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자가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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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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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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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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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죽었는데요.

DUMMY

알렌이 마정석을 하나 더 챙기든 말든 알 바 아니었기에 검왕도 더 재촉하지 않았다.


“마정석을 함부로 버리고 갈 순 없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을 하찮게 여기면 안 된다고 했다. 알렌은 성실히 트윈헤드의 반대쪽 가슴까지 절개해서 마정석을 꺼냈다.


“이건 형태가 좀 다르네. 뭐 아는 거 있어?”


투박한 기존의 것과는 다르게 오른쪽에서 나온 건 잘 깎인 정팔면체의 모양이었다.


[몰라. 마정석이 어떻게 생겼든 알 게 뭐냐. 난 마물 연구학자가 아니거든.]

“그건 그렇지.”


검왕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 알렌은 마정석을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증거품은 하나로 충분하지.”

[너. 아공간 주머니도 가지고 있었냐?]

“필수품이지.”

[필수품은 얼어 죽을. 내가 충고하는데 정말 중요한 건 그냥 몸에 지니고 있는 게 낫다. 공간을 베어서 너에게 좌표를 귀속시킬 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조언이라기 보단 투덜거림 같은 검왕의 말에 알렌이 검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뭐 트라우마라도 있어?”


지금은 그냥 못생긴 유령 신세인 검왕이지만, 생전에는 꽤나 강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검왕이 무언가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정확히는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야 자신도 그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엔 잃어버리면 곤란한 것들이 다수 보관되어 있으니까.


[트라우마는 무슨. 짜증이 날 뿐이다. 대마법사란 놈이 아공간 주머니의 프로텍트를 해제시켜서 안에 있던 물건들을 죄다 날려버린 거랑, 드래곤이 디스펠을 걸어서 또 보관하고 있던 물건들이 공간의 건너편으로 사라진 걸 생각하면...아오!]


정말로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말을 하던 검왕이 끝내 이를 뿌드득 갈며 분노를 표출했다.


검왕의 표정을 보며 아공간 주머니가 털렸을 때의 위험성을 깨달은 알렌이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를 슬쩍 확인했다.


‘대마법사나 드래곤이 내 주머니를 털 리는 없겠지만...그래도 대비는 해둬야겠지.’


알렌이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을 때, 검왕이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끝내 되찾긴 했지. 결말은 나쁘지 않았어.]

“어떻게 되찾았는데?”

[어떻게 되찾았긴? 날려먹은 놈한테 책임지라고 했지.]


정말 검왕다운 생각이었다.


[너도 기억하고 있어라. 대마법사나 드래곤이나 자기 심장을 아끼는 건 똑같아. 그러니까 오러로 놈들의 심장을 좀 격렬하게 마사지를 해주면 웬만한 건 다 들어주게 돼있어.]


기분 좋은 과거를 떠올린 검왕이 음흉하게 웃었다.


검왕의 방법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한 알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숲을 빠져나왔다.


*


이 근방의 영지를 위탁받은 사람은 지젤 자작이다.


알렌은 영주청의 보초를 서는 병사의 앞으로 나섰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단 한 명이 시선도 받지 않도록 기척을 숨기며 걸어온 알렌이었지만, 영주를 만나는 데에도 아무 기별 없이 찾아갈 순 없었다.


“멈추시오.”


보초병이 창을 쥐며 알렌을 막아섰다.


“이곳은 영주님이 계시는 곳.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오.”


영주는 아무나 만나주지 않는다. 그리고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합한 신분을 갖추고 적격한 절차를 밟아야 영주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알렌은 적합하다 못해 넘치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의 두 가지 조건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야. 나한테 엄청 재밌는 생각이 났어. 여기서 좀 뻐기고 있다가 저놈의 행동이 과격해진다 싶으면 그때 신분을 밝히는 거지. 그럼 녀석은 용서해달라고 울고 불며 비는 거고, 난 그걸 즐겁게 감상하는 거고.]


검왕의 제안은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일의 극치였다. 생각할 가치도 없었다.


