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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참가작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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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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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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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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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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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40화

DUMMY

“여, 여기 물약, 드세요.”

“아, 고마워요. 마리 씨.”

마리가 건네주는 물약을 집어든 시우는 입에 머금어 조금씩 마셔갔다.

“음. 덕분에 많이 나아졌네요.”

“다, 다행이네, 요.”

시우의 감상에 마리는 순수하게 기뻐하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우와 마리를 포함한 별실에 있는 자들은 극도의 적개심으로 긴장 상태였기 때문이다.

준비되어 있는 소파에 앉아 물약을 삼키는 시우, 그리고 그 옆을 벌벌 떨면서 지키는 마리 이외에도, 준비된 의자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고 있는 못마땅한 표정의 가나, 그리고 묵묵하게 입을 다물고 애써 시선을 피하고자 별실의 출입구 근처에 서 있는 알프레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실 구석에 마치 겁에 질린 동물처럼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우울한 상태에 있는 미셸까지.

“이런, 벌써 오셨군요.”

그렇게 별실의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혼자 읊조린 알프레드는 재빨리 문을 열었고, 곧바로 엘리자베트가 빠른 걸음을 유지하며 별실에 들어왔다.

“어머, 다들 벌써 다 모여 있었네?”

“어서 오십시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샬롯 아가씨.”

평소보다 빠르지만, 귀족으로서 기품 있는 발걸음을 유지한 채 준비된 상석에 앉는 엘리자베트.

그러자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가나가 살기등등하게 발언했다.

“좋아. 이제 올 사람도 다 왔으니 구석에 있는 저 녀석 좀 혼내줘도 되겠지?”

“가, 가나 씨!”

그 발언에 깜짝 놀란 시우가 짧게나마 반론하고자 입을 열었지만, 엘리자베트가 평소처럼 평정을 유지한 채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중재했다.

“어머, 어머. 혹시 가나랑 시우는 내가 없던 잠깐 사이에 싸우기라도 했어? 오늘 따라 기운이 넘치네?”

그 노골적인 비아냥에 가나는 말없이 구석에 몰린 미셸을 노려봤고, 시우는 불편한 표정으로 정정했다.

“나랑 싸운 건, 아니야. 저기 구석에 있는 미셸이랑, 좀 오해가 있었을 뿐이야.”

시우의 말에 엘리자베트는 구석진 곳에 있는 미셸에게로 시선을 옮겼고, 주목받은 미셸은 눈길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흐~음? 오해, 란 말이지?”

그러자 정신 사납게 발을 구르고 있었던 가나가 제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손가락으로 미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해는 무슨 오해야! 그 때 그 부상들이 넘어져서 생겼다고 변명이라도 할 셈이야?!”

“그,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어요! 단지 가나 씨가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악의적인 이유로 생긴 상처가 아니라는 겁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오늘 아침에 별장을 나설 때는 멀쩡했던 몸이 오후가 좀 넘어가니까 엉망진창이었고, 그 원인이 되는 원흉이 옆에 떡하니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게 오해라니까요! 그 때 당시에는 빈센트가, 아니 미셸이··· 아무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공격적이고 난폭한 인격이었다고요!”

“하, 하하! 그럼 결과적으로 인격만 달랐지, 결국은 저 몸뚱이로 너를 상처 입혔다는 거네?”

“그, 그건··· 하지만 미셸과 빈센트는 저를 구해주기 위해서 그 인격을 억누르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노력했다고요!”

“설마 실컷 두들겨 팬 후에 뒤늦게 양심에 찔려서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속셈이지 않았을까?”

“그런 거 아니에요! 가나 씨는 그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기 위해서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을 뿐이잖아요!”

“그건 시우, 너도 마찬가지야! 저기 구석에 있는 누더기가 더 이상 너에게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을 거라고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어?!”

서로의 이야기는 평행선이었다.

그러자 엘리자베트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둘 다 '조용히(사일런트)' 해줄래?”

두 사람을 억지로 침묵시켰다.

