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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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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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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DUMMY

나는 옛날 일에 대한 기억이 없다.

고로 고향이 어디이며,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는 거라고는 쓸모없는 몸뚱이 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불행한 인생은 아니었다.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우리들은 의뢰를 받고서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의원들이란다.”


언제부터인지 그 의원들이라는 무리가 내 곁으로 찾아와 온갖 수발을 들어주었다.

딱히 내가 도와달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치료요? 저는 어디도 아프지 않은데요?”

“확실히 그렇게 보이는 구나. 하지만 꼭 아파야만 의원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렇게 의원들에게 둘러싸여서 지내야 했다.

치료라는 이유로 온갖 검사를 받아야 했고, 원료조차 모르는 수상해 보이는 약을 먹어야 했으며, 오늘은 어떠냐는 등 매번 똑같은 질문에 답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 덕분인지 내 마음 속은 따뜻한 무언가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진화랑, 이라고요?”

“그렇단다. 우리들이 너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네 신원을 간신히 알아낼 수 있었단다.”


비록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외롭지는 않았다.

그들이 있었기에, 곁에서 보살펴 주었기에 불행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할 순간이 오지 않았다.


“기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이 약해지면 큰일이니 오늘부터 무도를 단련해 보자꾸나.”


그들은 치료와 병행하면서 나에게 온갖 무공과 상식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나는 그 지식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윽고 한 가지 의문에 도달했다.


“근데 왜 여러분은 저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 거죠? 저는 여러분의 친절에 보답할 정도로 가진 게 없어요.”


내가 배운 의원의 개념은 사람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나에게는 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들에게 주어야 할 게 뭐가 있을지 몰랐다.


“원래,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에 대가는 필요하지 않단다. 사정이 어렵다면 누구나 나서서 도와줄 뿐이지. 그게 바로 착한 일이 아니겠니?”


그들이 말하는 착한 일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정의로운 일에 자부심을 갖고서 열심히 일하는 그들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손을 내어주는데 내가 불행할 리가 없다고 말이다.

비록 나는 기억하고 있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축복받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과거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그럼 저도 치료가 끝나면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의원으로서 명예를 걸고 너의 기억을 되찾을 방도를 찾아보마.”


그렇게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텅 비어있던 심신이 점점 차오르는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다.

줄곧 그랬을 터였다.


“제발··· 부탁이니 환자만은 건드리지 말아주시··· 으억!”

“어, 어떻게 이런 악독한 짓을! 정녕 그대들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오?!”

“···이곳에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정신이 병든 안타까운 사람마저 있는데! 당신들 같은 악인들에게 하늘에서 천벌이 떨어질 거요!”


월영단이라고 이름을 대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병실을 습격했다.

의원들은 환자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매달리고,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문답무용으로 귀중한 약재들을 강탈하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의원과 환자를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진정해라, 진화랑! 너만은··· 너만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나에게 삶의 목적을 일깨워 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서 월영단 놈들에게 덤비려 할 때, 남아있던 의원이 나를 붙잡았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도 다른 의원분들이··· 셀 수도 없는 환자들이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데!”

“그래서 더욱 보낼 수 없다!”


남아있는 의원은 내 양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 죽여 외쳤다.


“우리 의원들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게 하늘에게 주어진 천명이다! 그런데 죽는 게 뻔한 곳으로 애써 되살린 생명을 보내줘야 하는 걸 그저 두고 보고 있겠느냐!”

“하, 하지만··· 하지만···!”


의원들의 각오는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모든 게 문제없을 텐데 말이다.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도망치는 거다! 끝까지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면 언젠가 그런 네게도 누군가가 도움을 받을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게다!”


그래서 나는 의원의 말을 듣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고, 남아있는 의원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비록 우리들의 능력이 부족한 탓에 네게서 기억을 찾아줄 수 없었지만, 이것만은 반드시 명심해 두어라! 너는 그 누구보다 배우는 게 빠르고, 실력이 출중하니 어딘가의 조직에 우두머리가 되어 세상을 평정할 그릇이다! 오늘의 분함을 기억한다면, 이후에 나타날 악을 단죄해서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거다!”


그리고 그 의원은 내게서 떨어져 나와서 나를 대신해서 월영단의 미끼가 되는 것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그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날이었고, 지금 막 두 번째로 불행한 순간이 찾아왔다.


“···할아버님! 할아버님! 안 돼애애애!”


층계참을 박살내고 앞으로 돌진한 연합맹주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그 동안 꾸준히 갈고닦아온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내가 바라는 태평성대를 위해 흔쾌히 목숨마저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맹주님의 숭고한 희생으로 나의 허울 좋은 다짐은 서서히 빛이 바래는 것 같았다.


“진 소협! 어서··· 어서 할아버님을 따라가요! 따라가서 도와줘야 해요!”


진 소저의 말이 맞다.

그리고 그건 아직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내가 그 누구보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맹주님은 마지막 유언으로 나에게 두 사람을 부탁했고, 나는 그에 대해 반드시 지키겠다고 목숨마저 걸고 맹세했다.


“···미안하오, 진 소저. 부디 소인과 맹주님의 마지막 결단을 이해해주기 바라오···.”

“크흑··· 흐, 흐흑···!”


지금도 간신히 은형술을 발휘해서 눈에 띠지 않게 조금씩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기에 두 여인을 업고서 싸우는 건 고사하고,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니 옛날에 내게 충고해 준 의원님들이나 맹주님의 노고를 헛되이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


“정말, 미안하오··· 소인에게 좀 더 힘이 있었다면 맹주께서 동귀어진을··· 윽!”


맹주님이 잠시 기절하셨을 때 층계참에서 무인들과 여러 합을 나누다 입게 된 내상으로 무언가가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형언하기 힘든 격렬한 고통이 악질적으로 조금씩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커헉!”

