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가, 고마워.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드라마

완결

대이
작품등록일 :
2019.03.30 14:37
최근연재일 :
2019.04.24 13:05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794
추천수 :
29
글자수 :
174,038

작성
19.04.06 13:30
조회
55
추천
1
글자
13쪽

2. 시험

DUMMY

“한 달 전 계약서 넌 기억하지?”

“도윤이 계약서에 추가해서 장례, 상주, 땅문서, 집문서 관련 내용이 있었지.”

“잘 기억하네.”


역시 기억력이 좋다. 단순히 자신의 편의를 봐주고 보답으로 유산 일부를 넘긴 다라 적힌 문서에 추가해 이런저런 내용을 집어넣었었다.

도윤이에게 남은 뒤처리를 시키는 것도 미안하고 적당히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런 것을 기억하고 잘 실천할 만한 인물은 지호였다.


“죽으면 바로 땅과 집이 너의 소유가 되고 유산도 받고, 내 뼈도 옆에 작은 건물을 세워 이곳에 놓인다고 쓰여 있었지. 받아들이지 않고 떠나도 괜찮다는 조항도 있었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괜히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아차린 지호의 표정이 굳어갔다. 집안에서 순순히 밑으로 내려오는데 아무런 대가도 없이 왔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가진 회사의 지분과 재산, 땅까지 관련된 계약을 하고 내려왔으리라. 심지어는 더한 것도 걸고 왔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날 찾아왔을 때 계약서에 적어두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말을 꺼내는 이유를 지호는 알았다.


“필요가 없어서 적혀있지 않았지만 언젠가 네가 이곳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여기 남은 땅이나 집이나 내 뼈 나와 관련된 물건들 전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덤으로 도윤이 대학 학비도 사라지고.”


협박이다.

자신이 죽게 되는 날, 따라 죽지 말라고 하는 협박이자 자신을 생각하며 이곳에서 살아달라는 이기적인 욕심이다.

사회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자신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한다고도 생각하며 늘 삶을 포기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주제에 이제는 가끔 행복한 표정을 한다.

그럴 거라면 그냥 살라고.

자신의 욕심을 더해 이곳에서 자신을 추억해주면서. 명이 다해 죽을 때까지.

20년 정도만 이곳에 있으면 전부 그대로 둔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굳이 그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구질구질하게 조건을 달아 추가 이쪽으로 조금이라도 기울게 했다.

그러니 기왕이면 선택해줬으면 했다.


“... 간단하게 죽지 말라고 해.”

“너의 대답은 뭐야?”


보통 한국인들과 달리 눈에 희뿌연 색이 더해진 회색의 눈을 응시했다. 다정하게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다정하지 않았다.


지호는 알고 있다.

죽음, 자유, 시우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


그는 죽음이라는 선택지는 절대 고르지 말라는 협박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받은 책들과 학교를 열심히 다니라는 말. 자유를 제 손에 쥐여주면서도 이곳에 남아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고 있었다.

게다가 유치하게도 도윤이의 학비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분명 그런 거 필요 없다고 괜찮다 말할 녀석인 것을 알면서도 작은 추를 하나 더 달아 선택해 달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 모든 것을 걸고 살아달라 하는데 거절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다시 돌아가 살아달라는 말을 했더니 진심으로 화를 냈던 놈이다. 오래 살아주었으면 하지만 그 의지를 꺾어내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받기는 싫었다.

죄책감도 분명 있지만 이젠 그것보다는 애정에 더 가까운 마음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존재가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은 싫다.

게다가 자신은 사회 속에 들어가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자유를 얻어 나간다 하더라도 단명할 것이다. 도윤에게 말하면 체해서 강아지 언어를 터득했냐는 말을 들을 게 뻔하다.

그런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더니 연약하고 제멋대로인 그가 제 쪽을 향해 따가운 눈총을 준다.

이제 대답을 해야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 말 안 지키면 대머리로 만들어 줄게.”

