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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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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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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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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DUMMY

이 몸의 인생은 아니, 내 인생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말해도 결코 용서받기 힘든 수라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 꿈과 이상을 위해서 두 손 가득히 넘쳐나던 각종 오장육부와 피의 고약한 악취는 평생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겠지.

또한 나에게는 그것을 부정하거나 후회하려는 순간조차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하물며 용서를 구한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으리라.

“헌데, 시우 꼬맹이를 죽이지 않는 건 왜일까.”

나는 집으로 돌아와 엉망이 된 지하 연구실을 청소하며 자문자답했다.

용병이나 모험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살인을 생업으로 삼는 암살자를 기준으로 생각해도 나는 죽여 온 생명의 자릿수부터가 다르며, 그 만행들은 연구라는 목적 하에 평범하게 실행에 옮겼었다.

지금 바닥에 뿔뿔이 흩어져 나뒹굴고 있는 각종 실험 재료들이 그 증거다.

“혹시 이후에 찾아올 보복이 두려워서··· 는 아니겠지.”

만약 그딴 걸 지금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면, 나는 진즉 생전 실험체들의 관계자나 의뢰를 받은 모험가나 암살자 등에게 따라잡혀서 철저한 보복을 당했으리라.

물론 나의 연구와 뛰어난 성과를 위해 각종 은폐 공작과 우수한 기술력, 그리고 든든한 인맥 등으로 보호받고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설령 그것이 자칭 베테랑 이능작가라는 가나 아칸과 샬롯 백작령의 영애, 아니 그 아비인 바론 드 샬롯 백작이라 해도 말이지.

“그럼 하찮게도 그 동안의 정 때문··· 도 역시 아니겠지.”

물론 과거에 시우 꼬맹이에게 모종의 정이라든가, 적지 않은 흥미가 있긴 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내 계획이 실패한 이후와 방금 전의 만남으로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렸다.

이제는 조각의 파편처럼 무척 희미해서 간신히 기억에만 남을 수준의 미세한 인식.

그 정도는 마치 밀린 연구를 위해 아침 식사인 호밀 빵을 거를지 말지 고민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연이은 실패로 심신이 피폐해져서 처리하기 곤란했다··· 는 것도 아무래도 아니군.”

비록 내 나이가 많다고, 그리고 부상도 완치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 문제에 한해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나에게는 시우 꼬맹이가 떨어뜨린 그 기묘한 물건이 손에 있었고, 이에 더해 확실하게 사살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까지 도달해 있었으니까.

설령 내가 아니라 힘도, 신장도 나에 비하면 훨씬 떨어지는 무능력한 꼬마라고 해도 내 손의 물건만 쥐어주면 상대를 죽일 수 있었다.

물론 발사 원리라든가, 거부감이라든가 기본적인 조작법이나 감정적인 면을 제외하면 말이지.

“···설마 이 내가 시우 꼬맹이에게 아예 화가 나지 않았을 리는 없겠고, 무기까지 건네주는 자비마저 베풀어서 무사히 보낸 이유가 대체 뭐지.”

나는 스스로 천재라고 자칭할 정도로 어느 베테랑 이능작가만큼 오만하지 않다.

그렇다고 어느 백작인 영주나 그의 딸내미처럼 냉정하면서도 온화한 성품을 지닌 성인군자도 아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다양한 분야의 온갖 지식을 섭렵하여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할 연구를 단독으로 달성하려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그들보다 어리석거나 자상하지 않다.

그런 내가 시우 꼬맹이를 살려서 보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렇군. 나와 비슷하기 때문인가.”

물론, 단순히 성격이나 성향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비슷하다는 건 결과다.

나나 시우 꼬맹이나 목표로 삼았던 것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았고, 그것을 실패로 간주한다면 서로 비슷한 처지가 된 셈이다.

“···하긴 시우 꼬맹이가 그 괴물 녀석을 무사히 보호할 수 있었다면 배알 꼴리긴 했겠군.”

확실히 그런 경우에서라면 그 어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그 괴물의 눈앞에서 시우 꼬맹이의 머리를 쏴서 터뜨려 죽였으리라.