“진 소협···?”


설마 이제야 다과에 섞였던 독이 효과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내기를 운용해서 억누를 수도 없어서 미칠 노릇이었다.

안 그래서 내상을 입어서 괴로운 마당에 그 위로 억누를 수 없는 독을 끼얹는 것 같아서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이, 이건··· 설마 진 소협도 독을···?!”

“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하, 하오나 두 낭자들은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염열도가 평상시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전신으로 퍼져가는 독을 알아차릴 수 있어도 억누르지 못해서 서서히 상태가 악화되는 게 무서웠다.

그러나 맹주께서 맡기신 두 낭자를 잃게 되는 건 더 무서웠다.


“지, 진정하세요! 지금 소녀의 문장력을 조금씩 흘려서 억눌러 보겠습니다!”


그러자 내 몸에 무언가가 흘러드는 게 느껴졌다.

내기도 아닌 무언가가 독에 닿자 조금이나마 진행이 느려졌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진 소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진 소저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았다.


“···그, 그럴 필요 없소! 소인은 진 소저의 마음만으로 충분하오!”


하지만 진 소저는 멈추지 않았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마치 옛날의 의원처럼 애절했다.

사람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도 간절하단 말인가.


“소녀는··· 더 이상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할아버님을 잃은 직후에 진 소협마저 잃게 된다면, 소녀는 더 이상 살 가치조차 없습니다!”


그렇다. 그랬던 것이다.

진 소저, 이 분이야 말로 맹주님의 의지이자 유일한 혈육으로서 본국의 미래를 위해서 나 따위보다도 훨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본국을, 아니 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진 소저의 힘은 물론이며, 맹주께 마지막으로 명령받은 이런 나조차 필요한 인재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진 소저, 혹시 소저는 소인을···.”


그 순간 우리들이 지나 온 반대쪽 층계참의 문이 요란스럽게 무너졌다.

그곳에는 무수한 상처를 입어 다리를 절뚝거리는 거한의 중년, 대력창 양산박이 살기흉흉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양 대협··· 설마 그 폭발 속에서 살아있을 줄이야!”


나는 서둘러 은형술을 풀어서 진 소자와 아칸 공을 자리에 내려놓고 염열도를 두 손으로 쥐어 자세를 잡았다.


“안 됩니다, 진 소협! 그 몸으로는 무리입니다! 단 일합조차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겁니다!”


이번에도 진 소저의 말이 맞다.

수많은 무인들과 합을 주고받으면서 입게 된 내상, 그리고 아직까지 서서히 퍼지고 있는 독기, 또한 본래의 양 대협과 명백한 실력의 차이마저 고려하면 일합조차 주고받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알고 있소. 하오나 맹주께 마지막으로 맹세한 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무인으로서 지키고자 하려는 소중한 자를 지키지 못한다면··· 일생 동안 검을 든 이유가 없소!”


나 같은 무인 나부랭이 같은 게 살아남는 것보다 진 소저 같은 맹주님의 혈육이자 특별한 인재가 살아남는 게 본국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진 소저와 아칸 공이 도망이라도 갈 수 있도록 시간을, 아니 동귀어진의 각오로 서로 일합을 주고받는 것으로 양 대협의 다리라도 잘라낼 것이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뜬금없이 밝히지만, 일찍이 소인의 정신에는 병이 있어서 과거의 기억이 대부분 소실되어서 남아있는 게 그다지 없소.”


호흡을 가다듬고, 몸 속에 남아있는 내기를 가다듬고, 조금씩 떨리는 염열도를 진정시켜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마음을 고양시키며,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


“그래도 소인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연맹에 소속된 것에 크게 감사하고 있소. 본국의 어려운 이들에게 무상으로 손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었으니 말이오!”


양 대협이 절뚝거리며 다가온다.

비록 대력창이라는 별호가 붙을 정도로 강대한 창술을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창술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기 위해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 짐승 같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내게 있어서 행운이었다.


“만일 본맹의 이러한 지옥도를 무사히 빠져나가게 된다면, 진 소저께서 소인의 이야기를 계기로 삼아 실로 정의롭고 올곧은··· 그런 연맹을 결성해주셔서 다시금 본국에 태평성대를 약조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소!”


단지 일합.

그 일합에 염열도를 휘둘러서 동귀어진이 된다면, 그래서 두 낭자가 무사할 수 있다면 족하다.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 손에 힘을 쥔다.

날카롭게 벼려진 정신을 더욱 날카롭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모든 힘을 염열도에 쏟아 붓는다.


“···부디, 소인의 몫까지··· 무사히 살아주시오···!”


그것이 내 인생 최대의 일합.

설령 양 대협이라 할지라도 이미 내 염열도의 사정거리 안에 든 이상 막아낼 수밖에 없을 터다.

그리고 막아내는 것으로 염열도에 담긴 한 줌의 진기가 내상을 일으켜서 다리를 묶어둘 것이다.


“우, 우와아아아!”


느닷없는 비명.

그러나 나의 비명도, 양 대협의 비명도, 그렇다고 두 낭자의 것도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해! 어깨에 확실히 고정시키라고 했잖아! 아군까지 쏠 셈이냐?!”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소총은 처음 다뤄보는 걸요!”


순간, 두 낭자의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외지인 남성 두 사람.

그리고 어째서인지 양 대협은 전신에 무수한 구멍이 뚫린 채 쓰러져 있었다.

아니, 둘 중 하나는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그러자 진 소저가 놀란 듯 소리쳤다.


“···이, 이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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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제105화 19.07.10 15 0 12쪽
104 제104화 19.07.09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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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제102화 19.07.07 16 0 12쪽
101 제101화 19.07.06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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