“대머리여도 잘생기면 괜찮아.”

“얼굴에 주름도 추가할게.”


그제야 다시 웃음 짓는 연약하고 고집이 세며 뒤끝이 강한 미소년은 냉장고에서 푸딩을 꺼내 본인의 지정석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이제야 좀 살만하네.”


드디어 자신이 할 일을 다 끝마쳤다는 상쾌한 표정을 지은 그가 평소의 여유를 되찾았다.


“미련을 좀 가져봐.”

“더 살아서 뭐하게. 난 이제 여한이 없다-”


흰색의 넉넉한 와이셔츠를 입어 소매를 걷어 올린 부분에 화상 자국이 훤히 드러나 있는 소년은 플라스틱 숟가락을 이용해 부드럽게 푸딩을 떠먹었다.


“주변 사람의 마음도 생각해줘.”


제발 몸 좀 사리면서 가능한 한 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말을 전하며 신이 나 푸딩을 먹는 소년에게 담요를 둘러준 지호였다. 뜨겁고 눅눅한 실외와 다르게 바닥은 살짝 따뜻하며 공기는 약간 서늘하고 쾌적하게 유지되고 있는 흰 집이기에 한 행동이었다.


“봐서. 그보다 남은 한 놈은 어떻게 처리해볼까? 한여름 밤의 꿈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걸로는 역시 마음에 안 찬단 말이지.”

“그런 데에 머리 쓰려 하지 마.”


받은 건 두 배 이상을 갚아줘야 마음이 풀리는 시우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러다가 저번처럼 피라도 흘리면 큰일 나니 쓸데없는 일에 굳이 머리 쓰지 말라는 뜻이라는 걸 알아챈 시우는 푸딩을 먹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저번엔 일이 많았으니 그런 거지 아직은 움직일 만했다. 환자라 해도 누워서 나뭇잎 떨어지는 것만 바라볼 시기는 아니다.

그 지경이 된다 하더라도 나뭇잎만 바라보긴 싫었다. 그리고 복수는 철저하게 해야지.


“나를 위해 하는 거니 괜찮아.”


확실하게 묻어두어야 속 시원하지. 저번의 두 놈은 당한 것과 비슷하게 갚아주었지만 비슷하게 주면 너무 정이 없지. 그러니 부처 같은 마음으로 한 번 더 여름밤의 꿈을 길게 보여주기로 한 시우였다.

지금 즈음 본인에게 복수할 생각도 못 하고 정신없이 구르고 있을 놈들을 생각하면 속이 개운해진다.

따로 표정 관리 할 필요가 없기에 실실 웃고 있는 시우를 보곤 건강했으면 얼마나 사람들을 잡고 다녔을지 시우의 악마보다 더한 머리에 두려움을 느끼는 지호였다.

하지만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다 당해도 싼 사람들뿐이었으니 정의의 악마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자신의 입속에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 맛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해?”


제 고민은 다 끝났다는 듯 히죽히죽 웃으며 입에 푸딩을 넣어온 저 천진난만한 아이를 보니 악마는 무슨 천사지 라는 생각한 지호였다.


“커스터드 크림 맛있네.”

“이 제품이 가장 맛있어.”

“맨날 그것만 먹잖아.”

“맛있으니까 먹지.”

“그럼 나도 먹을래.”

“너건 따로 사와.”

“알았어.”

“책도 다 읽어.”


조금 전 자유롭지 못하게 발을 묶어놓더니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용한 지식은 머리에 넣어놓으라는 천사이자 공주님의 말이 어이가 없긴 했지만, 별수 없었다. 하라는데 들어야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 한정으로 물러지는 지호였다. 특히 시우가 하는 말은 더 잘 듣는 지호였다.


“알았어. 사온 뒤에 읽을게.”

“그동안 난 피아노 쳐야겠다.”

“오래 치지 말고.”