그러자 그제야 알프레드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고, 겁을 먹은 마리는 시우가 마시고 비어버린 병을 수거해서 재빨리 별실을 나갔다.

“우선 어떻게 된 일이었는지 알프에게 대략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방금 두 사람의 저급한 말다툼을 듣다 보면 나까지 머리가 혼란스러워 질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엘리자베트는 가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나 아칸, 설마 어제 스스로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던 걸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누구’를 믿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말한 엘리자베트는 이번에 시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시우, 아무런 힘도 없는 주제에 한심한 얼간이처럼 칭얼거리지 마. 자기 목숨이 달렸던 위험했던 판국에 주관적인 감정론을 들이밀면서 언제까지고 계속 배려만 해주리라 바라는 거야?”

그 신랄한 말에 가나도, 시우도 뭐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입은 물리적으로도 닫혀있고, 마법적으로도 닫혀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자베트의 말이 향한 곳은 그녀의 집사 알프레드 쪽이었다.

“마지막으로 알프레드, 내가 굳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겠지?”

그러자 알프레드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고개를 깊이 내려 말했다.

“···물론입니다, 아가씨. 이번 일련의 소동에 제 관계자가 원인이었던 것은 물론, 저 또한 개인적인 사심 때문에 샬롯 백작령의 치안을 어지럽힌 죄를 잘 알고 있으며, 그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들은 엘리자베트는 불편한 표정으로 작게 혀를 차며 대꾸했다.

“···아니, 후자의 경우는 성급했던 내 판단 탓도 있으니 나중에 아버님께 같이 언질을 받을 때 변호를 해야 하니 넘어가줘.”

어떻게 된 이야기인지 모르는 가나와 시우 입장에서는 호기심이 커졌지만, 엘리자베트의 말을 들은 알프레드는 깊은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금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일단 두 사람의 '침묵(사일런트)'은 '해제(디스펠)'시켜 주겠지만, 또 내 앞에서 그 따위 시시한 말다툼을 할 거라면 더 이상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

엘리자베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나와 시우의 입이 열리게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 가나가 투덜거렸다.

“샤베트, 무려 자기가 벌인 일이 있으면서 우리한테만 뻔뻔하게···!”

“그, 그건 아니지! 내 앞에서 그런 시시한 말다툼을 벌이는 두 사람을 질책해야 하는 건 귀족 영애로서 당연한 거고, 내 실수는 아버님에게 문책을 들어야 할 사항이지! 결코 너한테 뭐라 들을 이야기가 아니야!”

그러자 가나가 의외라는 듯 입을 다물자 엘리자베트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어차피 가나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고, 그렇다고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이번 소란은 내 감정적인 독단이 적잖게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지. 그 부분은 확실하게 아버님께 문책을 들을 생각이야.”

항상 자존심 강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엘리자베트는 마지못해 수긍하거나 단념한 적은 있었어도 이토록 저자세로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가나에게 있어 그런 엘리자베트의 순종적인 모습은 지인으로 알고 지낸 긴 세월 동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밖에 보지 못했던 매우 희귀한 사례였다.

“그, 그러니 아버님의 오늘 일정이 끝나면, 내일이라도 당장 다 같이 문책을 들으러 가는 거야! 그 때까지 누가 잘못했든 아니든 괜히 서로 헐뜯지 말고, 손님으로 취급해 줄 테니 모두들 얌전히 쉬면서 기다리도록 해!”

입가를 가리던 부채를 팔랑거려 얼굴을 식히며 말하는 엘리자베트.

평소 어울리지 않는 태도와 상반되는 고압적인 명령에 일행들이 모여 있는 별실은 정적이 내려앉게 되었다.

“헤, 헤헤헤. 그럼 샤베트가 그 딸바보 아빠한테 혼난단 말이야? 그건 한 번쯤은 보고 싶네!”

“시, 시끄러워! 가나 아칸! 아무튼 더 이상은 할 말들도 없을 테니 저녁 식사 시간까지 각자 방에나 들어가서 쉬고들 있으라고!”