아니면 오히려 그 괴물을 쏴서 죽이면 시우 꼬맹이가 절망하는 게 즐거웠을 지도 모른다.

나만 실패하고, 시우 꼬맹이만 성공하는 게 무척 아니꼽다.

“그렇지만 아직도 뭔가 애매한 기분이군. 그 이외에 달리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바닥을 굴러다니는 시체 조각들을 치우고, 깨져버린 실험 용품들과 흘러나온 각종 용액들을 연금술로 원래 상태로 복구시키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동안 언급한 내용 이외에 뭔가 이렇다 할 이유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흥. 갑자기 귀찮아졌군.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이제 와서는 부질없기까지 하지.”

이미 지나간 일.

그 당시, 그 자리에서 고민하려 했다면 또 모를까.

적어도 이미 살려서 무기까지 쥐어서 보낸 이후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질 결과다.

“이후에 시우 꼬맹이를 다시 만나서 앞으로의 계획마저 방해받게 된다면, 그건 또 모를 일이겠지.”

대충 정리한 지하 연구실은 아마 시우 꼬맹이가 들어왔을 때와는 별 다른 차이가 없으리라.

가사라든가 요리 같은 건 몰라도, 연구자로서 연구 재료의 위치 같은 건 나름대로 중요한 문제니 최소한으로나마 기억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충 치워두면 나중에 다시금 연구에 몰두할 때 도움이 되겠지.

“후우··· 그럼 잠시 쉬어볼까.”

그렇게 어깨를 스스로 토닥이며 사다리를 통해 위로 올라가자 누군가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 아니 정확히는 사람이 아닌 무언가.

언뜻 전신을 덮어버릴 보랏빛의 긴 로브였지만, 정작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출입문 틈새로 차단 마법이 걸려 있었을 텐데?”

“···그런 건 없었다. 보안에 상당히 취약하군.”

아, 그러고 보니 시우 꼬맹이가 물리적으로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마법진이 파손되었나?

이후를 참고해서 자동 복구 마법진도 함께 새겨둬야겠다.

“뭐, 그건 그렇고 매번 만나는 약속 장소가 아니라 일부러 이 몸의 집에까지 온 이유가 뭔가?”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이냐?”

솔직히, 짐작이 가는 건 정말 많다.

하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이놈에게 불었다간 한바탕 잔소리를 하겠지.

그러니 우선, 가장 확률이 높은 안건부터 시작하자.

“안타깝게도 예기치 못한 변수 때문에 진행 중인 연구는 실패했네.”

그러자 집 안의 마나가 크게 휘몰아치면서 각종 식기나 물품들이 요동치다 잠잠해졌다.

일종의 위협인 셈이겠지만, 이 이상 청소를 하는 건 싫었기에 나도 마력을 내뿜어서 저항했다.

“···우리 조직이, 월영단이 얼마나 되는 비용을 네놈에게 투자했다고 생각하나?!”

“글쎄··· 나이 탓인지 기억력이 애매해서 말이지? 아마 금화 수백 냥이지 않았었나?”

내 발밑으로 그림자가 솟구쳐 올라와 나를 휘감았다.

몇 번이고 보긴 했었지만, 실제로 당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역시 흥미로운 기술이다.

“···수백이 아니라 수천이다! 그 빌어먹게 많은 금액을 투자했는데도 성과는커녕 오히려 실패했다고?!”

“하하! 실패한 걸 실패했다고 말하지, 그러면 성공했다고 입 발린 거짓말이라도 말하길 바란 건가?”

그림자로 휘감은 부분은 다리, 허벅지, 허리, 팔 같은 상반신을 포함해 머리까지 크게 다섯 군데.

각자 조여 오는 힘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최근에 총상으로 다친 곳인 복부만큼은 조금씩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아팠다.

“단지 금액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곳으로 월영단의 지원도 있었을 텐데?!”

“아~ 이 몸의 계획에 아무런 쓸모도 없었던 그 버러지들 말인가? 일일이 명령하기 귀찮아서 절반은 시선을 끌기 위해 미끼로 썼고, 나머지 절반은 지하 연구실 아래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어디 내려가서 한 번 보겠나?”

