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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참가작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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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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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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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DUMMY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아마 체감하기로는 하루가 통째로 지나간 것 같았다.

이미 내 몸은 충분히 만신창이가 되었고, 더 이상은 주먹을 휘두를 힘도 없었으며, 심지어 제대로 서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헉. 헉. 쿨럭.”

그래도 나는 서야만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싸워야 한다.

이미 형태를 잃고 뼈가 드러나는, 제대로 쥘 수조차 없는 망가진 주먹이지만, 아직까지 계집애처럼 팔은 휘두를 수 있다.

이미 각도가 기묘하게 꺾여 자세를 잡기 힘든 망가진 다리였지만, 아직까지 노인네처럼 부들거리며 설 수는 있었다.

“커헉! 컥! 헉. 헉.”

한때 주군을, 월영단의 단주님을 곁에서 모실 때에도 이토록 열정적이지 않았건만, 대체 뭐가 이토록 죽음마저 불사하게 시키는 건지.

시우 도련님은 그저 단순한 보호 대상일 뿐, 그렇다고 원인도 모르는 채 갑작스레 충성을 맹세하고 싶어진 샬롯 아가씨도 아니었고, 나에게 일말이나마 남아있는 주군에 대한 충성심과 살아남으라는 마지막 명령조차 아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무명, 그 얼빠진 덩치만 큰 놈은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주제에 정작 내가 다 해결해주면 뭐가 그리 좋은 지 박수를 쳐가면서 바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었지.

내가 옛날에 산림촌에서 칼 맞고 죽기 직전에 보여주었던 그 쓸데없이 눈물과 콧물 범벅인 더러운 미소가 말이다.

“크, 크윽! 빌어, 먹을!”

아니, 세상에. 그러면 내가 그 머저리 같은 놈 하나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이토록 반병신이 되어서 싸우는 꼴이란 소리인가? 하물며 머리에 든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몸집만 커다란 사내놈을 상대로?!

“크, 크하하. 크아하하핫! 아하하핫!”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웃음이 터지자 전신에 격통이 엄청났다.

하지만 덕분에 조금이나마 기운이 났다.

적어도 주먹 한 번 정도는 더 휘두를 수 있겠지.

“자, 덤벼라! 이 돌덩이들아! 누가, 이 사나이 대장부의 주먹에 다시 산산조각이 나서 구르고 싶으냐!”

그러자 다시금 적의를 느낀 돌덩이 인형들이 수십 마리, 일제히 나에게 거리를 좁혀오면서 몰려들었다.

그토록 두들겨 맞아가면서 공격하고, 막고, 별 지랄을 떨어도 고작 이 정도 숫자 밖에 줄이지 못 했던 건가?

“하, 하하. 이럴 줄 알았다면, 동방국을 나와서 좀 더 성실하게 수련이나 할 것을.”

조금씩 다가오는 놈들의 인영이 나에게 접해오자 무릇 옛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즐거웠던 추억이라고 해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그 마저도 유별나게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첫사랑이었던 여자에게 차이는 거나 우연히 일확천금을 얻게 되어서 한 동안 부자들이나 할 법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싸구려 기억들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주군이 나와 무명을 인정해주고 거두어 준 기억이 떠올라서 썩 나쁘지는 않았다.

“큿! 우, 우와아아아!”

내 안에 미약하게 타오르고 있는 생명의 불씨, 그것을 단숨에 태워내서 무리하게 전신을 활성화 시켰다.

이런 걸 두고 회광반조, 아니 그보다는 동귀어진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모든 힘과 정신을 쥐어짜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고 준비했지만,

“우와아아아, 아? 우왓?!”

어디에선가 날아오는 대량의 화살, 아니 빛줄기, 아니 하얀 불꽃, 아니 돌덩이에게 맞아서 폭발하는 것을 보면 폭탄인가?

어쨌든 내 기합 소리가 작아져서 묻힐 정도로 엄청난 수의 공격이 돌덩이들에게 쏟아졌다.