그렇게 작게 ‘흥!’하고 부끄러운 듯 입가를 가린 부채 너머로 고개를 돌려버린 엘리자베트였지만, 이 별실에서 아직까지 풀지 못한 앙금이 있을지언정 그 모든 것을 애써 중재해주려던 그 말솜씨에 만큼은 모두들 소소하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럼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가씨.”

먼저 선뜻 다가온 것은 알프레드였다.

정중한 어투와 깔끔한 복장의 친절한 노신사가 손을 내밀자 구석에 웅크려 앉아있는 미셸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갈팡질팡했다.

“알프레드 씨의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미셸 씨의 에스코트는 저에게 맡겨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미셸에게 재빨리 다가온 건 시우였다.

아까와는 달리 시우가 손을 내밀기도 전에 미셸 쪽에서 먼저 손을 뻗었고, 미셸의 손을 부드럽게 잡은 시우가 먼저 다가왔던 알프레드에게 애절하게 부탁한 것이다.

“허허허! 그야 물론입니다. 거기 아가씨께서도 만나본 적도 없는 이런 늙은이보다야 시우 님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실 테죠?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배정된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알프레드를 선두로, 시우와 미셸이 별실 밖으로 나가 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별실에 남아있던 가나가 곧바로 대기 중의 마나를 격렬하게 휘저으며 조용히 분노했다.

“뭐가, 이능작가야. 난 하마터면 그 때처럼, 이번에도 소중한 사람을 잃을 뻔 했어.”

“···가나 아칸, 오늘은 더 이상 잘못을 따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어? 그건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포함된다고?”

엘리자베트가 허공을 향해 화를 식히려는 듯 부채질을 하자 휘몰아치던 마나는 서서히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건 내가 수차례 충고했던 말에 대한 당연한 결과야. 자책하지 말고 받아들이렴.”

가나는 그 말에 불쾌한 기분을 느끼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해야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소실된 기억과 이능작가의 단서를 찾기 위해 함께 여행하면서 이시우라는 인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 이후로 수도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납득해야 했었다.

광대의 잡화점 점장이 죽고, 어떻게든 미셸에게서 떨어뜨리기 위해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노력해야 했건만, 그 모든 노력과 결과들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감각에 휩싸여 절망스러웠다.

“그렇, 겠지. 받아들여야, 겠지?”

지금의 가나는 그렇게, 힘없이 수긍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자 엘리자베트는 이를 갈면서 입가를 가리던 부채에 마력을 모으더니 단 한 번의 부채질로 가나의 얼굴을 후려쳤다.

“정말 꼴사납네, 가나 아칸! 고작 별 볼일 없는 라이벌 하나가 늘었다고 지금까지 노력해온 걸 전부 부정하고, 절망한 끝에 도망치려 하다니!”

엘리자베트는 친구로서 라이벌로서 분노했다.

본인과 세상이 알고 있는 가나 아칸이라는 사람은 항상 밝고, 항상 기운이 넘치며, 항상 강해야 했다.

고로 지금의 가나 아칸은 가나 아칸이 아니었다.

“그렇게 대놓고 풀죽어있으면, 이 내가 싸구려 삼류 악당처럼 잘 됐다면서 비웃을 거라 생각한 거야?”

“샤베, 트?”

엘리자베트는 제자리에서 일어나 부채를 접고 가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대로 내가 너에게 시우를 맡겨야 했던 판단을 실수로 만들지 말라고! 내가 아는 가나 아칸이라면, 고작 이런 일로 주저앉을 정도로 나약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게 가나에게 한껏 소리친 엘리자베트는 분노를 잠재울 생각을 채 귀족답지 않은 걸음걸이로 별실을 나가버렸다.

“정말 바보 아칸, 정말 터무니없는 왕 바보 아칸 같으니! 네가 여기에서 그딴 일에 절망해버리면 그 동안 내가 해오던 일들은 대체 뭐가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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