보랏빛 로브 아래로 일렁이는 그림자가 형태를 이룬다.

그것은 마치 제국 기사단이라는 곳의 기마병이 다루는 원뿔 형태의 기다란 창처럼 생겼지만, 동방국 출신인 녀석에게 그런 지식이 있을 리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저 우연의 일치이리라.

“네놈은 조직의 귀중한 자산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것도 모자라 조직의, 당국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우리 월영단의 동지들에게마저 해를 끼친 희대의 쓸모없는 최악의 악녀다!”

그림자의 창이 하나, 둘, 셋, 이윽고 열 개가 생겨나며 그 안에 더럽고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게 느껴졌다.

하나만 맞아도 중상인 것에 일부러 독까지 담아낸 것을 보면 매우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 네놈에게 맡겨둔 동포들의 원한을 담아 월영단주를 대신해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그리고 저승에서도 부하 놈들에게 끝없이 능욕이나 당해라!”

나는 전신이 묶인 채 움직이지 못했고, 그림자의 창이 쏘아졌다.

하지만 걱정이나 후회는 없었다.

그 그림자의 창은 내 집의 바닥에서 솟아난 두꺼운 팔에 짓이겨져 산산이 흩어졌으니 말이다.

그 직후 내 집의 좌우에 해당하는 벽면에서도 커다란 손이 둘 튀어나와 보랏빛 로브를 입은 무언가를 좌우로 짓눌렀다.

“뭣···?!”

“뭘 그리 새삼스레 놀라나, 여긴 이 몸의 집이라고?”

다른 곳이면 몰라도 이 몸의, 내 집에 한해서 기습 같은 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이 집 자체가 내 연구실이면서 연구 성과이기도 하고, ‘골렘’이니 말이다.

“네놈은 아니, 자네는 아까 전에 동료들이 지하 실험실에 있다는 말을 듣고 빠져나갔어야 했네. 왜냐하면 시체라고 해도 빠져나간 생명력을 마력으로 환산하는 건 이 몸에게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은 기술이니 말이지?”

전문은 아니지만, 사령술에도 조예가 있는 나에게는 이런 식으로 영혼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즉 이 녀석이 실내에 들어와서 내 눈에 띤 순간부터 승산 따위는 없었던 셈이다.

나를 조르고 있던 그림자들도 사라진 참이니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호밀 빵을 집어서 자잘한 먼지를 털어냈다.

“뭐, 그래도 다소 난폭하긴 했어도 전신 마사지는 감사했네.”

“이, 이런··· 이런 것쯤은···!”

마지막 발악인지 반항할 생각으로 그림자를 키우려 했지만, 아마 소용없을 것이다.

아까 전에 공격을 막았던 골렘의 손처럼 마법 방지 대책으로 다수의 방어 마법이 걸려있는 극소 마법진이 새겨져 있으니 원리야 어떻든 대부분의 시도는 무의미하리라.

“···그렇지. 기왕 여기까지 온 거 그 월영단주라는 자에게 말이나 전해주게.”

바닥에 떨어진 호밀 빵의 일부분을 뜯어서 입에 넣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동안 여러모로 써먹기 편해서 나름대로 유용했었다고, 하지만 자네나 자네들 조직 말고도 이 몸을 후원해주는 자는 무척 많으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안타깝게도 함께했던 인연은 여기까지만 하게나.”

“이, 이런 천하에 더럽고 요망한···!”

마지막 욕지거리는 듣기 싫었던 탓에 좌우로 짓누르고 있을 골렘에게 명령해서 간단히 압사시켰다.

아니, 애초에 생명조차 아니니 압사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만, 아까까지 말하고 있던 상대방은 갑작스러운 단절에 다소 놀라긴 했었겠다.

“하아··· 그나저나 다음 연구는 어디서부터 진행해야 될지가 난감하군.”

이 몸은 아니, 나는 그렇게 호밀 빵을 조금씩 뜯어내며 다음 연구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을 반복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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