“으, 으와앗! 저리가! 우왓! 위험해!”

기묘하게도 그 무수하고 놀라운 공격은 일절 나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만, 오히려 돌덩이들이 산산조각으로 터지는 통에 그 충격으로 날아오는 잔해에 맞을까 우려해서 폭발하는 돌덩이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내가 파편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하염없이 박살이 나던 돌덩이들은, 단순한 건물 잔해로 쪼개지고, 산산조각이 나서 급기야 먼지로 변해버려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제는 나 혼자 뿐이었다.

“흐, 무, 무슨, 일이?”

처음에 이쪽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어느 정도 인식한 것과 제정신을 차리고 말문이 트인 것은 고작 몇 초 남짓이었겠지만, 그 사이에 내가 긴 시간을 버티면서 죽을 각오로 덤벼들었던 돌덩이의 대군은 완전히 전멸.

뭔가, 좀 허무했다.

“어이.”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은 내가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누군가 하늘 위에서 나를 불렀다.

혹시 신이라도 되는 것일까?

“다시 보게 되네?”

신은, 아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언젠가 나를 두들겨 패고, 협박하고, 또 다시 두들겨 패고 다음은 당시보다 더한 협박을 한 여성, 아니 샬롯 아가씨의 지인이라고 들은 ‘가나 아칸’님이셨다.

“아, 아, 아, 아칸 님?”

뭔가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근엄하고 어두운 표정, 필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게 분명하다.

비록 돌덩이들의 대군을 상대로 주눅이 들지 않던 나였지만, 어째서인지 이 분을 상대할 때면 본능적으로 무서워진다고 할까.

그냥 무섭기도 하고, 성질 때문에 더러워서 피하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에서다.

“토리, 시우는?”

“대답. 여전히 접촉 불가능. 저의 분신체들이 정체모를 특수한 자기장에 가로막혀서 대기 중의 마나를 탈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시우가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에? 말하는 건 아칸 님인데, 어디선가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저기? 아칸 님?”

그러자 갑자기 내 쪽을 노려보면서 귀찮다느니 뭐라느니, 나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아얏! 아칸 님, 제가 이렇게 보여도 중상자란 말입니, 무, 무명?!”

나에게 날아온 것은 입에 거품을 물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기절한 무명 녀석이었다.

어째서 이 녀석이 아칸 님에게서?!

“그 녀석은 말도 안 통하고, 급기야 하늘에서 날 붙잡고 늘어진 채 기절까지 해 버려서 무척 귀찮았어! 하지만 너라면 제대로 설명해 주겠지? 지금 대체 어떤 상황이야?! 시우는 어디에 있고?!”

뭔가 화가 잔뜩 나신 아칸 님, 아니 아칸 누님은 나에게 설명을 요구했지만, 정작 나도 제대로 된 상태도 아니기도 하고, 정신없이 싸우느라 도망치는 모습은 못 봤다고 할까.

“대답. 2대 마스터, 시간이 촉박합니다. 이시우는 현재 ‘광대의 잡화점’에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나중에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 모습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매몰차게 말했지만, 그 말이 맞았다.

지금은 나 같은 것보다 빨리 시우 도련님을!

“그, 그렇다굽쇼! 시우 도련님이 위험할 지도 모릅니다요!”

똑같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만 들려서 아까 전에 이 돌덩이들을 조종한 녀석과 비슷한 놈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목소리에서는 시우 도련님에 대한 걱정이 묻어나는 것도 같고, 무엇보다 아칸 누님과 함께 있으니 나로서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저기? 제 말 듣고 계신, 우왓?!”

아칸 누님은 나 같은 것을 안중에도 없는 모양인지 터무니없는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뛰어갔다.

물론 나도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으나 제대로 설 수 없었기에 전력을 다해 기어야만 했다.

“큭! 그래, 분명 저 엄청나게 강할 것 같은 누님이시라면 분명히 시우 도련님을 지켜내고 말고!”