“말 잘 들어줬으니 오늘 정도는 그 말 들어줄게.”


스스로 몸 망치지 말라는 뜻을 잘 알아들은 시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마저 푸딩을 입에 집어넣었다.


* * *


“넌 왜 여기 있어?”

“푸딩 사러 왔어.”


도윤은 버스를 타고 나온 시외 대형 백화점에서 뜻하지 않은 인물. 서지호를 만났다. 대답과 함께 푸딩이 가득 담긴 봉지를 흔들어 보인 지호였다.


“시우가 시킨 심부름이야? 걔도 참 별나 따로 집사님에게 말해두면 알아서 올 것을 푸딩만은 맨날 너에게 시키더라. 너 솔직히 아직 미움받는 거 아냐?”

“심부름이 아니라 내가 먹을 거 사러 온 거야.”

“뭐?”


언제부터 푸딩을 좋아했다고. 도윤이 아는 서지호라는 인물은 간식은 입에 대지 않고 토종 한국인 밥상만을 먹는 사람이었다.


“일주일간같이 있다 보면 식성도 비슷해지는 거야?”

“그런 거라고 하자. 그나저나 무슨 일 있어? 보통 바로 집으로 오잖아.”


대충 얼버무린 지호는 도윤과 그 뒤에서 열심히 고기를 고르고 있는 반의 유일한 커플을 발견했다. 둘은 오늘은 소고기가 좋다 돼지고기가 좋다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 이였다.

아마 도윤은 그들의 싸움을 보다 못해 다른 것을 구경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추론을 마친 지호가 다시 저를 바라보는 도윤을 바라보았다.


“살 게 있어서 나온 김에 겸사겸사 들렀다 가자 해서 왔어. 시우에겐 미리 연락해뒀고.”

“그래? 같이 들어가면 되겠다.”


지호는 서프라이즈라도 하려나 보다 생각해 도윤이 뒤로 슬쩍 감추고 있는 무언가를 못 본 척하고 넘어갔다.

자신이 감춘 것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안심한 도윤은 커플과 합류해 빠르게 장을 보고 물건을 커플에게 맡긴 뒤 양손 한가득 푸딩을 든 지호와 함께 흰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주말은 평화로웠다. 종종 비가 내리긴 했지만, 실내에서만 지내니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시우와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고 다 같이 모여 영화를 틀어두기도 하였으며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월요일이 되자 지호도 지옥 같은 등굣길을 함께하게 되었으며 학교는 생각보다 쾌적하였다.

채원과 서준은 지호에게 숨겨봤자 다 들킬 테니 그냥 들키고 모른 척해달라는 작전을 펼치자면서 당당하게 학교에 용접 도구를 가져왔다.


“그러니 비밀로 해줘!”

“좋아.”

“너도 같이할래?”

“아니. 그리고 도구 3개 밖에 없잖아.”

“그렇긴 하지.”

“학교에서 해도 된대?”

“허락받았으니 괜찮아!”


그렇게 말하곤 한 손으로 쓸 수 있는 인두를 들어 보인 채원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진 지호였다.


그렇게 자신의 일을 모른척해 준데다 용접일 까지 도와준 지호 덕에 도윤과 채원과 서준의 서프라이즈 계획은 차근차근 틀어지지 않고 진행될 수 있었고 곧이어 방학이 찾아왔다.


“종종 놀러 갈게! 마무리는 맡겨둬!”

“열심히 만들어 둘게.”

“나중에 톡 보내줘!”

“너희 들킬 것 같은데.”

“그렇게 안 되게 옆에서 좀 도와주라~!”


마을의 공포였던 소년은 어느새 친구들의 셔틀이 돼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자신의 사람에게 물렁한 지호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곧 비 올 것 같으니 빨리 가자.”

“알았어.”

“돌아가면 수박 화채 해줘.”

“그래그래.”