가뜩이나 시간이 없어서 절차를 무시하고 곧장 여기까지 온 것인데 뭐 하러 이런 보초병이랑 실랑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고작 용서해달라는 말을 듣기 위해? 까짓 거 안 들으면 안 되나? 자신은 저 보초병의 눈물 따윈 정말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왜 일을 꼬아서 가려는 건지 모르겠다.


알렌은 호벳을 내려놓고 입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상급 기사 아카데미의 생도복이 드러났다. 동시에 왼쪽 가슴에 있는 가문의 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르니오 가문의 대공자인 알렌 오르니오다. 아카데미에 가기 위해 마차를 타고 가던 중 마물의 습격을 받았지. 지젤 자작님께 급히 말씀 드릴 것이 있어 무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다.”


보초병이 눈을 크게 뜨며 알렌의 생도복에 새겨진 오르니오 가문의 문양을 쳐다보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병사는 깍듯이 허리를 숙여 예의를 표하고 옆에 있던 병사와 자리를 교대한 뒤에 곧바로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냥 정체만 밝혔을 뿐인데 저 정도면....대체 가문의 악명이 얼마나 높은 거야?]

“악명이 없어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야.”


아리스티아에서 오르니오 가문이란 그런 거였다. 검을 잡는 이들은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을 만큼 격이 다른 피를 지닌 자들.


알렌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잘 체감할 수 없었지만, 다른 일반적인 가문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자신의 가문은 상당히 특별했으니까.


자신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그 전대 가주, 전전대 가주, 전전전대 가주....혈통의 시조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며 보이는 모든 이름의 주인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강자들이었다.


피를 받은 모든 이들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매 세대에 걸쳐서 반드시 한 명 이상의 마스터를 배출해낸다는 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낸다.


검을 쥐고 오러를 터득한 이들이라면 당연히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마땅한 가문이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오르니오 가문을 일컬어 검의 신이 수호하는 가문, 혹은 오러의 축복을 받은 가문이라고도 한다.


[마스터되기가 뭐 그리 어렵다고 그러는지 원.]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무술을 연마해도 될까 말까한 게 바로 마스터란 경지야.”

[내가 보통사람으로 보여?]


보통사람은커녕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네가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 않냐?]

“그래 너 잘났다.”

[칭찬은 감사히 받긴 할 건데. 우리 좀 솔직해지지? 너도 나랑 비슷한 생각 아닌가?]

“내 지능이 너랑 동급이라니. 심히 모욕적인 말이야. 욕은 좀 삼가지?”

[아오.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네가 다 알아서 해. 난 신경 안 쓸란다.]


검왕은 그렇게 말하며 알렌의 앞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 만약 내가 네 몸으로 환생했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은 이 시대 이후로 오르니오가 아니라 내 이름을 칭송했을 거다.]


생전의 검왕은 귀족이 아니었다. 그저 숲에 버려진 고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오롯이 혼자만의 존재 그 자체로도 세상에 우뚝 서며 하늘 아래의 그 어떠한 귀족과 왕족들보다도 위대한 검의 왕이 되었다.


[진정한 강자들은 네가 어떤 가문이고, 네가 어떤 놈의 후손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네 스스로가 쌓은 업만을 보고 판단할 뿐이지.]

“나와는 인연이 없는 말이군.”


알렌은 진정한 강자란 게 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그는 업이 아니라 상대의 가문과 권세를 보고 접근할 생각 또한 넘쳤다.


그렇게 소리 죽여 대화를 이어가던 중, 관문 뒤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경을 낀 지젤 자작이 평소에 안 하던 달리기까지 하며 알렌을 향해 달려왔다.


문이 닫혀 있었기에 뒤의 광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알렌의 감각은 고작해야 그런 시각적인 방해 따위에 구애 받지 않았다.


지젤 자작이 문 뒤에서 숨을 고른 뒤, 병사를 시켜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태연히 서있는 알렌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알렌 대공자. 나를 만나러 올 거면 미리 기별이라도 주지 그랬나. 그렇다면 좀 더 적격한 방식의 환대를 하였을 터인데.”