하지만 이럴 경우 샬롯 아가씨께서 내려준 명령을 지키지 못하는 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 험한 문책을 받게 되거나 정도에 따라서는 벌까지 내리실 것 같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 본능이 그럴 것 같았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윽! 조, 조금만, 조금만 더!”

내가 전력을 다해 기어가는 곳은 허름하고 낡아빠진 가게.

뭔가 새하얗고 이상한 화장을 한 누군가의 얼굴이 간판으로 걸려있었지만, 방금 전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말하길, 이곳이 아마 ‘광대의 잡화점’이라 생각한다.

“시, 시우 도련님! 계십니까요! 이 사나이 대장부가 구하러 왔습니다요!”

사실 이런 엉망진창인 몸이면 누군가를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구해지는 쪽이겠지만, 남자가 꼴사납게 구해 달라고 빌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가게 안이 좀 이상했다.

아니, 누군가 한바탕 소동이라도 피운 것처럼 엉망진창인 가게의 모습은 그다지 위화감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에 비해 너무 조용했다.

“어, 아칸 누님?”

어째서인지 아칸 누님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손만 뻗고 있는 채 멍하니 서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이런, 젠장! 시우가 눈앞에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

“대답. 한 순간에 대량의 마나가 소모되는 것을 확인. 현재 탐색 범위를 최대한 확장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시간이 걸립니다만, 현재 줄어든 마나 수치와 마력 파장을 분석한 결과 어떤 이동 마법의 한 종류인 것 같습니다.”

역시 머리 나쁜 나로서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시우 도련님을 놓쳐버렸다는 것은 분위기상 알 것 같았다.

“쳇. 출입문이 없는 걸 보면 ‘게이트’는 아니고, 그 밖에 이동 마법이라면, ‘텔레포트’ 아니면 ‘워프’?”

“대답. 대기 중에 줄어든 마나 수치를 역산하면, 약 89% 확률로 이동 마법 ‘텔레포트’라고 추측합니다. ‘워프’의 경우는 이것보다 배 이상은 소모하였겠죠. 이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마치 개인이 써야할 이동 마법에 누군가가 간섭하고 있는 것으로 주변의 마나를 더욱 끌어들여서 한꺼번에 이동해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현상의 일종 같습니다.”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가게 안으로 기어들어오면서 말했다.

“그, 그럼! 시우 도련님은 대체 어디에 가신 겁니까요?!”

차라리 혼자 도망치셨다면 다행인데, 무려 적에게 끌려가 버릴 줄이야.

그러자 아칸 누님은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당혹스럽게 말했다.

“그, 그러고 보면 내가 너에게 준 스크롤! 맞아! 혹시 그 안에 저장되어 있는 텔레포트로 날아가 버린 거 아니야?!”

“대답. 과연,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어째서 이시우가 더욱 일찍 그 스크롤을 써서 도망치려 들지 않은 건지 다소 의아한 점이 남게 됩니다. 어쩌면 위기를 감지한 적 개체가 사용한 텔레포트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말을 나누고 있을 때 나는 비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시우 도련님이 도망칠 수도 있으셨는데, 그러지 못한 건 아마 나 때문이리라.

“지금은 그런 거 따질 시간 없어! 토리, 넌 계속해서 탐지 범위를 늘려 봐! 난 텔레포트로 이동한 장소로 가봐야겠어!”

“대답 및 질문. 알겠습니다, 2대 마스터. 그런데 어제는 묻지 못하고 이제야 뒤늦게 확인합니다만, 텔레포트로 지정된 장소가 어디인 것입니까?”

그 말은 들은 나는 더욱 필사적으로 기어서, 그렇게라도 해서 시우 도련님을 구하고자 맹세했다.

“내가 직접 지정한 건 아니야. 하지만 샬롯 가의 별장, 우리가 어제 머물렀던 별장 앞에 이동한다고 들었어!”

샬롯 아가씨의 별장, 그곳에 시우 도련님과 함께 이동한 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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