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 그리고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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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잠이최고야
작품등록일 :
2019.03.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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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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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3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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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별의 죽음

DUMMY

*


이안은 눈앞의 상황에 믿을 수 없어 걸음을 멈췄다. 이안과 이사벨라의 앞에는 루인의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주위는 온통 피바다였고 시체의 썩은 냄새에 온갖 벌레들이 모였다. 노인도, 어른도, 아이 모두가 죽었다. 모든 감정과 생명을 빼앗긴 그들은 검은 시체가 되어 굳어버렸다. 끔찍한 상황에 이안의 손이 벌벌 떨렸다. 이안. 이사벨라가 이안의 손을 꽉 잡았다. 이안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투명한 눈물이 말라붙은 피 웅덩이 위로 떨어졌다. 루인의 저주를 풀 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비통한 분노가 하늘에 울렸다. 이안과 이사벨라는 이틀에 걸쳐 루인의 장례를 치렀다. 커다란 불길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혔다. 그들은 비참하게 죽은 루인 인들을 애도하며 불길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날이 밝아 올라 해가 뜰 때까지.



모든 것이 어느정도 마무리 되고, 이안은 모험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났던 그 공간을 찾았다. 밝은 햇빛이 어두운 공간을 비췄지만, 이제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은 한 없이 서늘한 공간이 되었다. 이안은 자신의 아버지가 늘 앉아 있던 석좌를 바라보았다. 그 곁으로 이사벨라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안. 이사벨라의 부름에 이안은 뒤를 돌아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 내 아버지는 항상 저곳에 앉아있었습니다. 모두가 피눈물을 흘리고, 두려움에 떠는 날이 되면, 아버지는 모든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 안심시켜주었습니다.


자신도 피눈물을 흘리며, 앞도 보이지 않으면서 언제나 다른 이들을 걱정하고 또 걱정했습니다."



아버지는 언젠가 신이 우리를 구원하리라고 말했다.



" 하지만 이렇게 모든 루인들이 죽어가도 신은 우리를 외면하는군요. 이제 루인가는 모두 끝입니다."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이곳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마지막까지 가족들과 함께했을 텐데. 밀려오는 절망감에 이안은 머리를 짚었다. 이사벨라는 말없이 이안을 따뜻하게 안았다. 이안은 그녀의 품에 안겨 쓰디쓴 눈물을 삼켰다. 이사벨라의 보랏빛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위로하고 싶어도 위로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어떤 위로도 이 남자의 슬픔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슬픔을 잘 흘려보낼 수 있게 그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일뿐이었다. 이안은 그녀의 어깨에 기대 그가 사랑했던 모든 이를 떠나보냈다. 가슴 아프지만,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애도였다.



*



밤이 되었다. 이안은 석좌를 침대 삼아 옆으로 앉아 있었다. 복잡한 생각 때문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마음에는 오로지 공허만이 남았다. 그는 두 눈을 감았다. 눈앞의 캄캄한 상황이 눈을 감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그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암흑이었다. 온통 검고 어두운 곳에 홀로 남아 있었다. 마치 사막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아, 사막에도 별과 해는 있다. 빛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빛이 없다. 어느 희망조차. 문득 그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 이안,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어둠의 신을 만나요. 신 중 가장 합리적이지만 가장 가차 없는 신이지요.’


빛과 어둠. 가장이 아니라 둘 다겠지. 이안은 두 눈을 떴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천천히 석좌에서 내려왔다. 그의 발소리가 성전을 울렸다. 탁, 탁, 탁, 탕, 탁. 이안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다시 한 걸음 뒤로 올라섰다. 그의 발밑에 까마귀가 그려진 돌이 새겨 있었다. 많은 이들이 밟고 지나가고, 자신의 아버지가 수업이 밟고 서 있던 이 성전에서 이제는 그가 있었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어 검은 새와 마주 보았다. 지독히 쌓인 흙먼지를 털어내자 검은 새는 그 모습을 보였다. 이안은 검은 새가 그려진 돌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안에 숨어있던 오래된 먼지가 세상 밖으로 나오며 오랫동안 숨겨져 왔던 작은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오래된 루인의 일기장이었다. 처음으로 신을 만났던, 한 소녀의 일기가.


' 모든 일의 시작은 한 소녀가 신을 만나고 나서였다.

한 소녀가 신에게 빌었다. 저의 빛이 되게 해주라고. 신은 소녀의 부름에 응답했다. 자비로운 신은 소녀의 부탁을 들어줬다. 신은 소녀의 빛이 되었다. 신은 소녀에게 말했다.


나와의 세 번의 만남이 있으리라.


루인, 위대한 여인이여.’


그 두 번째 만남이 어쩌면 이 낡은 일기장 안에 들어있을지 모른다. 이안은 즉시 이사벨라를 찾았다. 늦은 밤이었지만 이사벨라는 이안의 부름에 응답했다. 그녀는 이안에게서 받은 루인의 일기장을 살펴봤다. 대부분 신의 언어로 되어 있어 이안은 읽을 수 없었다. 오직 이사벨라만이 이 일기장을 읽을 수 있었다. 이안은 초조했다.



“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혹시 저주를 풀 방법이 있습니까?”


“ 이 일기장은 루인의 소녀가 신을 만난 내용만 담고 있어요. 저주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서 이사벨라가 말하자 이안은 실망했다. 그렇지만, 이거라면 다르지요. 이사벨라는 책의 어느 부분을 펼쳤다. 그녀는 그 부분을 천천히 읽었다.