그는 정식으로 작위를 이은 자작이었지만, 명백히 알렌의 눈치를 보는 행색이 확연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던 일도 집어치우고 알렌을 향해 최우선적으로 뛰어올 리가 없으니까.


옷단장을 하거나, 가마를 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1초라도 빨리 알렌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부끄럽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알렌도 자작의 모습에 의문을 품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오르니오 가문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이러는 편이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할 테니까.


오르니오 가문의 인원은 다른 일반적인 가문의 사람들에 비해 약간 다른 처지에 놓여있다.


다른 가문에서 망나니가 나오면 폭력을 행사할 때, 사람 몇 놈 주먹으로 패는 게 다다.


혹은 가문의 사병을 이끌고 행패를 부리거나.


하지만 오르니오 가문에서 망나니가 나오면 그건 재앙이다. 검 한 번 휘두르면 건물이 날아가니까.


굳이 가문에서 사병을 끌고 올 필요도 없다. 이미 단신으로도 충분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알렌은 그러한 모습 같은 건 보인 적이 없었지만, 그의 선조 중 몇몇이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몇몇 귀족들 사이에선 오르니오라는 이름이 사신의 이름과도 동일시된다.


실제로 죽이기로 마음먹으면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선 둘은 유사한 면이 있었다.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단 안에 들어가는 게 여러 측면에서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대공자의 생각은 어떠한가?”

“자작님의 배려에 힘입어 그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허허. 너무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되네. 내가 누누이 말했지 않은가. 자네 저택처럼 편하게 있으라고. 그런데...이번 용무는 오르니오의 가주님과 관련된 일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안에 들어가서 하고 싶습니다만.”


변종 오우거에 대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밝힐 수 없는 사건이었다. 자칫하다 영지민들의 귀에 들어가면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내가 너무 대공자를 오래 세워두었군. 어서 들어오게.”


지젤 자작을 따라 알렌은 영주청의 귀빈실로 들어가 지젤 자작과 대화를 시작했다.


먼저 의자에 앉은 지젤 자작이 뒤이어 알렌에게 자리를 권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알렌이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무슨 일인가?”

“자작님 놀라지 마시고 들으십시오. 마을과 인접한 숲에서 트윈헤드 오우거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트윈헤드 오우거는 다른 숲의 오우거들을 부하로 만들고 놀들을 통합시켜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었지요.”


알렌의 말을 들은 지젤은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네.”

“그렇습니까.”


알렌 또한 이런 지젤의 반응을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다. 떡하니 길에 오우거가 튀어나올 정도인데 숲을 조사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길드와 연합하고, 토벌군을 창설할 계획이었지. 앞으로 5일 뒤면 트윈헤드의 토벌이 시작될 걸세.”


그러면서 지젤은 은근한 눈길로 알렌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오르니오 가에서 힘을 보태줄 순 없겠는가? 트윈헤드가 있다면 밑의 오우거들의 전력에 큰 차이가 생기니 여러모로 불안해서 말일세.”


지젤이 알렌에게 저자세로 나온 이유 중 하나였다.


“어...음...”


알렌은 어떻게 말을 떼어야 할지 고민했다.


이미 준비가 거의 다 끝난 상황에서 대뜸 트윈헤드는 이미 뒤졌고, 그 밑에 있던 잡것들도 함께 썰렸다고 말하기엔 지젤 자작의 눈동자에 담긴 의지가 너무 강렬했다.


‘뭐. 내 알 바 아니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알렌은 그냥 시원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지젤 자작님.”

“왜 그러나?”


알렌의 말투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지젤이 표정을 굳혔다.


“그게...이미 죽었습니다.”

“죽었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트윈헤드 오우거, 그 밑의 오우거들, 그리고 놀들까지. 전부 뒤...아니. 토벌되었습니다.”


그 순간 자작의 입에 쩍 하고 벌어진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삽질 오지게 했구만.]


검왕이 그 옆에서 쯧쯧 혀를 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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