이 정도의 어리광은 부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지호는 금방이라도 물방울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도윤과 함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진짜 아슬아슬했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수수 쏟아지는 빗줄기를 창문 너머로 확인하자마자 안도감과 쾌적함에 바닥에 주저앉은 도윤이였다.


“덥고 습하고 쪄 죽을 것 같았는데 들어오니 살 것 같다!”

“그러면서 학교 방학 특강도 꼬박꼬박 나가기로 했다며?”


팔자 좋게 소파에 드러누워 특제 초코 커스터드 맛 푸딩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미소년이 어서 오라는 인사 대신 투덜거리는 말을 뱉었다.


“들어두면 좋으니까 그렇지!”

“집에서 공부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아? 머리 좋은 강사가 2명이나 있어.”

“한 명은 환자잖아! 그리고 집이면 집중이 안 돼. 한두 시간 일주일 정도만 듣는 건데 좀 봐줘.”

“알았어. 대신 그동안 매일 다른 고기반찬 올려 줘야 해.”

“학교 영양사가 할만한 고충을 내가 느껴야겠어?! 나는 없지만, 지호는 있잖아.”

“벌이야 벌~”

“수박 화채를 부탁해.”

“저녁은 연어요리로 부탁해~”

“이놈들이!”


그래도 말하면 해준다는 것을 아는 시우는 도윤이 할 수 있는 최대범위의 한도를 요구하며 떼를 썼고 지호는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자신의 몫의 어리광을 당당히 주문했으며 둘의 웃는 표정에 약한 도윤은 결국 방학식 날도 그들의 주문대로 휘둘렸다.


저녁이 되자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으며 먹구름이 사라지지 않는 기간이 다가왔음을 실감한 도윤은 창문을 꼭꼭 걸어 잠근 뒤 제 방으로 올라갔다.


다음 날 아침도 그칠 줄 모르는 비가 내렸고 이 비를 뚫고 학교에 가야 한다니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하며 도윤은 거실로 내려왔다.


‘여름이라 그런가? 빗소리가 참 크게 들리네.’


막연하게 생각하던 도윤이 미묘한 더운 공기를 느끼고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은 큰 창틀을 바라보았다.


“어?”


지난밤 닫아두었던 창문이 활짝 열려 비가 집 안쪽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안녕, 잘가, 고마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8 6. 안녕 (완결) 19.04.24 51 2 17쪽
27 6. 안녕 19.04.23 61 1 16쪽
26 6. 안녕 19.04.22 61 1 14쪽
25 6. 안녕 19.04.21 37 1 13쪽
24 6. 안녕 19.04.20 41 1 13쪽
23 5. 여행 19.04.19 24 1 15쪽
22 5. 여행 19.04.18 47 1 13쪽
21 5. 여행 19.04.17 44 1 14쪽
20 4. 추억 19.04.16 47 1 13쪽
19 4. 추억 19.04.15 45 1 16쪽
18 4. 추억 19.04.14 38 1 14쪽
17 4. 추억 19.04.13 36 1 15쪽
16 4. 추억 19.04.12 51 1 17쪽
15 3. 장마 19.04.11 52 1 13쪽
14 3. 장마 19.04.10 36 1 14쪽
13 3. 장마 19.04.09 46 1 13쪽
12 3. 장마 19.04.08 48 1 13쪽
11 3. 장마 19.04.07 60 1 13쪽
» 2. 시험 19.04.06 56 1 13쪽
9 2. 시험 19.04.06 45 1 13쪽
8 2. 시험 19.04.05 80 1 13쪽
7 2. 시험 19.04.05 50 1 12쪽
6 2. 시험 19.04.04 68 1 14쪽
5 1. 돌아왔다 19.04.03 61 1 13쪽
4 1. 돌아왔다 19.04.02 50 1 13쪽
3 1. 돌아왔다 19.04.01 77 1 13쪽
2 1. 돌아왔다 19.03.31 156 1 11쪽
1 1. 돌아왔다 19.03.30 327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