“ 신을 부르기 위한 주문, 그 주문은 바로 신의 언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의 언어가 갖는 힘, 그 말의 힘이 곧 주문이라고 쓰여 있군요.”


“ 그 말은...”



네. 어쩌면 신을 소환할 수 있어요. 이사벨라는 책의 마지막 부분을 펼쳤다. 그 마지막 부분에는 누군가의 짧은 글이 있었다.


- 루인, 고마워요.


“ 루인의 저주를 푼 태초의 사람. 그분께서도 이 책을 보았나 봅니다.”


그분은 어떻게 신의 언어를 읽을 수 있었을까요. 이사벨라는 책을 덮어 이안에게 건네주었다. 참 당신들은 알 수 없네요. 이안. 이안은 책을 받아들었다. 이름조차 없는 낡은 책의 한끝에는 오로지 루인이라는 이름만 있었다. 그 이름을 엄지로 쓸며 이안은 쓰게 말했다.



“ 그러게요. 저도 알 수 없는 것투성입니다.”



이 책이 어쩌다 아버지의 손에 들어왔는지, 또 어쩌다 그 사람이 읽게 됐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일기장의 마지막은 소녀가 죽기 전에 쓴,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눈물 자국조차 잘 보이지 않은 짧은 글뿐이었다.


‘ 당신에게 마지막 이야기를 쓰려고 해. 그날에 불같이 화를 내고 사라져 버린 당신에게 용서를 빌어도 소용없다는 거 알지만, 마지막으로 내 할 말을 들어줘. 부디 당신의 친구를 버리지 마.’


이안은 그날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날이 밝고 이안과 이사벨라는 다시 만났다. 둘만 있는 넓은 성전에 빛이 새어 들어왔다. 석좌 옆으로 이안이 세워놓았던 까마귀 깃발이 잔잔한 바람에 흔들렸다. 이안에게 책을 받은 이사벨라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 준비됐나요. 이안.”



신을 만날 준비. 준비라 할 게 있을까. 이안은 칼집을 꽉 잡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를 걱정 어린 얼굴로 보던 이사벨라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책을 펼쳤다. 그곳에 어느 소녀가 신을 부르기 위해 적어놓았던 구절이 있었다. 그녀는 그 구절을 읽을 수 있도록 해석한 종이를 이안에게 건넸다. 진심을 다해야 해요. 마치 원래 당신의 언어인 것처럼. 이안은 종이를 받아들였다. 신의 언어로 무언가 말하는 모습은 아이리스에게서 많이 보았다. 이안도 두 눈을 감고 아이리스를 떠올리며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따라 했다.



- 선, 나 이안 루인에게 대답해.



내게 빛을 거두고 어둠을 내린 빛의 신, 선. 이안의 언어가 공터에 울렸다. 이사벨라는 이안을 관찰했다. 그 순간 이안의 눈이 번쩍 떠졌다. 푸른 눈이 아닌, 검게 물든 눈으로 그는 신과 만났다. 짙고 어두운 검은 눈에 이사벨라는 무언가 잘못 됐다고 깨달았다. 그건 빛이 아니다. 그건, 어둠이다.


동시에 성전에 큰 굉음이 울렸다. 쿵 하고 내려앉은 압박에 이사벨라는 뒤를 돌았다. 검은 연기가 성전을 가득 채웠다. 짙은 보랏빛 연기와 함께 마르멜로가 나타났다. 마르멜로의 등장에 이사벨라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마르멜로는 미소를 지으며 이사벨라에게 인사했다.



- 또 만나네.



*




이안은 암흑 속에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려오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공허하고 공허한 곳에 이안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애써 암흑 속에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곳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바람도, 빛도, 땅도. 바닥이라 하는 것도 풀이 아닌 그저 차가운 바닥이다. 그 밑 역시 끝없는 공간이다. 거대한 공간. 그 순간, 이안은 눈앞에 다른 움직임을 느꼈다. 검은 암흑 속에 누군가 있었다. 온통 검은 옷에 검은 눈을 가진 다른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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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빛과 어둠(2) 19.05.25 13 0 15쪽
28 4부 빛과 어둠 19.05.21 14 0 16쪽
27 별의 죽음(6) 19.05.18 22 0 18쪽
26 별의 죽음(5) 19.05.14 23 0 13쪽
25 별의 죽음(4) 19.05.11 23 0 14쪽
24 별의 죽음(3) 19.05.07 22 0 15쪽
23 별의 죽음(2) 19.05.04 30 0 15쪽
» 별의 죽음 19.04.30 28 0 9쪽
21 갈등(4) 19.04.27 26 0 18쪽
20 갈등(3) 19.04.23 25 0 15쪽
19 갈등(2) 19.04.20 31 0 12쪽
18 3부 갈등 19.04.18 16 0 20쪽
17 2부 에필로그 19.04.17 19 0 14쪽
16 두 개의 펜던트(7) 19.04.16 19 0 12쪽
15 두 개의 펜던트(6) 19.04.15 18 0 11쪽
14 두 개의 펜던트(5) 19.04.14 20 0 10쪽
13 두 개의 펜던트(4) 19.04.13 26 0 13쪽
12 두 개의 펜던트(3) 19.04.12 16 0 17쪽
11 두 개의 펜던트(2) 19.04.11 16 0 13쪽
10 두 개의 펜던트 19.04.10 16 0 14쪽
9 세타시마을(5) 19.04.09 26 0 19쪽
8 세타시마을(4) 19.04.08 18 0 13쪽
7 세타시마을(3) 19.04.07 2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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