 전투기술로는 보이지 않는 것과 싸울 수 없어."



그렇다고 물러날 수 없지. 그녀는 총을 장전하고는 아이리스를 향해 겨눴다. 총구가 자신에게 향해도 아이리스는 미동하지 않았다. 눈빛 하나 변하지 않는 아이리스의 태도에 사프란은 총을 까닥이며 이어 말했다.



" 원한다면 내가 너에게 전투 기술을 가르쳐줄게. 내가 너를 가르칠 테니 너는 내 눈이 되어줘."



그녀의 분홍빛 눈이 반짝였다. 저렇게 아름다운 눈이 홀로 다른 세상을 본다. 아니다. 모든 이들이 우리와 다른 세상을 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고, 우리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을 본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눈을 돌려 우리의 세상을 보려 했다. 너의 손발이 되어줄 테니 나의 눈이 되어라. 아이리스는 점점 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은빛 총구를 잡았다.



" 좋아요. 제가 당신의 눈이 될게요."


" 그럼 나는 너의 힘이 되어 주지."



강한 잠재력을 가진 너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는 그런 존재. 사프란은 총을 거두고는 미리 들고 온 긴 막대기를 던지듯 아이리스에게 건넸다. 다른 막대기를 든 그녀는 자세를 잡으며 그에게 경고했다.



" 미리 말하는데, 봐주지 않을 거야."



이래 봬도 나 꽤 칼질 좀 하거든. 물론 다른 것도 다 잘하고. 그녀의 여유로운 미소에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활은 많이 쏴봤지만, 검술은 별로 해 본 적 없다. 과거에 릴리에게 잠깐 배운 적은 있어도 이때만큼 위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아이리스의 눈이 점점 검게 물들여졌다. 그의 변하는 눈 색을 지켜보던 사프란은 막대기로 아이리스의 검은 눈을 가리켰다.



" 특히 그 눈, 이번 기회에 같이 활용해 봐."



매번 폭발하듯 터지는 그 힘은 네게 있어 위험하다. 경계에서 위태로이 서 있는 네가 이쪽으로 잘 건너올 수 있게, 악으로 건너가지 않게 내가 너를 인도해줄게. 믿음직한 그녀의 말에 아이리스는 안도를 느꼈다. 그는 처음으로 불안을 내 던지고 힘을 열었다. 그에게 알 수 없는 힘의 압박이 느껴졌지만, 사프란은 바라던 바였다. 그녀 역시 마음을 독하게 먹고, 검이라 생각하며 막대기를 휘둘렀다. 깊은 밤이지만 두 사람은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날이 밝을 때 해도 되지만, 그들의 마음은 조급했다. 조급함은 그들을 움직이게 했고 서두르게 했다.




*



클레이는 방으로 돌아왔다. 밤이 찾아오고 날이 어두워졌다. 클레이는 베란다로 나가 창가에 섰다. 그녀는 신이 준 펜던트를 잡아 살며시 입을 맞췄다.



- 누구라도 내게 대답해줘요.


- 그게 나여도 괜찮을까?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클레이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서 있는 난간에 보랏빛 연기를 내뿜고 있는 마르멜로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오랜만이야. 클레이. 아주 예뻐졌구나."


" 마르멜로 이곳에 어쩐 일이야?"



클레이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잔뜩 경계하는 클레이의 행동에 마르멜로는 픽 웃었다. 그녀는 파이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너무 그러지 마. 나 마음 바뀌려고 하니까. 오늘은 그녀의 말을 전하러 온 거야."


" 그녀? 설마 릴리을 말하는 거야? 지금 어디 있어?"



그녀는 안전해? 클레이의 질문에 마르멜로는 고개를 저었다.



" 클레이. 자꾸 내가 악의 정령인 걸 잊나 본데. 그렇게 많은 질문은 곤란해."



나는 단지 릴리가 안쓰러워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러 온 것뿐이라고. 거짓말. 클레이의 말에 마르멜로의 눈이 커졌다.



" 거짓말.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잖아. 마르멜로 당신은 절대 그냥 우리를 찾아오지 않아."



