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이야기는 16세기 후반의 잉글랜드와 조선을 무대로 하여, 그 시대에 명멸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대체 역사 소설입니다.
필자가 이 소설의 배경으로 잉글랜드와 조선을 택한 것은 두 나라의 역사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16세기 후반의 잉글랜드는 유럽 변방의 작은 국가였습니다. 인구는 4백만이 채 안 되고 재정수입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종교분쟁으로 민심이 가톨릭과 개신교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스페인은, 인구는 잉글랜드의 두 배가 넘고, 재정수입은 여섯 배가 넘는 유럽 최강국이었습니다. 이런 강대국이 로마교황청을 등에 업고 잉글랜드에 압박을 가합니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엘리자베스에게 가한 압력은 두 가지였습니다. 엘리자베스가 펠리페 2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것입니다. 양국의 국력 차이를 비교해보면 잉글랜드가 스페인의 압박을 거부하고 맞서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스페인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그녀 자신과 잉글랜드의 운명을 걸고 스페인과 맞서 싸웁니다. 그녀는 사략 해적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스페인 왕실 보물선을 탈취하고, 해군력을 증강하여 스페인 함대와 맞서 싸웁니다.
양국의 국력을 비교하면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을 만큼 큰 차이가 났지만, 엘리자베스는 강력한 지도력과 지혜로운 통치술로 열세를 극복했습니다. 그리하여 1588년에는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역사에 길이 남는 전과를 올립니다. 엘리자베스의 뛰어난 통치는 잉글랜드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어 변방의 작은 국가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엘리자베스의 통치 시기를 영국 역사의 황금시대라고 칭송하고, 영국인들은 엘리자베스를 영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로 받들고 사랑합니다.
그에 비하면 비슷한 시기에 조선 땅에서 일어난 임진왜란은 잉글랜드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그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국력을 비교해보면 인구수나 곡물 생산량 면에서 일본이 조금 앞섰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국력만 놓고 보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릴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조선의 임금은 전쟁을 대비하지 않고 손 놓고 있다가 일방적으로 얻어맞습니다. 전쟁을 대비하지 않은 대가는 엄청난 혈채(血債)가 되어 돌아옵니다. 7년 동안 전쟁에 시달려 조선 팔도가 황폐해지고, 백만 명에 이르는 조선 백성들이 칼 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굶어 죽게 됩니다. 아무런 대비 없이 넋 놓고 있다가 선빵을 얻어맞아 국력이 크게 쇠퇴하고,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져버립니다.
유럽과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차이는 있지만, 잉글랜드와 조선은 비슷한 시기에 국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역경이 닥쳤을 때 두 나라 지도층이 대처하는 방법은 서로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극명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대항해시대 이야기’는 16세기 후반에 활약한 잉글랜드와 조선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필자는 ‘대항해시대 이야기’를 쓰면서 역사와 과학 고증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대체 역사 소설의 본질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역사 고증이 엉망이거나 개연성이 없다면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될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의 소재가 되는 역사와 과학을 깊이 고증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우선 역사 서술이 길어지면 글이 무거워지고 설명이 장황해집니다. 시오노 나나미처럼 역사를 서술한 글로 백만 부씩 팔아치우는 필력이 없는 한, 역사 서술이 길어지면 많은 독자들이 지루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결국 관건은 역사 서술과 고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되, 분량을 짧고 간결하게 하고 나머지는 독자들이 흥미로워하는 소재로 채워 넣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써놓은 초고(草稿)를 살펴보니 대략 8권 정도의 분량인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초고를 작성할 때 최대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에 중점을 두었지만, 역사와 과학을 서술한 부분은 여전히 문장이 길고 무겁습니다. 게다가 스토리 전개상 독자들의 인기를 끌 만한 소재가, 전반부보다는 중반과 후반부에 몰려있습니다. 만약 웹 연재가 아니고 종이책으로 출간한다면, 독자들도 이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웹 연재의 특성상 가볍고 쉬운 문장에 익숙한 독자 중에는 이 글이 무겁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글의 성공 여부는 매일 매일 글을 연재하는 동안 무거운 부분을 덜어내고 흥미로운 소재를 채워 넣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덜어내야 할 부분이, 필자가 초고를 쓸 때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가장 호평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 저의 커다란 딜레마입니다.
가볍고 시원시원하게 전개되는 글에 익숙해진 독자 여러분들에게, 요즘 트렌드와 많이 다른 글을 선보이려니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역사를 좋아하고 개연성 있는 글을 찾는 독자들이라면 ‘대항해시대 이야기’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피아 독자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합니다.
태하(太河) 배상(拜上)
필명(筆名) 태하(太河)는 태자하(太子河)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태자하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 서쪽에서 발원하여 요동벌판을 흘러내리는 강입니다. 우리에게는 잊힌 지 오래된 곳이지만, 그 옛날 고구려의 젖줄이었던 강입니다.
千秋悵望英雄淚 (천추창망영웅루) 천고의 세월에도 다 마르지 않은 영웅의 눈물
一劍行裝烈士風 (일검행장열사풍) 칼 한 자루 든 행장은 열사의 기풍이라
最是長河名太子 (최시장하명태자) 길고도 긴 강 태자하여
至今遺恨謾流東 (지금유한만류동) 지금도 한이 남아 아득히 동쪽에서 흐르네
강선(姜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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