아 맞다. 진실을 보는 눈. 그녀의 눈을 깜박 잊었다. 마르멜로는 킥킥 웃었다. 잠시 미소를 지우고 클레이 앞에 선 마르멜로는 손을 뻗어 클레이의 머리결을 만졌다. 그러나 그녀의 신성한 힘에 마르멜로의 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그녀는 즉시 손을 뗐다. 여전히 깨끗하구나 너는. 마르멜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네 말대로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조만간 히아신스가 너희를 찾아갈 거야."



너희를 죽이러 갈 거야. 그녀의 작은 속삭임에 클레이의 숨이 멈췄다. 그녀의 눈에서 히아신스의 짙은 눈이 보였다. 그의 차가운 손이 자신의 목을 움켜잡으려 했다. 그 환영만으로 목이 갑갑해졌다.



" 조심해. 그는 죽음이 되려고 해. 신이 되면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어. 희망의 정령, 너 죽게 될 거야."



죽음에 대한 공포가 눈앞을 덮쳐왔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파져 왔다. 클레이의 눈에서 눈물이 맺혔다. 희망은 절망 앞에서 공포에 떨었다. 그녀는 이 공포를 받아들여야 했다.



" 얼마나 남았어? "


" 곧. 어느 신도 움직이지 않지. 마치 새로운 신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야. 클레이, 살아남고 싶으면 신에게 도망가."



어느 신. 누구도 내게 대답하지 않는데 누구에게 가야 하나. 클레이는 시선을 내렸다.



" 신은 내게 대답해 주지 않아."



그들은 항상 죽을 위기일 때만 대답했다. 그리고 목숨을 내던지지 않기로 아이리스와 약속했다. 마르멜로는 그런 클레이를 내려다보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클레이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클레이의 눈이 커졌다. 마르멜로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 그들이 먼저 건드렸어. 네가 대신 그에게 전해줘."



마르멜로의 주위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갈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 마르멜로는 마지막으로 클레이에게 전했다.



" 릴리는 부서진 성전의 지하에 있어. 우리 모두 그곳에 있어."



그에게서 살아남으면 부디 릴리를 구해. 그녀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 거센 바람이 불었다. 클레이는 마르멜로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처럼 그녀도 바람에 흩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매혹적인 향은 여전히 주위에 남아 클레이의 코를 간질였다.


며칠 사이에 아이리스는 사프란의 도움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이제는 힘의 조절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안과 이사벨라가 떠난 지 일주일이 흐른 뒤에야 나름의 준비를 끝낸 아이리스는 클레이가 조사한 몇 안 되는 성전을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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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빛과 어둠과 소년 19.06.15 11 0 16쪽
34 부서진 성전(4) 19.06.11 14 0 16쪽
33 부서진 성전(3) 19.06.09 12 0 14쪽
32 부서진 성전(2) 19.06.04 12 0 11쪽
31 부서진 성전 19.06.01 14 0 14쪽
30 빛과 어둠(3) 19.05.28 13 0 12쪽
29 빛과 어둠(2) 19.05.25 13 0 15쪽
28 4부 빛과 어둠 19.05.21 14 0 16쪽
27 별의 죽음(6) 19.05.18 22 0 18쪽
26 별의 죽음(5) 19.05.14 23 0 13쪽
25 별의 죽음(4) 19.05.11 23 0 14쪽
24 별의 죽음(3) 19.05.07 22 0 15쪽
23 별의 죽음(2) 19.05.04 30 0 15쪽
22 별의 죽음 19.04.30 28 0 9쪽
» 갈등(4) 19.04.27 27 0 18쪽
20 갈등(3) 19.04.23 25 0 15쪽
19 갈등(2) 19.04.20 31 0 12쪽
18 3부 갈등 19.04.18 16 0 20쪽
17 2부 에필로그 19.04.17 19 0 14쪽
16 두 개의 펜던트(7) 19.04.16 19 0 12쪽
15 두 개의 펜던트(6) 19.04.15 18 0 11쪽
14 두 개의 펜던트(5) 19.04.14 20 0 10쪽
13 두 개의 펜던트(4) 19.04.13 26 0 13쪽
12 두 개의 펜던트(3) 19.04.12 16 0 17쪽
11 두 개의 펜던트(2) 19.04.11 16 0 13쪽
10 두 개의 펜던트 19.04.10 16 0 14쪽
9 세타시마을(5) 19.04.09 26 0 19쪽
8 세타시마을(4) 19.04.08 18 0 13쪽
7 세타시마을(3) 19.04.07 2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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